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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만화가들은 왜 창조적인가 (2)

프랑스에서는 여러 경로로 작가의 만화 사전 제작 시스템을 마련해 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아틀리에 지원과 제작비 지원이다. 앙굴렘 작가의 집은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애니메이터 들을 중심으로 아틀리에를 지원한다. 몇몇의 지자체들도 예술가들을 위해 아틀리에를 마련하는데, 순수 미술 작가들뿐만 아니라. 사진가, 만화가들에게도 아틀리에 지원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2012-11-20 박경은
다양한 사전 제작 지원
프랑스에서는 여러 경로로 작가의 만화 사전 제작 시스템을 마련해 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아틀리에 지원과 제작비 지원이다. 앙굴렘 작가의 집은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애니메이터 들을 중심으로 아틀리에를 지원한다. 몇몇의 지자체들도 예술가들을 위해 아틀리에를 마련하는데, 순수 미술 작가들뿐만 아니라. 사진가, 만화가들에게도 아틀리에 지원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만화에 대한 사전 제작비 지원도 비교적 활발한 편인데, 우선 국립 도서 센터(Centre national de livre)에서는 다른 모든 문학 작품과 마찬가지로 만화를 사전 제작 지원 대상에 두고 심사를 하고 있다. 지자체들 역시 만화 사전 제작을 지원하는데 바스 노르망디, 미디 피레네, 코르시카, 리무쟝, 혼 알프, 로렌 등의 지역이 대표적이다.

이들 지원의 특징은 “만화 제작지원”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나리오, 집필, 시청각, 예술 제작 지원의 이라는 큰 틀 안에 만화를 제외시키지 않고 심사 대상으로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만화”만 집중 지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 창작지원 영역 안에 만화 창작을 빼 놓지 않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대부분의 창작지원 작품들은 상업성이 아닌 창의성, 독창성, 실험성, 예술성 등을 중심으로 선정된다. 이 작품들은 프랑스 만화를 좀 더 다양하고 깊이있게 만드는데 일조한다.

△ 프랑스 만화관련행사 전문 사이트 opalbd.com에 소개된 2012년 11월부터 3개월 동안의 프랑스 만화관련 행사 안내지도. 백 여군데가 넘는 행사가 점으로 표시되어 있다.


페스티발과 북살롱
프랑스의 수많은 페스티발과 북살롱은 작가들에게 사후 제작지원이라 이름 붙여지지 않은 사후 제작지원이다. 프랑스에서는 한 해 거의 2,000여개의 크고 작은 만화관련 행사들이 벌어지는데 이 행사들을 중심으로 독자와 작가와의 만남 그리고 무시하기 어려운 양의 만화책의 판매가 이루어진다. (페스티발에 들른 사람들은 모두 다 다녀온 것의 증명을 원하고 그것의 대부분은 만화책의 구매 형태가 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같은 값에 작가의 친필사인까지 받을 수 있다면 그건 더 매력적이다.) 대부분의 경우 행사의 주최는 만화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인 비영리 단체가 맡고 있지만 재정적인 지원은 시와 도의 예술 예산에서 많은 부분을 지원 받는다.

필자가 여러 페스티발에서 지켜본 바로는 아무래도 작가와 직접 대면의 기회를 가졌던 독자들이 그 작가의 작품에 좀 더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며 이후에도 실질적인 구매를 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프랑스 전국에 2000여개의 만화 행사가 있다는 이야기는 거의 모든 도시가 이런 행사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지자체가 만화행사를 선호하는 이유는 다른 행사들보다 적은 비용으로 시작하기 쉽다는 것이다.

서점, 자원봉사자, 작가 등으로 행사 구성원 자체가 비교적 단순한 것도 만화행사의 매력이다. 또한 이렇다 할 구경거리가 없는 도시에서는 만화 페스티발 하나만으로도 동네 사람들이 같이 즐길 수 있는 행사가 생기는 셈이다. 특히 실내에서 개최가 가능하므로 바캉스가 끝난 한가하거나 추운 계절에 행사를 개최하여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데 효과적이다.

