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주변사람들을 붙들고 “피너츠(Peanuts)가 무엇인지 알아요?” 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그게 뭐죠? 혹시 땅콩의 피넛?” 이란 대답을 듣곤 한다. 하지만 다시 한번 사람들에게, “그렇다면 스누피는 알아요?” 라고 묻는다면 어떤 반응이 올까? 분명 나이여하를 막론하고 과반수 이상의 사람들은, “아!! 그 스누피! 당연히 알죠!” 라고 말할 것이다.
원제인 카툰 ‘피너츠(Peanuts)’ 보다 극중 캐릭터 이름인 ‘스누피’로 한국에 더 알려진 이 작품은, 10년 전 작가 ‘찰리 엠 슐츠(Charles M Schulz)’의 사망 이후에도 60년 넘도록 지구촌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해오고 있다. 그렇다면 ‘피너츠’의 무엇이 이토록 전세계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일까? ‘피너츠’를 만날 수 있는 곳 ‘찰스 엠 슐츠 박물관 (Charles M. Schulz Museum)’에서 작품 ‘피너츠’와 작가 ‘찰리 엠 슐츠’에 대해 알아본다.
‘피너츠(Peanuts)’의 아버지 ‘찰리 엠 슐츠(Charles M Schulz)’의 일생
‘찰리 엠 슐츠(Charles M Schulz)’는 1922년 11월 26일 미국의 미네소타 주 세인트폴에서 이발사인 Carl Schulz와 Dena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슐츠’에게 만화란 출생 이후부터 그의 삶 전체에 큰 영향력을 미친 존재였다. 이에 대한 예로 ‘슐츠’가 태어난 지 불과 2일밖에 되지 않았을 무렵, ‘슐츠’의 삼촌은 만화 ‘the barney Google’의 캐릭터 ‘spark plug’의 이름을 따와 그를 ‘스파키(Sparky)’라고 부르곤 했으며, ‘슐츠’는 젊은 시절 그의 아버지와 함께 매주 일요일아침 ‘웃기게 신문읽기’라는 가족행사가 있을 정도로 슐츠가(家)는 만화와 엔터테이먼트를 가깝게 즐기는 가족이었다. 이런 집안의 분위기 탓이었을까? ‘슐츠’는 항상 카툰아티스트가 되고 싶어했고, 1937년 Ripley 신문에 그의 그림이 게재되었을 땐 무척 자랑스러워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러나 ‘슐츠’의 모든 인생과정이 예술적인 부분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청년기에 유럽으로 건너가 2차 세계대전 육군 포병대 리더로 참전하여 훈장도 수여한 군인이었다. 하지만 거센 전쟁의 바람도 그의 예술적 열망을 막진 못했는데, 참전 중 ‘슐츠’는 매일 군생활 에피소드를 스케치하며 자신의 꿈을 키워나갔을 정도였다. 1945년 전역 후, 그는 카툰아티스트의 경험을 쌓기 위해 ‘세인트 폴(St. Paul)’로 돌아오게 된다. 1947년 에서 1950년 사이에는 ‘세인트 폴 파이오니어 프레스(the St. Paul Pioneer Press)’지의 주간만화코너를 맡아 게재했고, ‘The Saturday Evening Post.’에서 코믹개그 17편을 판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그가 원하는 기회를 잡기 전까지, 그는 수많은 고배를 마시곤 했다.
‘슐츠’가 원하는 작품과 기회로 활동을 시작한 때는 1950년 10월 2일,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친숙하게 알려진 ‘피너츠(Peanuts)’가 일곱 개 신문의 일일 카툰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 후 1965년, ‘슐츠’는 국립만화가협회로부터 르우벤상을(the Reuben Award by the National Cartoonists Society)을 두 차례나 수여, ‘피너츠’는 명실공히 전세계적인 성공가두를 달리게 된다.
‘슐츠’는 생전에 한번 카툰아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만화를 그린다는 것은 당신의 아이디어를 남들과 공유할 수 있는 굉장히 멋진 방법입니다. 카툰아티스트는 다른 분야의 예술가와 전혀 다를 것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술가들은 공통적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 한 예로, 감동적인 피아노 연주, 혹은 멋진 수채화 작품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예술이지만 사람들에게 기쁨, 진지함, 혹은 재미를 선사한다는 점은 역시 같습니다. (1996)”
"Drawing cartoons is a great way to share your ideas. A cartoonist is no different from any other type of artist—he or she wants to express him/herself. There is a joy in playing the piano or painting a wonderful watercolor. There is also a joy in communicating a thought, whether serious or funny, to another person." (1996)
1999년 12월, ‘슐츠’가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를 선언했을 때, 그의 작품 ‘피너츠’는 2,600종 이상의 전세계 신문에서 50년간 연재를 하고 있었다. 은퇴선언 후, ‘슐츠’는 얼마 지나지 않은 2000년 2월 12일 사망하는데, ‘피너츠’의 마직막회는 그 주 일요일자 신문에 마지막으로 게재되었다. 이후 그의 전설적인 업적을 기리고 보존하고자 하는 취지로 캘리포니아 산타로사에 ‘찰스 엠 슐츠 박물관과 연구센터 (Charles M. Schulz Museum and Research Center)’가 세워졌다.
