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미국의 만화교육 : 조 쿠버트 만화학교를 중심으로

조 쿠버트 만화학교는 DC코믹스의 만화가이자 디렉터였던 조 쿠버트가 전문만화가 양성을 목적으로 1976년 설립한 학교로, 현재는 그의 두 아들인 앤디 쿠버트와 애덤 쿠버트가 운영하고 있다. 앤디 쿠버트는 <배트맨> <캡틴 아메리카> <엑스맨> <토르>등의 만화를 그렸으며, 애덤 쿠버트는 <울버린> <스파이더맨> <슈퍼맨> <헐크> <고스트라이더>등을 그린 만화가이다.

2017-05-17 문지욱



The Joe Kubert School of Cartoon and Graphic Art
조 쿠버트 만화학교는 DC코믹스의 만화가이자 디렉터였던 조 쿠버트가 전문만화가 양성을 목적으로 1976년 설립한 학교로, 현재는 그의 두 아들인 앤디 쿠버트와 애덤 쿠버트가 운영하고 있다. 앤디 쿠버트는 <배트맨> <캡틴 아메리카> <엑스맨> <토르>등의 만화를 그렸으며, 애덤 쿠버트는 <울버린> <스파이더맨> <슈퍼맨> <헐크> <고스트라이더>등을 그린 만화가이다. 조 쿠버트 만화학교는 엄격한 규칙과 강도 높은 훈련으로 유명하며,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DC 코믹스, 마블 코믹스, 밸리언트(Valiant) 코믹스에 지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커리큘럼 및 교수진
쿠버트 학교의 강사진은 DC 코믹스, 마블 코믹스, 아치 코믹스, 다크호스 코믹스, 매드 매거진, 카툰 네트워크 등에서 활동하는 현업 만화가들로 구성된다. 엄격한 규칙과 학기당 10개 수업 총 37.5학점의 강도 높은 훈련들이 학생들을 기다린다. 입학 시 12~17명 정도인 반이 3~4개 만들어지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줄어들어 졸업반 때는 8명 정도의 반 2개로 축소된다. 소수의 학생이 강사들과 소통하고 작업 할 기회가 주어져 쿠버트 학교의 2~3학년 시기를 보낸 학생들은 가족처럼 끈끈한 유대를 갖는다.

쿠버트 학교의 커리큘럼을 이해하기 위해 <팀과 협업>으로 구성된 미국 만화의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농구경기가 다양한 포지션의 팀플레이로 진행되듯, 글 작가(writer), 연필 담당(penciler), 잉크 담당(inker), 채색 담당(colorist), 글씨 담당(letterer)이 편집자 (editor)의 지휘아래 하나의 코트(페이지) 안에서 움직인다. 글 작가가 작성한 만화 원고들은 편집자의 선별을 통해 연필담당에게 제공된다. 연필담당은 11X17인치 크기의 만화 용지 위에 회색빛 연필로 전반적인 페이지를 설계한다. 잉크담당은 붓과 만년필 그리고 선호하는 잉크를 이용, 다양한 잉킹 라인으로 강렬한 흑과 백의 대비를 만든다. 이제 원고는 디지털로 변환된다. 종이는 300~600 사이의 해상도로 스캔되고 보정되어 JPG, TIFF, PSD 등의 그림 파일로 채색 담당자에게 보내진다. 채색 담당은 이야기 전개에 맞는 색 조절을 통해 이야기의 흐름을 시각화한다. 그림이 완성되면 글씨담당은 말풍선과 글자가 들어갈 최적의 장소를 찾은 후, 이야기의 흐름에 맞는 폰트와 글자 크기, 효과음을 채운다.

다양한 역할의 담당자들이 협업하는 미국 만화 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연필, 잉크, 채색, 글씨와 말풍선 등 네 개의 필수 분야에 일정 수준 이상의 경험과 포트폴리오가 요구된다. DC 코믹스의 만화가이자 디렉터였던 조 쿠버트는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3년의 과정을 통해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1학년 과목 (Cartoon Graphics I): 흑백 도구를 통한 기초 다지기
1학년 수업의 주요 목표는 미국 만화의 기본이 되는 기본 작화 수업, 연필 작업, 흑백 도구의 이해이다. 「베이직 드로잉」, 「인체 그리기」는 투시도법, 사물그리기, 관찰을 통한 인체 그리기로 학생들의 기초 작화 실력을 키워 준다. 「레이아웃」, 「디자인」 수업은 만화 페이지의 전반적인 디자인을 짜고 경험하는 수업으로 학생들이 11X17인치의 페이지에 익숙해지도록 돕는다. 「만화 도구 수업」을 통해서는 현직 잉킹 전문가의 지도를 통해 다양한 붓 사용법을 익히고 자신에게 맞는 잉킹 스타일을 찾아간다. 일학년 때만 듣는 「애니메이션」 수업은 미국 애니메이션 산업 역사와 주요 작품들을 감상하고, 강사의 지도를 통해 짧은 흑백 작품을 만드는 시간이다. 딱딱해 지기 쉬운 학생들의 그림에 애니메이션의 부드러움과 유연함을 연결할 수 있는 흥미로운 수업이다. 「글씨 및 말풍선 수업」은 올해로 92세가 되는 만화가 ‘하이 아이즈먼’의 지도로 진행된다. 뽀빠이 시리즈에 참여했고, 학교의 시작부터 모든 학생을 가르쳐온 살아있는 전설에게 말풍선 지도를 받는 일은 특별한 경험이다. 「네러티브 아트」 수업은 쿠버트 학교가 자랑하는 수업으로, 종이 만화를 통한 스토리텔링을 연구하는 시간이다. 조 쿠버트의 사망 이후, 현재는 그의 아들들인 애담 쿠버트, 앤디 쿠버트가 지도한다.