페스티발을 통해 만난 작가들은 새로운 협력작업을 모색하기도 하고, 서로간의 관심사를 나눈다. 특히 몇몇의 굵직한 페스티발에는 출판사 관계자들이 항상 참여하는데, 이 기회를 통해 신인, 중진 작가들이 출판사 담당자를 만나 작품을 소개하고, 조언을 듣는다던지 출간 가능성을 알아보는 기회를 갖는다. 앙굴렘 만화 페스티발의 사인회를 하는 뒤쪽에서도 작가와 출판사 관계자는 그림을 보며 새로운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의 만화 독서 유도
프랑스에는 한국과 같은 학습만화가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에 한국의 학습만화를 수입해서 프랑스에서 펴낸 일이 있었는데,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인지 아직 서점에서 그 책들을 본 적이 없다.) 다만 일러스트레이션이 포함된 아동용 도서는 다수 존재한다.

프랑스에서는 초, 중등학교를 중심으로 불어시간 혹은 미술시간에 만화를 읽고 그것에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굉장히 자연스러워 보인다. 학교에서 작가를 초청해 학생과 만남의 시간을 갖게 하고 작가의 책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도 제공한다고 한다. (이것은 필자가 어느 만화 페스티발에서 미술 선생님 출신의 만화가에게서 직접 들은 내용이다.)

프랑스에서는 세부적인 교육 프로그램은 어느정도 교사의 재량에 맡기는 것 같으며, 교사의 입장에서 충분히 흥미롭다고 생각된다면 만화가의 학교 초대 역시 어렵지 않다. 교육효과가 기대된다면 만화책이라 할지라도 학생들이 같이 읽고 토론할 기회를 마련해 준다는 것이다.

카스테르만 출판사의 홍보 담당과의 인터뷰에서도 확인한 바와 같이 만화관련 학과가 아닌 대학 학부에서도 만화를 교재로 지정하기도 한다. 페르세 폴리스의 작가 마르쟌 사트라피도 자신의 인터뷰를 통해 한 초등학생 소녀가 수업을 통해 읽은 페르세폴리스에 관한 대화를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요약하자면 “만화를 통한 학습”의 접근 방식이 한국과 프랑스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만화를 통한 학습은 “학습만화”를 중심으로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쉽고, 빨리 배우게 하는데 중점을 두고 만화독서와 수업간의 연관성은 고려하지 않는 반면, 프랑스의 만화를 통한 학습은 만화를 가지고 어떤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교사, 동급생들과 이야기 나눔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견고히 하는데 이용되는 것이다. (물론 시간을 길게 두고 프랑스에 나온 한국의 학습만화가 어떤 길을 걷게 될지 지켜볼 필요는 있다.) 이런 바탕 때문에 작가는 쉽게 배우게 하는 데 중점을 두는 만화보다 자신의 작품을 가지고 누군가가 이야기하고 토론하게 할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도록 좀 더 고민하게 된다.

주 35 시간의 법정 노동시간과 인터미떵 제도
지난 2000년에 법규화된 프랑스의 주당 노동시간 35시간. 한사람이라도 더 고용시키려는 의도에서 사회당 내각이 통과시킨 법률이지만 아직도 이 법률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주 35시간의 노동시간은 유럽에서도 짧은 것이기 때문에 이 제도가 기업의 생산성, 경쟁력에 해를 끼치고 있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 제도가 프랑스 만화계와 깊은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보았다.

앞서 페스티발을 살펴보았을 때 많은 자원 봉사자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35시간 노동시간이 노동자들에게 월차, 휴가 기간을 더 제공해 줌으로써 노동자가 과외활동, 즉 페스티발 운영에 좀 더 개인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나 짐작된다. 또한 작품을 하는 작가의 경우 단축된 법정 노동시간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한 작업을 하기에도 유리하게 작용한다. 가족, 친구와 보낼 시간을 많이 희생해야 하겠지만 만화를 그리는 것이 진정으로 즐겁다면 해 볼 만한 시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프랑스 노동제도에 있어서 특징적인 것으로 인터미떵(intermittent du spectacle) 제도라는 것이 있다. 이 제도는 공연, 영화, 시청각 예술부문에서 프로젝트 기간동안 계약직으로 고용되어 일하는 예술가나 ,기술자들,영화배우, 음악가, 무용가,만화영화 제작 종사자 등의 사회보장을 위해 마련된 제도이다.

대개 이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한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다른 프로젝트를 얻기 전까지는 실업자가 되고 마는데 프랑스는 이들의 생계보장을 위한 정책을 마련했다. 그 주된 역할은 일이 없는 동안 실업수당을 지급하는 것이다.

