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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기한 보물의 탄생 : 단행본 만화의 효시 <토끼와 원숭이>

대한민국 만화문화의 물줄기를 터트린 김용환의 ‘토끼와 원숭이’는 박물관에 영구적으로 보존하고 전시하여 후손들에게 절대 잊게 해선 안 될 우리의 보물이라는 걸 알려야 할 것이다.

2012-06-26 박기준
만화의 기원은 인쇄문화보다 오래전에 실현되었다.
 
인류 최초의 만화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는 작품의 요소는 약 1만~ 2만년 전(최근에는 약 4만년전이라는 학설도 제기됨) 스페인의 ‘알타미라동굴벽화’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벽화들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의 동물사냥 등 삶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 표현기법과 아이디어에서 만화영상적임을 알 수 있다. 다양한 동물들의 익살맞은 모습과 치졸한 선들이 현대적 감각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만화에 가까운 변화로써 받아들이게 된다. 어떤 동물을 그림으로 그린다는 것은 그 동물 그 자체를 그들의 손 안에 넣는다는 것을 의미하였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랑하는 이의 사진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거나 미워하는 이의 사진을 찢어버리는 일과 유사한 현상이라고 미술역사학자 잰슨이 지적한바 있다. 석기시대 사람들은 자기 조상들의 영혼이 혼재한다고 생각했었고 때문에 그들은 모든 생물에도 영혼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다.
 
이집트 나일강변의 갈대로 만든 파피루스에 그린 동물회화 ‘죽은이의 책(The Book of The Dead)’에는 사자가 영양과 장기를 두고 고양이가 새를 쫒는 모습으로 당시 왕실사회와 노예생활을 풍자한 그림이 있다. 이 작품은 인간의 이야기에 동물 이미지를 사용한 근대풍자만화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찍이 그리스인들은 시민정신이 발달하여 풍자와 해학의 만화문학이 성행하였다. 우화작가인 이솝은 동물 등을 인간처럼 행동하게 하는 의인법을 사용, 그리스인들의 풍자정신을 나타내어 동물영상의 묘법에 금자탑을 이룩했다. ‘이솝우화’는 구전으로 전해오다가 2세기에 걸쳐 아테네 사람들이 문자와 함께 기록하여 동물풍자만화의 기원이 된 것이 아닐까?
 
1928년 미국의 월트니즈니는 쥐를 바탕으로 ‘미키마우스’를 주인공으로 만든 의인화 만화가 출판가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어 더욱 인기를 배가했으며, 그의 인기 캐릭터는 상업용으로도 활용되어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이로 인해 세계적 영화제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예술상을 수상하고 ‘디즈니랜드’라는 꿈의 공원까지 탄생시켜 예술의 경지를 이룩했다. 이 분야 또한 엄청난 부가가치 산업으로 국제경쟁 또한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1945년 오랫동안 일본유학을 마치고 그곳 출판미술분야에서 활약하며 당대의 대가들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목정(木丁) 김용환(金龍煥, 1912~1998)은 해방과 함께 귀국하여 최고의 실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대중예술 특히 만화와 삽화계의 초석이 되었다. 만화뿐만 아니라 도서의 장정이나, 삽화 등 천부적인 화필로 출판미술계를 두루 리드해 온 것이다.
 
어느 미술평론가는 순수예술보다 대중예술의 가치를 낮추어 보는 이는 있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피카소가 얼마나 많은 만화를 그리면서 활용하였으며 작품 자체가 만화라는 걸 모르고 하는 말이다.
 
