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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국 카툰역사, 록키와 불윙클(Rocky and Bullwinkle)의 작가 알렉스 앤더슨(Alex Anderson)의 죽음

최초의 창시자, 최초의 발견자…세상의 무수한 산업 안에는 전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최초의 사람들이 있다. 지난 2010년 10월 22일, 미국 카툰 애니메이션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작가 알렉스 앤더슨(Alex Anderson)이 90세의 나이로 캘리포니아 카멜(Carmel)의 간호시설에서 별세했다.

2010-11-12 오필정

최초의 창시자, 최초의 발견자…세상의 무수한 산업 안에는 전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최초의 사람들이 있다. 지난 2010년 10월 22일, 미국 카툰 애니메이션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작가 알렉스 앤더슨(Alex Anderson)이 90세의 나이로 캘리포니아 카멜(Carmel)의 간호시설에서 별세했다. 미국 카툰 애니메니션의 역사 한 페이지를 자리잡고 있던 유명작가의 죽음, 이것은 우리들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의 발자취와 사건, 그리고 현재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를 알아본다.

 
 

알렉스 앤더슨(Alex Anderson)의 대표작

 

앤더슨은 카툰 작가이기도 했지만 대외적으로는 록키와 불윙클(Rocky and Bullwinkle)의 제작자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록키와 불윙클 쇼(The Rocky and Bullwinkle Show)

1959~1960년대 Alex Anderson, Jay Ward이 제작했다.

 

록키와 불윙클(Rocky and Bullwinkle)은 본래 록키와 불윙클 쇼(The Rocky and Bullwinkle Show)로 1950년 말, 미국 텔레비전 카툰 시리즈물로써 첫 선을 보였다. 이 작품은 당시 어른과 아이를 동시에 겨냥한 가족 코미디 애니메이션으로 약 6년간 방영되었다. 총 163회분 5시즌의 이 작품은, 이후 비디오와 DVD로 꾸준히 재탄생 했으며, “록키와 불윙클 (The Adventures Of Rocky And Bullwinkle, 2000)” 이란 이름으로 최근 영화화 되기도 했다.

 

록키와 불윙클 티브이 시리즈 장면 중.

 

하지만 또 하나, 만화 애니메이션 역사상 가장 큰 업적으로 기록되는 것은 그가 최초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는 점이다. 미국 최초의 TV애니메이션 ‘Crusader Rabbit’ 라는 5분짜리 작품은 직역하면 ‘십자군전사 토끼’로 1949년 흑백텔레비전 시대에 제작되었다. 특이한 것은 흑백미디어뿐인 당시였지만 오리지널 제작은 컬러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십자군전사 토끼(Crusader Rabbit) - Crusade 1 (1949)

 

 소개한 대표작 이외에도 앤더슨은 수많은 작품과 획기적인 시도를 카툰역사에 남긴 작가였다. 많은 관련업계 교육자들은 미국 카툰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앤더슨은 절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라 말할 정도로 그의 명성은 미국 내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앤더슨의 명성과 수많은 흥행작품들과는 달리, 그는 활동 내내 오리지널 작가로써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힘든 싸움을 해온 인물이기도 하다.

 

 

알렉스 앤더슨(Alex Anderson)의 전기, 그리고 시련

 

알렉스 앤더슨은 1920년 캘리포니아에서 성장했다. 그는 성인이 된 이후 어릴 적 친구 Jay Ward와 함께 팀을 만들어 최초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십자군전사 토끼(Crusader Rabbit)”를 시작으로, 그의 최대 작품 “록키와 불윙클(Rocky and Bullwinkle)”를 선보여 업계에서 주목 받는 제작자가 된다.

 

알렉스 앤더슨 (Alex Anderson, cartoonist, 1920. 9. 5 ~ 2010. 10. 22)

 

하지만 시대의 흐름보다 앞선 상업 미디어 컨텐츠를 개발한 탓일까? 당시 미국은 지금처럼 저작권의 권리나 인식이 넓이 알려져 있던 때가 아니었다. 특히 “록키와 불윙클(Rocky and Bullwinkle)”은 장기방영으로 시청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유지하게 되는데, 이런 과정에서 수많은 광고와 끊임없는 상품개발이 진행되게 된다. 그러나 그 이윤들은 철저하게 광고회사나 방송사 등 원 제작자인 앤더슨을 배제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1960년대를 통틀어 앤더슨은 저작권에 대해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이 사건은 소소하게는 광고미디어에서부터 크게는 “불윙클 비디오 프랜차이즈”라 불리는 거대한 상업적 성공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당시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1991년 샌프란시스코 일간지에서 말했다.

 

“내가 한일이 이렇게 인기를 끌고 있다니 정말 기쁘네요. 하지만 그 모든 것에 대해 아무런 것도 얻지 못한 것이 유감입니다.”

"Im thrilled that something I did has become so popular. But Im sorry that I dont get any credit for it."

 

마침내 앤더슨은 업계관계자들에 대한 법정소송까지 불사하게 되는데 아티스트로써, 불윙클 캐릭터의 아버지로써 권리와 명예를 되찾기 위한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앤더슨, 본격적인 법정대응 시작

 

앤더슨의 본격적인 법정대응은 불윙클의 다큐멘터리로 시작되었다. 오리지널작가로써 알려지지 않았던 앤더슨은, 자신의 캐릭터 불윙클의 다큐멘터리에서 단 한번도 그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게다가 불윙클은 대외적으로는 공동작업 동료이자 유년시절친구 Jay Ward와 단 한번의 비즈니스관계를 가졌던 사업파트너가 제작자로 알려져 있었으니 원작자로써 참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앤더슨의 법정투쟁은 1990초 Jay Ward의 사망 후 그의 상속인에게까지 이어지게 된다. 결국 1993년, 법정은 앤더슨의 손을 들어주었고, 그는 “록키, 불윙클, 더들리의 최초버전 캐릭터 창시자(The creator of the first version of the characters of Rocky, Bullwinkle and Dudley.)”라는 칭호를 되찾게 된다.

 

 

앤더슨과 우리…

 

미국만화업계의 산 역사, 알렉스 앤더슨(Alex Anderson)의 죽음은 관계자들의 깊은 아쉬움을 남기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볼 수 있었던 또 다른 것은 앤더슨의 일대기를 통해 만화, 캐릭터, 애니메이션 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한 미국에서도 아티스트의 저작권 투쟁역사가 있었다는 점이다.

 

창조와 비즈니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저작권문제는 비단 과거 미국만의 주제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창조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이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식과 같은 분신을 한 순간에 빼앗긴 원작자의 심정… 어떤 사람은 이것을 당장의 소소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관련업계의 존재 자체를 없애는 일이라고도 한다.

 

앤더슨의 경우는 다행히 원작자의 명성을 되찾게 된 해피엔딩이었지만, 과연 한국에는 원작자들의 해피엔딩만 존재하고 있을까? 앤더슨의 일생과 그의 업적들은 만화 컨텐츠를 창작하고 이용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