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의 작가 ‘죠 슈스터’와 ‘제리 시글’, 「배트맨」의 작가 ‘밥 케인’, 「캡틴 아메리카」와 「판타스틱 4」의 작가 ‘잭 커비’, 「스피릿」의 작가이자 그래픽 노블의 창시자 ‘윌 아이즈너’, 「쥐」의 작가 ‘아트 슈피겔만’, ‘로버트 크럼’의 전 부인이자 만화가인 ‘알린 코민스키 크럼’, 최근 프랑스 만화의 대표주자이자 「랍비의 고양이le chat du rabbin」의 저자인 ‘조안 스파’의 공통점은? 놀랍게도 이들 모두 유태인이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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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미술관 입구. 간첩협의 누명을 쓰고 강제로 불명예 제대 당했던 드레퓌스 대위의 상이 서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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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를 읽고 있는 관람객. 전시관련 만화를 읽을 수 있도록 전시장에 비치해 놓았다 |
얼핏 보면 아무 관련없을 이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전시회가 2007년 10월 부터 2008년 1월까지 파리의 유대미술관에서 열렸다. 전시회는 이미 끝났지만 프랑스 내에서 많은 관심을 이끌어내면서 영리하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만화전시의 새 지표를 정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 전시회를 살펴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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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만화들과 슈퍼히어로 만화들의 전시장 |
유태인 작가들이 만화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묻는다는 것은 약간 작위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모종의 저의가 숨어있어 보이기도 한다. 작가들을 종교에 따라 나눈다는 것은 항상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곤 했기 때문이다. - 예를 들자면 유태인 학살이라던가…
하지만 이 전시의 의도가 이처럼 숨은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문화와 연결된 이 작가들의 동질성은 분명히 드러나 보이기 때문이다. 시대를 따라서 이들은 같은 경험을 전하고, 공통된 전통에서 영감받은 주제를 발전 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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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4」의 등장인물, 유대경전을 들고 있다 |
전시는 20세기 초반에 뉴욕에 갓 도착한 유태인 작가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상황에서 영감을 얻는다. 이제 꽃피우기 시작한 미국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민자 주인공들의 만화가 영어와 유대어로 된 잡지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유태이민 2세들은 1929년의 대공황의 충격과 연결된 다른 류의 주인공들을 창조하면서 이런 스테레오타입으로부터 벗어나려한다. 바로 슈퍼 히어로 들이다. ‘조 슈스터’와 ‘제리 시글’에 의해 창조된 「슈퍼맨」, ‘밥 케인’과 ‘빌 핑거’의 「배트맨」, ‘잭 커비’와 ‘조 시몬’의 「캡틴 아메리카」등이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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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 출간된 슈퍼맨 |
이후의 전시장은’ 윌 아이즈너’를 위한 것이다. 미국 코믹북의 베테랑인 그는 「신과의 계약un pacte avec dieu」, 「유태인 파진 Fagin le juif」, 「음모le complot」같은 반유대주의에 대한 진정한 풍자서를 발간하면서 그래픽 노블이란 장르를 창조한다. ‘아이즈너’와 동시에 ‘아트 슈피겔만’(쥐)이나 ‘조 쿠버트’(뉴욕의 유태인) 같은 작가들이 유태인 학살에 대한 작품을 가지고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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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아이즈너’를 소개하는 코너, 그가 창조한 슈퍼히어로 「스피릿」으로 시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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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아이즈너’의 후기작중 하나인 극화의 일부 |
유럽의 유태작가들 역시 유태인의 기억과 상상력을 섞으면서 다양한 맥락의 작품들을 제작하는데 ‘휴고 프라트’나 ‘비토리오 지아르디노’, ‘루벤 펠레제로 조안 스파’등이 그들이고 그들이 전시의 마지막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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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슈피겔만’과「쥐」를 소개하는 코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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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에 연재되던「쥐」 |
전시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해 「잡지 inrockuptibles」 에 실린 작가 ‘조안 스파’의 인터뷰내용을 덧붙인다. 인터뷰 내용을 통해 유태인의 문화가 유태만화가들의 만화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엿볼수 있다. 자신의 문화에 대한 정확하고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으며, 국수주의에 빠지지 않고 균형적인 시각을 가지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접근하는 ‘조안 스파’의 생각이 잘 드러나는 인터뷰이다.