‘피너츠(Peanuts)’? 스누피?
한국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피너츠’를 이렇게 표현하곤 한다.
“장난끼 심한 지옥견* 비글을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런 캐릭터로 만든 작가는 참 위대하다!”
이 말은 작품의 단편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이지만, 여러 각도로 보았을 때 ‘피너츠’는 나이, 성별, 문화를 불문하고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란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피너츠’는 어떤 작품인가? ‘피너츠’는 1948년부터 1949년, 작가가 ‘세인트 폴 파이오니어 프레스(the St. Paul Pioneer Press)’지에 연재한 ‘릴 폭크스(lil folks)’를 모태로 한 작품이다.
극중 캐릭터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 50년여 동안 절대 문하생을 두지 않고 원고의 모든 과정을 스스로 그려 연재한 이야기는 업계에서도 유명한 일화이다.
여느 개성강하고 화려한 만화캐릭터들과 달리 ‘피너츠’는 지극히 평범한 성격의 아동캐릭터들이, 지극히 일상적인 주제와 고민거리를 가지고 고뇌하는 작품이다. 초기 ‘피너츠’는 업계관계자들 사이에서 너무 개성이 없어 실패할지도 모르겠다는 평과 함께, 한때 ‘스누피’는 비중이 없으니 등장을 빼버리자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혹독한 초년기을 겪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독자들은 이 평범한 인생들의 이야기에 열광했고, ‘피너츠’는 75개국에서 21개의 언어로 2,600여 신문사에서 50년 동안 연재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극중 캐릭터의 성격이나 생각, 행동들은 작은 것 하나까지도 작가 ‘슐츠’의 경험담이 녹아있다. 주인공 ‘찰리 브라운’은 작가 본인의 내면을 적극적으로 대변한 캐릭터로, 작가 자신이 경험한 고독과 일상생활의 감정들을 ‘찰리 브라운’을 통해 독자들에게 선보였다. 그 밖에도 ‘피너츠’는 50년의 연재 동안 약 60여명(동물 포함)의 3~5세 정도의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이 캐릭터들은 각자 개성 있지만 일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격에, ‘자신만의 고뇌를 가지고 고민하는 인생’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슐츠’는 ‘피너츠’의 인물들에게 다양한 개성을 심어준 것은 물론, 위트 있는 말과 심리묘사로 독자들을 즐겁게 하는 작가였다. 주인공들의 재치 넘치는 대사와 심리묘사법은 ‘피너츠의 특징’이라고 불리 울 만큼 호응을 얻었다. 생각지도 못한 한마디로 뒤통수를 치게 하는가 하면, 그것을 재치 있게 받아넘기는 위트까지, ‘피너츠’는 아동캐릭터 만화라는 설정을 잊게 할 만큼 심오하고 철학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다양한 인물들의 심리묘사로 즐거움을 주는 ‘피너츠’는 신문연재 이외에도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무대연극 등으로 각색되기도 했으며, 두 편의 장편만화영화 극본으로도 선보여졌었다. 이 후 ‘피너츠’는 꾸준히 독자들의 곁을 지키고 있는데, 최근 2010년 연말에는 ‘피너츠 듀럭스 홀리데이 콜렉션’ DVD와 블루레이 출시는 물론 미국명절 땡스기빙(Thanksgiving) 특별방송을 ABC에서 방영하기도 했다.
‘찰스 엠 슐츠 박물관 (Charles M. Schulz Museum)’
2000년 77세의 나이로 숨진 ‘찰리 슐츠’와 그의 대표작 ‘피너츠’를 기리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 주(州) 산타 로사(SantaRosa)에 2002년 8월 17일 ‘찰스 엠 슐츠 박물관 (Charles M. Schulz Museum)’이 개관했다. 2층으로 구성되어있는 전시관은 건물자체 설계디자인은 물론 박물관을 꾸며주는 다양한 조각들까지 입구에서부터 관람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박물관에는 작가의 50여 년간의 활동기록 및 6000여 편에 다다르는 ‘피너츠’ 원본과 원고를 위한 사전 러프스케치 등, ‘피너츠’ 연재에 관한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작가의 생전 작업실을 그대로 재현해 놓음은 물론, 작가의 활동기록, 피너츠 이전 작품들과 작가에게 영향을 미쳤던 옛 고전 카툰까지 미국만화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전시물도 관람할 수 있다.
