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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대담 1부 : <만화가, 직업인가 사명인가?>, <만화 학교, 필수적인 통과의례가 되었나?> 발제와 토론

이번 만화 대담은 ‘만화의 과잉 생산으로 빚어진 작가의 빈곤화’를 주된 주제로 하여, 현재 프랑스 작가의 다수가 처해있는 현 상황에 대해 인식하고 개선 방향에 대해 토론하였다. 물론 주제 이외의 만화를 둘러싼 다양한 이슈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2016-10-17 윤보경
9월 28일부터 30일까지, 프랑스 앙굴렘에서 <만화 대담(Rencontres nationales de la bande dessinee)>이 개최되었다. 이번 호에서는 프랑스 글로벌리포터 윤보경 작가가 3일 동안 열렸던 컨퍼런스 주제 중 <만화가, 직업인가 사명인가?>, <만화 학교, 필수적인 통과의례가 되었나?>를 다룬다. <편집자 주>

- 1부 -

프랑스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 중에도 작가, 에디터, 배급처, 서점, 도서관, 만화 교육자 관련 인사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는 있었다. 그럼에도 어느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만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두 함께 토론을 한다는 구체적인 지점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었는데, 이런 아쉬움과 각 분야에서 흘러나오는 토론의 필요성으로 2016년 9월 말 <만화 대담>이 앙굴렘의 국제만화이미지센터 (La cite internationale de la bande dessinee et de l´image) 에서 그 첫 문을 열었다.
이번 <만화 대담>은 ‘만화의 과잉 생산으로 빚어진 작가의 빈곤화’를 주된 주제로 하여, 현재 프랑스 작가의 다수가 처해있는 현 상황에 대해 인식하고 개선 방향에 대해 토론하였다. 물론 주제 이외의 만화를 둘러싼 다양한 이슈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주빈으로는 미테랑 전 대통령 시절에 문화부 장관, 교육부 장관을 지낸 자크 랑(Jack Lang)이 초대되었다. 그는 지금의 국제만화이미지센터의 전신이었던 국립만화이미지센터(CNBDI)의 설립을 추진한 사람이기도 하다. 자크 랑 전 장관은 “만화를 위험에 처한 채로 그냥 둬버린다면, 만화를 뿌리로 하는 다른 미디어들도 연쇄적으로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다양한 프랑스 만화들이 조명 혹은 재조명되어, 그 본연의 가치를 찾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만화계의 인사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현재 만화계가 갖는 다양한 어려움에 대해 묻고 경청하면서, 변화를 위한 시스템의 변화와 지원 등에 대해 살펴보겠다고 대답했다.
△ 사진 1. 국제만화이미지센터 앞에서 (좌측부터) 앙굴렘 시 수석 보좌관, 국제만화이미지센터장 사뮤엘 카즈나브(Samuel Cazenave), 전 문화부장관, 전 교육부장관 자크 랑(Jack Lang), 국제만화이미지센터 대표 피에르 랑게레티(Pierre Langheretti). / 사진 2. 연설하는 자크 랑(Jack Lang) 전 문화부장관, 전 교육부장관.
사흘 간 이어진 대담의 첫 번째 주제는 <만화 작가, 직업인가 사명인가?>로 만화 이론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브누아 페터즈 (Benoit Peeters)와 만화가 데니스 바즈함 (Denis Bajram), 시나리오 작가 발레리 망진 (Valerie Mangin)이 프랑스 작가들의 2015년의 현황을 조사, 분석하여 발제하였다. 이는 ‘레 제타 제네루 (Les etats Genereux’ (어떤 분야의 현황과 문제점 등을 조사하도록 임명받은 임시 협회)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졌다.
△ 사진 3. (좌측부터) 첫 번째 발제의 사회를 맡은 필리 뮤노즈(Pili Munoz), 발제자 데니스 바즈함 (Denis Bajram), 발레리 망진 (Valerie Mangin), 브누아 페터즈 (Benoit Peeters).
세 명의 발제자는 ‘현재 프랑스의 작가들이 괴로워하는 다양한 증상들은 실제로 감추어져 있지만 실질적인 무언가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생각으로, 그 실체를 드러내고 나누어 함께 해결책을 찾는 것에 그 목표를 두었다’고 말하면서, 만화계의 현황에 대해 아래와 같이 분석했다.