이제 해외에도 한국 만화가 점점 더 많이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고 한국만화는 어떤 것인가? 한국만화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점점 더 많이 받게된다. 유태문화와 그의 작품, 또는 다른 유태인 작가들 작품의 연관관계에 대한 ‘조안 스파’의 생각들을 통해 한국만화가들이 한국의 정신과 한국적문화들을 어떻게 발견하고 작품속에 드러내게 될것인지 아니면 그것들이 어떻게 드러났었는지를 생각해 보는것도 좋을것이다. 한국에선 아직 널리 소개되지 않았을 ‘조안 스파’ 작품들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지만 인터뷰를 끝까지 죽 읽다보면 어떤 내용의 만화들인지 기사의 독자들도 이해할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Q ) 당신의 책들과 당신의 종교와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유대주의에 관한 나의 모든 작업들은, 그것을 하나의 문화적인 것으로 다루고 있는 것들입니다. 종교적인 것은 작은 일면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항상 유대문화를 유럽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한 요소로 생각했습니다. 유대주의에대해 생각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역설과 회의에 대해 생각하는 것입니다.
Q ) 유태계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지고 계십니까?즐겁고 호기심어린 시각이죠. 어렸을때부터 아쉬케나즈(ashkenaze 프랑스나 독일 러시아 폴란드에서 온 유태인문화를 일컫는 말)와 세파라드(sefarade 스페인이나 포르투칼의 의식적 유대주의를 따르는 유태인의 한 계통) 문화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 얘기들은 저의 호기심을 많이 불러일으켰죠. 그리고 일찍부터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신비주의와 이성주의를 섞어놓고 있는 유태인의 이상야릇함을 알아차렸죠.랍비의 고양이le chat du rabbin-자기가 어떤 집안에서 살게되는지 항상 자문하는-가 그런면이 있습니다.
제가 종교에 대해 분개하지 않는것은, 종교를 빈정대는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이죠. 성직자들은 저를 성가시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제가 그분들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분들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들은 저에 대한 영향력이 없습니다.
저는 항상 유대적인 것에 대한 시적인 욕구를 갖고 있었고, 그것을 속박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본적도 없습니다. . 저는 무엇을 비판하는 것또한 어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나 시오니즘에 대해 생각하면,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든 아닌 사람에게든 양쪽 모두를 난처하게 하는면이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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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안스파’의 「클레즈메으klezmer」의 일부 |
Q ) 당신은 클레즈베으klezmer 3권의 마지막 부분에서 시오니즘과 이스라엘의 문제를 다시 다룹니다.
네 그 문제가 복잡하기 때문이죠. 저는 이스라엘의 존재가 필요하고, 양보할수 없는 사실로 생각하고 있는 면에서는 완벽하게 시온주의자입니다. 왜냐면 한때 이스라엘을 만들었던 러시아계 유태인들은, 다른 나라에 갈수 없었던 사람들이였기 때문이죠. 시오니즘은 흩어진 유태인들에게 정착의 가능성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앞서 흩어져 살던 유태인들에게서 비롯된 이스라엘에 대한 포괄적 시각이기도 합니다.
제가 어렸을때, 주위에선 항상 ‘내년에는 예루살렘으로’ 를 외치곤 했습니다. 하지만 전 그 생각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죠. 유태인은 팔레스타인 땅에 있는것보다 흩어져 있을때 더 유태인다운것 같습니다. 유태인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수있다면, 그것은 땅에 투자하는 것보다 책에 투자할줄 알고, 오랫동안 군대도 경찰도 없어서 그 불안함을 빈정거림과 부조리로 물리치려 했던 사람들이였기 때문이겠죠.… 이스라엘의 건국은 그 상태를 다른나라의 국민들처럼 정상화하려는 욕구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생각하는것은 복잡하고 그건 제 얘기가 아닙니다. 랍비의 고양이le chat du rabbin와 클레즈베으klezmer에서 제가 하고싶은 얘기는 그곳으로 돌아가 살지않기로 선택한 그 가족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입니다.
