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간에 만화에 관련한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면서 살아가다보니, 한국 작가 분들이나 기획사 분들과 자주 만난다. 화재거리는 당연히 일본 진출에 대한 것이다. 자연스럽게(이분들이 생각하는) 일본만화 업계에 대한 단상들을 자주 듣게 된다.
실제로 일본만화의 현재는 어떤가. 다양한 측면에서 다룰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일본 만화 시스템의 핵심을 담당해온 <잡지 시스템의 쇠퇴>와 <디지털 만화의 대두>라는 두 키워드를 꺼내어 들고 이야기를 해보자.
먼저 일본의 출판월보가 발표한 2014년까지의 일본 출판만화의 동향이다.
그래프의 빨간색 부분이 일본 만화 시장 전체에서 차지하는 단행본시장 규모 그리고, 핑크색이 잡지시장 규모다.
△ 인용:出版月報 출판월보 -全?出版協?전국 출판협회
인용한 그래프에서 보이듯이 지난 50년간 일본을 지탱하던 종이만화 시스템?잡지라는 공간을 만들어서 만화 인력을 모으고, 콘텐츠를 만들고 그걸 종이 단행본으로 만들어 팔아 이득을 내는 일본 만화시스템은 여러모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그래프에서 보이듯이 종이 잡지 매출이 극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것이 변화의 가장 큰 일면이다. 일본의 만화 시스템은 1959년에 소년 선데이와 매거진이 창간된 이래로 주간 만화잡지라는 지면을 통해서 만화가를 발굴하고, 이들을 연재시키고 콘텐츠를 만들어 단행본 상품으로써 이를 출간해, 투입된 원고료와 편집부 인건비 등을 회수하고 이윤을 내는 체제를 아주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은 현재 큰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1990년대 초기에는 단행본이 가지는 시장규모보다 잡지가 가지는 크기가 훨씬 컸는데, 이것이 2005년부터는 역전되기 시작한 것이다. 2014년에 들어서면 잡지시장 규모는 지속적인 하강국면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가장 큰 것은 잡지가 가지던 광고탑의 기능상실. 일본에서 단행본이 수백만부 씩 팔렸던 것은 백만 명 단위로 독자를 확보하고 있던 만화잡지의 역할이 컸다. 이것이 판매부수의 극적인 하락으로 이전처럼 기능하기 어렵게 된 것. 요즘 지하철역 간판을 빌려서 <테라포마스> 등의 만화가 크게 광고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잡지만으로는 노출이 여의치가 않으니 나온 궁여지책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것이 일본 만화문화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처럼 말하지만 전혀 다르다. 원래는 잡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잡지만화의 큰 쇠퇴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거론되고 있는데, 모든 전문가나 평론가가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원인은 하나다. <디지털 미디어의 대두>다.
특히 요즘 일본 출판만화를 이야기할 때, 빠짐없이 나오는 이야기가 소년만화 잡지 만화에 대거로 여성 독자를 의식한 만화들이 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단행본 시장도 여성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남성들은 여성보다 상대적으로 만화를 많이 사보지 않는다. 그럼 이 줄어든 사람들/남자들은 스마트 폰의 게임이나 읽을거리로 이동해버렸다는 것이 중론이다. <퍼즐 앤 드래곤>이나 <몬스터 스트라이크> 같은 게임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는 중이다. 만화잡지는 오히려 타격을 덜 받은 편으로, 일본의 시사주간지 들이나 각종 정보지는 기록적인 매출저하로 폐간이나 정간이 속출하고 있다. 신문의 힘이 축소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만화 출판사들이 이런 스마트 폰이라는 미디어 기기 보급에 어떻게든 따라가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사실 90년대 후반에 인터넷과 휴대폰 보급이 시작되고 FOMA등의 데이터 서비스가 시작되던 시절부터 일본 만화업계는 배급과 형식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여기에 적합한 서비스를 찾으려 애를 썼다. 가장 큰 일본 만화 출판사인 고단샤는 미챠오 등의 디지털 서비스를 만들어 자사 작가 인력으로 오리지널 작품을 만들어 선보여왔고 최근에는 DeNA와 손을 잡고 망가박스와 같은 어플리케이션 서비스를 런칭했다. 스퀘어에닉스도 간간히 온라인 같은 매체를 통해 나름 성공적인 성과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이들도 결국 단행본을 판매하여 이윤을 낸다는 수익 모델에 큰 변화가 없거나, 팔리는 작품이 에로로 한정되어 있는 등의 한계를 호소하던 중이었다.
