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첫 만화’라는 것은, 물리적으로 정확한 것을 짚어낼 수는 없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인 만큼 실제로 제가 처음 접한 만화를 언급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보다는 제가 ‘초창기’에 접했던 만화들을 떠올리는 것이 조금 더 정확하겠지요. 가령 김기율, 김종래, 길창덕, 이근철, 손의성, 고우영, 방학기, 고행석, 박재동, 황미나, 신일숙 같은 분들의 만화가 그렇습니다. 앞서 언급한 분들은 신문연재만화, 출판만화 등 다양한 방식을 세상에 작품을 실으셨던 것은 물론, 폭넓게 여러 세대의 작가들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 분들의 작품을 접했다는 것이 약간 이상할 만합니다.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김기율 선생의 경우 1922년생이고 신일숙 선생은 1961년생이니까요. 더군다나 김기율 선생의 작품은 신문 지면에 연재된 것들을 스크랩한 것들로 접했습니다. 청소년기에 어느 선생님께 추천을 받아서 알게 된 고(故) 마정원 작가의 작품도 저에게는 감명 깊었습니다. 비록 일찍 타계하시는 바람에 많은 작품을 남기시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계속 떠오르곤 합니다. 최규석, 윤태호 작가의 작품들도 으레 남들이 호응하는 만큼 접하고 수용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일본 만화와 서양 만화를 보는 것도 자연스러웠습니다. 서양 만화의 경우, 북미의 신문에서 오래 연재되던 『피너츠』와 『가필드』 같은 만화들을 비롯해, DC코믹스와 마블코믹스에서 나오던 다양한 히어로물들도 쉽사리 접할 수 있었지요. 마르잔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 아트 슈피겔만의 『쥐』도 떠오릅니다. 영화감독이자 시인인 조도로프스키와 만화가 뫼비우스(장 지로)와 함께 작업한 『잉칼』이나 중세 판타지 풍에다가 설화적인 요소들을 섞은 『죽음의 행군』이랄지 상상력의 재미로 지어진 세계관 설정의 유희를 맛볼 수 있는 『설국열차』 같은 그래픽노블들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수리부엉이』, 『담요』, 『게릴라들』, 『씬 시티』 등이 기억납니다. 일본 만화는 더더욱 쉽게 접했지요. 제 또래들은 1990년대 들어 노태우 정권의 일본문화 해금을 시작점으로 하여,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계획 아래 몇 차례에 걸쳐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루어지던 과정 중에 자랐습니다. 그 때문에 일본의 다양한 문화 생산물들을 접할 수 있었고, 무수한 만화와 애니메이션들도 거기 속해 있었지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접해온 작품들이 숱하게 많이 있습니다. 지금 떠오르는 것은 아다치 미츠루, 우라사와 나오키, 하라 히데노리, 시무라 히로아키 등 몇몇 작가들의 작품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