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캐릭터 설정의 새바람 MBTI (1부)
웹툰 캐릭터 설정에 유용한 도구 MBTI
학생 : “요즘 MBTI가 유행해서 수업에 도입하신 건가요?”
필자 : “아니에요. MBTI를 수업에서 가르친 건 10년도 넘었어요.”
얼마 전 학생과 나눈 대화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MBTI가 유행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유행을 탄 덕분에 MBTI를 긍정적으로 여기는 학생도 늘어났지만, 세상 일이 그렇듯 인기에 비례해 안티도 생기기 때문에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부정적으로만 여기는 학생도 많아져서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골치 아픈 면도 있다.
필자는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만화캐릭터설정 수업에서 MBTI를 가르치고 있다. MBTI를 수업에 도입한 건 유행 때문에 아니라, 유용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이전에 없던 특별한 캐릭터 설정 수업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신규 수업 개발 연구를 수행했다. 수업을 구성하는 여러 주제 중 ‘캐릭터의 성격’을 설정하기 위한 다양한 도구를 알아 봤는데, 그중 MBTI가 있었다.
당시 선택 기준은 첫째 배우기 쉬워야 하고, 둘째 배운 즉시 활용할 수 있어야 하며, 셋째 캐릭터 설정에 실제로 유용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MBTI가 이 세 가지 기준에 부합했다. 특히 미국 할리우드에서 MBTI를 활용해 영화 속 캐릭터를 설정 하는 사례가 다수 있다는 이야기에 솔깃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 국내 MBTI 공식 기관인 ‘한국MBTI연구소’의 전문자격교육을 받은 후 영화 또는 웹툰 속 캐릭터의 MBTI를 분석해 봤다. 그리고 이내 재미있는 점을 알게 됐는데, 개성과 매력이 넘치는 캐릭터는 MBTI가 선명하게 도출되는데, 이도저도 아닌 그냥 그런 캐릭터는 MBTI가 불분명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MBTI가 유용하다는 것을 확인 한 후 2011년 수업에 도입해 지금까지 학생들에게 캐릭터 성격을 설정하는 도구로 활용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웹툰 캐릭터의 ‘성격’이란 무엇인가?
MBTI의 유용성을 이해하려면 웹툰 캐릭터의 ‘성격’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웹툰은 일반적으로 ‘가상의 캐릭터’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캐릭터를 잘 만들어야 이야기가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전개된다. 캐릭터를 잘 만들기 위해 고민해야 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 있다. 그중 한 가지는 독자가 납득할 수 있는 ‘선택과 행동의 개연성’이다.
작가는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위해 캐릭터를 ‘특별한 상황’ 속에 집어넣는다. 잘 만들어진 캐릭터는 자신에게 설정된 개성을 바탕으로 선택과 행동을 반복하면서 상황을 헤쳐 나간다. 만약 캐릭터 개성이 제대로 설정돼 있지 않다면 캐릭터가 우왕좌왕 하게 되고, 이야기 전개가 혼란스러워진다. 일반적으로 독자는 이와 같은 개연성 없는 캐릭터와 이야기에 실망감을 느낀다.
캐릭터의 선택과 행동의 개연성의 바탕이 되는 개성 요소는 여러 가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성격(性格)’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성격을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성질이나 품성’이라고 정의한다. 성격은 혼자 있을 때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주로 타인과 만나거나 어떤 사건과 마주치는 ‘외부 자극이 있는 상황’에서 드러난다.
웹툰에서는 성격을 ‘상황에 반응하는 캐릭터의 개성’으로 정의할 수 있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캐릭터에게 설정된 성격과 갈등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캐릭터를 집어넣으면 캐릭터가 받는 압력이 강해지면서 긴장감이 상승한다. 요즘 표현으로 소위 말하는 ‘고구마’다. 독자는 이에 대한 해소를 원하게 된다. 적당한 수준까지 압력을 높인 후 캐릭터 성격과 어우러지는 상황으로 전환하면 캐릭터에게 주어진 스트레스가 해소되면서 독자도 쾌감을 느끼게 된다. 소위 말하는 ‘사이다’이다. 이것을 반복하면 상승과 하강이 반복되는 리듬감 있는 이야기 전개가 이루어진다.