2학년 과목(Cartoon Graphics II): 컬러 도구를 통한 심화 과정 익히기
2학년 수업의 학습 목적은 심화 학습과 채색의 이해이다. 1학년 과정에서 연필과 잉킹 수업을 통해 흑백 도구들을 익혔다면, 이제 다양한 컬러 수업들이 학생들을 기다린다. 「컬러 일러스트레이션」과 「만화 도구 수업」은 색상 원, 색상이론으로부터 물감을 이용한 채색과색의 적용을 경험하는 수업이다. 포토샵 채색으로 자칫 원색 위주의 색에 익숙해지기 쉬운 학생들이 다양한 컬러 감각을 키우도록 돕는다. 「베이직 드로잉 II」, 「인체 그리기 II」 기본 연필 수업들의 심화 과정과 더불어, 「유머와 캐리커쳐」, 「광고 일러스트레이션」, 「만화 스크립트 그리기」 수업같이 다양한 주제의 수업들도 열린다. 2학년부터는 그림 수업 외에 ‘만화 제작자’로서 자신의 페이지 단가 정하기, 고객과의 협상 및 계약서 작성, 예술인으로서의 태도를 배우는 「만화 비지니스」 수업이 포함된다. 2학년 학생들의 「네러티브 아트 II」 수업은 앤디 쿠버트가 진행한다. DC 코믹스와 마블 코믹스에서 배트맨 시리즈, 토르, 캡틴 아메리카 등을 작업한 앤디 쿠버트에게 직접 「배트맨 vs 프레데터」 프로젝트를 배우는 경험은 쿠버트 학교 학생들이 가장 기다리는 수업 중 하나다.


3학년 수업 과목(Cartoon Graphics III): 자신만의 스타일 찾기와 포트폴리오 구성하기
3학년 수업의 목표는 자신만의 스타일 찾기, 이력서(resume) 작성하기, 다양한 포트폴리오 구성이다. 수업의 연필, 흑백, 채색과제는 포트폴리오 구성을 위한 프로젝트로 진행된다. 뉴욕 코믹콘(NYCC)과 지역 만화 축제에서 편집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소책자형 포트폴리오 제작도 진행된다. 3학년 수업의 「네러티브 아트 III」 수업은 마블 코믹스의 울버린, 스파이더맨, 엑스맨, 헐크 등을 그린 애덤 쿠버트가 강의한다. 수업 중간 애덤 쿠버트는 학생들에게 마블코믹스와 작업 중인 페이지들을 보여주고, 편집자, 글작가와의 진행 과정을 설명하는데, 이런 현장 중심의 수업은 학생들에게 큰 동기 부여가 된다. 「네러티브 아트 III」 수업의 마지막 과제인 3페이지 분량 <프랑켄슈타인 프로젝트>는 쿠버트 학교의 졸업생이 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만 하는 과제이다. 중요한 프로젝트인 만큼 애덤 쿠버트의 기준을 넘지 못하면 통과 할 수 없다. 3학년 2학기엔 그동안 준비한 포트폴리오, 이력서, 만화가로서의 태도를 현장에서 적용할 기회가 주어진다. 뉴욕의 만화 회사들과 오랜 유대관계를 만들어온 학교의 주선으로, 학생들은 DC 코믹스, 밸리언트(valiant) 코믹스 등에 방문한다. 2시간여 정도 진행되는 시간동안 편집자들과 만남, 포트폴리오 검사 및 질의응답 시간이 주어진다. 이후에는 디즈니, 마블을 비롯한 뉴져지에 위치한 다양한 만화 출판 편집자들이 학교를 방문하고 학생들의 포트폴리오를 점검한다. 모든 수업은 학교 졸업생들을 위한 3학년 피자 파티를 끝으로 마친다.