1. 과반수의 작가들이 ‘작가는 임시적인 직업’이라 인지함 : 32%의 작가들만이 안정적 직업이라 생각함.
2. 여성 작가들의 증가 : 12% 가량에서 27%까지 증가했음.
3. 젊은 연령의 작가들이 증가 : 56% 작가들이 40세가 되지 않았음 (작가 연령의 평균 : 30대 후반~40대 초반).
4. 고등 교육을 받은 작가들의 증가 : 79%의 작가들이 전문 예술 기관에서 교육 받음.
5. 작업 분량의 증가 : 작업 시간과 수고에 많은 희생이 따름 (36%의 작가들이 주당 40시간 이상을 근무, 80%의 작가들이 주말 없이 작업).
6. 경제적 수입의 출처가 다양해짐 : 71%의 작가들이 그들의 수입을 원고 이외의 것으로 해결함 - 아예 다른 직업을 갖고 있거나, 외주, 교육으로 수입을 해결함.
7. 사회 보장의 부재 : 병가 (88%), 육아 휴직 (81%)이나 실업 급여 등에 대해 도움 받지 못함.

현황을 살피면 작가들이 갖고 있는 문제와 어려움이 드러난다. 위 사항에 덧붙인 다른 현황들도 있다. 현재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시리즈 만화’에서 ‘그래픽 노블’로의 작업 경향의 변화이다. 이는 급여 시스템도 바꾸었는데, 과거의 ‘페이지에 따른 급여’ 시스템에서 현재의 ‘프로젝트에 따른 급여’ 시스템으로의 변화가 이루어졌다. 출판사와 계약서 작성 시 대부분 프로젝트 한 건 당으로 계약을 하기 때문에, 총 몇 페이지가 작업될 것인지 부수적인 작업들이 있는지 구체적이지 않다.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계약하는 것이다. 그래픽 노블의 장르 특성상 페이지 수가 많은 편이고 실제 작업량은 늘어났지만 그에 따른 보상은 부족해진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작가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부추긴다고 분석되었다. 원고를 디지털화 하면서 생긴 다른 부수적인 일들도 모두 작가의 일이 되었다. 식자 선택과 식자 작업, 원고를 스캔하고 보정하는 모든 과정에는 금전적 보상이 없다. 결론적으로 페이지당 급여는 점점 줄어드는데, 작가들이 맡아야 하는 일들은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출판 프로모션에 대한 부분도 고쳐야 할 시스템으로 지적된다. 많은 만화, 출판 페스티벌에서 책을 프로모션하기 위해 작가들이 초대되어 한나절 이상을 사인과 데디까스 (dedecace,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로 수고 하지만 자신의 책을 판매한다는 외에 다른 경제적 보상은 없다. 때때로 규모가 작은 페스티벌에서는 교통비와 숙박비, 식비도 최소로 지원하기 때문에, 작가들이 자비를 들여서 프로모션을 위해 임하는 경우도 있다. 만화 작업에는 다수의 인원들이 참여하기도 하는데, 이들은 프로모션을 위한 페스티벌에 초대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시나리오 작가들은 자신이 쓴 책의 프로모션에 초대되지 않은 이상한 상황에 종종 처한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만화책을 작업하는데 많은 시간이 투자되어야 한다는 것은 많이 알고 있는 부분이지만, 시스템 상에서 완전히 이해받고 있지 못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 가지 예로, 만화 작업 기간과 일반 문학의 작업 기간과 비교되는 경우다. 물론 저술에도 많은 시간이 투자될 수는 있겠지만, 가능한 모든 시간을 투자해야만 작업물이 나올 수 있는 만화의 작업 시간과의 비교는 부당하다. 그럼에도 아이러니하게 문학 집필의 완성을 기다리는 에디터와 독자의 태도는 만화를 대하는 태도에 비해 너그럽다. 시리즈로 출판되는 만화의 경우, 최소 1년에 한 권의 작업량이 에디터와 독자에 의해 강요된다.