여기에 최근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이는 두 가지 매체가 있다. 하나는 일본식 잡지의 프로듀싱 체제에 스마트폰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응용하여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 쇼가쿠칸의 <망가원>이 될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한국식 웹툰 체제를 이식하여 성과를 거두고 있는 <코미코comico>다. 둘 다 지금까지의 웹사이트를 통한 만화 서비스가 아닌 스마트 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한 만화 서비스이다.
일본 유명 출판사인 [쇼가쿠칸-소학관]이 운영하는 만화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다.
△ <망가원>의 소개. 400만 다운로드 이상. 매일 찾아오는 고정 독자는 90만 명 이상.
△ 망가원의 앙케이트 시스템 소개
일본의 일반적인 잡지와는 다르게 매일같이 들어오는 독자들의 작품에 대한 인기투표를 작품인기의 바로미터로 삼는다. 원래 만화 웹사이트 형태로 유지되던 서비스 [우라선데이]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로, 오리지널 만화와 이미 공개된 구간 만화서비스들이 공존하는 형태다. 애플리케이션을 찾아오면 일정량의 HP라는 수치가 주어지고 만화를 읽으면 이 HP가 줄어드는 시스템이다. HP가 떨어지면 유료로 만화를 결제해서 만화를 읽어야 한다. (이미 한국에서도 존재하는 시스템이다.)
△ 망가원의 서비스화면
망가원이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것에는 편리한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하여 쇼가쿠칸의 명작 만화들을 손쉽게 볼 수 있다는 점도 작용한다. 최근에는 <란마1/2>같은 유명작도 소개했다. 그리고 만화들 자체가 이미 서적 독서에 적합한 방식으로 제작된 원고들이라서 단행본으로 출간이 용이하며 실제로 단행본 시장에서도 망가원의 만화들은 상당한 실적을 올리며 팔리는 중이다.
△ 망가원의 실제 만화 구독화면
다만 한국의 관점에서 보자면 망가완의 서비스는 완전히 디지털 디바이스에 어울리는 만화 독서 형태를 갖추고 있지는 않다고 할 수도 있다. 만화 독자의 보수적 성향을 감안하여 흑백에 컷 연출이 살아있는 형태로 만화들을 서비스하고 있다.
△ 올해로 3년을 맞이하는 코미코 서비스
코미코는 한국의 NHN엔터테인먼트와 자매회사 관계에 있는 회사 NHN comico가 운영하는 디지털 만화 서비스이다. 세로 스크롤과 풀컬러, 주간 연재, 완전 오리지널 작품 서비스를 모토로 내걸고, 3년 전 등장했으며, 현재 가장 주목받는 서비스 가운데 하나다. 광범위한 독자 예비군을 가진 라인 만화나 어마어마한 기존 만화 아카이브를 갖춘 점프 플러스 등의 서비스와 겨룰 정도다.
사실, 코미코가 한국식의 웹툰 서비스를 처음으로 시도한 것은 아니다. 일본의 유명 서비스 라인LINE에서 실시하는 만화코너에 네이버의 웹툰이 번역서비스 되기도 했으나. 번역 등의 문제로 크게 확산되지는 못했다. 코미코는 작가의 수급을 <베스트 챌린지> 코너를 운영하는 것으로 해결하고 있다. PC를 통해서 작품을 투고하여 일정기준을 만족시키면 휴대폰용 어플리케이션에도 노출을 시켜준다. 그리고 여기서 인기를 얻으면 편집부가 작가에게 접촉을 해서 정식 작가로 데뷔시키는 시스템이다. 이는 대성공을 거두어 코미코는 현재 다운로드 1200만 이상, 추정 고정 독자는 일본의 어떤 주간잡지보다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재작품의 애니메이션화도 속속 추진 중이다.
△ 코미코가 여타 서비스와 차별화에 성공하여 정착된 가장 큰 이유 ?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세로 스크롤, 컬러만화 서비스를 선보였다. 사진은 코미코가 내어놓은 세로 스크롤 만화작법 책에서 인용
코미코는 최근 유료서비스인 코미코 플러스 서비스를 시작하였고, 한국의 미리보기 유료 방식을 응용한 이 서비스는 좋은 반응을 얻는 중이다.
일본만화잡지 특유의 보수적인 분위기가 종종 급격한 디지털화의 발목을 잡지만, 착실히 시장이 넓어지는 중이다. 현재 디지털 만화가 차지하는 시장규모는 약 1,200억 엔. 이것이 2020년경에는 2,000억 엔에 도달한다는 예상이다. 이 가운데 일본식 잡지 체제를 디지털 배급과 맞물리게 운용중인 회사들과 한국의 웹툰 방식을 실험하는 회사들 중 어느 쪽이 그 패권을 쥘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