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 불황, 만화출판에 독인가 득인가?
새로운 격동기에 들어선 일본 만화출판(3)
지난호에서는 애니메이션등의 타 매체와 만화를 연동시키는 전략으로 변화된 시장환경에 적응해가고 있는 한 회사의 모습을 전해드렸다. 계속해서 불황기의 일본에서 어떤 전략을 취하는 것이 올바른 길인지를 제시하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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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출판사 건물 모습 (출처 : 네이버 이미지) |
1.
이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 이제까지 일본의 메이저 출판사는, 만화에 관련된 자사 편집부원들에게 엄청난 고액의 연봉을 지급하여왔고, 또 얼핏 터무니없어 보이기도 하는 경비를 당연한듯이 써왔다.(가령 유명잡지 편집부원들 20여명이 일년에 십수억원에 달하는 택시비를 사용한다든지한 것들, 야간업무가 많고 만화가들을 안내해야하는 일이 많은 출판사 편집부의 특성과 한국과는 달리 업무에 자동차를 잘 사용하지 않는 일본의 특성이 겹치면서 택시사용은 어느정도 인정이되지만 이정도 금액의 사용은 분명히 낭비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들이 일본의 만화계 안에서 하나의 기준인양 제시가 되어왔다. 하지만, 1980년대 만화산업의 급팽창기에 등장한 이런 관행들이, 일본특유의 종신 고용체제/회사체제, 고학력 사원들의 만화 편집분야 대량투입과 맞물리면서 만성적인 고비용/저효율 체제가 완성이 된다.
즉, 지금까지 일본만화를 구동시킨 원동력은 재산도, 학벌도 없는 아웃사이더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만화가들과, 출판사 안에서 서자 취급을 받으며 설움을 받던 편집자들이 열악한 제작환경과 인식을 무릎쓰고 치열하게 만화를 만들어서 가능하였던 것인데, 대기업과 같은 안락한 환경(일본의 대기업 출판부는 지금까지 절대로 해고를 하지 않았다. 회사내 노동조합의 힘 때문이다)에서 고액의 연봉을 받는 사람에게 이런 것이 가능하겠는가? 물론 이것은 전체의 모습은 아니고, 선배로부터 이전의 전통을 물려받아 메이저 출판부 만이 가능한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만화 편집자도 있으나, 이전에 비해서 안락한 환경에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나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만화환경을 개척하거나 시대에 적합한 영업전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구축된 자사 브랜드 이미지에 기대어 타성에 젖은 만화와 시스템을 만들어왔다는 것이다.(거액의 연봉을 받으면서!) 이게 2000년대에 들어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가시화된 문제를 양산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사람들이 존재함으로 인하여, 다른 편집자들의 사기에 영향을 미치게되고, 업무가 일부 능력있는 편집자에게 집중이되면서, 정작 능력있는 편집자는 과도한 업무에 제 능력을 발휘못하는 문제를 도출하고 있는 판이다.
2.
사실 기존의 메이저 출판사에서는 한 편집부원이 대단한 히트작을 만들어도, 히트작을 만들지 못하는 다른 편집부원과 거의 같은 수준의 급여를 받을 뿐이다. 다만, 이 사원이 정사원의 경우라면 이런 히트작을 만들었다는 경력으로 편집장이 되거나 더 나아가 회사의 중요간부인 임원이 될 수 있는 캐리어가 된다는 점이 메리트이다. 하지만, 이것도 그렇게 매력적이진 않은 것이 편집장은 하나의 관리직이고 엄청난 사무노동량과 스트레스를 수반하는 자리다. 그렇다면 조금 급여가 낮더라도 일반 편집자로 남아있다가 은퇴하는게 더 편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게 이상한 것도 아닐것이다. 또, 메이저 잡지사의 인력관리 체제는 현재 일본에서 히트작을 양산하며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파견 편집인원들(즉, 프리랜서 편집자들)의 사기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파견 편집자들은 히트작을 얼마나 만들었던 이 회사의 정사원이 될 수 없으며, 보수에도 크게 반영이 되지를 않는다. 다만 매년 계약갱신에서 살아남을수 있는 실적만 되어줄 뿐이다. 이래서는 적극적인 태도를 가질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체제의 성립은 일본만화의 한축을 담당해온 만화편집 부문에 인재가 유입되지 않는 중요한 원인이 되어있는지도 모른다. 이전의 만화호황기에 재미있는 만화를 만들었던 선배들이 정작 합리적인 잣대로, 결과에 걸맞는 이상적인 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후에 영입되는 인재들이 이전과 같은 정열을 가지고 일을 하겠는가 말이다. 더해서, 기성의 편집자들은 이제 그러한 열정만 가지고 좋은 만화를 만들기에는 너무나 나이를 먹었다.