영국이나 독일에서는 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프리렌서, 즉 자영업자로 분류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이들을 노동기간동안 월급을 받는 급여 생활자로 분류한다. 인터미떵 제도는 급여 생활자와 실업자의 생활을 자주 오가는 이 직업군의 사람들에게 실업수당 지급의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한다. 이들이 계약직 기간동안 한 달에 얼마만큼의 급여를 받았느냐에 따라 실업 수당의 액수도 결정이 된다.

이 제도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지난 10개월 동안 적어도 507시간을 일했다는 증명을 해야만 한다. (적어도 3개월동안 하루 8시간씩은 일한 셈이여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렇지만 몇 가지 세세한 예외사항 또한 존재한다.) 이것이 증명 되면 8개월 동안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다. 한 달에 지급되는 실업수당은 일반적으로 이전에 받던 월급의 70퍼센트 정도이다.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실업수당을 지급하기 위해 고용주와 고용인의 납입금 비율이 꽤 된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특히 애니메이션 산업에 종사하는 프랑스 작가들이 만화책을 작업할 수 있는데 특히 유리하다.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에서 일을 하고 중간의 남는 기간 동안 경제적인 부담을 덜면서 작업에 전념 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이 시간 동안 만화를 한다고 해서 꼭 출판사를 찾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작업의 시간은 가질 수 있다.

이 돈은 어디에서?

프랑스의 사회 시스템이 만화가의 창조력을 북돋우기 위해 변해 온 것은 아니다. 다만 사회보장 제도의 전반적인 변화가 창조력을 발휘하기에 유리한 쪽으로 바뀌어 간 것 같다.

지금까지 살펴본 몇 가지 예에서 보았듯이 프랑스는 많은 예산을 예술, 특히 직, 간접적으로 만화와 관련된 부분에 지출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돈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대개는 세금일 것이다.


그림 2. “꺼져라, 부자 바보야”를 타이틀로 한 일간지 리베라시옹의 표지. 세금을 덜내기 위해 LVMH그룹의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가 벨기에로 주소지를 옮긴 것을 비꼬는 기사이다.( LVMH그룹은 명품가방 루이 뷔똥을 만드는 회사이다.) 프랑스에서는 연예인, 기업가, 스포츠 스타들이 세금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이웃나라 스위스나 벨기에로 주소를 옮기기도 한다.

한국에서 막연히 프랑스 혹은 유럽의 복지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모든 것이 공짜다. 국가가 다 해 준다.“ 라는 식으로 이해가 되고 있는 것 같다. 필자도 예전에는 막연히 “유럽은 부자나라이니 어디서 들어오는 돈이 있을 것이다“라도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유럽은 세 부담이 참 높았다. 직접, 간접세 부담이 모두 다 높다.

모든 물건을 살때 붙는 부가가치세를 살펴보면 한국은 물건 값의 10퍼센트에 불과하지만, 프랑스는 19.2퍼센트이다. 한국의 2배인 셈이다. 웬만한 월급 노동자의 경우 월급의 25퍼센트 정도가 연금, 건강보험 등으로 원천 공제 되는 것 같고, 1년 소득세로 한 달 월급은 고스란히 내야 하는 것 같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세금 비율이 훨씬 더 올라간다. 공립 탁아소 같은 경우도 부모의 수입에 따라 돈을 안내는 사람부터 1,000유로를 넘게 내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물론 열심히 일했는데 많은 돈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면 가슴이 좀 쓰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다양한 형태로 여러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위기에 닥쳤을 때를 대비한 투자이며, 자신을 둘러싼 사회의 창조적 힘을 보태는 데 사용된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낼 만 하지 않을까?

△ 프랑스의 유명한 프로그램 진행자 로렁 흐끼에. 자신이 좌파임을 공적으로 인정하는 그는 프로그램 진행중에 “저는 항상 세금을 더 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 잘 벌고 있는데도 세금을 덜 내야만 한다고 야단입니다.....(우파가 경제를 일으킨다고 하지만) 그렇게 경제가 일어나는 것은 대부분 몇몇에게만 되돌아 갈뿐, 약자들에게 가진 않습니다.” 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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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은

만화가, 번역가
『평범한 왕』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