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애니메이션 <당신의 이름은> 대히트, 무엇을 의미하는가?

굳이 일본 애니메이션의 위상을 여기서 다시 거론할 필요성은 없을 것이다. 매일같이 어딘가의 텔레비전 화면에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방송되고 있고, 수많은 일본 애니메이션 팬들이 오늘날 어디선가 또 만들어지고 있다.

2016-09-28 이태규

1.

굳이 일본 애니메이션의 위상을 여기서 다시 거론할 필요성은 없을 것이다. 매일같이 어딘가의 텔레비전 화면에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방송되고 있고, 수많은 일본 애니메이션 팬들이 오늘날 어디선가 또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 이후, 그의 뒤를 이을 걸출한 국민적 감독이나 작품이 등장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걸작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감독한 안노 히데아키나 <시간을 달리는 소녀>, <섬머워즈>를 감독한 호소다 마모루가 있기는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가 쌓아 올린 명성에는 역시 한참을 미치지 못한다. 전자는 국민적인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자리하기에는 오히려 <에반게리온>이라는 과거의 작품이 발목을 잡고 있고, 후자는 웰메이드 작품을 만들기는 하지만 감독의 강한 주관이 느껴지지는 않고 작품성 측면에서 크게 평가하기에 약간 아쉬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흥행 수입도 물론 마찬가지다. (가끔 <천년여우>를 감독한 콘 사토시 감독을 거론하는 사람도 있다. 작품성에서는 아무런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지만 전 국민적인 지지를 받기에는 역시 뭔가 아쉬운 작품을 만든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이 여름 시즌을 노리고 공개되는 애니메이션들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지만 거장이 보여줬던 거대한 스케일의 애니메이션들에는 미치지 못하는 작품들이라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는 항상 번복되는지도 모른다.
참고로 300억 엔의 흥행기록을 보유한 사람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유일하다.1)

그런데 2016년 여름 시즌 마지막에 개봉한 한 애니메이션이 지금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이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구축한 아성에 도전하는 중이다. 감독은 <별의 목소리>를 만든 신카이 마코토. 타이틀은 <당신의 이름은(君の名は。)>

2.
엄청난 흥행몰이, 호평의 폭풍
2016년 8월 26일 개봉한 이 작품은 첫날 관객동원 27만 명에 흥행수입 3억 5천만 엔의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다. 이후, 9월 22일 현재까지 흥행 수입 100억 엔, 관객동원 744만 명에 달하는 대기록을 수립 중이다. 감독이 직접 쓴 소설도 인기몰이가 시작되어, 현재 약 72만 부 판매를 기록하고 있다.


△ 흥행 돌풍을 불러일으키는 중인 애니메이션 <당신의 이름은>. 오타쿠나 영화광, 영상 매니아를 위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일반 관객의 시선과 주인공을 등장시킨 보통사람을 대상으로 한 정직한 작품이라 대히트를 하고 있는 중.
신카이 마코토는 <초속 5센티미터>, <언어의 정원> 등으로 이미 상당히 알려진 감독이다. <별의 목소리>를 거의 1인 제작에 가까운 체제로 완성하여 평단으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았고,2) 이후로도 일상의 배경을 세심하게 살려내는 영상미로 정평이 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엄청난 비주얼 센스와 바로 지금 젊은이들을 사로잡을 만한 영상미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큰 대중적인 인기를 모았다고 보기는 어려운 감독이었다. 극 중에는 보통 그렇게 추천되지 않는 정보전달 방법인 나레이션이 굉장히 많이 사용되고, 유려한 배경이나 영상은 존재하지만, 극이 진행되는 템포가 상당히 느려서 관객이 따라가기 어렵다.(즉, 지루하다.) 게다가 일반 대중 관객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가치관이나 생각을 가진 작중 관찰자-주인공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랬던 신카이 감독의 작품이 왜 이번에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이을 작가”라는 평판까지 얻을 정도로 큰 인기를 얻게 되었을까? 그것은 이 작품이 <매니아/개인>이 아니라 <일반/대중>을 상대로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3.
평단은 애니메이션을 광범위하게 소비하는 오타쿠 매니아층이 아니라 일반관객을 끌어모으는 이유에 대해서 이 작품의 이야기가 가지는 일반적인 보편성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즉, 관객이 여름 시즌에 극장에서 작품을 보고 가지고 돌아가고 싶어 하는 그 감동, 감정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 자체는 SF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신체가 뒤바뀐다는 흥미로운 설정이나 시공을 초월한 연애담이라는 청춘물 적인 요소를 채택하고 거기에 정적인 이야기 전개로 주인공 한 개인의 감정이나 정서에 침착하기보다는 두 사람의 관계와 이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강하고 빠르게 전개시켜 나간다. 작품 말미에서 확인되는 테마는 [성장] [연애] [모험] 같은 정직한 테마들이다. 이런 소재, 테마, 스토리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이전부터 가장 강력한 무기로 자랑해온 [영상미]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이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의견을 말미에 붙여보자. 일본 만화업계나 애니메이션 업계나, 지난 10여 년을 일본의 만화/애니 헤비 유저인 오타쿠층에 지나치게 기댄 작품들을 만들어 왔다는 생각이다. 오타쿠는 세상을 보는 시선이나 생각하는 방향이 일반인들과는 전혀 다르다. 남녀가 상대에 대해 커뮤니케이션을 하려는 노력으로 시작되는 연애에 대한 시각은 차이가 지극히 강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들은 과거의 작품에 대한 패러디나, SF 군사, 열차 지식 등에 대한 취향을 작품에 가득 부어 넣어서 작품을 즐기지만 보통 라이트 유저들은 이런 취미지향보다는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받아들이기 쉬운 내용을 좋은 호흡으로 잘 만들어서 보여주기를 바랄 뿐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최근작부터 일반인들의 시선을 중시한 흥행작을 만들겠다는 선언을 했었고, 이것이 좋은 결실로 맺어진 듯하다.

한국을 향해 열린 수많은 정보 채널들은 편향된 정보를 전하기 쉽다. 하지만 다수의 관객들 ? 보통의 라이트 유저들은 쉽고 재미있게 만들어진 작품에 지갑을 연다. 이미 수없이 확인된 진실이고, <당신의 이름은>은 그 한 방증이리라.
△ 신카이 마코토 감독, <당신의 이름은>의 일본 포스터
주석

1)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관객 동원 2350만 명, 흥행 수입 300억 엔. 참고로 이것은 일본 영화 역사상 최고 흥행기록이다. 타이타닉이 262억 엔으로 뒤를 잇고 있다.
2) <초속5센티미터>가 2,500만 엔,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가 300만 엔에 만들어졌다. 엄청나게 저렴하게 작품을 만드는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