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첫 만화”라는 타이틀에 충실하게 가기로 한다. 기억을 되살리자면 시각적인 이미지만큼이나 후각이 예민하게 반응한다. 마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 냄새처럼. (물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충실하게 읽어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마들렌을 만들 줄은 알기에, 그 냄새가 얼마나 매혹적인지는 십분 공감할 수 있다.) 내가 기억하는 첫 만화가 냄새와 연결되는 건 아마도 클로버문고 키즈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보통의 수준을 훌쩍 넘어선 강렬한 종이 냄새와 잉크 냄새. 동네 아이들을 죄다 끓어 모으는 방역차의 소독약 냄새만큼이나 중독성이 강하다. 요즘도 새로 산 책을 펼쳐 코를 처박아 킁킁대보곤 한다. 그때만큼 강렬하지는 않다.
#002. 첫 자비 구입 도서 <바벨2세> 제3권 '첫 만화’의 기준은 내가 직접 돈을 내고 산 만화로 삼고자 한다. 만화책을 직접 사기 전에 이미 만화를 보긴 봤을 것이다. 친구네 집에서든, 혹은 집에 굴러다니는 잡지의 한 귀퉁이에서든… 몇 살 때였는지를 정확히 집어낼 수는 없더라도, 대략 일곱 살 내지 여덟 살 무렵의 아이가 어렵게 마련한 300원 (이 금액마저도 확신할 수는 없다)을 주먹에 꼭 쥐고 가서 책 한권을 직접 샀다는 건 나름대로 개인사의 위대한 한 장면일 수 있다. 만화책을 뛰어넘어 ‘첫 도서 구입’이었을 테니. 일종의 지름신 영접이자, 탕진잼을 체험한 순간이다. 쾌락을 위하여!
#003. 앞을 알지 못하는 이야기, 끝도 알지 못하는 이야기 왜 생애 처음으로 구입한 도서가 <바벨2세>인가?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당시 국민학교 고학년인 사촌형들이 열독하던 책이 <바벨2세>였기 때문이다. 어깨 너머로 흘끔 보던 그 ‘만화책이 얼마나 재밌는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 책을 소유하면 나도 그 형들만큼 성숙해질 것 같아 보여서 였다. 그렇다면 왜 굳이 제1권이 아닌 제3권을 샀는가? 그 까닭은 더 단순하다. 문방구에 3권부터 꽂혀 있었기 때문이다. 클로버문고 시절, <바벨2세>의 1, 2권을 산 기억은 없다. 마지막 8권까지 읽었던 기억도 없다. 보긴 봤겠지만, 열심히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었다. 명랑만화가 아니란 말이다.
#004. 교복 형님, 거대 괴조, 거대 깡통 로봇, 주물럭 흑표범 아직도 내 기억에 또렷이 각인되어 있는 <바벨2세>의 주요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의 복장은 그리 근사하지 않다. TV 만화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 특히 로봇을 조종하는 남자 주인공들의 세련된 유니폼과는 거리가 먼 교복 스타일. 그나마 교복은 중고등학생 형님들이 입는 것이었으니, 연장자가 지닌 위엄 같은 건 느껴지긴 했다. 오히려 나를 좀더 당혹시킨 것은 바벨2세를 충직하게 보필하는 세 부하들의 디자인이었으리라. 주인공이 타고 날아다니는 거대 괴조 ‘로푸로스’는 동일한 조류에 속하는 <독수리 5형제>의 ‘간지’와는 확연히 달랐다. 지금의 시선으로 보자면 ‘털 뽑힌 치킨 인형’ (누르면 ‘꽉’ 소리를 내는 바로 그 인형)을 연상시키는 형태이다. 멋짐의 진수를 한껏 뽐내며 소년들의 로망을 독차지해야 할 거대 로봇 ‘포세이돈’은 왠지 미용실에서 방금 고대기로 단발머리를 위로 말아 올린 듯 한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몸통은 도무지 전투형 바디라고 봐주기 어려울, 단순한 거대 깡통이었다. 바위 덩어리를 낑낑대며 올라서는 ‘포세이돈’의 모양새는 흡사 쇠똥구리의 자태를 떠올리게 한다. 당대에 유행했던 직선 위주의 메카닉 디자인과는 동떨어진, 동글동글 곡선형 스타일을 추구한 것이다. 그나마 흑표범 로뎀이 가장 빠릿하고, 가장 ‘주인공 팀’ 멤버다웠다고나 할까. 이런!
