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막 태어난 아이도 언젠가는 노년이 되듯이 모든 사람은 가까운 미래나 먼 미래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노년층에 속하게 된다. 노년(老年)의 사전적 의미는 ‘나이가 들어 늙은 때’를 말한다. 단지 평균 수명이 과거에 비해 몇 배로 길어짐에 따라 과거의 노년의 시작 시기와 현재의 그것이 많이 달라졌을 뿐이다. 게다가 한국의 경우 10년째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다음과 같이 늘어나고 있다. 2021년 기준 전체 인구대비 고령자 비율은 16.8%로 나타났다. 2005년 전체 인구의 9.2%에 불과하던 고령자의 비율은 2015년 13%, 2018년 14.4%, 2020년 16%, 지난해 16.8%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같은 기간 유소년 인구 및 생산연령인구 비율은 해가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1)
젊은 세대들에게 노인은 곧 자신의 미래임에도 불구하고, 노년층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잔소리만 많이 하는 꼰대 혹은 틀딱, ‘라떼는 말야’를 통해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존재, 나이를 내세워 때때로 무례한 행동을 하는 혐오의 대상, 젊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뺏는 골칫거리들이라는 인식들이 팽배해서 노인을 바라보는 젊은 층의 시선은 점점 더 싸늘해지고 관련 비하 용어는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물리적인 폭력만 없다뿐이지 정서적인 학대에 해당한다.
필자가 지금보다 젊었을 때 주변 어르신들로부터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아이고, 나이만 들었
지 마음은 20대랑 똑같다.”였다. 당시 필자는 그 말이 실감나지 않았는데 이제 이해하고도 남을 나이가 되었다. 그에 비해 우리의 인식은 나이가 들면 건강이나 안전을 생각해서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집에 가만히 있는 게 좋다’, ‘노년층은 도전이나 모험정신이 없는 사람들이다’ 혹은 ‘그 나이에 새로운 도전은 의미가 없다’, ‘OO을 하는 것은 남부끄러운 일이다’라고 하면서 노인들은 아무런 의욕과 관심이 없는 사람인냥 마음대로 재단해 버린다.
이런 여러 가지 배경에도 불구하고 TV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2013~2018)>, 유튜브 <박막례 할머니> 외에 다양한 유튜브 실버 콘텐츠들은 젊은 세대의 인식과 달리 젊고, 건강하며, 열정적이고, 도전적이며, 주체적인 노년층의 모습을 보여준다. 스마트폰이나 미디어 기기 사용을 어려워하는 노년층도 있지만 잘 활용하는 노년층은 문화센터나 지역센터에서 동년배의 미디어 사용을 돕는 강사로도 활동한다.
그렇다면 현재 MZ 세대에게 가장 핫(hot)한 콘텐츠인 웹툰에서는 노년층을 다루고 있을까? 있다면 그들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웹툰이 다루지 않는 소재가 없다고 할 정도로 그 폭이 매우 넓기 때문에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다. 이제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서 노년을 재현한 웹툰 몇 편을 살펴보고자 한다.
[출처] 카카오웹툰/강풀/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2007)> : 지금 여기에서의 사랑
강풀 작가가 같이 살던 자신의 할머니를 보고 구상한 노년의 사랑을 그린 웹툰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노년층뿐만 아니라 젊은 독자에게도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이 감동은 연극, 영화, 드라마로까지 멀티유즈(Multi Use)되어 소위 ‘찐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한다.
수많은 웹툰, 드라마, 영화에서 사랑은 가장 흥미롭고 매력적인 스토리 소재다. 특히 젊은이의 사랑은 매우 빈번하게 또 늘 아름답게 그려지는 반면 노년층의 사랑은 어색한 일, 부끄러운 일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서인지 가끔 다뤄지는 정도이다. 물론 요즘에는 노년의 사랑을 자신 있게 추진하는 사람들도 꽤 있지만 콘텐츠에서 다루는 노년의 사랑에 대한 인식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그래야 극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을 테니. 노년 부모의 한쪽이 사별했거나 이혼한 후 새로운 사람이 생기면 자식이나 주변 사람의 반응은 “동네 창피하게, 자식들(혹은 손주들) 보기 부끄럽게, 남사스럽게 뭐 하는 짓인지”라며 수군댄다. 혹은 노인 스스로도 “내가 왜 이러지 남보기 창피하게”, “죽은 아내(남편)에게 미안한데”라고 생각하면서 노년의 사랑에 대해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자식들이 부끄럽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아예 포기하기도 한다. 이것은 노인이 노인으로서의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자식의 부모로서, 손주의 조부모로서만 기능해야 한다는 희생 프레임에 갇히게 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오타바이를 타고 우유 배달을 하는 까칠한 노인 김만석은 길에서 우연히 파지를 잔뜩 실은 리어카를 끄는 송씨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츤데레 노인인 김만석은 투박한 태도로 송씨 할머니를 곁에서 도와주고, 송씨 할머니는 따뜻한 마음으로 그를 대한다. 또 다른 주인공인 장군봉 할아버지는 치매에 걸린 아내 조순이 할머니를 돌본다. 장군봉 할아버지는 출근할 때마다 조순이 할머니가 나갈까 봐 늘 자물쇠를 걸어 두고 나가는데 어느 날 깜박하고 잠그지 않고 출근하는 바람에 할머니는 집을 나가 길을 잃게 되고 김만석과 송씨 할머니는 잠시 그녀를 지켜 주게 된다. 장군봉 할아버지가 나타나면서 4명은 서로에 대해 알게 되고 친해진다.
