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이번에도 돈이다.
21세기 두 번째 10년을 시작하며 ‘돈’이라는 화두를 다시 꺼내본다.
뮤지엄(Museum) 만화규장각에는 수장고가 있다. 수장고는 만화가들의 육필원고 및 희귀만화자료를 과학적으로 보관하는 공간으로, 간혹 수장고에 들른 사람들은 두 가지에 놀란다.
첫 번째는 ‘시설’이다.
뮤지엄 만화규장각의 수장고는 규모에서는 뒤쳐질지 모르지만,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완벽한 시설이 구비되어있다. 보존환경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항온?항습기는 물론이며, 5중의 보안시설, 방재시설 및 외부의 환경변화에도 완벽히 적응할 수 있는 입체 island구조 등 수장고에 꼭 필요한 설비뿐만 아니라 구조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우리의 문화유산을 보관하는 곳이라면 이런 시설을 구비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동안 시대의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던 만화들이 이렇게 완벽한 보존환경에 보관되고 있다는 점에 사람은 놀람을 감추지 않는다.
두 번째는 보관되고 있는 ‘자료들의 가치’다.
문화유산의 가치(특히 가격)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매우 민감한 부분이지만, 현재에도 활발한 거래시장이 있기 때문에 거래가격을 넌지시 말씀드리면 두 눈을 껌벅이며 필자를 한 번 쳐다보고, 다시 자료를 보시고는 한다. 그러기를 한참 하다가 다들 비슷한 말씀을 하신다.
“이거 옛날 집 이사하기 전에 장롱바닥에 있던 것들인데..... 다 버렸다.”
말씀하시는 분에 따라 표현은 다를지 몰라도 ‘옛날’, ‘있던 것’, ‘버렸다’ 이 세 단어를 열에 아홉은 꼭 언급하신다. 지금의 가치로는 장롱가격을 치르고도 남을 수표들이 그 밑에 먼지처럼 깔려있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말이다.
현재 이러한 희귀만화자료들은 개인 간의 거래나, 경매를 통해 거래된다.
졸고(拙稿)에서는 시장에서 실제 거래가 되었던 자료들을 바탕으로 희귀만화시장의 가격동향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자료의 표본은 2009년 8월부터 2011년 1월까지 실제 거래된 자료 중 표본 1,200건을 무작위로 선정하였음을 먼저 알린다. 시대적으로는 거래가 가장 활발한 60~70년대 자료를 형태적으로는 단행본 및 잡지 등 도서류를 중심으로 조사하였으며, 원고는 포함하지 않았다.
2. 거래시장의 형성배경
만화는 문학적 가치 및 미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 속에는 우리의 삶이 담겨있기 때문에 민속적인 가치도 내재하고 있는 종합문화유산이다. 때문에 소중히 가꾸고 온전히 전승해야 하는 우리의 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 만화의 최우선적인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전통적인 경제 구조는 소비자들의 ‘수요’에 의해 ‘공급’이 되는 형상이지만, 희귀만화시장에서는 ‘공급’에 따라 ‘수요’가 결정되며 가격도 함께 결정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전까지는 단순히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기 위한 취미의 수단으로서 만화책을 수집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수집가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만화의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희귀만화자료의 거래가격은 상승하였고, 지금은 투자의 수단으로도 역할이 이행되고 있는 추세이다.
얼마 전, 박물관의 학예연구사들의 커뮤니티에서 유물의 수집 가격이 이슈가 된 적이 있는데, 모 박물관의 관계자는 ‘어떻게 조선시대 고(古)도서보다도 현대의 만화책의 가격이 그리 비쌀 수 있냐’는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고(古)도서와는 단순 비교는 힘들지만, 고(古)도서를 실제 구입하고 싶어 하는 구매자들은 극히 한정되어있다. 반면에 희귀만화자료 시장은 대체적으로 60~70년대 만화를 즐겼던 독자층이 수요계층을 넓게 형성하고 있으며, 이들은 주로 40~60대로 사회적으로 안정이 되어있다는 것이 고(古)도서와는 다른 특징이다.
