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부터 일본 만화의 가장 강한 강점을 누군가가 물으면 한결 같이 장대한 창작인력 풀과 그것을 끊임없이 공급하고 소비할 수 있는 인적자원 소비 메커니즘이라고 자주 말씀드렸다.
그리고 일본은 이런 인적 자원시스템을 바탕으로 비교적 낮은 비용이 들어가는 저 리스크 산업으로서 만화산업을 발전시켜온 셈이다. 일본의 만화가 원고료나 잡지 유지비는 사실상,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콘텐츠 산업에 비해서 낮아서, 진입문턱이 낮은 콘텐츠 산업이었다. 이것은 이런 의미도 된다. 어차피 실패를 하여도 잃을 것이 별로 없으니 실험적인 작품이나 검증되지 않은 신인을 부담없이 실험할 수 있는 곳이 일본의 만화잡지였던 것이다. 이것은 수익을 내는 이차적 이용물인 단행본을 내기 전에 검증을 받는 과정이기도 하다.
헌데, 1990년대에 들어서고 일본의 만화시장이 축소국면에 들어서면서 이런 사고방식이 점점 위협을 받기 시작한다. 경제위기로 일본의 경제자체가 저성장의 긴터널로 들어서고 1980년의 급속한 성장세가 한풀 꺾인 잡지에서도 경제면과 마찬가지로 공격적인 전략보다는 시장을 지키는 수성으로 돌아선다. 즉, 잡지의 편집진도 실험적인 작품보다 자신들이 지금까지 보아온 히트작들의 성공공식을 찾아내려고 한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근거를 찾으려는 노력인 것이다.
만화 바쿠만 등에서 자주 보이는 히트작의 공식이라든지, 왕도만화 운운하는 장르만화 문법 등이 등장하는 것도 이런 경향의 반응이다. 다들 불안해서 섣불리 모험을 하기 싫으니 뭔가 수치화되거나 하는 근거를 가지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것도 이해는 된다.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던 때야 작품의 실패는 다른 작품의 성공으로 메워지는 것이었지만, 시장이 성장을 멈추고 성숙기에 들어서면 이런 실패는 눈에 띈다. 또한, 성숙기이니 작품들 수준이 전체적으로 상승해, 신예가 발을 들이기 어려운 환경도 조성되었다.
그런데, 이런 환경은 일본 만화가 성장기 때 가진 가장 큰 무기 가운데 하나를 잃게 만들었다. 누구든 가볍게 만화계에 발을 들이고 가능성을 시험받을 수 있다는 자유분방함을 잃은 것이다.
1980년대의 만화는 과연 완성도가 높은 것이었을까? 누구나 1980년대의 일본 만화업계, 특히 <소년점프>의 황금기를 거론하면 대단한 만화들의 퍼레이드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상은 과연 그랬을까? 이 만화들을 기획서 단계나 1화분만 가지고 지금 편집부를 찾아온다면 퇴짜를 맞을 만화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만큼 당시 편집부와 만화계가 자유분방한 정신으로 넘쳐흘렀다는 반증이다. 그러니 많은 신인들이 오로지 가능성만 가지고도 등단을 하였고, 이를 독자와 시장이 평가를 하였다. 지금은 알쏭달쏭한 이상한 기준들과 데이터들이 총동원되고, 엘리트로 불리는 편집자들이 자기의 만화 철학을 가지고 신인들을 이렇게 평가하고 저렇게 평가하고 고치고 또 고쳐서 시장에 내보낸다. 이것은 인력 시스템을 운용하는 기본 철학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이런 인력수급 철학의 변화가 지난 10년간의 일본만화 업계 축소에 얼마나 큰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는 검증이 더 필요한 부분이기는 하겠지만, 필자 개인으로는 상당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한다. 그런데, 여기에도 요즘 변화의 분위기가 일어나는 중이다. 그것은 웹에서 일어나고 있다.
전자매체 웹 만화들이 등장하면서 벌어지는 인력수급 체제의 변화.
상기의 두 링크를 따라가 보면 최근 일본의 작가 인력수급이 변화에 직면하고 있는 두 가지 움직임을 볼 수 있다. 전자는, 일본에서도 콧대가 높기로 유명한 <소년점프> 편집부가 웹을 통하여 작가 지망생이 원고를 직접 투고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만들어지고 이것을 독자에게 공개하며, 편집부와 독자가 이를 보고 유망한 작가를 골라내는 ‘소년점프 루키’ 페이지의 공지다. 후자는 NHN플레이아트에서 실시하고 있는 한국식 웹툰 서비스 코미코의 페이지. 기본 체제는 베스트 챌린지라고 하는 코너에 투고를 하면, 이중에서 유망한 작품을 골라서 정식 연재작가로 등단시키는 방식이다. 어디서 많이 본 방식이라고 보지 않는가? 그렇다. 한국에서는 이미 일상화된 방식인 ‘베스트 도전코너’의 운영방식이다. 한국의 주요 웹툰 서비스인 다음과 네이버가 가진 가장 강력한 장점은 베스트 도전코너 운영을 통한 방대한 작가풀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이 작가풀은 항시 소비자인 독자에게 일정 수준 노출되며, 정식으로 대중에게 노출되기 전의 소중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되어 준다.
즉, 기존의 일본의 잡지노출 방식보다 훨씬 낮은 리스크로 운영되며 참여 문턱이 낮은 것이다. 당연히 묻힐 수 있는 재능이나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기에 더욱 좋은 환경이다.
이런 인력발굴 방식은 NHN플레이아트의 코미코 서비스가 런칭 1년째를 맞이하면서 단행본 발매와 판매에서 신기원을 이룩하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리면서 급속히 물살을 타고 있다. 쇼가쿠칸이 운영 중인 인터넷 만화 잡지 서비스 <우라선데이>도 비슷한 시스템을 채용 중이다.
보수적이기 짝이 없던 일본의 만화잡지들이 이제 해묵은 인력수급 체제를 바꾸려고 하는 중이다. 아마 내년에는 이런 잡지들의 노력이 가시화되고 일본 만화 전체에 큰 변혁의 물결이 본격화될지 모른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식 게임의 룰인 웹툰 체제에 일본 만화체제가 참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한국 만화는 어떻게 대처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