송씨 할머니는 이름도 가족도 없이 외롭게 살아왔고 일찍 결혼했지만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고, 아이도 잃었던 아픔이 있다. 김만석은 자신의 아내가 위암에 걸렸던 것도 모른 채 늘 퉁명스럽게 대했고 아내가 사망하자 무척 후회했다. 이렇게 각자 아픔을 간직한 두 노인은 서로를 위하며 지낸다. 김만석은 이름이 없는 송씨 할머니의 이름을 송이뿐이라고 지어 준다. 할머니에 대한 그의 직접적인 사랑 표현이다. 장군봉 할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피해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어느 날 연탄을 피우고 조순이 할머니와 함께 조용히 세상을 떠나면서 할머니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한다.
흔한 멜로 드라마의 화면은 티 나게 세련되고 예쁘기 그지없으면 젊은 주인공들이 내뱉는 말들은 달콤하기 짝이 없다. 김만석과 송이뿐의 얼마 되지 않은 사랑이나 장군봉과 조순이의 곰삭은 사랑이 젊은이의 그것보다 화면상 시각적으로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겠지만 때론 투박하고 거칠게 던지는 그들의 대화에서, 그들이 은근히 서로를 챙기고 끝까지 함께하는 모습에서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의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한다. 지금 여기에서의 사랑이 있는 한 당장 죽어도 되는 나이는 그 어디에라도 없다.
[출처] 카카오웹툰/Hun&지민/나빌레라
<나빌레라(2016~2021)> : 일흔의 성장기
지민(그림) 작가와 Hun(글)작가가 함께 만든 웹툰 <나빌레라>는 꿈꾸고, 도전하고, 실천하는 한 노인의 성장을 보여주는 콘텐츠다. ‘할아버지’가 ‘발레’를 한다는 것을 사람들 대부분은 쉽게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마라톤, 축구, 배드민턴, 조깅 등은 할아버지들이 많이 하는 스포츠 종목이라 쉽게 그림이 그려지지만 할아버지 발레리노에 대해서는 의아해할 것이다. 하고 많은 스포츠나 예술 중에 왜 하필 발레일까? 그것도 일흔이나 돼서. 이제는 관절을 보호해야하고 무리한 움직임을 하지 말아야 할 때인데.
한평생 우체부로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자식들도 잘 키운 심덕출 노인은 현재 고물상에서 고되게 일하면서도 발레를 하고 싶다는 꿈을 꾸고 산다. 어느 날 부인과 자식들이 모인 가운데 발레를 하고 싶다고 말하자 막내 아들을 제외하고는 “점잖게 사시다가 갑자기 왜 그러냐”고, “창피하다”고 다들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며칠이 지나 심덕출이 유니타드(발레복)를 입고 나타나자 민망한 옷을 입은 아버지를 보고 큰 아들이 “아버지로서 체통을 지키지 않는다”, “집안 어른으로서의 위신은 생각 않기로 했냐”고 언성을 높이고 발레를 배우려는 아버지를 말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네 발레 학원을 찾아 나선 심덕출은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가 발레를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발레 단장님 역시 칠순의 노인이 발레를 배우겠다는 말에 의아해하고, 선뜻 받아들이지 않는다. 날이 갈수록 성실하게 임하는 심덕출의 모습에 단장은 그를 받아들이고 반항적인 제자인 채록에게 심덕출의 레슨을 맡긴다. 심덕출은 가정 형편이 좋지 못하고,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채록이 그를 까칠하게 대하더라도 늘 웃으며 친절하게 대한다. 심덕출은 발레를 잘하기 위해서 매일 기초 체력을 다지고 하루하루 했던 것들을 수첩에 기록한다. 알츠하이머 초기여서 의사가 권했던 방법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던 것이다. 마침내 채록과 가족이 그의 병을 알게 되면서 그를 진지하게 대하게 되고 발레를 향한 그의 열정을 응원하게 된다. 결국 채록과 함께 2인무를 펼치게 되는 심덕출은 혼신을 다해 발레를 향한 불꽃을 터뜨린다.
