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기대와 우려 속에서 주목받고 있는 VR(Virtual Reality)이 최근 미국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다양한 작품을 출시하며 주목 받고 있다. VR은 가상현실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최근에는 가상현실을 체험하거나 즐길 수 있는 휴대용 하드웨어 기기를 호칭하는 명사로도 사용된다.
VR 시장 도입기에는 가상현실을 응용한 동영상 출시가 대세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 하드웨어의 응용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증명하듯 최근에는 각종 게임, 만화, 일러스트레이션 등이 새롭게 출시되고 있다. 지금부터 새로운 기술력을 적용시킨 획기적인 작품들의 등장 소식과 올해 하반기 미국의 뜨거운 감자에 대해 소개한다.
최초의 3D 코믹북 ‘Magnetique’ 출시 올해 9월 오니라이드(Oniride)사는 최초의 3D 코믹북 [마그네틱(Magnetique)]을 출시해 전 세계 만화 관계자들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만큼 그 방향성은 대단했다. 마그네틱 안에서 제공되는 360도 파노라마 감상 개념은 마치 ‘해리포터’에 나올법한 하나의 상상력이 현실화된 것과 비견될 정도였다.
△ Gear VR전용 코믹북 마그네틱(Magnetique)의 펄스펙티뷰 장면
오니라이드 공동설립자 미첼 브로너 스콰이어는 여러 매체에서 VR은 만화의 스토리텔링과 최적의 궁합을 가진 플랫폼이라고 강조해왔다. 또한, 11월 16일 한국의 ‘넥스트콘텐츠컨퍼런스’에 참여하여 가상현실을 통한 만화세계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목격한 것과 VR이 예술적 작품표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매체임을 이야기했다.
△ 코믹북 마그네틱(Magnetique) 트레일러 영상 중
아이러니한 점은 이젠 디지털 e-reader 방식도 전통적인 서적으로 구분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360도 방향성 감상법은 기존의 어떤 매체에서도 없었던 방식이고, 또 이것은 스마트폰이나 휴대용 타블렛 PC 같이 언제 어디서든 코믹스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마그네틱의 이야기로 돌아온다면, 이 작품은 전통적인 코믹북 방식과 디지털 그래픽 노블 사이의 중간느낌을 구현한 것이다. 거기에 곁들여진 오디오 효과는 보는 이의 몰입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고 오니라이드측이 밝혔다. 또한 마그네틱의 ‘3D 효과’는 정확히 오브젝트와 오브젝트간의 거리감을 주어 그 깊이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사용된 이미지소스는 2D이지만, 이 이미지의 레이어는 입체적으로 세워져있는 형태로 세팅되었다. 즉, 3D의 기법과 전통적인 평면 방식의 코믹의 특징 양쪽을 동시에 취한 것이다.
오니라이드는 마그네틱 서비스가 아직 시기상조이지만, 앞으로 출시할 작품에 더욱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보여줄 것이라 장담했다. 그리고 이후 다른 작품들 또한 VR 전용으로만 발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뉴욕 코믹콘과 VR 디바이스, VR 코믹스, 그리고? 코믹스와 관련 업계에서 VR을 주목하는 경향은 2016년 10월에 열린 ‘뉴욕 코믹콘’에서도 그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만화는 물론 영화, 게임, 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행사답게 VR관련 섹션 또한 각축이 벌어졌다. 이것은 크게 하드웨어 디바이스 섹션과 이를 응용한 다양한 장르작품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경우로 나뉘었다.
하드웨어 분야는 VR 출시 회사로 유명한 OCULUS(오큘러스), HTC, 그리고 SONY 세 회사가 새롭게 발표한 프리미엄 디바이스를 선보여 화제가 되었다. 각각의 디바이스는 회사별로 다양한 성격과 장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개인이 언제 어디서나 IMAX 극장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VR과 호환되어 사용하는 핸드모듈도 주목받았는데, 이것은 사용자가 현실에서 취하는 액션을 가상현실에서 구현해내는 장치이다. 이것은 아직 VR 코믹스에서 혁신적인 장치로 응용되고 있지 않지만, FPS 게임 장르 등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VR 응용분야에서는 주로 VR의 구현 가능성과 확장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많았다. 특히 뉴욕코믹콘에 모션 코믹스업체 부스로 참여한 메이드파이어(madefire)는 독자가 만화책 속으로 들어가 직접 경험하는 듯한 히어로 작품을 소개해 화제가 됐다. 이들의 작품도 앞서 출시된 다른 VR코믹스처럼 360도 파노라마 뷰가 지원되는 것과 그림소스의 레이어가 각기 떨어져 입체감을 표현해 다이내믹함을 갖추었다. 거기에 더하여 사람의 시선방향 및 캐릭터의 액션에 따른 모션 연출과 적절한 사운드를 곁들여 마치 현실감 있는 감상을 가능케 했다. 이는 마치 영화의 프로모션 영상이나 일부 영상 광고매체에서 레이어 편집기법으로 연출하던 방식을 만화서적에 적용한 것이라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다만, 엄청난 시장성장성을 가진 VR코믹스는 그 가능성만큼이나 불안정성에 대해서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지속적이고 충분한 수익창출 구조가 안정적으로 구축될 수 있느냐이다. 왜냐하면 올해 하반기에 출시되기 시작한 VR코믹스들은 이제 걸음마를 뗀 단계로 아직 독자들의 니즈에 정착되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불안정성 사례로는 첫째, VR 디바이스 시장의 안정화가 확립되지 않았다는 점이 있다. 현재의 VR 디바이스시장은 표준화가 정립되지 않았다. 하여 다양한 회사의 VR들은 각기 분명한 특징과 기능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보자면 가격대비 적정한 성능이 탑재되어있는지, 매체와 지원 콘텐츠를 사용함에 있어 최적화가 되었는지 여부는 오로지 구매자의 몫으로 감내해야 한다. 또한 디바이스 출시·유통도 국가마다 상황이 다르기에 사용자 입장에서는 불편하기 그지없는 점이다.