근대만화의 개척자이기도한 김용환은 일제 36년 동안 우리말과 글을 빼앗겼던 청소년들에게 우리의 만화를 선보였다. 일본의 역사, 전설, 동화만을 강요당했던 교육과 출판물로 인해 일본인에 기죽어 지내던 청소년들에게 스트레스를 한껏 풀어줄 우리 작품을 창작하기 시작하는데 아동문학가 마해송 원작을 새롭게 만화로 재구성한 <토끼와 원숭이>가 1946년 5월 1일 발행케 된 것이다. 이전까지 우리 최초의 만화책은 김용환의 <흥부와 놀부>였지만, 이번에 발굴된 <토끼와 원숭이>는 그보다 시대가 수개월이나 앞서는 것으로 발굴소식은 필자를 흥분케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형식은 시대흐름에 맞춰 시사풍자만화형식을 택했는데 테마, 소재, 스토리, 구성에서 무사정권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원숭이나라가 바다 건너 토끼나라를 침략, 이를 발판으로 이웃동물나라에 까지 확전시켰으나 평화를 사랑하는 연합세력에 패망한다는 테마가 통쾌하게 입체영화 보듯 그림을 통해 신나게 보여주어 해방된 기쁨을 더 한층 만끽, 독자들의 환성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이 책의 발굴을 통해 우리만화캐릭터의 역사가 보다 명확해지게 되었다. 캐릭터 선정에서 살펴보면 주연 캐릭터 토끼는 귀엽고 온순하며 향토적인 동물로 이미지가 우리 전래동화 등에서도 잘 묘사되어 있고, 우리의 들과 산에도 많이 살아 우리 한국을 상징하는 동물로 선택했다. 반명 토끼나라를 침략하는 원숭이는 차갑고, 겉과 속이 다르고, 도전적이며 일본에 많이 살고 있어 일본인들이 좋아하며 일본인을 상징한 동물로 선택했다.
 
우리는 예부터 원숭이를 싫어했다. 아침에 원숭이 얘기를 꺼내기만 해도 재수 없다며 꾸중을 듣기 일쑤였다. 해방 후에도 일본인들을 ‘원숭이’라고 놀려대기도 했다. 이 두 라이벌은 대립시켜 나가면서 억압된 지나간 역사, 사회문제도 이슈화 시키려는 의도도 잘 전달 될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당시 선진국에서 동물을 의인화하여 반공풍자소설로 화제가 되었던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인기였는데 그 작품과도 견줄 수 있는 걸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김용환의 작품들은 출간되기가 무섭게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음은 물론이며, 그의 펜선과 그림 하나하나는 후학들에게 소중한 교재가 되었다. 특히 이순신의 거북선을 묘사한 그림은 투시도까지 응용해 그렸으며, 그가 그린 ‘명랑해전도’는 진해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있기도 하다.
 
그런 희귀한 작품들의 발굴소식에 기쁘기도 하지만 파손이 심해 발행연도, 작가명이 불분명하거나 내용이 중간에서 끊어져 전문가들도 당황하기 일쑤였는데, 금번에 발굴된 <토끼와 원숭이>는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어 다른 여느 책과 비교가 불가능하다.
 

  
  
  
  
  
  
  
  
  
  
  
  
  
  
  
  
   
 
이 작품은 우리 단행본 만화의 효시이며, 귀여운 토끼를 깔끔하게 디자인해 부각시킨 그야말로 만화적 캐릭터가 탄생된 최초의 만화책이다.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만화가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특히 동물만화기법을 전수받은 정운경은 <학원>지에 ‘진진돌이’를 오랫동안 연재, 신문연재만화 ‘왈순아지매’에 이르기 까지 인기 최고의 작가가 되었다. 또한 우리만화 최고의 캐릭터 중 하나인 김수정의 ‘아기공룡둘리’도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며 캐릭터산업의 활성화에도 큰 기여를 했다. 최근 ‘뽀롱 뽀롱 뽀로로’나 ‘빼꼼‘ 등이 세계시장까지 누비게 된 것도 우리 만화사에 김용환이라는 불세출의 작가가 없었다면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미국의 월트디즈니나 일본의 데츠카오사무에 버금가는 만화가로 추앙받는 자랑스러운 만화가로 역사에 기리 남을 것이다. 천재는 구경꾼 속에서 태어난다고 했다. 대한민국 만화문화의 물줄기를 터트린 김용환의 <토끼와 원숭이>는 박물관에 영구적으로 보존하고 전시하여 후손들에게 절대 잊게 해선 안 될 우리의 보물이라는 걸 알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