늙음과 세월에 굴복하지 않는 심덕출은 “선생님! 나이가 들면 무언가 원한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아요. (중략) 이제 와서 굳이 새로운 걸 접하기가 두려운 거지요. 사람들도 그걸 알아요. (중략) 그 정도는...... 그런데 말입니다, 선생님! 그렇다고 해서 그 뜻이 작은 건 아니랍니다.”라는 그의 뜻을 크게 실천한다. 나이가 듦에 따라 그의 몸은 나날이 쇠약해지지만 그의 열정과 의지는 발레를 배우면서 무대에 오르기까지 서서히 성장한다.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은 하고 싶은 것을 시도하는 그 순간부터가 아닐까.
[출처] 카카오웹툰/이림&김종욱/노인의 집
<노인의 집(2018~2020)> : 참 어른이 사는 곳
김종욱(그림) 작가와 이름(글) 작가의 <노인의 집>은 강태신을 통해 좋은 어른, 참 어른의 모델을 제시한다. 노인은 ‘나이가 많이 들어 늙은 사람’을 말한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물리적으로 나이가 들면 노인이 된다. 어른은 ‘다 자란 사람’이라는 뜻도 있지만 ‘다 자라서 자기의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나이가 들어도 자기의 일에 책임을 질 수 없는 사람은 노인이기는 하지만 어른은 아니라는 의미다.
<노인의 집>에 사는 강태신은 전직 교사 출신으로 아내의 사고로 인해 큰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워낙 인품이 좋아서 동네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고, 그들은 혼자 사는 강태신을 늘 걱정하며 다각도로 도와준다. 어느 날 영민이라는 15세 소녀가 그의 집에 불쑥 들어오게 되면서 빈틈없는 그의 시공간과 생활에 한줄기 빛과 같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아픔을 안고 살아가므로 그의 얼굴은 늘 어두웠지만 자신과는 반대 지점에 있는 영민과 생활하면서 어느 새 얼굴에 미소가 드리우게 된다.
강태신은 마을 어른이기 때문에 내세우는 권위의식이 없다. 모든 사람들에게 예의 있게 대하고 어린 영민에게도 한동안 말을 놓지 않았을 정도다. 그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배려하고 도와줄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고, 티내지 않고 묵묵히 실천한다.
예전에 노인은 공경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의 지혜가 젊은 세대에게 효용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젊은이는 그것을 더 이상 노인에게 묻지 않는다. 검색하면 다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태신 같은 어른이 있다면 살면서 문제가 생겼을 때 물어 보러 가고 싶을 것 같다. 그는 검색 결과 이상의 지혜와 위로를 주기 때문이다.
[출처] 네이버웹툰/솔녀/웰캄투실버라이프
<웰컴투실버라이프(2020~2021)> : 우리는 이렇게 소통해요
솔녀 작가의 <웰컴투실버라이프>는 소통과 힐링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와 다를 바 없는 두 주인공의 모습은 매우 평범하다. 자식과 손자를 사랑하고, 뭐든지 더 해 주고 싶어 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부모님과 살던 집이 직장과 멀어서 가까운 조부모님 댁에서 살게 된 손녀와 할아버지, 할머니의 소소한 일상을 그린 웹툰으로 젊은층과 노년층이 맞닥뜨리는 일상의 크고 작은 문제를 흥미롭고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할아버지를 도와주는 손녀, 아침식사 시간과 음식에 있어서의 갈등, 노후의 건강문제, 배우자와의 사별 등을 회차별로 보여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티격태격하기는 하지만 귀엽고 스윗하게 서로를 위한다. 표준말을 쓰고 미사여구로 치장된 언어를 써야 소통이 잘되는 것이 아니라 소통은 서로를 위하고 챙겨 주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지 싶다. 이렇게만 살아도 행복한 노후가 아닐까.
노년층을 소재로 한 혹은 노인을 위한 웹툰은 부족한 편이다. 그러나 부족하나마 웹툰으로 제작됨으로써 다른 세대들이 노년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사례에서 다룬 웹툰들은 노년의 사랑, 노년의 꿈과 성장, 진정한 노년의 모습, 그리고 노년의 소통을 보여주고 있다. 웹툰들의 댓글을 보면 노년층의 생각이나 꿈을 미처 알지 못했는데 웹툰을 통해 그것들을 알 수 있어서 그들을 향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의견들이 있다. 현재 노인의 고독사나 저소득 문제가 이슈인 만큼 그들의 홀로서기와 복지에 관한 웹툰도 만들어져서 노년층이 소외받는 대상이 아니라 어린이, 청소년, 20대 이상의 성인처럼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평범한 구성원으로서 인식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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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협신문, 저출산 고령화에...대한민국 인구 처음으로 줄었다 http://www.doctor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55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