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 불황, 만화출판에 독인가 득인가? 새로운 격동기에 들어선 일본 만화출판(2)지난 기사에서는, 전세계적인 경제불황이 일본의 만화 출판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이야기드리고, 역시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드렸다. 지난 기사를 전해드린지 단 한달 사이에도, 많은 일본의 기업들이 대량감원을 발표하였고, 출판업계 내부에서도 감원 소식과 폐업, 합병소식이 줄을 이어 우울한 분위기가 더욱 가속 되고 있다.
이런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요즘같은 불황에 더욱 빛을 발하는 대표적인 회사로 SE사와 H사가 있겠다. 이 두회사는 지금까지 3대 메이저 회사들의 틈바구니에서 그렇게 눈에 띄지 않아 왔지만,2008년 한해, 각자 상당한 흑자를 내면서 오히려 메이저 출판사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중이다. 이 두회사를 살펴보면 그 키워드는 쉽게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서두에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그 키워드는 1.[철저한 미디어 믹스 전략], 2. [인적, 물적 자원의 적절한 배분]이다. 이번호에서는 일단 미디어 믹스 전략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자.
1. 일년에 열편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
올해 초, 도쿄의 모 호텔에서 [SE]사 신년회가 열렸고 여기에 참석을 할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 회사의 출판부장이 신년회에 모여든 자사 연재 작가들과 관계자들에게 던진 2009년의 포부는 상당히 인상적인 것이었으며, 이 회사가 어떻게 작년 한해의 불황속에서도 최고 이익을 갱신할 수 있었는지 짐작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우수한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일이며 또 당연히 우리(만화 편집자)와 작가 모두가 해내가야 할 일이다. 그러나, 현재 만화시장은 포화상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상품이 쏟아져 나온다. 그렇다면 관건은 그것을 어떻게 대중에게 알리는 가이며, 이것이 애써 작가분들이 만들어준 컨텐츠를 받아든 우리가 할 일이다”고 운을 뗀 이후에 “우리는 이를 위해서 일반인들이 무료로 시청하는 가장 큰 규모의 미디어- 텔레비전에 방영되는 (자사 만화 컨텐츠가 원작이 된)주간 연속극 애니메이션을 매년 10편 발표하는 것이 계획이며, 이를 통하여 수익의 극대화를 꾀하겠다”라는 것이 골자였다.
이 회사가 보유한 (증간호 등을 제외한)정규잡지 타이틀은 2009년 초순경인 현재 총 5종이다.(이중 웹잡지를 빼면 총4종) 즉, 각 잡지별로 애니메이션 화 되는 만화를 2타이틀 이상 내어놓겠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그러나, 말은 쉽지만 만화의 애니메이션 화 라는 작업은, 만화를 만들어서 애니메이션 제작사에 휙 던져두면 끝나는 일이 아니다. 작가와 애니메이션 회사와의 계약과정을 관리하고, 캐릭터 디자인, 색채 설정, 콘티
(보통 일본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은 한회당 200여 페이지에 가까운 그림콘티가 소요되며,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의 최소 구성 화수가 12화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적어도 약 2400여 페이지의 애니메이션 콘티를 체크해야한다는 말이다!), 성우들의 캐스팅과 녹음, 시나리오, 각 애니메이션 잡지에 실리는 기사의 오탈자 체크등등등 일선 편집자가 해야하는 체크 작업만도 이렇게 방대하다. 이런 체크만으로 일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만화가 애니메이션화 되어 방영되는 일정에 맞추어 작가 싸인회를 개최한다든지, 그 작품의 애니메이션을 볼만한 계층이 자주 방분하는 서점의 리스트를 준비하여 미리 그 작품의 단행본 물량을 보내둔다든지하는 본래의 업무도 처리해야한다. 서점용의 애니메이션화를 알리는 홍보물 제작이나 서점에 비치할 작가의 사인을 받는 등의 시시콜콜한 일까지 넣으면 해야할 일의 항목이 끝이 없을 지경이다.
그런데 이것을 일년에 10편 하겠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한 것으로, 이렇게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을 내놓으면 단행본의 판매량이 최대 300퍼센트까지 신장되는 효과를 보기 때문이다. 즉, 그런 노고를 달게 받아들일 만큼 돌아오는 이윤이 크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 회사가 대단히 마니악한 시장인 오타쿠 시장을 공략하며 큰, 소위 말하는 마이너 잡지사였으면서도 지금 다른 메이저보다 월등한 성적을 올리며 급부상 중인 것에는, 이런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공격적인 홍보전략이 근저에 깔려있었다. 이 회사의 주력잡지가 위기에 처했을 당시, 자신들이 만든 한 만화가 만화 단독의 힘으로 초판 부수 30만부 정도의 판매를 기록하자, 유력한 애니메이션 회사를 지목하고 제작비에 일부투자를 한 다음, 당시 마이너 출판사가 생각하기 어려운 상징적인 수치인 권당100만부의 단행본을 발행하여 전국 서점의 책장을 점령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적중하여 이 만화는 현재까지 누적부수가 3000만부를 훨씬 상회하는 대히트 만화가 되었다. 그러자, 이 만화를 보고 또 독자가 늘어나고 시장이 형성되자 이 시장을 보고 또 작가들이 쇄도를 하여 더욱 양질의 컨텐츠가 양산되는, 이런 형국으로 나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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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강철의 연금술사] 만화를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알리고, 이를 통하여 이윤을 극대화하는 멀티 미디어화 전략의 대표적 성공작 가운데 하나이다. 2009년부터 새로운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시작된다. |
2. 애니메이션 영업전략을 자사의 케릭터로 만들다.