시리즈 만화 외의 그래픽 노블의 경우에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데, 작업 구상의 단계 (시나리오 구상, 자료 조사, 이미지 실험 등)에서는 아직 어떤 계약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당시 행하는 모든 작업들이 이후에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작가는 작업을 지속해야 한다. 다행히 계약이 잘 이뤄져서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현재의 프로젝트가 끝나고 난 이후에 대한 고민도 함께해야 한다. 다시 새로운 프로젝트가 계약되기까지 어떠한 경제적 수입도 없을 공백 기간을 최대한 줄여야 하기에 많은 작가들이 현재의 프로젝트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다음 프로젝트의 구상에 들어간다. 이 모든 사항들이 작가를 하나의 직업이라기보다는 개인이 짊어져야 할 사명처럼 만들고 있다.
최근 많이 논의되고 있는 ‘여성작가에 대한 성차별’에 대해서도 언급되었다. 계약서 작성 시, 남성 작가에 비해 더 적은 계약금을 제안 받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 “너무 여성적, 소녀스럽다”는 등의 여성 작가가 작업한 이미지에 대한 성적인 크리틱에 대해 지적되었다. 만화 관련 수상자 리스트에서 여성 작가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부분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지난 1월의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는 그랑프리 수상 후보자 (30명가량) 모두가 남성 작가였고, 그에 대한 공분이 일자 페스티벌 측은 급히 여성 후보자를 추가하여 명단을 정정한 일이 있었다.
성차별에 반대하는 작가들의 모임을 대표하는 마리 그로리스 바르디유 바이엉뜨 (Marie Gloris Bardiaux Vaiente)는 여성 작가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였다. 그녀는,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어떤 장르처럼 고착되는 것을 지양’하며, ‘성차별에 반대하는 모든 주장들은 특정 남성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이의를 제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만화의 다양성을 위한 통로를 확보해야 한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사진 4. (좌측부터) 사회를 맡은 필리 뮤노즈(Pili Munoz)와 발제자 마리 그로리스 바르디유 바이엉뜨 (Marie Gloris Bardiaux Vaiente), 데니스 바즈함 (Denis Bajram), 발레리 망진 (Valerie Mangin), 브누아 페터즈 (Benoit Peeters), 현황을 정리 분석한 사회학자 피에르-미셸 멍제르 (Pierre-Michel Menger).
두 번째 주제는 <만화 학교, 필수적인 통과의례가 되었나?> 로 진행되었다. 프랑스어권 만화 관련 학교들의 교육자들이 대담에 초대되었다. 에밀 꼴 학교 (Ecole Emille Cohl, 프랑스 리옹), 유럽 상급 이미지 학교 (Ecole europeenne superieure de l´image, 프랑스 앙굴렘), 생 뤽 학원 (L´institut Saint-Luc, 벨기에 브뤼셀), 항 예술 상급 학교 (Haute Ecole des Arts du Rhin, 프랑스 물루즈/스트라스부르그), 브라사흐-델쿠르 아카데미 (Academie Brassart-Delcourt, 프랑스 파리), 이미지 캠퍼스 협회 (l´association Campus Image, 프랑스 앙굴렘)의 관련자들이 모였고, 대담의 진행은 만화 전문가 티에리 그로엔스틴 (Thierry Groensteen)이 이끌었다.
첫 번째 대담에서 잠시 언급되었던 것과 같이, 대부분의 작가들은 학교 교육을 거쳐서 작가로 데뷔하고 있는데, 국립 사립 포함한 15개가량의 학교에서 매년 100명 이상의 작가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작가의 빈곤화가 만화의 과잉 생산으로 인해 빚어진 것이라면, 매년 만화 학교에서 작가를 대량으로 양성하고 있는 것이 문제 발생의 원인 아닌가?, 작가들의 삶의 질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많은 교육기관들은 그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가?’라는 지적에서부터 대담이 출발되었다.
△ 사진 5. (좌측부터) 사회를 맡은 티에리 그로엔스틴(Thierry Groensteen)과 각 학교의 대표들, 에밀 꼴 학교의 알리스 리비에르(Alice Riviere), 앙굴렘 유럽 상급 이미지 학교의 티에리 스몰드렌 (Thierry Smolderen), 생 뤽 학원의 마크 스트레커(Marc Streker), 항 예술 상급 학교의 조셉 베(Joseph Behe), 이미지 캠퍼스 협회의 빅토르 멜리니(Victor Mellini), 브라사흐-델쿠르 아카데미의 에릭 데리안(Eric Derian).