3. 거래량
거래량은 거래대상에 따라 다른 면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림 1]은 60년대 단행본의 거래 횟수를 비교한 것이다. 비주기적인 지그재그의 그래프를 그리고 있지만, 2010년도의 거래량이 2009년도의 거래량에 비해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그림 1] 60년대 만화단행본의 거래 횟수
응찰이 2회 이상 진행된 자료를 바탕으로 60년대 만화단행본은 2009년 4/4분기에는 27건만이 거래된 반면 2010년 같은 기간에는 115건이 거래되었다.
반면에 같은 기간 70년대 만화단행본의 거래량은 206건에서 159건으로 22.8%가량 감소하였는데, 이는 희귀만화시장이 아직은 안정단계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70년대 단행본의 경우 2011년 1월 한 달간의 거래량은 152건으로 대폭 증가하였으며, 60년대 단행본도 60건 거래되었다.)
4. 거래가격
- 60년대
[그림 2] <만리종 (하)> (박기당 작, 1959)
[그림 2]는 50~60년대 김종래, 김용환, 신동우 선생 등과 함께 우리만화를 대표했던 박기당 선생의 대표작 중 하나인 <만리종>이라는 만화책이다.
이 책은 1959년도에 발행된 것으로 최근의 한 경매 사이트에서 200만원 초반대의 가격으로 거래되었다. 만약 책의 보존상태가 좋았다면, 300만원 이상의 가격도 가능했을 것이다.
60년대 단행본의 거래가격은 230개의 표본 조사결과 최근 1년을 전후해서 약 60만원의 가격으로 거래되었다. 단순 가격으로 비교하면 당시 판매가인 60원에 비해 지금의 거래가격이 1만 배 이상 상승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와 지금의 통화가치는 분명 틀리기 때문에 자장면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만화책 한 권 살 돈으로 자장면 2그릇을 사먹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170그릇의 가격이 되었으니 약 80배 이상 상승하였다고 볼 수 있다.
거래가격의 상한가는 좀처럼 200만원을 초반 대 (2009년 10월에 거래된 <원자인 (1)>(허영건 작))를 좀처럼 넘지 못하다가, 2010년 12월 김종래의 <어머니 (3)>가 290만원대에 거래되면서 약 100만원가량 상승하였다. 이에 힘입어 2011년 1월에는 거래가가 200만원이 넘는 자료가 두 차례 거래되기도 하였다.
- 70년대
아래의 [그림 3]은 70년대 만화단행본의 거래가격 중 365개의 표본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2010년에는 2009년 같은기간 대비 평균거래가격은 51.4% 상승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3] 70년대 만화단행본의 거래 가격
뿐만 아니라 상위 30%의 가격에 해당하는 자료의 거래가격은 약 64.4% 상승하였다.
70년대 단행본의 평균 거래가격은 656개의 표본을 기준으로 10만원을 넘지 않았다. 10년이라는 시간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60년대와의 가격 차이는 비교적 큰 편인데, 여기에서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희소성이다.
10년 차이가 난다고 하더라도, 분명 현존하고 있는 자료의 수는 70년대에 비해 60년대가 적을 수밖에 없다. 극히 한정된 재화를 얻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지출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둘째는 사전검열과 독과점의 영향이다.
70년대 들어 더욱 강해진 사전검열은 작가들의 창작 욕구를 꺾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이 때 많은 작가들이 건강상을 이유삼아 절필을 선언하거나, 김산호처럼 외국으로 떠나기도 했는데 그 만큼 사전검열이 심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이다. 자연스럽게 만화의 내용이나 표현방법은 제한되었고, 합동출판사의 독점은 다양한 만화 창작을 더욱 저해하였다.
그래서 이때 출간된 획일화 된 만화작품들은 그 시절 뿐 만 아니라, 지금의 독자에게도 외면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림 4] <대야망> (고우영 작, 1975) 원고, (위 : 검열 전(복원) / 아래 : 검열 후)
셋째는 판형 및 분량의 변화이다.
70년대 들어서 만화책의 판형이 국판(148× 210mm)에서 46배판(188×256mm)으로 바뀌게 된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당시 책 가격을 인상하기 위한 출판사의 꼼수로 여겨진다. 60년대의 단행본도 지금의 만화책인 46판(128×188mm)과 비교해서도 큰 편인데, 70년대의 경우 두 배나 커진 것이다.