캐릭터 성격이 확실하게 설정돼 있다면 작가는 상황만 고민하면 된다. 상황 속에 캐릭터를 넣으면 캐릭터가 본인 성격에 따라 선택과 행동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캐릭터 간 갈등도 마찬가지다. 두 캐릭터 성격이 상반되게 설정돼 있으면 성격차이로 인해 갈등 상황이 발생한다. 반대로 비슷한 성격의 캐릭터끼리 붙여 놓으면 평화로운 상황이 펼쳐진다.
작가는 의도에 따라 성격이 안 맞는 캐릭터끼리 엮을 것인지, 성격이 잘 맞는 캐릭터끼리 만나게 할 것인지 결정하고 그런 상황을 만들어 주면 된다. 그럼 캐릭터들은 각자 설정된 성격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한다.
만약 상황 속에 캐릭터를 넣었는데 그 다음 이야기 진행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캐릭터의 성격을 불분명하게 설정한 건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캐릭터의 성격이 분명하고, 작가가 그 성격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다면 주어진 상황 속에서 캐릭터는 분명하게 선택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작가는 심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성격에 대한 지식이 충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별도로 심리학을 공부하는 작가도 있지만, 학문의 내용이 방대하여 배우는 게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MBTI는 비교적 쉽게 배울 수 있고, 배운 즉시 활용할 수 있어 캐릭터 성격을 분명하게 설정하기 원하는 작가가 활용하기 좋은 유용한 도구이다.
성격유형지표 MBTI 역사
MBTI는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의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 졌다. 융은 사람 간의 서로 다름은 불규칙한 것이 아니라 절서정연하고 일관된 경향이 있어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봤다.
융과 동갑내기이면서 미국에 살고 있던 캐서린 C. 브릭스는 사람의 개인차에 관심이 많아 개인적으로 성격 유형을 연구하는 심리 연구자였다.
브릭스는 1921년 당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던 융의 저서를 읽고 자신의 생각과 융의 이론이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융의 이론에 개인적인 연구 내용을 더해 1926년 <새로운 공화국>이라는 책을 출간하고 네 가지 심리 유형을 발표 했다. 이후 브릭스의 자녀인 이자벨 B. 마이어스가 연구에 참여했다.
브릭스와 마이어스는 같은 직업에 대해 어떤 사람은 만족감을 느끼는 반면, 어떤 사람은 불만족하는 것에 주목했고, 개인차 때문에 각기 다른 반응을 하는 것이라고 봤다. 그래서 각 사람의 개인차를 체계적으로 파악하여 그 사람과 잘 맞는 직업을 추천해 준다면 많은 이들에게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이야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개인차에 대한 보편적 인식이 많이 부족했던 획일적인 시대였기 때문에 두 사람의 생각은 시대를 앞선 것이었다.
이러한 가설을 바탕으로 브릭스와 마이어스가 함께 성격유형 연구를 심화해 1943년부터 성격유형 진단 문항을 개발했고, 1962년 MBTI라는 이름의 성격유형진단 검사 도구를 발표했다. MBTI는 ‘마이어스-브릭스 타입 인디케이터 (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줄인 말이다. 즉, ‘마이어스와 브릭스의 유형 지표’라는 의미이다.
두 사람은 지역 사회 중심으로 MBTI를 보급하기 시작했고, 점차 입소문이 나면서 상당한 명성을 얻게 됐다. 이후 MBTI 학회가 만들어졌고, MBTI를 긍정적으로 보는 여러 심리학자들이 참여해 지속적으로 개선 연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0년 심혜숙 박사와 김정택 박사에 의해 ‘한국MBTI연구소’가 설립되었으며, MBTI 검사에 대한 한국 내 판권을 취득하여 한국어판 검사지 출판 및 전문가 교육을 수행하고 있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