각 학교의 대표들은 학교들이 갖는 각각의 특성과 특징에 대해 설명하였다. 사립학교인 에밀 꼴 학교는 아카데믹한 이미지 교육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데, 서사적 이미지의 창작은 기초 숙련이 된 이후에 진행하도록 지도한다. 매년 40명가량의 학생들을 배출하고 있다. 앙굴렘에 있는 유럽 상급 이미지 학교(국립)는 35년 전에 시작된 만화 아틀리에로부터 만화 교육을 시작했다. 예술 학교 테두리에서 만화 교육을 시작했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만화 뿐 아니라 다양한 이미지를 다루는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고, 이론 교육에도 방점을 두고 있다. 브뤼셀의 생 뤽 학원은 유럽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1968년 설립) 만화 교육 기관이다. 사립학교이지만 지역의 도움으로 국립학교처럼 운영되고 있으며, 각 학년 마다 100명가량의 많은 학생들을 수용하고 있다. 항 예술 상급 학교는 스트라스부르그 장식예술학교와 다른 인근 학교들을 모두 엮어 새롭게 명칭된 교육기관이다. 국립이라 다른 국립 프랑스 학교와 마찬가지로 교육비가 저렴한 편이며,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테크닉보다는 독자와 작가의 관계에 대해 집중하여 작업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이 교육기관에서는 가르치는 과목을 ‘만화’보다는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지칭하고 있는데, 이는 더 큰 화면으로 이미지를 다루는 학생들을 모집하기 위함이라 설명하고 있다. 앙굴렘에 있는 이미지 캠퍼스 협회는 단 16명의 학생을 수용한 작은 교육기관이다. 학생들을 만화, 애니메이션계 종사자로 만들기 위한 전문 테크닉을 교육하기 때문에 이후 취업이 보장될 수 있을 학생들만 선별해 수용한다. 사립 기관이라 1년 교육비가 6000유로 정도로 국립에 비해 비싼 편이다. 파리에 있는 브라사흐-델쿠르 아카데미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델쿠르 (Delcourt) 출판사가 학교 설립에 참여했다. 젊고 재능 있는 작가들을 미리 발굴하고자, 기존의 브라사흐 학교에 출판사가 개입하여 새로이 개교했다. 교육 이후에 모든 학생들이 델쿠르 출판사와 함께 작업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출판과 관련된 것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기회는 더 많이 갖고 있다. 3년 과정의 사립 기관으로 1년 교육비가 6750유로이다.
만화 교육에 있어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에 대해 각 학교 대표 대부분은 “이론과 실기 모두 중요하지만, 실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브라사흐-델쿠르 아카데미는 “실습에 치중되어 있을 때, 교육 내용이 없는 것 아니냐 라는 불평도 가끔 듣는다”면서, “그럼에도 어떤 작업 과정 전체를 모두 겪어가며 배우는 것은 이론적으로 간단히 정리해서 말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앙굴렘 유럽 상급 이미지 학교는 “석사과정에서는 이론과 실습이 절반씩 할애”된다고 말하면서 이론에도 많은 시간을 둬야하는 상황의 특수성을 언급했다. “석사과정은 학기말 논문이 있기 때문에 만화의 역사, 이미지 분석, 만화의 경제학, 세계의 만화 경향 등에 대해 다루지 않을 수 없다”며, “이론 수업은 매주 실시되는데 반해 실기 수업은 워크숍을 통해서만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학교에 상주하는 4명의 선생님이 학생들의 모든 요구를 들어줄 수 없으므로, 외부의 작가와 전문가를 매년 초대하여 워크숍을 하는 것이 실기 수업에서 아주 중요하다 생각한다”고 밝혔다.
