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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지하철을 크로키북에 담는다. : 지하철 크로키 사이트

파리의 지하철은 멋진 건축물이 들어차있는 지상과는 달리 어둡고 더러우며, 걸인들도 많을 뿐만 아니라 소매치기도 조심해야 하는 곳이다. 이곳은 파리에서 가장 덜 낭만적인 곳이긴 하지만, 수많은 인종과 연령의 사람들이 객차안에 모였다가 흩어지며 수많은 삶의 표정을 보여주는 크로키를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곳임에 분명하다.

2011-12-27 박경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 여행을 하거나 친구들과 차를 한잔 하면서, 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크로키를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차안이 흔들려서 손이 떨리고 원하는 선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해 그림에 실망할 때도 있지만, 우리는 크로키 북을 통해서 제약없이 그릴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그리고 조그만 크로키 북에 들어있는 그림들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더듬기도 하고, 자신안에 숨겨져 있던 그림체들을 찾아내기도 한다. 낭만적이라고 소문난 도시, 파리의 명소들은 그림 그리는 사람들에게 크로키 북을 펼치게 하고픈 욕구를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파리의 지하철은 멋진 건축물이 들어차있는 지상과는 달리 어둡고 더러우며, 걸인들도 많을 뿐만 아니라 소매치기도 조심해야 하는 곳이다. 이곳은 파리에서 가장 덜 낭만적인 곳이긴 하지만, 수많은 인종과 연령의 사람들이 객차안에 모였다가 흩어지며 수많은 삶의 표정을 보여주는 크로키를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곳임에 분명하다.
 
이번에는 60여명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개성적이고 진솔한 크로키로 파리 지하철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이트 "드 린 엉린( http://delignesenligne.com/)" 의 설립자 니콜라 바르베롱 (Nicolas Barberon)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림 1. 지하철 크로키 사이트 "드 린 엉 린(delignesenligne.com)"`
 
Q. 안녕하십니까. 바르베롱씨, 사이트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A. 드린 엉린 은 2년 전인 2009년 6월 1일에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 참가자는 5, 6명에 불과했습니다만 지금은 60 여명의 작가가 사이트에 자신의 크로키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Q. 어떻게 사이트를 만들 생각을 하게 되셨나요?
A. 저는 응용미술 학교에서 공부할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크로키를 해 왔습니다. 그 중에선 지하철 안에서 작업한 것도 많았구요. 그 그림들을 친구에게 보여주었더니 "언제가 되었든 이 그림들을 가지고 무슨 일을 벌여야 할 것 같은데.." 라고 얘기해 주더군요.
 
그 때는 사실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지하철에서 크로키를 하고 있던 다른 사람들을 만나 금새 친한 친구들이 되었고, 사이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다보니 꽤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블로그나 개인 사이트에 지하철 크로키들을 올려놓았더군요. 그분들에게 연락해 드린 엉린의 취지를 설명하니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림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림 2. 지난 8월 만화전문 갤러리 "다니엘 마겐"에서 열린 "드린엉린" 전시회 모습
  
이제는 서서히 입소문이 나서 제가 연락하기보다 작가분들이 먼저 저에게 작품을 제안하는 경우가 많아져 요즘은 제 견해나 바람에 따라 그림을 선택하고 소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미 사이트에 올려진 그림이 1000 작품이 넘기 때문에 같은 스타일이나 같은 주제의 그림들이 반복되는 것에 주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점점 더 선택에 신중을 기하고 있습니다.
 
Q. 시작하실 때 이미 사이트의 형태에 대해서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있으셨나요?
A . 아니요, 오히려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것에 가깝습니다. 그래픽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생각하고 있던 것이 있었습니다만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알고 있던 바가 없었습니다. 고맙게도 몇몇 친구들이 그 고민을 해결해 주었고 지금은 친절한 자원봉사자들이 기술적인 도움을 많이 주고 있습니다.
 
Q. 사이트 운영이 직업은 아니시죠?
A. 만화 출판사 글래나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조판이나 타이포 그래피, 로고, 광고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사이트 운영은 개인적인 만족일 뿐 직업과는 별개입니다. 하지만 만화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는 덕분에 만화가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고, 이렇게 알게 된 작가 중 우리 사이트에 참여하게 된 작가들도 많습니다.
 
Q. 작가는 어떻게 자신의 그림을 제안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소개할 그림선정의 구체적인 기준은 무엇이 있을까요? 일단 선정된 작가의 작품은 계속 소개를 하게 되나요?
A. 사이트에 소개되어 있는 두개의 메일 주소
로 그림을 보낼 수 있습니다. 저 혼자 그림을 선정하기 때문에 "꾸 드 퀘으( coup de coeur;심장을 두드린다는 뜻)" 가 가장 많이 작용합니다. 선정된 작가가고 해서 자동적으로 모든 작품이 사이트에 소개되진 않습니다.
 
제안된 작품중에 안좋은 것이 있을때는 작가들에게 정중히 다른 작품을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도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저를 놀라게 하는 그림이라면 소개하느냐 마느냐를 고민할 필요는 없죠. 또한, 테크닉이나 스타일이 특별한 경우에는 제가 좋아하지 않더라도 소개를 합니다. 제가 좋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른 취향을 가지신 분들은 좋아할 수 있으니까요.
 
