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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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겁당의 문을 두드리는 자, 용(用)의 이치를 깨치리라

K-웹툰 속에서 한국의 전통적인 요소를 보여 주는 대표작이라면 〈미래의 골동품 가게〉가 있는데요. 이 작품을 자세히 더 파헤쳐 볼까요?

2022-08-08 김상희

도겁당의 문을 두드리는 자, ()의 이치를 깨치리라

미래의 골동품 가게속 영웅극 구조와 전통적 가치 복원의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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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툰 <미래의 골동품 가게>_네이버웹툰

625로 친어머니를 잃은 한 여자가 저만큼 가난한 남자를 만나서 딸 하나를 낳았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동네 사람들 몰래 도망치듯 이사한 쪽방에서 딸에게 먹일 쌀 한 톨이 없어 하루하루가 걱정이 태산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마을 야트막한 동산에 오르니 회색 눈에 쪽 찐 머리를 한 할머니가 나무궤짝을 엎어 놓고서는 애들 엄마라고 불러 세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사주를 알려줬지만,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좋은 점괘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21남이 보인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그 뒤로 나와 남동생을 얻은 어머니의 이야기는 불안한 인간 심리에 내재된 기이(奇異)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누구나 인생을 살다 보면 억울한 사연이 몸과 마음에 새겨지기 마련이다. 아무도 풀 수 없는 고해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서 신통한 영발로 다가올 꽃길을 얻고자 하는 마음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최근 각종 매체의 주목받는 만화와 웹툰을 살펴보면, 전통 민담과 설화를 통해서 냉정하고 경쟁적인 한국 사회에서 마음 둘 곳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의 원통함을 해소하고픈 염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른바 전설의 고향류의 괴담이 가진 권선징악과 사필귀정의 테마가 21세기식 사이다 서사식의 정의구현과 맞물리면서 원()과 한()의 매듭을 풀어내는 드라마틱한 스토리에 공감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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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함께>, 주호민 (출처_네이버웹툰)

 

원과 한을 관조함으로써 깨우치는 인생의 무상함

기실, 이우혁의 판타지 소설 퇴마록과 윤인완·양경일 콤비의 아일랜드신암행어사같은 판타지 액션활극 스토리의 히트로 인하여 전통 괴담을 소재로 한 퓨전 판타지 만화의 물꼬를 텄다면, 그 명맥을 유지한 것은 서글픈 비애감을 담은 에피소드로 독자들을 거대한 감동 속으로 몰아넣었던 주호민의 신과 함께와 같은 웹툰이었다. 그중 윤지운의 만화 파한집무명기를 위시하여 젤리빈의 묘진전, 어둠이 걷힌 자리에와 고사리박사의 극락왕생처럼 서정적 연출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웹툰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주인공의 관찰자적 시점으로 바라본 서로 다른 이야기를 옴니버스식으로 엮어서 속세의 무상함을 그린다는 것이다. 젤리빈의 어둠이 걷힌 자리에와 고사리박사의 극락왕생을 보면, 웹툰 속 주인공들이 에피소드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캐릭터들과 함께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러한 구조는 마치 TV 연속극 전설의 고향에서 억울하게 죽은 처녀 귀신의 사연을 듣고 그 한을 풀어 주는 고을 원님처럼 죽은 처녀 귀신을 주인공으로 삼되 고을 원님이라는 관찰자를 통해서 시청자들에게 애달픈 한풀이를 안심하고 즐길 수 있는 관람석을 제공한다.

젤리빈과 고사리박사의 웹툰 속 구조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쌓이고 엮인 편견과 불평등으로 생긴 비극이 수 세대가 지난 후 영매나 신물과의 기연(奇緣)으로 인해 풀리는 과정을 매회 다른 이야기로 선보인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허망한 속세에 대한 환멸을 드러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해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 선업을 쌓아야만 하는 인간의 숙명을 일깨워 준다. 이렇게 진중하고 현학적인 문제를 정서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주인공들이 적극적으로 사건 해결을 위해 개입하지 않고 비정한 속세에 비극적으로 삶을 빼앗겨야 하는 원혼들의 이야기에 그저 귀를 기울임으로써 독자들 또한 복잡다단한 현생 속 희로애락의 원리를 멀찍이서 들여다보게 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골동품 가게>, 구아진 (출처_네이버웹툰)

 

독특하게도 구아진의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이러한 전통문화 소재 웹툰과는 색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작품은 소위 고퀄의 재능낭비 작화 실력으로 오래 전부터 팬들의 원성(?)이 자자하기로 유명하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 전통 설화와 민담, 동아시아 유불도의 배경지식이 스토리 곳곳에 촘촘히 깔려 있어서 만화를 읽는 재미가 한층 더하다.