책은 휴대성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큰 판형의 책은 가지고 다니기 번거롭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작가들은 보다 세밀한 작업을 위해 책의 판형보다 원고를 크게 제작하여 축소인쇄를 하는데, 같은 크기의 원고에서 오히려 확대하여 인쇄를 하게 되었으니 그 당시의 독자들이나, 지금의 독자에게 외면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개인적으로도 70년대 46배판의 만화책으로부터 예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또한 60년대 까지만 해도 열권을 넘어 2부, 3부가 넘어가는 시리즈물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었지만, 70년대 들어서는 ‘상’, ‘하’ 혹은 ‘상’, ‘중’, ‘하’로 두 권 내지 세 권으로 작품의 길이가 대폭 축소된다. 이는 철저히 대본소를 겨냥한 마케팅의 일환으로 독자들은 깊이 있는 작품을 접하기 어려워지게 되었고, 이러한 작품의 질이 지금의 독자들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듯하다.
- 80년대
80년대 자료의 경우 현존하는 수량이 비교적 많기 때문에 60~70년대의 자료보다 비교적 거래가 활발하지 못하다. 다만 <클로버문고>, <물개만화>, <요요코믹스> 등 문고판 형태의 단행본들 일부와, 로봇과 관련된 만화들이 일부 거래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자료를 선점하려는 일부소장자에 의해 거래가 이루어지는 편이나 이 역시 80년대 초반 작품에 한하며 중반 이후의 작품들은 당시판매가격의 전후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5. 어떤 자료들이 거래되는가?
자료를 찾는 수요만 있으면 물론 거래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보다 많은 수요의 자료들은 높은 가격에 거래가 되며, 수요가 없는 책들은 쉽게 유찰되기도 한다. 수집가들의 구매 욕구를 이끄는 책의 조건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보존상태가 뛰어나야 한다.
책으로서의 가장 상(上)품은 당시의 인쇄의 질감까지 표지에 그대로 남아있고, 여덟 모서리에 마모나 구김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책들을 만나는 것은 복권에 당첨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의 앞표지, 뒤표지, 출간근거이다. 이 세 가지는 반드시 남아있어야 하고 물론 낙장도 없어야 한다. 앞표지는 책의 얼굴이니 만큼 깨끗하면 깨끗할수록 좋다. 일반적으로 작가들에게 증정용으로 쓰인 ‘증정(贈呈)’의 도장이 찍힌 책들이 깨끗한 편이나, 증정(贈呈)’도장이 날인되었다고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것은 아니다.
둘째, 같은 보존 상태를 지녔다고 하더라도, 당시에 인기작품이 비싸게 거래된다.
스포츠의 격언 중 “폼은 변덕스러울지 몰라도, 클래스는 영원하다(Form is temporary, Class is permanent)”는 말이 있다. 대 선수에게는 어떤 상황에도 일정 이상의 ‘수준’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로, 만화뿐만 아니라 명작은 어떠한 순간에도 그 힘을 바라기 마련이다.
셋째, 자료가 희귀해야 한다.
유명하지 않은 작가가의 처음 듣는 작품의 경우 의외로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하며, 시대의 일반적인 판형 외에 특이한 판형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조금 전, 두 번째 조건으로 ‘인기작품’을 이야기했었는데, 당시에 인기가 있었다고 하면 그 만큼 발행수량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희귀성’이라는 점에서 예외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초판 1쇄 본이 비싸게 거래된다. 하지만 증쇄를 하거나 판을 갈아 인쇄하는 경우는 많이 없었기 때문에, 미국이나 일본에서처럼 ‘시리즈물 1권의 초판 1쇄본’은 비싸다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수학공식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속담이 있다. 만화거래 시장에서도 이왕이면 상태가 좋고, 이왕이면 인기 있고, 이왕이면 희귀한 자료들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6. 마치며
희귀만화시장의 거래량 및 가격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거래가격의 변동 폭을 보았을 때 아직 안정화 된 것은 아니다. 또한 시장에 공급되는 재화는 극히 한정적이기 때문에 시장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다.
재화 즉, 만화책이 한정되어있다는 것은 그 당시 만화에 대한 인식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귀중한 문화유산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만화가 천대받았기 때문에 현재 온전히 보관되어 있는 만화책이 결코 많지 않은 것이다.
거래를 통한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희귀만화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그에 앞서 우리 만화자료들은 소중히 보존하여 온전히 후대에 전승해야만 하는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인식하는 것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