  
그림 3. 사이트 설립자 니콜라 바르베롱 씨의 작품
  
Q. 그림을 보내 오시는 사람들은 주로 만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 들이겠죠?
A.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분들이 그림을 보내십니다. 음악가들도 있고 학생들, 이미 은퇴하신 분들 , 피아노 조율사 까지 다양합니다. 우리 사이트는 순수한 즐거움을 위해서 그림을 그리시는 모든 분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Q. 사이트와 파리 지하철 공사간의 협력관계는 없습니까?
A. 전혀 없습니다. 다만 지하철 안에서 음향을 녹음하는 허가만 받았을 뿐입니다. 몇 차례 시도를 했습니다만 지하철 공사는 다른 프로젝트도 많았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지하철 공사는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가지고 밖으로 나오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지하철 크로키는 너무 지하철 안에 머물러 있죠. 그 쪽 분들을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는 굉장히 친절하기는 합니다만 우리 프로젝트는 지하철 공사의 문화정책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그들이 우리 프로젝트의 영향력에 대해 새로이 인식하게 되었을 때 협력을 기대해 볼 수도 있겠죠. 이미 두 번째 전시회를 기획 중이고, 국영방송 프랑스 3뉴스와 라디오 체널 프랑스 인터에서도 우리를 취재했으니까요.
 
Q. 사이트의 일일 방문자 수는 얼마나 됩니까? 주제가 너무 파리에 국한되어 있다는 평가는 없나요?
A. 사이트가 플래쉬로 제작되어서 하루에 몇명의 방문자가 있는지 집계할 수는 없습니다. 몇몇 만화 잡지의 취재요청에 답하면서 대략적으로만 방문객 수치에 대해 체크해 볼 수 있었는데 점점 그 수가 늘어가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방문객들을 국가별로 살펴보니 프랑스에서는 계속 점점 늘어 가고 있고, 벨기에, 핀란드, 스페인등의 유럽각국과 미국, 일본까지 여러나라의 사람들이 방문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사이트가 굉장히 파리적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을 알았습니다. 지하철 크로키는 아니지만 스케치북 닷컴 같은 거대한 크로키 사이트들이 있습니다. 그림을 보는 즐거움은 지하철 안을 그린 것이라고 해도 줄어들지는 않죠. 
  
  
그림 4. 만화가 뱅쌍 페리요(Vincent Perriot)의 작품 
    
저희 삼촌은 시골에서 의사를 하시는데, 파리에 거의 오지 않아 그분에게 파리지하철은 완전히 딴 세상 이야기이지만 지하철 크로키를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면서 자주 ‘드린 엉린’에 들르신다고 하더군요. 방명록에 글을 남기신 분들을 보면 지방에 살고 계시는 분들도 많고, 특히 파리에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주하신 분들은 파리의 추억을 되살리며 즐거워 하십니다.
 
Q. 사이트에 있는 그림을 구입하겠다는 분들도 있습니까?
A. 아직 그런 경우는 없고 사이트에서 그것을 제안하지도 않습니다만, 전시회를 통해서 구매자들이 나타날 겁니다.
 
Q. 사이트를 위해 일하시는 분은 몇 분인가요? 모두 자원봉사자들이신가요?
A.공식적으로는 저 혼자 뿐입니다. 문장의 교정을 도와주는 동료가 한분 있구요. 기술적인 부분을 도와주시는 분, 음향디자이너, 저작권 부분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시는 분등 5, 6명 정도가 사이트 운영을 도와주고 계십니다. 사이트를 알리기 위해 조그맣게 광고이미지를 만들어 주는 작가분들도 있구요. 제가 출판사에서 일하는 덕택에 광고 전략을 좀 알고 있는데 그것도 좀 활용하고 있습니다. 모두 자원 봉사자들이고 저 역시도 사이트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은 없습니다.
 
Q. 사이트에 대한 이후에 계획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A. 금년 연초에만 해도 전시회를 한번 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이미 "아르 에 메티에 (arts et m__iers)" 미술관과 "다니엘 마겐(Daniel maghen)" 갤러리에서 전시를 했구요. 텔레비젼에 취재기사가 한번 나갔으니 당연히 이제는 크로키 모음집을 내는 걸 고려해 볼수 있겠죠. 현재로서는 정확한 계획은 없습니다. 더 많은 만남들을 통해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이 나올 겁니다.
 
   
그림 5. 지하철 표를 이용한 일러스트레이션 뤽 그라토( Luc Grateau)의 작품 
    
국제적인 프로젝트를 생각해 볼 수도 있겠죠. 스페인의 유력 일간지 엘 파이스에 그림을 연재하는 작가 엔리케 플로레스 같은 경우는 이미 우리 사이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2년 전에 시작할때만 해도 우리는 조그만 작가들의 모임에 불과했습니다. 이제는 수 십명이 참여하고 전시까지 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계속해가며 이후를 봐야겠죠. 개인적으로 저는 이 사이트를 통해 많은 작가와 열정적으로 그림 그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무척 만족스럽습니다. 저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이 열정을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그림 그리는 일이 업이 되면 그림 그리는 즐거움이란 말을 자주 잊게 되는 것 같다. 필자는 그림 그리는 것이 좋은 사람들이 순수한 의도로 만든 인터넷 사이트에 대해 취재할 수 있었던 것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최근에 들은 소식에 의하면 파리 지하철 공사도 청사안에서 "드린 엉린"에 관한 전시를 열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드린 엉린" 사이트에 그림을 보내는 것은 누구에게도 제약이 없으니 파리에 여행오시는 분들은 지하철에서 그린 그림들을 사이트에 제안 하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크로키와 자신을 소개하는 그림, 그리고 불어 혹은 영어로 350단어 이내의 자기소개서를 보내면 된다.
 
사이트 주소와 그림을 보낼 수 있는 주소를 소개한다.
 
사이트 주소 http://delignesenligne.com/
 
그림 보내는 주소.
croqueurdeligne@gmail.com
croqueurdeligne@yahoo.fr
 
 
필진이미지

박경은

만화가, 번역가
『평범한 왕』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