Q ) 당신은 클레즈베으klezmer 3권의 마지막 부분에서 시오니즘과 이스라엘의 문제를 다시 다룹니다.네 그 문제가 복잡하기 때문이죠. 저는 이스라엘의 존재가 필요하고, 양보할수 없는 사실로 생각하고 있는 면에서는 완벽하게 시온주의자입니다. 왜냐면 한때 이스라엘을 만들었던 러시아계 유태인들은, 다른 나라에 갈수 없었던 사람들이였기 때문이죠. 시오니즘은 흩어진 유태인들에게 정착의 가능성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앞서 흩어져 살던 유태인들에게서 비롯된 이스라엘에 대한 포괄적 시각이기도 합니다.
제가 어렸을때, 주위에선 항상 ‘내년에는 예루살렘으로’ 를 외치곤 했습니다. 하지만 전 그 생각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죠. 유태인은 팔레스타인 땅에 있는것보다 흩어져 있을때 더 유태인다운것 같습니다. 유태인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수있다면, 그것은 땅에 투자하는 것보다 책에 투자할줄 알고, 오랫동안 군대도 경찰도 없어서 그 불안함을 빈정거림과 부조리로 물리치려 했던 사람들이였기 때문이겠죠.… 이스라엘의 건국은 그 상태를 다른나라의 국민들처럼 정상화하려는 욕구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생각하는것은 복잡하고 그건 제 얘기가 아닙니다. 랍비의 고양이le chat du rabbin와 클레즈베으klezmer에서 제가 하고싶은 얘기는 그곳으로 돌아가 살지않기로 선택한 그 가족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입니다.
Q ) 클레즈메으klezmer 에서는 공동체의식을 우회적으로 맹렬히 공격하고 있는데요. 유태인음악가들- 그 음악가들 모두가 유태인은 아니지만-의 삶을 이야기 하면서요. 그 얘기에는 유태인이면서 더이상 유태인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과, 유태인음악을 하면 돈을 더 벌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집시가 한명 나옵니다. 그 얘기는 공동체관념이나 가족관념 국가관념을 조롱하는 방법중의 하나였죠. 모두 빈털터리인 그들은 한 할머니가 그들에게 남긴 집이 있습니다. 그 집이 그들의 ‘공화국’입니다. 당연히 그들은 그집을 가지고 뭘해야 할지 모릅니다. 국가가 있는 모든 사람들처럼말이죠.
Q ) 그런데 유태인들을 단결시키는 그 대단한 유대문화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습니까?유태인의 사고방식안에 일종의 재즈처럼 머물러 있는겁니까?
유태인의 사고는 역설에 바탕합니다. 한편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경직된 철학체계로 이루어진 종교문집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마이모니드(유대사상가의 한명)로부터 비롯된 암탉도둑의 철학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조금 훔치고, 다른 곳에서 조금 훔치는 거죠. 저는 유태인들이 즐기는 생각의 도구의 용해되지 않는면을 좋아합니다. 전체주의에 대한 좋은 해독제죠.
유대문화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끊임없는 탐색입니다. 좀더 일반적으로 설명하자면
아랍에서 온 어원들, 유대의 정치체계에 영향을 미친 그리스 사상의 잔여 정도로 설명하면 좀더 설득력이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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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비의 고양이(le chat du rabbin)」의 일부 |
Q ) 랍비의 고양이(le chat du rabbin)이야기를 다시하죠.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종교를 조롱하는 이 책을 유태인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아무도 충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한 랍비가 저에게 말하더군요. “ 너는 필립 로스 (Philip roth 오스트리아-헝가리 계열의 유태인 작가 1933년생 작가의 삶에 바탕한 미국사회와 가족관계등에 관한 소설을 썼다. 그의 작품은 자신의 이상을 배신한 미국에 대한 것들임) 보다 30년 후에 나타났다”고. 저는 좋은 반응만을 받았습니다. 유태인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쪽에서도 말이죠. 게다가 저는 사람들이 사원에 초대하는 만국공통의 무엇인가가 되었습니다. 그 성공의 요인중하나는, 이책이, 세파라드에게 준 이미지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거스리게 했던 영화 “진실 내가 거짓말을 한다면”, 다음에 나왔기 때문이죠.
저는 ‘아쉬케나즈(프랑스,독일,러시아 폴란드 등지의 유대문화)는 문화이고 세파라드(스페인, 포르투칼 등지의 유대문화)는 바지장수다’라는 생각에 질렸습니다.
