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그룹우바포(OuBaPo)는 1992년에 결성된 만화창작 그룹이다. 평론가 티에리 그론스틴, 출판사 아소시아시옹의 창립멤버 파트리스 킬로퍼, 쟝 크리스토프 므뉘, 루이스 트롱다임, 그리고 작가 조센 제르너, 시나리스트 안 바라우 등이 이 그룹에서 활동했다.
이들 작업의 주된 내용은 의도적인 예술적 제약을 설정하고 그 제약에 따라 만화를 창작하는 것이다. 이 예술적 제약은 초현실주의 예술가 앙드레 브르통이 참여했던 창작그룹 울리포(Oulipo)의 방식을 이어받은 것이다. 우바포의 만화실험은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 필자는 4월 아쏘시아시옹 관련기사를 통해 이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했었다. – 그 중에서도 보드게임과 만화, 오브제와 만화를 결합하여 그 경계를 애매모호하게 만드는 실험들이 흥미롭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꼬끄텔(Coquetèle), 스크루바블(scrOUBAbble), 도미포(Domopo) 같은 것들이다.
게임만화 발상의 기본원리
꼬끄텔, 스크루바블, 도미포와 같은 놀이들의 이름은 이전에 존재하던 게임의 이름에 우바포의 이름을 결합하여 변형한 것들이다. 각각의 게임은 이전에 존재하던 게임들의 규칙과 형태를 빌어왔는데, 꼬끄텔은 주사위 놀이를, 스크루바블은 스크러블 보드게임을, 그리고 도미포는 도미노 게임의 변형이다. 이 게임들은 특유의 규칙에 따라 일반적인 만화처럼 칸으로된 이야기를 만들수 있다.
꼬끄텔 게임의 원리를 고안해 낸 안 바라우(Anne Baraou)에 따르면 이 게임들은 “책과 게임의 경계에 위치하는”것들이다. 또한 우바포의 의도적 제약중에 <예측불가능한 맥락>이라는 제약에 부합되기 위해 만들어졌다.
우바포의 이론가 티에리 그론스틴의 정의에 따르면 <예측불가능한 맥락>이란 ‘각각의 컷이 어떤 순서로도 놓일수 있고 읽힐수 있는 아주 만화적인 제약을 따른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것은 만화의 연속적 조직에 관한 것이다, 만약에 독자가 인쇄된 이미지가 있는 카드들의 모임에서 카드 몇개를 뽑아서 자신앞에 무작위로 늘어놓으면 어떤 경우가 되었던 조직된 서술과 일관적인 연속화면이 나타나야만 하는’ 것이다.
그론스틴의 정의가 은연중에 암시하듯이 이 게임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만화를 가지고는 실행하기 쉽지 않다. 가위를 가지고 쓸만한 이미지들을 고르기 위해 쉴새 없이 책을 오려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게임을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조작하고 옮겨놓을 수 있는 충분한 이미지들이 필요하다.
꼬끄텔(Coquetèle)
첫번째 살펴볼 게임-만화는 꼬끄텔이다. 2002년 아쏘시아시옹 출판사에서 나온 이 게임-만화는 예전의 모델을 재개발한 것이다. 원래 모델은 1991년에 안 바라우가 고안하고 코린 샬모가 작화한 ‘결국 어쩔수 없군(Après tout tant pis)’ 이라는 물건이었다. 두 경우 모두 원리는 같다. 상자안에 각면마다 만화 한 칸이 인쇄되어 있는 큐브가 세개 들어있는 것이다. 각각의 만화칸에는 대화 혹은 서술문장이 하나씩 씌여 있어서 세개의 큐브를 던지게 되면 세 개의 만화칸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스크루바블(ScrOUBAbble)
두번째 게임-만화는 2005년 출시된 스크루바블이다. 이것은 게임하는 사람이 말판에 알파벳글자를 하나씩 하나씩 올려놓고 단어를 만드는 보드게임 스크라블의 변형으로 조금 더 복잡한 형태의 게임-만화다. 이 게임은 225개의 칸이 그려져 있는 말판위에 만화가 그려진 패를 올려놓는 것이다. 꼬끄텔과는 달리 이 게임의 패 위에는 문장은 없고 그림만 있을 뿐이다. 나머지 규칙은 스크라블 게임과 유사하다. 스크루바블의 고안자들은 점수를 매기는 방법이나 승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규칙은 정하지 않고 게임을 하는 사람들끼리 결정하도록 했다.
도미포(DoMIPo)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도미포이다. 2009년에 나온 도피포는 유럽에서 유행하는 패의 눈수를 맞추어 종횡 1자형 또는 T자형으로 나열시키고, 갖고 있는 패를 먼저 모두 내놓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 도미노 게임의 변형이다. 28개로 구성된 이 게임의 패는 두 칸으로 나뉘어 있고 각각의 칸에 0명에서 6명까지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도미노게임의 패에 0에서 6까지의 숫자가 씌여 있는 것처럼). 게임을 할 때는 다른 패가 서로 붙을 때는 마주하는 패 속의 인물들 숫자가 같아야 한다는 도미노 게임 규칙을 따라야 한다. 게임 한판이 끝나고 나면 긴 스트립 만화가 만들어질 것이다. 더 다양한 이야기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도미포의 패들은 앞뒤 양면에 모두 그림이 그려져 있다.
게임-만화에 대한 고찰
여기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게임-만화가 새로 계발될수록 게임하는 사람에게 주어진 제약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꼬끄텔에서는 3개의 큐브를 던지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그것을 조합하는 것 뿐 이었다. 스크루바블에서는 게임하는 사람의 자유로움이 좀 더 줄어든다. 왜냐하면 이 게임에서는 최소한의 게임규칙에 부합하기위해 놓이고 가질 수 있는 패의 수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미포 게임에서는 제약이 좀 더 많다. 왜냐하면 이미 존재하는 패위의 숫자와 옆에 놓일 패의 숫자가 같아야 한다는 게임의 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는 조합의 수는 훨씬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들을 게임이라고 정의한다면 꼬끄텔을 제외하고 나머지 두 가지는 이미 존재하는 규칙의 적용이외에 그들 고유의 규칙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게다가 이 게임들에는 승자를 가려내려는 목적이 없다. 스크루바블이나 도미포게임은 게임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패를 가지고 있지 않을 때를 제외하고는 ‘한판’의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
꼬끄텔의 원리를 고안해 냈던 안 바라우가 밝혔듯이 이 게임들은 “책과 게임의 경계에 위치하는”것들이다. 꼬끄텔은 “세개의 정돈되지 않은 주사위로 된 만화”, 도미포는 “만화로 된 도미노 게임”, 스크루바블은 “말판과 102개의 만화칸”으로 정의될 수 있다. 결국 익숙치 않은 그들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만화매체에 포함된다.
승부를 위해 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게임-만화는 조금 밋밋한 것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경계를 허물기 위한” 우바포 그룹의 만화 실험은 굉장히 흥미로운 결과물을 내놓았다. 게임-만화는 원래 많이 팔기위한 상업적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 아니지만 오브제가 예뻐서 누구라도 이것을 보면 사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다.
실험적인 만화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레크로아르(Lécroart)에 의해 만들어진 뫼비우스 띄 형태의 만화나, 크리스 웨어(Chris Ware)의 런치박스( Lunch-Box), 그리고 우바포 그룹의 간행물 오퓌스( Oupus) 들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