박물관 로비 내부에서 가장 눈에띄는 조형물로는 스누피의 실제 연재만화를 타일로 인쇄, 이 3,588개의 타일로 모자이크 하여 만든 초대형 벽화가 있다. 이 작품은 100 수작업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루시’와 ‘찰리 브라운’의 선 부분은 연재만화 중 먹칠한 원고타일만을 선정해 절묘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실제로 가까이 다가가 만화를 읽는 재미도 있어 벽화 가까이 머무는 관람객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타일아트는 로비에서뿐 아니라 박물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 손 닿는 곳마다 ‘찰리 브라운’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으며, 그 세심한 배려(?)는 용무가 급한 분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이 밖에도 박물관에는 세미나 극장이나 일반인들을 위한 교육강의실, 그리고 각종 조형물을 볼 수 있는 야외정원 등 ‘피너츠’의 50년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박물관이 교육프로그램에 큰 힘을 쓰고, 관람객의 적극적인 참여기회를 많이 제공한다는 점이다. 작게는 만화작법기초와 캐릭터 그리기 강습에서부터, 크게는 꿈나무를 위한 업계 전문가 초빙 세미나까지 다양한 교육기회를 유/무료로 제공, 일반인들의 많은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박물관의 기념품관 내부. 각종 캐릭터상품들이 판매, 전시되어있어 작품의 역사를 느낄 수 있다.
‘찰스 엠 슐츠 박물관 (Charles M. Schulz Museum)’의 색다른 점은 메인 전시관만이 볼거리는 아닌 점이다. 여느 박물관과는 틀리게 이곳은 기념품구입코너가 독립적인 건물로 분리되어있다. 물론 기념품관은 ‘피너츠’와 관련된 각종 캐릭터 상품이나 책자, 혹은 일부 원화를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더욱 재미있는 점은 내부 인테리어에 있다. 기념품관은 1층 기념품코너를 비롯해 2층에 전시실 겸 판매 작품들이 있는데, 이것을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알록달록한 색깔 카펫으로 그려진 ‘피너츠’ 벽화,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대형 캐릭터 조형물, 캐릭터 스테인글라스, 그리고 작품의 연대기와 역사 별 캐릭터 상품 전시까지, 본 전시관의 전시실 못지않은 눈요기를 할 수 있다.
이곳에는 박물관 외 하나 더 즐길거리가 있다. 그건 바로 아이스링크장이다. ‘피너츠’ 극중에는 ‘찰리 브라운’과 친구들의 스케이트를 타는 장면이 종종 등장하곤 한다. 특히 한국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스누피’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이런 여세를 몰아 박물관측은 캐릭터의 홍보겸 지역주민들의 참여활성, 더 나아가 관련작품과 관련 업계의 공연장소 등의 용도로 아이스링크장을 운영하고 있다. 내부는 당연 ‘피너츠’나 카툰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디자인으로, 각종 공연을 할 수 있는 조명시설과 관람객 수용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어 주말에는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죽음, 그리고 영원한 친구 ‘피너츠(Peanuts)’
암투병과 함께 연재중단 이후 ‘찰리 엠 슐츠(Charles M Schulz)’는 한달 여 만에 ‘피너츠’와 그를 사랑한 팬들과 작별을 고한다. 작가의 사망 다음날 2000년 2월13일, ‘피너츠’ 마지막 회는 일요일자 신문에 게재되었다.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거의 50년 동안 나는 사랑하는 찰리와 그의 친구들을 그릴 수 있어서 행운이었어.
그것은 내 어린 시절의 꿈이었으니까... 안타깝게도 나는 이제 더 이상 만화를 그릴 수 없어.
나의 가족들은 다른 누군가가 피너츠를 계속 연재하는 것은 바라지 않아. 그래서 나는 지금 은퇴선언을 하고 있어...성실했던 에디터들과 수 십 년 동안 내 만화에 너무나 큰 도움과 사랑을 보여주었던 나의 팬들에게 나는 늘 고마웠어...
찰리브라운, 스투피, 라이너스, 루시.....내가 어떻게 너희들을 잊을 수 있을까....
찰스 슐츠...
작품의 팬이라면 아쉬움에 눈물이 핑 돌만한 작가의 마지막 인사…
‘찰리 슐츠’의 죽음과 마지막 연재소식에 당시 전세계사람들의 애도가 이어졌었다. 특히 유년시절부터 50년간 ‘피너츠’를 봐온 일반 팬들은 물론, 각국 정상, 정재계 수장들까지 공식적인 애도를 표해 큰 눈길을 끌었다.
연재가 끝나고 더 이상 독자들이 작품을 보지 못하는 지금, 눈앞에서 안보이면 애정도 식는다는 말을 누가 했던가? 이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마지막 연재 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피너츠’와 ‘찰리 슐츠’는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사랑 받고 있다. 때론 한 사람의 추억의 만화로, 때론 언론인의 인용으로, 때론 아동심리학 전문가가, 혹은 관련 업계나 학계의 전문가들의 예시로… 다양한 분야와 사람들이 60주년을 기한 지금도 ‘피너츠’를 미국의 대표적이고 전설적인 만화로, 또한 전설적인 카툰아티스트로 ‘찰리 술츠’를 거론한다. 첨단디지털 기술로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고 인간미가 예전 같지 않다는 요즘, 아날로그 시대부터 꾸준히 독자들을 감동시킨 ‘피너츠’ 같은 따뜻한 작품이 가끔은 사람들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