#005. 주인공은 죽지 않을 것이야, 그런데 주인공은 왜 쉽게 이기지 않지?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계속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려 애를 써보지만, 나는 결코 당시에 <바벨2세>를 열심히 읽지는 않았다는 사실만이 점점 분명해진다. 그때 나이를 감안하자면, 나는 우선 누가 좋은 편이고 누가 나쁜 편인지를 일단 구분해야 했다. 그 점에서는 분명히 바벨2세와 그다지 멋지지 않은 세 부하는 좋은 편임에 틀림없다. 그 다음 관심사는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라는 확신이 들어야 했으며, 이 확신에 기반하여 결국에는 좋은 편이 나쁜 편을 물리치고 지구를 구해야 하는 ‘사필귀정’, ‘권선징악’, ‘정의구현’, ‘세계평화’, ‘해피엔딩’이 확실히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기준에서 보자면 바벨2세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점 (종종 ‘불사신’이라는 말이 언급됨)에 일단 안도하였다. 그런데 주인공이 죽지 않는 설정은 그만큼의 극적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린 독자는 다른 식의 이야기 전개를 요구한다. 속이 뻥 뚫릴 정도로 호쾌하게 악당을 물리쳐주기를…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는 않는 법. <바벨2세>는 기어이 8권까지 전개되어야 하는, 당시로서는 꽤나 호흡이 긴 장편이었다.
바벨2세의 대립자가 ‘요미’라는 이름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마징가 Z>에 나오는 헬박사와 아수라 백작만큼의 충격적인 비주얼은 아니었지만, 나쁜 편 대장인 요미도 호감형일리는 없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나이트가운 같은 옷을 주로 입고 나온다는 사실 정도. 도술을 부리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도인의 복식과 비슷해 보이지만, 흡사 융 드레스처럼 꽤나 무겁고 불편해 보인다는 점도 부정할 수는 없다. 아무래도 사이비 종교의 교주 느낌을 강하게 주려는 설정 때문이었으리라. 요미는 나쁜 놈 치고는 꽤나 끈질긴 부류의 캐릭터였다. 정의로운 주인공 주먹에 한 방 맞고 사라져 주면 속 시원했겠지만, 그리 쉽게 물러나지는 않는다. 더구나 바벨2세와의 기량 차이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항상 주인공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가는 능력치가 돋보인다. 요즘 정독을 한 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호미는 무려 네 번의 죽음을 맞이한다.
<바벨2세>의 첫 부분이 어떤 이야기인지는 1995년에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 다시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정식 출판은 아니다. 이상한 사실은 1995년에도 나는 <바벨2세> 전권을 갖추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1권부터 5권까지만 구입을 하고, 나머지는 채워넣지 않았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여전히 불완전한 서사에 머문다. 어쨌든, 뒤늦게 알게 된 바벨2세의 출발은 ‘선택받은 자의 운명’이었다. 당시에 프랑스 사상가 루이 알튀세르를 어설프게 읽던 영향 때문이었을까, 그건 이른바 ‘호명(呼名, calling)’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설정이다. 선택받은 운명이라는 건 그에게 부과된 짐을 결코 걷어낼 수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선택된 운명은 이미 남보다 특출 난 주인공을 중심에 두고 있으며, 그 특출남 때문에 엄청난 시련을 겪고 말 것이며, 결국 그 모든 고난을 딛고 살아남거나 혹은 아주 비참하게 파국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 물론 바벨2세는 전자, 즉 고전적인 영웅의 삶을 통과한다.
어린 아이였을 때 이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까닭 중 하나는 아마도 과학과 초능력이 뒤섞여 있었기 때문일 테다. 당시만 해도 개화된 어린이에게 과학과 초능력은 결코 공존할 수 없는 상호모순의 영역이었다. 어쨌든 이야기의 모티브는 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에서 따왔으니 종교적 신화의 성격이 강하다. 그런데 여기에다가 불시착한 외계인의 존재와 그가 구축한 컴퓨터 시스템, 인류 문명을 초월한 과학기술을 결부시킨다. 그리고 바벨2세에게는 초능력까지 부여한다. 요즘의 표현을 따르면 완전히 사기 캐릭터를 설정한 것이다. 게다가 충직한 세 부하까지 안겨주면 애초에 정당한 경쟁은 불가능한 것. 그래도 꾸역꾸역 이야기를 전개시킬 수 있었던 건 요미 덕이었다.
