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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아트 슈피겔만, [미국만화의 거장전]에서 작품 철회

2005-6년 미국만화계에서 가장 큰 규모와 품격을 갖춘 전시회 가운데 하나인 [미국만화의 거장전]이 최근 뉴욕에서 개장되었다. 원래는 2005년 11월부터 서부지역인 LA에서 Hammer 박물관과 LA현대미술관의 공동 기획으로 두 곳에서 나누어 전시되었고...

2006-09-01 김낙호

미국만화의 거장전 대표 사이트
[미국만화의 거장전] 대표 사이트



























2005-6년 미국만화계에서 가장 큰 규모와 품격을 갖춘 전시회 가운데 하나인 [미국만화의 거장전]이 최근 뉴욕에서 개장되었다. 원래는 2005년 11월부터 서부지역인 LA에서 Hammer 박물관과 LA현대미술관의 공동 기획으로 두 곳에서 나누어 전시되었고, 2006년 4월에는 중부지방인 위스콘신에 있는 밀워키 미술박물관에서 하나로 합쳐 순회전을 했으며, 이제 대미를 장식하기 위하여 동부지역인 뉴욕에서 유대박물관과 뉴아크박물관 두 곳에서 다시 나누어 전시를 하게 된 것이다. 이 전시는 미국만화의 역사적 거장 15명의 많은 작품 원고를 바탕으로 구성되었으며, 사상 최초로 대형 미술 박물관에서만 개최된 대규모 미국만화 역사전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행사다. 만화가 차지하는 사회적 위상을 미국식 현대 대중문화의 정수로 인식하고 그 속에 담긴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야심찬 기획인 것이다. 그 중 밀워키 전시를 관람한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평가하자면 전시 기법상의 유려함이나 깊이의 측면에서 보자면 일반 갤러리형 전시에 가깝기에 2000-1년 파리와 앙굴렘에서 개최된 [유럽만화의 거장전]에 비해서 아직 여러 수 아래였다. 하지만 이 정도로 대량의 귀중한 원고 자료를 모아내고 일관성 있게 엮어낸 열의 하나만으로도 전시의 귀중함이 돋보였다.

그런데, 순회전의 피날레를 이루는 뉴욕 전시에서 최근 뜻밖의 사태가 발생했다. 전시에서 다루는 15명 거장 가운데 한명이자 현재 뉴욕 문화예술계의 대부급 가운데 하나인 작가 아트 슈피겔만이 자신의 작품을 전시에서 회수한 것이다. ‘쥐’로 퓰리쳐상을 수상하고 ‘RAW잡지를 통해서 실력있는 전위예술 계열 언더그라운드 작가들의 산실을 가꾸었으며 오랜 NewYorker지의 고정 일러스트레이터 경력을 통해서 만화의 예술적 지위 인정에 있어서 누구보다 중요한 작가가 이 전시회에 대한 지원을 갑자기 거부했다는 점은 많은 이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다룬 ’쥐‘의 작가가, 무려 전시가 진행될 유대 박물관에서 작품을 빼버렸다는 점 역시 화제를 몰고 왔다. 각종 억측이 난무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슈피겔만이 스스로 밝힌 서신에서 사태의 전모가 상당부분 밝혀졌다. 슈피겔만이 밝힌 이유들은 여러 가지다. 첫째, 애초에 전시회의 큐레이터들이 순회전 계획을 제대로 통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반 종이에 작업한 작업 원고의 낮은 보존성은 차치하고서라도, 현재 작업중인 작품연재와 단행본 작업 때문에 원고가 다시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둘째, 뉴욕 전시의 전시 컨셉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원래 이 전시의 핵심은 여러 시대를 풍미한 15명의 거장들을 시대 순으로 놓고 그 유구한 전통과 영향의 맥락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뉴욕에서는 이 전시를 전반기 시대의 8명과 후반기 시대의 7명으로 나누어 굉장히 멀리 떨어진 두 장소에 나누어 보여준다는 것이다. 즉 두 박물관의 거리 때문에, 관람객들은 시대적 맥락이 중간에 끊어진 반쪽자리 전시밖에 못 본다는 것. 이에 대한 자구책으로 슈피겔만은 큐레이터들에게 15명 작가들의 전시물을 두 박물관에 균등하게 배분해서 전시할 것을 제안했으나, 무시되었다고 한다. 셋째, 그 분할 전시의 결과 자신이 유대박물관에 전시된다는 것에 거부감을 표시했다. 왜냐하면 그 경우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들을 홀로코스트와 연계시켜서 생각할 뿐, 미국 대중예술의 정수로서의 만화의 역사라는 전시회의 원래 컨셉과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물론 전시회를 기획한 큐레이터 측도 나름의 이유와 물리적인 상황들이 분명히 있겠지만, 슈피겔만의 지적은 충분히 타당하다. 개인적인 수틀림에 의한 파토가 아니라, 전시 컨셉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음에 대한 항의로 그런 행위를 한 것이다. 사실 전시에 있어서 큐레이터는 영화로 치자면 감독에 해당된다. 그리고 후원사나 미술관은 제작자, 작품들은 실제로 출연하는 배우에 비유할 수 있다. 감독이 제작자와 협상하지 못하고, 원래의 컨셉을 제대로 끌고 가지 못해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자존심 높은 특급 주연배우가 출연 거부를 선언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좋은 행사가 원활하지 못한 마무리를 맞이한 것은 아쉽지만, 지금껏 이룩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기에 다행일 따름이다. 또한 한국 만화계에서도 좋은 이벤트, 좋은 전시란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한 기획자들에게도 작가들에게도 나름의 타산지석이 되어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2006년 9월 vol. 43호
글 : 김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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