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일본을 표현에 대해서 대단히 관대한 나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넘치는 적나라한 성적 표현이나 폭력물 만화등을 보자면 그럴것도 같다. 하지만, 이전에 이 지면의 칼럼에서도 말 했듯이 결코 자유롭지 않다. 가령, 일본에서는 한국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지면에 쓰일 만한 단어들을 절대로 써서는 안되는 말들이 있다. 가령[도살장]이라는 표현이 그러하다.
2013년 일본 도쿄시내 모처의 출판사 회의실. 모든 사원들이 모여서 어떤 강사의 강의를 진지한 태도로 듣고 있다. 한시간 반 정도 진행된 이 강습회는 이 회사에서 얼마전 벌어진 대소동 때문에 마련된 것이다. 그 소동이란 회사에서 출간한 작품 내에서 "마치 도살장 같은 처참한 곳..."이라는 표현이 등장했고, 여기에 대해서 전국 식육사업 협동조합에서 정식으로 규탄한다는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사실상 회사 앞에서 시위를 하는 등의 행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다행히 이 표현이 등장한 책이 회수되는 최악의 상황으로 가지는 않았지만, 회사의 모든 간부진이 이 협회를 방문하여 공식 사죄하고, 전 사원에 대한 인식 재교육과 이후 출간되는 책에 대해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증을 하고 나서야 진정이 되었다.
2013년, 일본의 주간지 주간 아사히는 최근 일본에서 초우익 정치가로 인기를 얻고 있는 하시모토 토오루 오사카 도지사의 출신이 사실은 차별 부라쿠(부락) 출신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가 실릴 때는, 하시모토 씨 자신이 여러 경솔한 우익발언으로 한창 인기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을 때인 것에도 불구하고 거센 사회적인 반발에 직면했다. 회사에 신문을 끊겠다는 전화와 항의 전화가 쇄도했고, 실재로 아사히 신문사는 폭주하는 신문 사절 주문에 약 10억엔의 손해를 입었다고 전해진다.
일본은 한국과는 달리 2차대전이라는 거대한 전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전의 체제가 변하지 않고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된, 전세계에서도 유래가 없는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아직도 외국에서 보면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 사회통념이나 개념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부분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차별 부라쿠 문제]다. 과거 전국시대 때, 사무라이 계급은 전쟁에 필요한 대량의 갑옷과 장비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또 대량의 가죽이 필요했다. 가죽이 필요하니 많은 말과 소를 도축하고 가공할 필요성이 있었고, 이를 위해서 이를 전문적으로 다룰 사람들도 대량으로 필요했다. 그래서 이들을 도축과 가공에 편리한 강변에 거주하게 했다. 이런 곳들이 전국 곳곳에 많이 존재했고, 이후 이런 집단 거주지역이 특수 부락으로 분류되었다. 그리고 이후 역사적인 변천을 거쳐서 더러운 일을 한다고 하여 다른 지역 사람들이 차별을 하게 되는 전통이 생겨나게 된다. 이외에도 다양한 특수 부락이 존재한다.
이 문제는 일본 사회의 거대한 치부이자 심각한 문제였다. 1975년 일본의 탐정 사무소가 이 특수 부락 출신 리스트를 작성하고, 이 리스트를 일본의 유수한 대기업에 꾸준하게 제공해온 것이 폭로되어 거대한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2007년에는 아직도 이 리스트가 꾸준히 유통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즉, 이 리스트에 기재된 지역 출신이라고 이력서에 씌여져 있으면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그 기업에는 취업이 안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런 특수부락 지역은 지역 개발도 낙후되었고, 여자나 아이에 대해서는 제대로된 교육도 실시되지 않는 등 굉장히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물론, 이런 문제에 대해서 일본 정부는 1969년부터 동화정책을 마련하고 낙후된 지역의 인프라를 보강하고 공적으로는 차별을 없애기 위한 여러 법적 조치를 마련하는 등으로 대처하여 많은 인식 개선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특수 부락들 내부에서도 부락 해방동맹 등을 결성하는 등으로 차별문제에 매우 공격적으로 대처하였고, 크게 효과를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먼저 소개한 도살장이라는 표현을 금지하는 것도 이런 특수부락 문제에서 기원한다. 현대에 와서는 이런 도살업은 전부 정육업 등으로 용어가 마련되어 있고, 실재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질 정도로 나쁜 일이 아닌데도, 소설이나 만화등에서 "잔인하고 부정적인 묘사를 하는 방법"으로 도살장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에 크게 항의하는 것이다. 그런 인식과 경솔한 표현들이 결국 자기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차별을 낳는다는 대 미디어 대책의 일환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은 최근 2000년대 들어서 빈번히 터지는 문제가 되어 있다. 이전에는 부락 해방동맹 등의 단체들의 맹렬한 활동으로 각 매체 지면에서 이런 표현을 찾아보는 것이 거의 드물었었다. 하지만, 이런 경험들을 가지고 있던 이전 세대들이 굉장히 터부시 되는 이런 표현들에 대한 지식들을 미처 밑의 젊은 세대들에게 전하지 않은채로 은퇴를 하게 되었고, 따라서 새로운 세대들은 무지한 상태에서 이런 표현을 쓰게 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외에도 다양한 금기 표현들이 존재한다. 앞서 소개한 도살장, 도살업과 같은 부락민 차별 용어나 민족차별 용어(재일교포), 장애우에 대한 표현등이 특히 절대로 언급하지 말아야 할 금기다. 특히 최근에 자주 터지는 사건은 장애우에 대한 표현문제다. 어느 대형 만화 출판사는 자사의 만화 잡지에서, 몸의 신경에 이상이 생겨서 몸이 떨리는 난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등장시켜 마치 댄스를 하는거 같다는 4컷 개그만화 소재로 쓰는 일이 있었다. 잡지는 모조리 회수 당하고 이 만화는 즉시 연재가 중단되었다. 출판업계 안에서는 이런 일은 약 10여년 전까지는 매우 상식적인 일이라서 당연히 일선 편집자가 저지르지 않는 실수였는데, 최근에 이런 지식이 없는 젊은층에게서 이런 미스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고 한다.
따라서, 일본의 각 출판사는 만화가 사회 안에서 당당한 주류 문화로 대접받는 것과 동시에 이러한 차별용어 문제에 좀 더 자주 노출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강습회를 열거나 신인 편집자에게 차별 용어집을 배포하는 등의 방법으로 대안을 모색중이다.
이런 움직임은 어쩌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을 수 있겠다. 앞서 말한 강습회의 강사로 자주 출강중인 강사 홋타씨는 이렇게 말한다.
"헌법에서 보장된 표현의 자유란, 약자가 강자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자유를 말하지요. 문제가 되는 차별받는 사람들이란 사회적인 약자입니다. 강자가 이들에 대해서 마음대로 이야기하고 멋대로 표현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죠."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는 있다. 트러블이 밖으로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일본의 사회구조 상, 이런 표현에 대해서 문제를 삼는 사람들의 항의는 매우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편이다. 또한, 아예 그런 싹을 잘라서 문제를 만들려고 들지 않는 태도도 보인다. 가령 장애우를 다룬 만화 자체를 아예 적극적으로 피한다든지 하는 경우가 그것일 것이다. 역차별이 생겨날지도 모른다는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