데뷔를 앞두고 있는 작가들은 어떻게 책을 준비해야하고, 어떻게 에디터와의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학교 교육에서 다루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항 예술 상급학교의 대표는 “학생들은 필요성을 확실히 느낄 때서야 요구 사항을 크게 말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도 그들이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강요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출판 계약 관련, 학교 이후 생활에 관련된 모든 것은 학생들이 저학년일 때에는 관심을 거의 두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들의 귀가 열리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이해시키는 것도 교육의 역할이라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이미지 캠퍼스 협회의 대표는 “경제 위기,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 등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 다양한 테크닉을 갖출 것을 학생들에게 요구한다”면서 “만화 산업이 어려울 경우, 게임이나 다른 이미지 산업 전반으로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라고 그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에 티에리 그로엔스틴은 “만약 교육이 그렇게 움직인다면, 만화 교육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질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우려했다. 또한 “상대적으로 작은 양의 페이지에 주제나 테크닉이 정해져 있는 작업들만 학교에서 배웠는데, 졸업 이후 200~300 페이지 작업의 그래픽 노블을 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경향은 어떻게 봐야하는가?”라 질문했다. 항 예술 상급학교 대표는 “어떤 학생들이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교육자들은 전혀 알 수 없는 부분이다. 학생 때의 작업은 최소한 알아야 하는 것과 시간이 허락하는 분량에 대해 요구한다. 그것을 엮어 어떻게 작품을 만들어내는가는 학생 자신의 몫”이라고 대답했다. “학생일 때는 다양한 사회적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졸업과 함께 사회적 부담감을 되찾고 난 후, 전과 같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해진 경우도 많이 봤다”고 덧붙였다.
앙굴렘 유럽 상급 학교 대표는 “자가 출판을 학생들에게 권하는 경우도 자주 있는데, 이는 그들의 한계를 기존 산업계에서 만들어 놓은 틀에 맞춰 작업하지 말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무언가 부족한 아마추어 같은 작품이라도 조금씩 형태를 갖춰나가면 그들의 한계를 그들이 정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객석에 있던 브누아 페터즈는 “기존의 것을 통해 산업계에 들어올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하는데, 너무 이상적인 교육이 행해지고 있는 것 아닌가”라며, “학교를 일종의 게토처럼 만드는 것이 옳은 것인가 생각해봐야”한다며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에 “학교를 게토로 삼자는 것이 아니라, 학생을 위한 일종의 실험실로 봐야한다는 것”이라 반박했다. 사회를 본 티에리 그로엔스틴은 “출판사 대표로 있었던 기간 동안, 갓 졸업한 많은 학생들의 프로젝트 제안서를 받아보곤 했다. 많은 수의 학생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나 원하는 것이 아닌, 기존 시장에서 선호하는 장르들과 다양한 스타일을 연습한 작업을 보여줬다. ‘저는 출판사가 SF를 원하시면 그것도 할 수 있고요, 서부극도 할 수 있고요, 시대극도 할 수 있고요’하며 몇 장의 작화 연습들을 보여줄 때, 나는 그의 작품이 어떻게 나올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고 에디터로서의 자신의 경험에 대해 덧붙였다.
△ 만화 대담 객석의 모습
객석에 있던 이들의 의견과 질문을 받기에 시간이 모자를 정도로 컨퍼런스와 토론의 열기는 매번 뜨거웠다. 작가들도 다른 직업군처럼 주말을 오롯이 즐길 수 있어야 하고 유급 휴가와 실업에 대한 보장을 받아야, ‘직업’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모습이 내게는 꽤나 이색적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한국의 작가들은 ‘작가’라는 타이틀을 직업이라기보다는 숙명처럼 껴안고, 그에 따르는 모든 어려움과 불합리를 겪으면서도 불평, 불만을 큰소리로 표현하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어느 일본 만화가의 생활 시간표에 대해 (식사, 수면, 작업으로만 그의 생활이 채워져 있었다), 경악을 금치 못했던 프랑스 사람들은 오히려 한국이나 일본의 상황들이 이색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 사람들이 경악한 그 시간표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며 토론을 듣고 있던 이는 나와 몇몇 일본 작가들뿐이었다. 우리에게 작가란 직업이라기보다는 숙명처럼 요구되는 것이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반면, 프랑스 사람들은 그 불합리에 대해 목소리 높여 말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