둘째, VR코믹스의 유통경로 또한 한정되어있다. 현재까지 출시된 고퀄리티 화질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삼성 기어 VR 전용 작품들이다. 즉, 오큘러스 어플리케이션으로만 출시되는 작품이므로 해당 기기, 해당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접근이 애초에 불가능하다. 디지털 e-book이 다양한 마켓 어플리케이션은 물론, 아마존 같이 국제적인 유통경로와 연동돼 접근이 가능한 것과 비교하면 아직 폐쇄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셋째, 다양한 효과가 들어간 만큼 구매 가격이 전통적인 e-book보다 비싸질 수밖에 없다. 이미 미국의 디지털 코믹스 시장은 10달러 남짓의 월무한 정액제나, 99센트에 1권을 살 수 있는 가격이 정착되어있다. 이 상황에서 권당 3.99달러의 가격은 독자의 구매 선택에 망설임을 주는 요소인 것이다. 또한, 미래에는 다양한 기술적 시도와 창의적인 연출이 VR코믹스에 가미될 가능성이 높아서 권당 3.99달러 이상의 것이 출시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이런 기존 가격 모델에 대한 장벽을 해소할 무언가가 있지 않는다면 VR코믹스 시장 확대에 장벽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넷째, 3D 멀미(3D motion sickness), 3D 울렁증이라고 불리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3D라는 것이 최초로 등장할 때부터 꾸준히 제기되 왔던 현상으로, VR 업계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알려져 있다. 3D 멀미의 원인은 다양하게 분석되고 있지만, 현재로썬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다. 게다가 화면상 이미지와 텍스트를 동시에 봐야하는 VR코믹스는 그 눈의 피로도와 멀미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의견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문제점은 전통적인 e-book시장과 VR코믹스의 공존을 가능케 할 이유로 꼽히고 있다.
물론 이런 불안정 요소에도 VR코믹스는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과 확장성을 가졌기에 기대되는 부분도 있다.
일단 업계관계자들이 꾸준히 제기해온 스토리텔링의 적합성과 연출영역의 확대로 인한 예술적 작업의 성장가능성이다. 예상컨대 순수 작품 활동(상업성이 적거나 없는)을 하는 예술가들도 VR아트를 이용한 작품발표 가능성이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만화 연출에 관한 ‘아트디렉터’라는 직책이나 직업의 중요성이 대두될 것이다.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과 달리 만화는 아직 작가(창작자) 중심 창작체계에 기반을 둔 매체이다. 미국의 경우 기업형 제작구조 탓에 그 개념이 약간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그 출발은 한두 명의 창조자(creater)로 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VR코믹스의 경우 기획 단계부터 VR에 특화한 연출을 고려해 기획·구성·제작되어야 한다. 게다가 해당 아트디렉터는 일반 감독과 달리 만화·가상현실·사운드·모션 등 여러 분야의 지식과 트렌드를 꿰고 있어야 한다. 때문에 미래에는 VR 아트 디렉터라는 직업이 생기거나, 만화 기획자·연출자·편집자들에게 추가적인 역량이 요구되거나 하는 등 제작 현장의 변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미국의 VR과 관련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동향, 그리고 VR코믹스의 성격과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 다른 다양한 경우의 수도 있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VR이 미래 엔터테인먼트산업의 핵심 키워드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당연히 현재 제기되고 있는 기술적인 문제점은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하지만 VR을 이용한 매체 개발은 사람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되므로 미래에는 누가, 얼마나 효율적이고 많은 매체소스를 확보하고 있는지가 시장 장악의 관건이 될 것이다. 결국 VR코믹스의 발전을 위해서 다양한 읽을거리가 풍부하게 출시될 수 있는 밑바탕과 기초를 키워주는 것이 당면한 과제중 하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