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프랑스] 앙굴렘 페스티발 2010

2010년 앙굴렘 페스티발에 다녀왔다. 눈,비, 햇볕, 바람 등 나흘동안 프랑스 겨울날씨의 모든 모습을 보여주었던 금년 앙굴렘 페스티발은 예년처럼 수많은 관람객을 맞이한 흥겨운 만화축제였다. 하지만 경제위기의 여파는 여전히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의 만화산업은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다른 산업이 부러워할 만큼 건재한 편이다.

2010-02-12 박경은
 

2010년 앙굴렘 페스티발에 다녀왔다. 눈,비, 햇볕, 바람 등 나흘동안 프랑스 겨울날씨의 모든 모습을 보여주었던 금년 앙굴렘 페스티발은 예년처럼 수많은 관람객을 맞이한 흥겨운 만화축제였다. 하지만 경제위기의 여파는 여전히 느껴지고 있었다. 예년 같았으면 거의 모든 행사관련자들이 이용할 수 있었던 지원차량이 많이 줄어들었고, 주최측에서도 지원차량이용보다 셔틀버스 이용을 권장했다. 행사에 대한 지차제와 정부기관의 공적지원도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프랑스의 만화산업은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다른 산업이 부러워할 만큼 건재한 편이다. (2008년 프랑스 만화 비평가 가자협회 연말결산 보고서 참고)

위기의 앙굴렘 페스티발, 회생하다

금년 페스티발은 자칫 열리지 못할 수도 있었다. 페스티발 몇주전인 10월까지만 해도 자금조달의 문제로 행사가능 여부가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가 지자체에 재정지원을 중단하면서 생긴 일이였다. 앙굴렘 시의회는 고민 끝에 임시회의를 소집하고 극적으로 행사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앙굴렘 시장은 안전, 위생, 청소 관련부분에서는 기술적 지원을 제공할 수는 있지만 예산부족 때문에 출판사와 행사장 스텐드의 내부설비 지원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2010년 앙굴렘 페스티발을 맞이한 시청

페스티발 주최측은 부족한 자금마련을 위해 문화부. 청소년 연대 고등사무국, 앙굴렘 상공회의소와 여러 사기업에 지원을 요청했다. 페스티발 조직위원장인 프랭크 봉두에 따르면 앙굴렘 페스티발은 매해 지역경제에 천만유로 이상의 파급효과를 가져온다고 한다. 또한 앙굴렘 시의 이미지를 재고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앙굴렘시에 실질적인 이미지 산업의 발달을 가져왔다. 경제위기를 이유로 페스티발의 맥이 끊겼다면 앙굴렘 시뿐만 아니라 프랑스 이미지산업전체에 무척 아쉬운 일이 되었을 것이다.
어렵게 재원을 마련했기 때문인지 금년 페스티발은 후원기업과 단체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눈에 띈다. 예년 같으면 단순히 후원단체의 로고를 넣는데 그쳤으나 2010년의 페스티발 소책자에는 10페이지 이상을 후원기업과 공공기관의 상세한 활동내용 소개에 할애했다.
문화부 장관인 프랑소와 미테랑은 이례적으로 페스티발을 방문했고, 폐막식에 참여해 문화부의 지원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밝혀 관계자들을 안심시켰다.

전시와 관련행사들

재원 마련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반쪽행사는 하지 않겠다는 주최측의 다짐 때문인지 전시와 컨퍼런스 등 다양하고 알찬행사들은 올해에도 많이 준비되었다.
심사위원장인 블러치의 개인전을 비롯해, 『유머 데셍( Dessin d’humour)전』, 『러시아 현대만화전』, 『100 pour 100』, 『루브르가 만화를 초대할때(Quand le louvre invitait la bande dessinée)』등 굵직한 전시가 있었다.