무엇보다도 미래의 골동품 가게의 매력은 악령과 싸우기 위해서 저승을 오가는 주인공 미래의 박진감 넘치는 액션과 더불어, ()과 귀()와의 대화로 비정한 속세를 관조하는 관찰자적 태도를 모두 견지(堅持)한다는 점이다. 미래의 탄생 이전부터 연화와 칠성, 그리고 수련이 스승인 바리만신의 가르침 아래 이매신과 백면에 맞서 싸우는 도입부는 앞으로 미래와 현오가 해결해야 할 사건과 연결되어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비범하게 태어난 미래가 연화와 칠성과 함께 무어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비밀은 오랜 이매신과의 악연으로 끝내 슬픈 결말을 맺고서 드러난다. 사랑하는 가족이 미처 전하지 못했던 따뜻한 애정이 미래에게 도달하고 나서야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새로운 장으로 들어선다. 이런 구성은 최고의 신력을 가지고 태어난 미래가 목숨을 위협하는 극강의 고난을 극복하고 또 다른 모험을 떠나는 영웅서사극과 다름이 없다. 한층 성숙해진 미래가 도겁당에 입성하면서 현오와 함께 맞서 싸울 이매신의 혈육 그리고 백면과의 대결이 이전보다 더 확장된 스케일의 판타지 액션 웹툰으로 그려질 것을 예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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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골동품 가게>, 구아진 (출처_네이버웹툰)

 

용의 이치를 깨친 영웅 미래, 이승과 저승을 질주하다

젤리빈의 어둠이 걷힌 자리에와 고사리박사의 극락왕생속 관조하는 주인공들의 객관적인 시점은 미래의 골동품 가게에서는 숙명적으로 영계와 인간계를 오가는 영매의 윤리와 자질로 진화한다. 미래가 영만에게 붙은 악귀를 미리 귀띔하지 못한 죄책감을 고백하자 연화는 서릿발 같은 꾸중으로 영매의 의무와 길흉화복의 이치를 설명한다.

기분이 좋으면 선한 일을 하고, 나쁘면 악한 일을 할 것이냐?”라는 호된 일침은 미래에게 인간을 돕고 원귀를 달랠 수 있는 신력을 지닌 자는 결코 순간적인 감정으로 행동해선 안 된다고 일깨운다. 그리고 담혜의 명()과 지혜의 광()을 설명하면서 명광의 이치로 길흉화복을 뛰어넘는 경지를 알려준다. 미래는 연화의 만물은 체()에 있는 것이 아닌 용()에 있다라는 말을 곱씹으며 명광의 이치를 터득하려는 영매로 거듭난다. 할머니의 가르침으로 성숙해진 미래는 선한 박대용의 횡재와 악덕 건물주와 그의 아들 현철의 말로를 비교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길흉화복을 제대로 다룰 수 있다면, 지금 당장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이제 하나씩 얻어가는 소중함과 즐거움을 알게 될 일들만 남은 것이고, 길흉화복을 제대로 다룰 수 없다면 세상 부귀를 다 가지고 있어도 이제 그것들을 하나하나 잃어 가며 한탄하고 슬퍼할 일들만 남았는데 길흉화복을 미리 안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라고 말이다.

어둠이 걷힌 자리에극락왕생이 짐짓 젠체하는 듯 흑백논리로 속 시원하게 풀어낼 수 없는 복잡한 삼라만상의 우주에서, 그보다 더 복합적으로 골치 아픈 인간들이 모인 속세를 겉만 보고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고 설파한다. 그러나 미래의 골동품 가게속 영웅 미래는 영계와 인간계를 질주하면서 극단적인 번뇌와 오욕칠정이 점철된 세상 속 중생들을 적극적으로 구원하고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조화와 공존을 직접 구현하기 위해 명을 걸고 몸을 던진다.

미래가 구묘령과 염사로 혜경과 가희를 보호하고 악귀와 싸워서 불행에 빠질 뻔한 사람들을 위기에서 구하는 이야기 구조는 돈과 권력으로만 기능하는 불합리한 현대 한국 사회가 사필귀정을 실현해서 권선징악의 도덕률로 누구나 공정하고 평등한 대우를 받는 전통적인 사회 가치의 복원을 의미한다. 뛰어난 신력을 지닌 미래의 태생적 특성과 그 힘을 올바르게 쓰기 위하여 용의 이치를 깨치려는 인성이 함께 어우러져 한편의 고전적 영웅서사시를 완성한 것이다. 나아가 뛰어난 작화와 빈틈없는 스토리를 통해서 한국적 그래픽노블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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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골동품 가게>, 구아진 (출처_네이버웹툰)

 

요즘처럼 어디에도 마음을 둘 곳 없이 답답하고 앞날이 막막한 나날들이 연속되면 하루빨리 이 고됨을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치고만 싶어진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가난한 집안에 시집와 배곯기를 밥 먹듯 했던 20대의 내 어머니와 학자금대출 상환과 좁아진 취업문에 제 몸 하나 뉠 그곳 없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지금의 20대의 눈물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돈과 명예가 없는 설움, 인성이 그릇된 사람과의 인연으로 생긴 원통한 눈물을 닦아 내기 위해서 신비한 힘을 빌려 그 근원을 찾고자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천지개벽하듯 하루아침에 전화위복을 바라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는 게 아니라고 미래의 골동품 가게속 미래는 말한다. 마치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함부로 서두르지 않듯 새옹지마의 시간이 반복되는 것이 인생이며 비록 그것이 불합리하게 보일지라도, 가족과 이웃, 공동체 구성원들을 선의와 신뢰로 대하는 선업을 쌓음으로써 얻는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이다. 갑갑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에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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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희

만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