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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들, 만화에서 영감을 얻다.

파리의 바스티유 근처에 위치한 미술관 메종 후쥐(Maison Rouge) 에서는 9월 말까지 만화와 현대미술과의 관계를 탐구하는 『브라움! 만화의 보물들과 현대미술(Vraoum ! Tresors de la bande dessinee et art contemporain)』 전시가 열렸었다. 기사를 작성하기에는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현대미술과 만화와의 관계를 살펴보고, 특히 미술가들의 영감의 원천으로서의 만화를 다룬다는 전시주제의 특이함 때문에 이 전시를 자세히 살펴볼 가치가 있다.

2009-10-09 박경은

미술가들, 만화에서 영감을 얻다.

- 메종 후쥐(maison rouge) 미술관에서 열린 『만화의 보물들과 현대미술(vraoum! tresors de la bande dessinee et art contemporain)』 전시회-


파리의 바스티유 근처에 위치한 미술관 메종 후쥐(maison rouge) 에서는 9월 말까지 만화와 현대미술과의 관계를 탐구하는 『브라움! 만화의 보물들과 현대미술(vraoum ! tresors de la bande dessinee et art contemporain)』 전시가 열렸었다.

기사를 작성하기에는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현대미술과 만화와의 관계를 살펴보고, 특히 미술가들의 영감의 원천으로서의 만화를 다룬다는 전시주제의 특이함 때문에 이 전시를 자세히 살펴볼 가치가 있다.


만화 속에서 엔진의 힘찬 출발을 알리는 의성어 「브라움!(vraoum!)」을 타이틀로 삼은 이번 전시에는 조각과 회화, 비디오 프로젝션 등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들과 프랑스와 벨기에의 개인 수집가들이 소장하던 만화원본들이 주로 소개되었다.

흔히 만화앨범(단행본)자체는 「완성된 작품」으로 취급되며 도서수집가들의 수집대상이 되지만, 만화 원본은 버려지고는 한다. 그렇기 때문에, 원고원본이나 연필스케치, 표지등에 대한 개인수집가들의 특별한 관심은 제9의 예술의 역사의 모든 면을 보존하는데 필수적이였다. 최근에 앙굴렘과 브뤼셀 등 몇몇의 만화미술관이 생기고, 에르제의 원고원본이 벨기에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긴 했지만, 대부분의 만화작품의 원본들은 여전히 일반인의 손에 머물러 있다.


「브라움!(vraoum!)」전시회는 윈저 맥케이와 필립 드뤼에, 에르제의 작품과 같은 만화역사상의 수작들을 공개하는 기회를 만들고자 기획되었다. 대부분의 작품은 처음으로 대중에게 소개되는 것들이다. 전시회는 또한 전통적인 분류에 의해 나누어지던 두 분야의 작품들을 한곳에 모아 보여주려는 목적도 있다. 즉「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진」대중적이고 소예술(소예술, arts mineurs : 회화,미술, 건축이 아닌 모든 구상미술을 통칭하는 말. 건물의 내부나 입구 등을 장식하는 공예, 도예, 미니어쳐, 모형 등 다양한 예술을 포함한다. 대개는 장식미술로 불리며, 소예술이란 단어에는 이런 미술 분야에 대한 약간의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적인 『만화』와 「예술가」들에 의해 「창조」되어진 『현대미술』이 그것이다.

하지만 전시자체가 「만화 역시 예술이며, 예술가들에 의해 만들어 진다」는 전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만화작가」와 「예술가」를 분리하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다.

에르제(herge)나 쟝 지로(jean giraud) 같은 작가들도 이젤에다가 취미로 그림을 그리곤 했고, 파비안 베르샤(fabien verschaere)나 조센 제르너(joshen gerner) 같은 작가들은 만화와 갤러리를 오가는 작업을 해왔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에 있어서 만화와의 본격적인 만남은 미국의 팝아트 예술가들이 대중미술을 취하고 찬미하기 시작한 1960년부터 이루어진다. 앤디 워홀은 뽀빠이의 초상을 찍어내었고, 리히텐슈타인은 만화의 칸들을 화폭에 옮겨 그렸다. 프랑스에서는 에르베 텔레마크( herve telemaque) 나 에로(erro) 같은 서술구상(figuration narrative)계열의 작가들이 만화의 인물들과 만화적 코드들을 그들의 작업 속에 삽입했다. 이 예술가들과 그들에 발맞춰가던, 에르베 디 로자(herve di rosa) 나 질 바르비에(gilles barbier), 같은 작가들에게 있어서 만화는 더 이상 하급문화의 한 형태가 아닌, 그들 세대의 공통적인 기준의 원천으로 인식되었다.

만화의 세계로부터 시작한 이번 전시는 이것이 조형미술에 끼친 파장을 살펴보고 만화와 조형미술 작품 간의 최초의 대면을 시도한 것이다. 이 전시는 한편으로는 오랜 세월 무시당해왔던 만화와, 다른 한편으로는 진지하기만한 미술계의 태도를 조롱하며 만화에서 영감을 얻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만화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기회를 제공한다.