심사위원장 블러치의 작품들

작년 그랑프리를 수상자이자 금년 심사위원장인 블러치(Blutch)는 동시대의 가장 재능있는 작가 중의 한명으로 그의 그림들은 항상 유머와 재기가 넘친다. 이번 블러치의 개인 전시에는 그의 만화들보다 파스텔을 사용한 데생들이 많이 소개되었는데 정확한 데생력과 과감함이 돋보였다. 주최측은 관람객들이 블러치의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에 자연스럽게 『유머 데셍( Dessin d’humour)』전을 둘러볼 수 있도록 전시동선을 만들었는데 이를 통해 19세기 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유머 데상의 큰 흐름을 엿볼 수 있었다.
종이미술관(Musée du papier) 에서는 앙굴렘 최초로 『러시아 현대만화전』을 통해 러시아 만화가 소개되었다. 이 전시에는 생페테스부르크와 모스크바에서 온 젊은 작가들이 초대되었는데 그들은 최근 러시아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만화작업들을 선보였다.
작년 새롭게 문을연 만화미술관에서는 『100 pour 100』 특별전이 열렸다. 박물관이 소장한 100점의 유명작가들의 원본 그림과 그에 대한 오마주로 100명의 작가가 그 그림을 패러디하는 형식으로 기획된 이 전시에는 26개국의 작가가 참여했다.

『루브르가 만화를 초대할때(Quand le louvre invitait la bande dessinée)』
왼쪽) 전시가 열린 앙굴렘 박물관
오른쪽) 전시중 에릭 리베르쥐(Eric Liberge)의 작품. 에스키스가 어떻게 완성작이 되가는지를 엿볼수 있다.


『루브르가 만화를 초대할때(Quand le louvre invitait la bande dessinée)』는 5명의 작가들이 루브르의 미술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한 만화들을 소개하는 전시회로, 작년 루브르 미술관의 전시를 옮겨온 것이다.
전시 외에도 콘서트 데생이라던지, 엔키 빌랄의 즉흥적 시네비디오쇼 『Cinemonstre』, 로버트 크럼, 조 사코 같은 초청작가와의 만남 프로그램도 행사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후보작과 수상작 선정

앙굴렘 페스티발은 매년 1월 마지막 주의 목요일에서 일요일 사이에 열린다. 보통 토요일 밤에 시상식이 열렸지만 올해는 이례적으로 일요일 늦은 오후에 시상식이 열렸다. 페스티발의 파급효과 때문인지 후보작과 수상작 발표이후에는 항상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상업적으로 인기 있는 만화의 부재와 엘리티시즘(※ 주 엘리트주의, 엘리트를 추구하는 성향이라거나 엘리트 적인 특성을 일컫는다.)은 항상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행사의 미술감독인 브뉴아 뮤샤는 되도록 다양한 출판사가 선정되도록 배려하고, 상업적으로 성공한 만화보다 만화를 발견하도록 돕는다는 선정기준을 밝혔다. 흐네 고시니의 말처럼 ‘독자를 따르는데 만족할 것이 아니라, 독자의 취향을 앞서나갈 줄 아는’ 만화여야 한다는 것이다.
작년까지 수상작들은 최고 앨범상인 fauve d’or와 6개의 essentiel 상으로 구성되었었다. 이에 페스티발 조직위원회는 6권의 만화에 같은 순위를 매기고 같은 이름의 상을 수상하는 것을 독자들이 이해하지 몹한다는 서점업계의 볼멘소리를 들여야만 했다.

때문에 금년에는 상들의 이름이 더욱 구체적이 되었다. 최고 앨범상인 fauve d’or를 비롯해 Prix Intergénérations(세대를 넘나드는), prix Regards sur le monde(세계에 대한 시각), prix de lAudace(과감함)등 8개의 상이 마련되었다.
새로운 상의 이름은 독자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만화를 고르게 하기위한 일종의 조언이다. 그것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수상작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만화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작가들의 적극적인 페스티발 참여