Q ) 형상을 표현하는 것은 유대교에서 용인되고 있지 않은데요. 미국만화계의 많은 선구자들이 유태인입니다. 이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수 있을까요?그게 마침 제 석사학위 논문주제였습니다. ‘유태인의 회화;인간형상에 대하여’
유대 전통에서 뭘 볼수 있을까요? 종교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금지된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우리가 그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이미지는 배척되었습니다. 그런데 만화는 교육적 측면을 좀더 강조합니다. 우리는 이미지에 빠져들지 않죠. 우리는 이칸에서 저칸으로 뛰어넘습니다.
중세때부터 유태인들은 삽화가 있는 기도서를 사용했습니다.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이미지가 허용되었던거죠. 윤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유머러스한 그림들이 인종차별주의자들이나 반유태주의자들에게 많이 쓰여졌기 때문에 한 유태인이 유머러스한 그림들을 그릴때 특히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 , 그것을 의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저는 만화 성인 흡혈귀grand vampire 에서 ,증오를 유발시키곤했던, 표현주의 기법을 사용하긴했지만 저는 그것을 아무생각없이 한것은 아니였습니다.
남을 조롱하면 반드시 그에 대한 대가가 있습니다.
저는 이미지탓을 하는 성가신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알고있습니다.
저는 이 우상파괴주의를 남의얼굴을 쳐다보는것을 거부하는 것처럼 걱정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오래전부터 이문제를 해결했죠. 유태인 사상가들은 얼굴을 표현하는것을 난처해 합니다. 이슬람은 말할필요도 없구요. 자기 부인의 얼굴조차 보고싶어하지 않을 정도니까요. (차도르로 여인들의 얼굴을 가리는 아랍의 풍습을 이야기하는듯함) 만약에 대중앞에서 서로서로 얼굴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 그건 그 사람이 다른사람의 이미지와 문제가 있다는 거죠. 결국 자신의 이미지와도 문제가 있는 겁니다.
Q ) 유태인 문학이 당신의 이야기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아마도 끝나지 않는 과장된 주석이라는 유태인의 기벽이겠죠. 한 본문이 있고, 주석이 있고, 그 주석에 대한 주석이 붙고… 저도 약간 그런식으로 작업합니다. 저를 매료하는것은 결코 이야기를 끝내지 않으려는 그 의도입니다.
Q ) 그래서 당신의 연작들을 끝내지 않는 겁니까?네. 그리고 역시 의미론적 이유때문이기도 하구요. 예를 들자면 저에게 아주 의미있는 2000년전 팔레스타인의 이야기 ‘검은 올리브 les olives noires’는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왜냐면 막다른길에 와버렸기 때문이죠. 아마도 그지역의 상황이 그때보다 더욱더 비극적이고 해결될수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제 어린 주인공이 불타는 예루살렘에서 기도문을 외우는것으로 남겨두길 바랬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아직도 불타고 있으니까요.
Q ) 음악은 당신의 서술방법에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저는 상페(꼬마 니콜라의 저자)와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악기를 잘 연주할수 없는거죠.
5년째 악기를 연주하기위해 매달렸지만 결과가 신통찮습니다. 그래서 저의 욕망과 저의 분노가 제 이야기를 통해 표현되는 거죠. 게다가 저는 클레즈메으klezmer를 매일 듣습니다. 그것은 마을의 축제에서나 밤에 바들에서 연주되던 디오니소스적인-영감에 바탕한- 음악이죠.
저에게는 음악을 말하는 것이 그림을 말하는 것보다 쉽습니다. 작품속의 인물들이 그들의 연주에 대해 이야기 하는것은, 다른 모든 예술에서 통용될수 있는 것들입니다.다른 사람들이 예술가라고 인정하긴 해도, 예술가들은 종이앞에 앉거나 악기앞에 있게되면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됩니다. 저는 예술가들이 교류하기에 좋은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클레즈메으klezmer 에서 전직군인인 바통과 일종의 사회적장애자인 빈센조처럼요. 저는 클레즈메으 음악의 강렬함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소리가 주는 현기증을 느끼기 위해서는 사전지식이 좀 필요하죠.
Q ) 그 현기증은 당신이 색을 다루는 방법에서 느껴지는데요..그게 참 어렵습니다. 뎃상에서는 뭔가를 배우고 전진하는데요. 색은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뭔가 음악적인게 있습니다. 저는 그림에 음악을 넣고 싶습니다. 칸들의 리듬이 암시하는 박동을요. 휴고 프라트(코르토 말테스의 작가)가 그것을 참 잘했죠. 하지만 그는 크로키북에서만 수채화를 썼습니다. 저는 그처럼 하되, 모든 책들에서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수채화나, 불투명해서 덜 매력적이긴 하지만 과슈를 사용해서요.
