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벨 만화 교류전시는 주벨기에유럽연합한국문화원이 2014년 개원 1주년 기념 “View Reflection Crossing” 전을 시작으로 2016년 세 번째 전시를 개최하였다. 전시는 한국과 벨기에의 주요 만화작가의 작품 전시와 컨퍼런스 등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편집자 주〉
- 2부 -
9월 1일 오후 6시, 벨기에 브뤼셀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우리가족의노래》 전(9월 1일부터 10월 22일까지) 개막식 컨퍼런스에는 ‘Vincent Zabus’와 프랑스 웹툰 플랫폼인 [Delitoon]의 창시자이자 에디터인 ‘Didier Borg’, ‘마영신’ 작가, 나 이렇게 네 명과 문화원 큐레이터이자 팀장인 박혜연님이 사회를 보고 진행했다.
컨퍼런스 좌석은 꽉 찼다. 컨퍼런스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얼굴 위로 긴장감이 느껴졌다.
내가 가장 먼저 내 소개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순서였지만 다소 부담스러워, 마카로니 작품의 시나리오 작가인 ‘Vincent’에게 마이크를 양보했다.
‘Vincent Zabus’는 1971년 벨기에의 Namur에서 태어났다. 지금까지 10권 이상의 책의 시나리오를 썼으며, 꽤 잘나가는 연극 코미디언이기도 하다. 주로 [Depuis] 출판사와 작업을 많이 했다. 글을 쓰고 연극도 하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어찌나 말솜씨가 좋던지, 그의 침착함과 대중 앞에서의 편안함에 놀랐다. 목소리도 좋았다.
그가 이야기를 쓰고 이탈리아 작가 Thomas Campi가 그린 책, “마카로니(Macaroni)”는 11살의 손자 로메오가 느닷없이 텔레비전도 없는 고약한 할아버지 집에 며칠간 머물며, 평소에 이해하지 못 했던 이민자 할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이야기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번역되진 않아서 원어로 읽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물론 이야기도 뛰어났지만 특히 그림 작가 토마의 뛰어난 그림체와 감성적인 색채 조화에 감탄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뒤이어 내 순서가 되었다. 나는 어떻게 만화가가 되었는지, “아버지의 노래”는 어떻게 태어났으며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장편만화에 대해서도 잠깐 소개했다.
세 번째 순서로 [Delitoon]의 창지사이며 에디터인 ‘Didier Borg’가 한국의 웹툰을 불어권 나라에 연재하고 있는 그의 델리툰에 대하여 소개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한국에서의 웹툰과 유럽에서의 웹툰은 분명 다르다고 지적했다. 유럽은 여러 만화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분위기에서 웹툰도 한 장르일 수 있겠으나 국내에서는 웹툰만이 존재하고 다양성이 공존하지 않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마영신 작가는 웹툰이라는 단어가 틀리다고 지적했다. 웹툰은 웹+카툰이 합쳐진 용어이기 때문에, 만화는 “코믹스”가 정확한 표현이라고 했다. 뒤이어 그의 작품 “엄마들”은한국의 중년여성들, 엄마들의 사랑이야기를 솔직하게 그려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과연 그의 “엄마들”을 읽으며 그림도, 글에서도 군더더기가 없음을 느꼈다. 정말 성실하고 부지런한 작가라는 인상도 받았다.
컨퍼런스 마지막 부분에 질문을 받았지만,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그 자리에 있었던 대부분의 벨기에 사람들이 웹툰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 하고 관심도 없었다는 것이다. 연령대가 조금 높아서일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그들의 관심은 K팝, 웹툰, 드라마 보다는 한국의 문학, 영화… 쪽인 듯했다.
컨퍼런스가 끝나고 곧바로 전시 개막식이 시작되었다. 개막식엔 더 많은 사람들이 왔다. 문화원원장님의 인사 뒤로 벨기에 만화박물관장 ‘Wiliem De Graeve’가 인사를 했고 이어서 작가들도 차례로 작품소개를 하며 인사를 했다. 브뤼셀에 거주 하고 있는 프랑스 만화가 친구가 다른 만화가 친구들을 잔뜩 데리고 왔다. 벨기에 출판사 관계자들도 왔다.
개막식 때 한국인 가수 한 명이 만화 “둘리”, “공포의 외인구단” 등의 노래를 벨기에 분의 첼로 반주와 함께 재밌게 공연을 했다.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은 샴페인 잔을 들고 음식을 먹으며 전시를 둘러보았다.
여기저기서 이야기꽃이 피었다. 작가들은 본인의 작품 앞에서 질문을 던져오는 사람들에게 성실히 설명해주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머무르며 설치된 원화들을 구경했다. 나는 특히 마카로니의 시나리오 작가가 다음에 진행할 작품에 대해 궁금해서 어떻게 그림 작가와 작업을 하는지, 시나리오를 쓸 때 어떤 준비 작업을 하는지 등을 인터뷰했는데 사람들이 워낙 많았던 터라 유감스럽게도 녹음상태가 좋지 않다.
벅차고 멋진 전시 개막식이었다.