2003년 한국만화특별전을 시작으로 한국만화계는 지속적으로 앙굴렘 페스티발에 참여해왔다. 2010년에는 한국작가들이 이전보다 더욱 다양하고 주체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앙굴렘 만화박물관의 『100 pour 100』 특별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이희재, 강도하 등 10여명의 작가들이 참여했고, 앙굴렘 작가의 집에 머물고 있는 박윤선, 이정현 두명의 작가도 작가의 집 체류작가 전시회에 참여했다.
2008년 『남쪽손님(불어제목 Le visiteur du sud- flblb출판사)』 으로 프랑스 만화비평가 기자협회(ACBD) 아시아상을 수상한 오영진 작가는 출판사 초청으로 페스티발을 방문해 프랑스 독자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프랑스에 체류중인 최주연 작가도 최근에 만화 『할매』를 발표하고 페스티발 기간 동안 사인회에 참여했다.
페스티발의 경쟁부문에서도 수확이 있었다. 앙꼬 작가의 『오늘은 없어 (Aujourd’hui n’exist pas- Cornélius출판사)』는 한국만화로서는 최초로 앙굴렘 만화 페스티발 공식 경쟁부분에 선정되었다.
앙굴렘 페스티발 직후인 2월 1일. 파리의 한국문화원에서는 프랑스를 방문한 대한민국 만화대상 수상작가 일곱 명의 컨퍼런스와 작품소개가 있었다. 필자는 컨퍼런스가 끝난 후 참가작가중 한명인 정혜나(탐나는도다-대한민국 만화대상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작가와 앙굴렘 방문과 컨퍼런스에 관해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파리 한국 문화원 초대작가중 한명인 『탐나는 도다』의 원작자 정혜나 작가

박경은 : 안녕하세요. 앙굴렘 방문은 처음이시죠? 앙굴렘 페스티발에 대한 짧은 인상을 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정혜나 : 앙굴 렘에서 다양한 만화를 많이 발견했습니다. 작가마다 자기의 장르를 가진 것이 많이 부러웠습니다. 자기 스스로의 감수성, 자기표현이 자유롭고 자기주장이 강한 만화들이 인상적이였습니다. 다양한 취향의 만화들이 공존하고 그 만화의 독자들이 존재할수 있다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박경은 : 프랑스에 오셔서 다시 발견한 한국만화의 얼굴은 무엇일까요?
정혜나 : 컨퍼런스 중에 프랑스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아시아 만화에는 컷, 여백, 정적의 감수성이 느껴진다구요. 그리고 특히 캐릭터가 예쁘다던데요.(웃음) 저도 그 생각에 동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만화, 아시아 만화의 특색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박경은 : 페스티발 방문이나, 컨퍼런스에서 아쉬웠던 점은 없었나요?
정혜나 : 앙굴렘 방문이나 컨퍼런스 모두 만족스러웠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곳에서 출판사 관계자들과의 1대1 만남이 있는지를 미리 알지 못했기 때문에 포트폴리오를 준비해 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프랑스 분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데 못 보여드리는 것이 좀 안타까웠습니다. 영어번역본이라도 준비를 해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앙굴렘 페스티발은 매해 한국만화와 가까워지는 것 같다. 내년에도 한국만화와 페스티발의 다양한 만남, 좋은 소식들을 기대해 보자. 

※  필자의 보물

소책자 『만화가, 그게 진짜 직업 맞아? auteur de bande dessinée ah bon c’est un vrai metier?』의 표지

필자는 jeunes talents 스탠드에 들렀다가 『만화가, 그게 진짜 직업 맞아? auteur de bande dessinée ah bon c’est un vrai metier?』라는 소책자를 발견했다. 만화가가 되는 방법, 만화를 배울수 있는 학교, 만화 단가, 책을 펴내기 위해 준비해야 할것들, 사회보장제도와 은퇴 준비까지 좀처럼 구하기 힘든 만화가로서 부딪혀야 할 실질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아주 상세한 설명을 담고 있다. 더군다나 무료다! 이 소책자는 만화가가 되고 싶은 청소년이나 아마츄어 작가는 물론 현업에 뛰어든 작가들에게도 무척 유용할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필진이미지

박경은

만화가, 번역가
『평범한 왕』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