물이 지나간 자리를 느끼는 것도 좋아합니다. 수채화는 아주 신비스러운 재료죠. 왜냐하면 물은 마르면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게 잘 되었을때 사람들은 그 자취를 알아볼수 있죠. 랍비의 고양이는 이미지 중심입니다. 클레즈에으klezmer에서는 아름다움은 잃었지만 움직임과 삶을 얻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모티프에 그려진 것 같은 느낌을 주려했습니다.
Q ) 이 책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고 당신이 상상속에서나 치나쳤을 법한 이디쉬랜드Yiddishland에 관한 크로키북 같은 거군요… 당신이 유태문화에 대해 쓰기 시작했을때, 그것이 당신을 당신의 가족과 유태인 사회와 가깝게 해주었습니까?아니요. 저는 제 가족과 항상 가까웠습니다. 유태인 사회와는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랍비의 고양이는 제 가족 얘기를 하는것이 아닙니다. 할머니가 말씀하신 세상얘기를 하는거죠. 기억과 상상을 섞는것은 그 얘기를 내 방식대로 풀어가는 방식입니다.
저는 알제리에 살아보지도 않아서 알제리의 이미지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거기에 빠져드는 즐거움을 체험했습니다. 클레즈메으Klezmer는 다릅니다. 저는 약간의 분노와 신중함을 가지고 작업했죠. 틀림없이, 제 외조부모님을 제외하고는 외가쪽 식구들이 모두다 수용소에서 죽었기 때문일겁니다. 이야기는 비극적입니다. 그래서 주의깊게 접근할수밖에 없었죠.
랍비의 고양이le chat du rabbin에서 주제는 유대주의와 그렇게 많이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제가 겪은 유대주의는 어렸을때 돌아가신 제 어머니에 대한 얘기를 아무도 하지 않을 정도의 것이였습니다.
저는 가족의 일원이기는 했지만 가족이 저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약간 집안의 동물같은 느낌이였죠. 제가 어머니 에게 말하는 방식은 고양이가 여주인에게 하는방식과 같습니다. 어머니를 잃는 ‘잇점’은 남성적인 신이 저에게 그림자를 드리울수 없었다는 것이죠. 신은 항상 저희 어머니와 공정치 않은 경쟁을 했습니다. 제가 그와 얘기하는 것보다 어머니와 얘기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죠.
Q ) 유태인 학살에 대해서 잠깐 얘기해보죠. 아트 슈피겔만의 쥐를 읽는것이 당신에게 중요한 것이였습니까? 물론이죠. 당연합니다. 하지만 제가 몇번 만나기도 했던 윌 아이즈너의 작품이 저에겐 더 중요합니다. 그는 70년대에 신과의 계약이라는 작품에서 유태인 가족에 대해 이야기 했죠. 그게 최초로 만화작가가 자전적인 이야기를 한 작품입니다.
슈피겔만과 아이즈너가 저에게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지만, 저의 그래픽적 스타일과 이야기하는 방식은 휴고 프라트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습니다. 더 재미있고 더 비극적이며 더 이탈리아적이죠. 하지만 저는 스피겔만의 신랄함을 좋아합니다. 항상 분노해있는 그의 능력도요.
Q ) 유태인 학살에 대해 작업하실 생각이 있습니까?그런 소재에 대해 이야기할때면,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의 한계에 대해 질문하곤 하죠.
Q ) 그토록 참혹해서 표현할 수 없는 문제에 도전하실 생각은 없습니까?아니요. 별로 없습니다. 사람들이 항상 유태인 학살을 보여주면 안된다고 되풀이하여 말 하는것은 공포가 ‘학살하고픈 욕구’에 있는것이 아니라- 학살은 고대부터 있어왔습니다. 문명이 철학의 마지막 단계까지 왔었는데 역사상 가장 큰 범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대 과학이 한 민족을 제거하는데 기여한거죠. 거기엔 사고의 실패가 있습니다. 유태인 학살에 대해 말할수 있는책은 이야기책이 아니라 감동시키기위한 철학책이 될수 밖에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