만화가로 데뷔하기
미국에서의 작가 데뷔는 ‘메이저 만화 회사의 아티스트 취업’, ‘출판사 혹은 자가 출판을 통한 작품 출판’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안정적인 수입과 경력을 쌓을 수 있는 만화 회사(연필 담당, 잉크 담당, 채색 담당, 글씨 담당, 편집자) 취업은 많은 예비 창작자들이 선호하는 데뷔 방법이다. 하지만 메이저 만화 회사들은 기존의 아티스트들이 활동하고 있고, 새로운 작가를 찾는 공모전 또한 높은 경쟁률을 보이기 때문에, 오래달리기처럼 긴 호흡을 가지고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작가 데뷔를 위한 메이저 만화 회사의 편집자, 지역 만화 출판사 대표들과의 인적 자원 활용은 매우 중요한데, 당장은 스카우트되지 않더라도 꾸준한 연락과 포트폴리오 발전 과정을 공유하면 예비 작가로서의 신뢰를 쌓을 수 있다. 팀으로 진행되는 만화 작업상 멤버가 부족한 일이 생기곤 하는데, 시간이 촉박한 경우 공고를 통해서 뽑기보다 편집자, 대표들의 지인으로 대체되곤 한다. 꾸준히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제공하고 연락을 취했다면, 작품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DC코믹스, 마블 코믹스뿐 아니라 다양한 만화 출판사들의 편집자, 소규모 출판사 대표들을 만날 수 있는 뉴욕-뉴져지의 코믹콘들은 작가 데뷔를 위한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다만 한 번의 만남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려는 욕심보다는, 짧지만 지속 가능한 만남을 계획하는 것이 현명하다. 코믹콘은 약 3~4일의 기간 동안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관람객, 동료 작가, 편집자들의 만남이 진행되는 곳이다. 따라서 코믹콘 방문 시에는 원하는 상대에게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전달하고, 연락 가능한 명함을 받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개인 차이가 있지만 약 10~20개의 명함이 교환되는데, 행사 이후 1~2주 후 간단한 이메일로 연락하는 것을 추천한다.

출판사 또는 자가 출판을 통해 미국 만화 데뷔를 원한다면 다채로운 포트폴리오 보다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완결작이 필요하다. 출판 가능한 분량의 작품이 준비된다면, 완성된 작품의 유통과 홍보를 맡을 출판사를 찾아야 한다. 자신의 블로그에 작품을 연재하고 MoCCA Arts Festival 등의 독립 만화 전시에 참여하여 편집자들에게 출판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다. 가능성을 인정받아 계약으로 이어 질 경우, 작가는 안정적으로 작품 구상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창작자 본인이 유통과 홍보까지 맡는 자가 출판(Self Publishing) 방법도 고려할만 하다. 예전에는 작가가 작품을 종이 책을 출판하고 유통했지만 최근 들어 작업의 효율성과 홍보에 유리한 킥스타터(Kick Starter), 코믹솔로지(Comxology), 아마존 킨들 출판(Kindle Direct Publishing), 아이북스토어(iBook Store)등의 디지털 매체 데뷔가 늘어나는 추세다. 각각의 사이트들은 서로 다른 약관, 수익 배분율, 파일 형식 등을 가지고 있으므로, 같은 작품이라도 다른 편집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Kick Starter의 경우 2,000 USD 이하의 소액 아트북(Art Book) 프로젝트가 실현 가능성이 높으니 작품의 성격이 어느 사이트에 적합한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또 다른 데뷔 방법은 코믹 북 리소시즈(Comic Book Resources) 등 미국 만화 정보 사이트에 공고되는 창작자 경연(Creator Contest)에 지원하는 것이다. 데뷔와 함께 멘토링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미지 코믹스(Image Comics)의 Creators for Creators 같은 경연이 한 예이다. 하지만 ‘아직 책을 내지 않은 신인 만화가만 참여 가능’, ‘몇 세 이상 가능’, ‘몇 페이지 이상 가능’등의 제한 사항이 있으므로 이메일을 통해 참가 기간, 자격, 형식, 주제 등을 자세히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것은 배우고자 하는 의지로부터
팀으로 구성된 미국의 상업 만화 산업에 데뷔하기 위해서 예비창작자들은 연필, 잉크, 채색, 글씨 등 다양한 분야를 준비해야 한다. 팀플레이를 위해서 모든 역할을 두루 소화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이야기로 데뷔하고자 한다면, 작품의 완결뿐 아니라 유통과 홍보, 출판사 연락 계획까지 필요하다.

적어도 3년 이상의 준비 기간과 더불어, 낯선 문화와 언어까지 병행해야 하는 외국인 지원자들이 이러한 장애물들을 이겨내고 미국 만화 학교에 입학하여 작가로 데뷔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꿈꾸는 지원자들을 위해 조 쿠버트 학교 학과장인 마이크 첸은 이렇게 조언한다.

“쿠버트 학교에 지원하고, 미국 만화계에서 데뷔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중요한 자세는 ‘배우고자 하는 의지’다. 지원자들은 작품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찾음과 동시에, 실패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잠시의 실패에 주눅 들지 않고, 인내하여 더욱 좋은 페이지를 그리는 것. 이것이 조 쿠버트 학교의 학생이 되어가는 과정이며, 더 좋은 만화가가 되기 위한 여정이다.”


마이크 첸(Mike Ch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