전시장의 구성


전시장은 만화계의 선구자, 서부, 월트디즈니, 망가, 에르제와 명확한 선, sf, 개그, 슈퍼히어로 등 총 14개의 소주제를 가지고 각각의 주제와 관련된 작품들을 모아놓는 형식으로 꾸며졌다.


키스 헤링의 미키마우스

전시장의 입구쪽에 위치한 키스 헤링의 미키마우스


전시장의 도입부는 에르제(herge)의 작품 『미국의 땡땡(tintin en amerique)』을 새롭게 재해석한 조센 제르너(jochen gerner)의 작품과 미키 마우스를 성적으로 형상화한 키스 헤링( keith haring)의 작품들로부터 시작한다.


피터 랜드(peter land)의 작품『침대속의 남자(man in bed)』

윈저 맥케이의 원본들 앞에 놓여있는 피터 랜드(peter land)의 작품『침대속의 남자(man in bed)』


그 다음은 만화계의 선구자(les pionniers de la bd)적인 작가들의 원화를 전시하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최초의 신문연재만화인 리처드 아웃콜트(richard outcault)의 『옐로우 키드(yellow kid)』와 리틀네모의 작가 윈저 맥케이(winsor mckay)의 작품들이 있고 그 앞에는 미술가 피터 랜드(peter land)의 『침대속의 남자(man in bed)』라는 설치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리틀네모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음이 분명한 이 작품은 파자마를 입은 중년의 남성이 길게 늘어진 팔다리를 하고 침대위에 잠들어 있는 모습이다.


서부(far west) 를 주제로 한 전시장에서는 벨기에 만화가 지제(jije)의 제리 스프링(1954년작)과 만화가 모리스(morris)의 루키루크(lucky luke), 뫼비우스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장 지로(jean giraud)가 1960년대 초에 발표한 블루베리( blue berry)시리즈의 원화들과 함께, 미술가 올리비에 바방(olivier babin)이 루키루크 시리즈의 악당인 달톤 형제가 빵속에 쇠톱을 숨긴 장면을 엑스레이로 묘사한 유머러스한 작품이 함께 놓여있다.


작은 동물과 창조물들(bestioles et creatures) 전시장에는 만화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과 창조물들이 소개된다. 만화 속에는 많은 동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주인공을 부각시키는데도 사용되고, 이솝이야기나 아이들의 동화의 예에서처럼 인간의 결점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동물들은 심리적 또는 사회적인 유형들의 특징을 의미하는 마스크인 셈이다. 월터 켈리(walter kelly)의 오포섬 포고 이야기(l’histoire de l’opossum pogo)는 50년대 미국 정치상황을 반영하는 작품이고, 로버트 크럼(robert crumb)의 고양이 프릿츠(fritz the cat)는 6,70년대 미국학생들의 불안감과 성풍속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형구의 『ridicularis』

전시장에 놓여있는 한국작가 이형구의 『ridicularis』


이 전시관에는 이외에도 페요의 창조물인 스머프와 디즈니 만화의 등장인물들이 많이 보인다. 디즈니 만화주인공 딩고의 뼈 표본을 만들어 놓은 한국작가 이형구의 『ridicularis』도 눈에 띈다.


질 바르비에(gilles barbier)의 『호스피스(hospice)』

슈퍼히어로 전시관안에 놓여있는 질 바르비에(gilles barbier)의 『호스피스(hospice)』


전시의 마지막 즈음에는 슈퍼히어로 전시관이 있다. 슈퍼맨과 배트맨 등 미국 슈퍼히어로 만화들의 원본이 벽에 걸려있고, 이 슈퍼히어로들이 나이가 들어 양로원에서 나약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질 바르비에(gilles barbier)의 『호스피스(hospice)』가 전시장 한가운데 놓여있다. 슈퍼히어로들이 마치 화려한 활약상들 벽에 잔뜩 걸어놓고 과거를 회상하는 노인들 같은 모습이다.


뷔크 비도(vuk vidor) 의 『 the big beat』

뷔크 비도(vuk vidor) 의 『 the big beat』


비르지니 바레(virginie barre)의 『fat bat』

비르지니 바레(virginie barre)의 『fat bat』


만화를 여러개의 소주재로 나누어 만화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며, 현대미술과의 연관성을 보여 주려한 이 전시는 비교적 성공한 시도로 보인다.

최근엔 한국에서도 대중문화, 특히 만화에서 소재를 얻어 작업을 하는 조형미술작가들이 많아진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작가들에게도 자신들의 작업과 만화를 직접 대면하게 하는 자리를 마련해서 한국 내에서의 만화와 현대미술간의 연관관계를 한눈에 보여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필진이미지

박경은

만화가, 번역가
『평범한 왕』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