이런 하나의 모델이 성공을 거두자, 이 회사는 이것을 하나의 자사 특성으로 내세우기 시작한다. 이런 전략이 계속해서 일정한 수준이상의 성적을 거두자, 이제 모델이 안착되자 이 회사를 상징하는 하나의 얼굴이 된 것이다. 사실 이점도 대단히 중요하다. 일본의 문화산업 안에서는, 만화 창작과 같이 창작이나 제작주체의 캐릭터 성이 없으면 대중에게 점점 더 어필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조성되어가는 중이다. 말하자면, “작가 ##씨의 작품은 진득한 인간관계에서 뿜어져나오는 인간 드라마가 매력, 그래서 이 작가의 작품을 산다”라는 구매패턴처럼 회사 자체도 “우리 회사 작품을 사시면, 그것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나보실 수 있고, 더욱 다양한 재미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라는 하나의 자사 캐릭터를 구축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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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다종다양의 애니메이션 잡지. 미처 다 읽어볼수 없을 지경으로 정보가 넘친다. 즉, 이런 잡지로 시청지침을 잡지 않으면 자신의 원하는 취향의 애니메이션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일본엔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이 공급과잉 상태다. 이경우, 안정적인 만화 원작을 베이스로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애니메이션 회사로서도 매력적인 선택이다. |
여하튼 이야기를 처음으로 되돌리자면, 이 회사 SE사는 애초부터 애니메이션등등 좀 더 많은 대중에게 어필 할 수 있는 컨텐츠로 가공하는 것을 전제로 한 만화 컨텐츠를 애초부터 제작하겠다는 의사표명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이렇기 때문에 이 회사의 만화 컨텐츠는 만화 편집부 자체가 적극적인 애니메이션화 의사를 표명하지 않아도, “이 회사의 만화 컨텐츠는 애니메이션화 하기 편하고, 또한 인기도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신작의 연재가 시작되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애니메이션 회사측에서 접근해오는 편이다. 이경우, 더욱 유리한 점은 애니메이션 제작사 측이 만화작품에 대해서 상당히 이해를 하고 있는 편이므로, 질 높은 애니메이션이 나올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멀티미디어 전략을 통해서 불황을 이기고, 더욱 높은 수준의 이익을 달성한다는 전략은 애니메이션에만 해당되지는 않는다. 드라마, 영화, 인터넷 등 대중의 눈길이 향해있는 곳이라면 뭐든지 해당된다. H사의 경우도, 작년에 상당한 흑자를 기록한 이유는 이 회사가 만든 모 데스 메탈만화가 영화화되어 대성공을 거두면서 단행본이 폭발적으로 팔려나간데 기인하는데, 지금 일본 영화업계는 전례없이 자국-일본산 영화에 관객이 들어오고 있는 중이라 이러한 시기에 딱 맞춰어진 성공 사례라 하겠다.
말을 바꾸어 보자면, 멀티 미디어 전략의 본질은 만화 매체의 본질과 잡지 매체가 본래 가진 특성을 가장 잘 이해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으며, 본래 잡지가 가진 선전매체로서의 특징을 요즘 시대에 맞게 수정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래, 만화잡지는 대단히 싼 가격으로 좀 더 많은 대중에게 작품을 알리는 기능을 수행하는 (작가와 독자를 이어주는)창구였는데, 최근 여러가지 이유로 만화 잡지보다 싼 매체가 대규모로 출현하면서 그 역할이 좀 떨어지자, 그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선회를 한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주의할 점은 그렇다고 무작정 자사의 컨텐츠를 애니메이션 화 드라마화 한다고 인기를 얻고 판매율 신장 효과를 얻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메이저 출판사인 K사의 경우, 자사의 유명 타이틀을 텔레비전 드라마로 만들었으나, 연기자 선정의 미스나 방송 시간대 선정의 미스등으로 상당히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여 별다른 단행본 신장 효과를 얻지 못하였다. 간판급 메이저 출판사인 SH사의 경우도 자사의 간판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지만, 그 애니메이션의 퀄리티가 저조하여 독자를 넓히는데 실패를 한 전례가 얼마든지 널려있다.
즉, 크로스 미디어나 원소스 멀티유징은 듣기에는 좋지만, 이는 철저한 사전의 판매전략 수립과 이를 감당할 만한 회사의 체력, 무엇보다 다른 매체로 이식하기 용이한 타이틀을 얼마나 잘 만들어내는가에 달려있는 것으로, 대단히 고도의 전략적 사고를 요구하는 작업이다. 다만, 이것을 잘 활용할 시에는 오늘날의 불황을 넘길 수 있는 전략 중 하나라는 것임에는 명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