그 어떤 내용보다 생생히 기억에 남은 것은 ‘김동명’이라는 이름이다. 그는 내게 최초의 만화가였던 게다. 왠지 이름에서 위엄이 넘친다. 순진하게도 나는 클로버문고 뒷면에 실린 발간 목록을 꼼꼼히 확인해가며 ‘김동명 선생’의 다른 작품을 찾곤 했다. 정녕 그는 <바벨2세>라는 걸작만을 남기고 사라지셨단 말인가! 후일담으로 전해지는 ‘김동명’과 <바벨2세>의 관계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바벨2세>를 무단출판하면서 내세운 유령작가라는 통설이다. 그땐 그랬다. 한일 대중문화 교류는 허용되지 않았던 시대였다. 또다른 하나는 김동명은 실재하는 인물이며, <바벨2세>는 김동명이 다시 그렸다는 설이다. 일종의 현지 커버 버전이라고나 할까. 여하튼 원작자는 요코야마 미쯔데루 (橫山光輝)이다. 무려 <철인28호>와 <요술공주 샐리>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바벨2세>는 <철인28호>의 과학 및 기술과 <요술공주 샐리>의 초능력이 집대성된 작품인 셈이다.
요미는 바벨2세보다 먼저 바벨탑을 찾은 적이 있다. 그러나 예언된 자가 아니라는 판단 때문에 그의 기억은 지워졌다. 훗날 바벨탑을 찾은 요미가 기시감을 떠올린 데에는 그러한 사연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바벨2세>를 다시 접한 1995년, 나 역시도 그 당시 가장 핫했던 작품 속에서 기시감에 빠져든다. 선택받은 자의 운명, 끊임없이 들려오는 호명 소리, 주인공의 배후에서 모든 것을 관리하는 컴퓨터 시스템… 어쩌면 이러한 요소들은 SF 판타지 장르에서 줄기차게 변주되는 기본 설정이기도 하다. 굳이 과민하게 굴 필요는 없을 듯도 하지만, 그래도…
그리고 2007년, <바벨2세>는 비로소 정식한국어판으로 발간되었다. ‘정식’으로 한국어판권을 독점 계약했으며,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이 된 것이다. ‘요코야마 미쯔데루’라는 원작자 이름이 명시되어 있고, 책날개에 실린 그의 사진은 덤이다. 유령이 아닌, 실재하는 창작자의 존재 증명. 그리고 비로소 나는 전권을 정독, 정주행, 완독하였다. 나라는 독자에게 <바벨2세>라는 텍스트는 이야기 속 상황과 다를 바 없는 셈이다. 텍스트는 먼 과거로부터 이어져왔지만 파편의 흔적들로 남았었다. 마치 극 중 바벨탑의 유적처럼. 그러면서도 이 작품은 생명을 잃지 않았고, 잊혀질만하면 다시 소개되었다. 그때마다 형태를 조금씩 달리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마치 죽었다가도 다시 깨어나는 요미의 존재처럼. 그리고 요미 자신이 바벨탑 속에서 겪었던 기시감처럼 내 기억 속에서 이 작품은 익숙하면서도 결코 구체적이지는 않은 흔적으로 다가온다. 날마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만화들 속에서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은 정녕 <바벨2세>의 위대함 때문이란 말인가?
머리가 제법 커지고 나서 읽게 된 ‘정식한국어판’ <바벨2세>는 역시 어린 독자가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거기에는 성서적 모티브를 과학기술적 시각에서 재조명한 패기가 옅보이며, 과학적 이성과 초능력의 신비가 어우러진 호기로운 설정이 있었으며, 당시만 해도 아직 그 가능성이 공상에 머물렀던 컴퓨터와 인공지능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리고 과학기술의 진보로 완벽하게 관리될 요새도시 시스템에 대한 열망이 녹아있으며, 그 이면에는 오작동을 일삼는 현실의 완벽하지 않은 사회/국가/세계 시스템에 대한 절망도 깔려있다. 굳이 따지자면 <바벨2세>가 지향하는 시스템 (그것이 국가이든, 국가 간의세계질서이든)은 선제적 공격 시스템 보다는 자기 방어 및 유지 시스템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긍정적으로 풀자면 평화체제에 관한 세계관이 투영되어 있다고 해야 할까.
요미가 정말 죽었을까? (그럴리가…) 컴퓨터 테크놀로지와 초능력은 공존할 수 있을까? 바벨탑은 정말로 만들어졌을까? 등등… 파일>이나 <서프라이즈> 이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몽상하는 인간계의 뻔한 궁금증들, 이러 저리 방치되었던 기억의 파편들, 그리고 끊임없이 되돌아와야 하는 운명. <바벨2세>는 그렇게 나의 첫 만화가 되었다. 내게 만화라는 건 그렇게 균열의 퇴적층과도 같다. 그건 만화의 물리적 형식이기도 하다. 칸, 활자, 그림, 생략된 재현의 디테일, 페이지 (또는 스크롤) 사이의 틈, 때로는 연재물의 시간적 간극 등등. 어쩌면 나는 정말 만화다운 독자의 체험을 해온 것이다. 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