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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크랙 톰슨의『Blankets』표지 이미지 ▲오른쪽 앨리슨 벡델의『Fun Home : A Family Tragicomic 』표지 이미지 |
최근 미국 만화계에서는, 미주리 주의 마샬 공공도서관에서 앨리슨 벡델의 『Fun Home』과 크랙 톰슨의 『Blankets』라는 두 만화작품이 추방당한 사연이 화제를 모았다. 흔히 별 고민 없이 ‘저질’로 낙인찍히곤 하는 장르물도 아니라, 만화계는 물론 문학계 일반의 전문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던 소위 ‘문학적 소양’을 갖춘 작품들이었기에 그 의외성은 더욱 컸다. 특히 『Blankets』의 경우는 2003년에 시사주간지 ‘타임’지에서 뽑은 올해의 우수만화 기사에서 수위를 차지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두 작품 모두 다소(상당히) 역기능적인 보수적 가정에서 자라나는 성장담을 다루고 있다.
문제는 10월초, 도서관의 운영에 대한 지역 주민 공청회장에서 발생했다. 한 주민이 두 작품을 성적 묘사가 지나친 포르노그래피로 규정하고, 서가에서 빼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실제로 두 작품은 성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성적 성숙이라든지, 동성애를 암시할 만한 장면들이 일부 담겨있다. 물론 그 강도나 접근 방식이 특별히 에로티시즘을 강조하는 방식도 아니고 전반적 표현 수위가 여타 문학 장르나 영화와 비교해도 대단히 얌점한 정도에 머물고 있었지만, 문제로 지적된 것은 바로 만화라는 매체 속성 자체였던 것이다. 심지어 두 책 모두 아동/청소년 서가에 배치되어 있던 것이 아니라 『Blankets』는 영어덜트 섹션, 『Fun Home』은 성인 자서전 코너에 있었으나, 만화라는 것 자체 때문에 항의가 제기되는 것을 막아내지는 못한 것이다. 해당 도서관에는 3만권의 장서 가운데 75권의 만화책이 있었는데, 그 중 일종의 시범케이스로 걸린 셈이었다.
문제는 공청회에서 이런 지적이 들어왔을 때, 그것을 합리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미비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관행상 전문 사서의 판단에 따라서 선별했을 뿐이었다. 즉 지역 주민의 항의가 있을 때 도서관측 전문가와 이용자들이 논의를 하여 작품의 배치 자격을 결정할 수 있는 정식 회의 제도가 없기 때문에, 항의를 우선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셈이다. 그 결과 부랴부랴 그런 회의 과정을 신설하기로 했으나, 11월 말에 회의 결과가 끝나기 전까지는 두 작품을 서가에서 내리기로 결정이 났다.
이 사건은 한쪽에서 보자면 미국을 휩쓰는 극단적 보수주의 물결의 흐름과, 다른 쪽으로는 만화라는 매체 대한 아직도 뿌리 깊은 불신이 서로 힘을 합친 결과다. 흔히 한국의 만화판에서는 다른 만화 선진국들에서 만화가 가지는 높은 위상에 대해서 흐릿한 동경을 보내곤 하지만, 실제로는 어디서나 정당한 사회적 지위를 위한 움직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나아가 이런 움직임은 항상 매체 자체의 힘과, 사회적 분위기라는 두 가지가 항상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움직인다. 또한 미국의 이번 사건을 살짝 뒤집어보면, 실제로 두 작품이 전문 사서에 의해서 공공도서관의 서가에, 그것도 ‘만화코너’라는 애매한 분류가 아니라 정식 문학 섹션에 각각 들어가 있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일방적으로 탄압받고 당하는 것이 아니라, 권익과 지위를 위해서 서로 밀고 당기기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책들을 계속 서가에 유지시키기 위해서 전문가들이 나서서 반대파들과의 논의에 참여하는 것이다. 뭐 여러모로, 지구 반대편에서 타산지석으로 삼을만한 구석이 대단히 많은 사건인 셈이다. (끝)
2006년 10월 vol. 44호
글 : 김낙호(만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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