△ 거리에서 찍은 만화축제 홍보사진
이튿날, 1974년생인 ‘Judith’의 “아버지가 목소리를 잃었을 때”를 읽었다. 이 책은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줄거리는 이렇다. 1946년생인 다비드는 어느 날 후두암 진단을 받게 된다. 그렇게 죽음의 시작을 알리면서 프롤로그가 시작된다. 그의 첫째 부인 율리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미리암이 그녀의 딸 루이즈를 목욕탕 안에서 낳는 장면이 보이면서 삶의 시작을 알리는 죽음과 삶이 공존하면서도 대비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두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어린 딸 타마르의 이야기가 나오고 이어서 두 번째 부인인 파울라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빠인 다비드는 어린 딸 타마르가 걱정이고 소중한 가족은 각자 어떻게 다비드의 병을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겪어내는지에 대해 작가는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놀란 것은 슬프고 절망적인 이야기를 수채의 가벼운 물맛과 색채로 서정적이고 감성적으로 대비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9월 3일 브뤼셀 만화축제(Brussels comics strip festival)에서 드로잉쇼가 오후 3시에 있었다. 9월 2일부터 4일까지 주말을 포함해서 열리는 브뤼셀 만화축제는 2010년부터 생겼다고 한다. 해마다 십만여 명의 방문객이 참여하고 브뤼셀 공원에서 열린다. 출판사들뿐 아니라, 서점들도 참여하고 전시, 드로잉쇼, 작가들 사인회 등이 있다.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과는 달리 입장료가 없다. 물론 그 규모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긴 하다. 대만과 터키를 이어 올해엔 퀘벡이 초청되어 퀘벡의 출판사와 작가를 중심으로 초대전, 컨퍼런스, 사인회, 만남 등이 이루어졌다.
△ 다른 출판사 부스 작가들의 사인회 풍경
오후 3시에 진행되는 드로잉쇼를 위해 조금 일찍 만화축제가 열리는 공원에 도착했다. 오후 1시에 벨기에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가 있었다. 인터뷰를 끝내고 축제를 둘러보려 돌아다녔다. 3시까지는 조금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텐트 입구에 대형 출판사인 카스터만이 자리 잡고 있었고, 사인회를 진행할 작가들이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문득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프랑스 만화가 ‘바스티앙 비베스(Bastien Vives)’가 눈에 띄었다. 마침 지나가던 길이라 인사를 할 수 있었다. 내가 그곳에 있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며 반가워했다. 오후 6시에 본인의 사인회가 끝난다며 같이 맥주 한 잔 하자 약속하고는 나는 한국문화원 부스로 발길을 재촉했다. 그곳에 이르기까지 지난날 프랑스에 살 때 참여했던 팡진(만화동인지) 작가들을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여전히 다들 악조건에서도 나름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작업을 하고 있었다.
부스에 다시 오니 문화원 분들이 드로잉쇼를 위해 하얗고 큰 종이를 벽에 설치해 놓았다. 마영신 작가가 먼저 드로잉쇼 하기를 원해서 그가 먼저 시작했다. 그는 그의 만화책 “엄마들”에서 나오는 싸움 장면과 그 자리에 있던 외국인 관람객들의 모습을 그렸다. 사람들이 자기의 모습을 그리는 걸 보고 사진을 찍으며 좋아했다.
△ 한국관의 모습 -1
△ 한국관의 모습 -2
언젠가부터 만화가들이 사람들 앞에서 즉흥적으로 드로잉쇼라고 불리는 이름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 대표적인 한국 작가로는 김정기 작가가 있으리라.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국내보다 국외 활동이 더 많은 걸로 알고 있다.
나는 만화를 그리기 전에 회화를 그렸고 오랫동안 입체작업을 했다. 만화는 내게 형식만 다를 뿐이지 내 작품세계와 창작의 연속선에 있다. 나는 드로잉쇼라는 것을 하며 즐긴다. 늘 즉흥성을 좋아해왔고 사람들과의 호흡을 중시해왔다. 함께 숨 쉬는 공간에서 같이 가는 것, 말이다. 그림을 잘 그리건 못 그리건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관객과의 호흡, 긴장감, 즉흥성, 순발력을 즐긴다.
나는 보리밭 뒤에 감나무를 그렸다. 그리고 내 만화책 주인공인 꼬깽이(꼬깽이는 “아버지의 노래”에서 주인공 ‘구순이’가 모티브가 되어 탄생된 만화 캐릭터이자 만화책 시리즈이다.)가 감을 따려고 활짝 웃으며 높이 뛰는 모습을, 뒤로는 한국의 산이 보이고 하늘에는 보름달이 떠있고 빨간 고추잠자리들이 노니는 모습을 그렸다. 제목은 “브뤼셀의 가을”이라고 썼다. 모두가 제발, 행복하고 풍성한 가을이 되시라고 그린 그림이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조명 때문에 등에서 땀이 주르륵 흘렀다. 그림을 그리는 중에 얼굴은 보지 않았으나 틀림없이 내가 그린 감보다 더 빨간 감색으로 되었으리라. 나중에 문화원 담당자들이 말해주었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환호성까지 나왔다고하는데… 엥? 난 그림에 몰입하느라, 그리고 너무 더워서 듣지도 못했다.
그림을 마무리하기 위해 사인을 하며 빛의 속도로 스쳐간 생각은,
“두 달 간의 긴 유럽 일정을 이 그림으로 마치는구나.”였다. 이젠 “한국의 집에 가고 싶다.”라는, “가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 맨몸으로 태어나 내가 머무는 곳이 집이라고 생각하자….”며 살아왔지만, 밖에서 떠도는 시간이 길어지니 어쩔 수 없이 몸과 마음이 가장 편한 곳,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가보다.
늦었지만 이 글을 통해 벨기에에 한국 만화를 알리는데 애써주신 브뤼셀 한국문화원분들과 전시와 만화축제에 와주신 독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