3.
그러나, 변화된 환경에 기민하게 반응한 SE사의 체제는 조금 다르다. 첫째로, 이 회사는 회사의 각 편집부원에 대한 동기부여 시스템을 기존의 메이저 출판사들과는 다르게 설정하고 있다. 먼저, 각 편집부원들이 조금이라도 더 단행본이 많이 팔리는 만화를 만들려고 노력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단행본 5만부/10만부/20만부 등의 단위로, 받을 수 있는 상여금의 금액이 정확히 공시가 되어있다. 그리고 기본적인 급여자체가 여타 다른 메이저 출판사보다는 적게 설정이 되어있다. 더더욱 자신의 작품과 단행본을 팔기 위해서 노력을 할 수 밖에는 없게되는 것이다. 둘째로, 이 회사의 인적자원 관리체제는 대단히 유동적이다. 먼저, 임시직으로 편집부 직원을 모집하여 눈에 띄는 실적을 만들어낸 사람만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얼핏 비정할지는 모르지만, 이는 조직안에서 상당한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자신의 컨텐츠로 승부를 내야한다는 것을 항시 의식하게 만들고있다. 그렇다고 이것은 비용을 일방적으로 절감하고자 하고 노동력을 착취하고자 하는 의도로 사용되는 체제는 아니며 일정한 실적을 거두어주었을 경우, 정규직이나 원하는 형태의 고용구조를 얼마든지 취해주는 것이 이 회사의 특징이다. 그러한 때문인지 이 회사내부를 들여보면, 다른 대기업 출판사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30대 중반의 편집장이나 40대초반의 출판부문 차장등이 업무를 보고있다. 여타 다른 회사들은 거대한 조직 특성으로 인하여 상당히 나이를 먹은 정사원 출신만이 (즉, 공채출신만이) 간부의 지위에 오를수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러한 유연한 인력운용이 조직전체에 활력을 주고 지금 현재의 트렌드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SE사는 2000년 이후 일본만화시장에 중요한 소비자로 등장하는 오타쿠 층이 바라는 상품을 정확하게 만들어내면서 확실한 기반을 다지는데, 기존의 거대만화 출판사가 공룡과 같은 둔한 체제로 인하여 시장이 바뀌어서 이런 상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원만한 대응을 못했다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4.
이러한 기동력있는 체제가 가지는 장점 중 하나는, 자칫 방대한 조직에서 있을 수 있는 허망한 낭비를 최소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개의 작품이 얼마의 자금이 투자되어 얼마만한 수익을 내었기 때문에 적자인지 흑자인지를 관리자나 그 작품을 만든 개인이 바로 파악가능한 체제를 구축하고 파악이 가능한 것이 SE사이다.(요는 기업의 덩치가 작으니 개개의 제작자가 창출한 결과를 한눈에 파악하는게 용이하다는 것이다) 이렇게되면 각 주체가 콘텐츠에 투입되는 투자와 결과를 항시 의식하게되고 이는 거대기업이 저지르기 쉬운 낭비를 근원부터 막아준다.
이러한 낭비의 최소화는 지금과 같은 경기불황에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폭발적인 확장기에 가능한 자잘한 가능성에 대한 무모한 투자보다는 리스크를 최소화한 건실한 실적 쌓기에 한발 접근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다만, 노파심에 이야기를 하지만 이 대목을 피상적으로 받아들여서 한국 만화 출판에서 무분별하게 투자를 삭감하고 줄이는 구실로 사용되는 것은 필자는 바라진 않는다. 방금 소개한 SE사의 경우는 물론 대단히 합리적이고 냉철한 인재, 컨텐츠 운용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반면에 능력이 있으면 연령, 학력등을 불문하고 등용하여 사용하는 유연한 인력체제를 갖추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존의 자기들이 가진 잡지와는 다른 성격의 잡지를 계속 창간하고 혁신을 계속하고 있는 점도 분명히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인적/금전적/시간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투하한 것이지 무조건 적으로 밀어붙이기 식 운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