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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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과 독자를 빼고도 웹툰 내 청소년의 얼굴은 존재한다

청소년이 등장하는 웹툰도 있지만 청소년 작가가 그린 작품들도 있습니다. 청소년 작가가 그린 작품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함께 알아봅시다.

2022-10-04 최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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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도 독자도 아닌 청소년들

청소년과 학생은 동의어가 아니다. 당연한 사실인데 잊곤 해서 한 번씩 자각할 때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청소년과 웹툰에 관해 이전에 썼던 두 편의 글1) 모두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학원물(학교를 배경으로 학생이 주인공인 작품군)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청소년을 학생과 동일시하는 착각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되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변명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 주류의 장르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우선됐던 면도 있긴 있었을 것이다. 판타지가 아니고서야 10대 주인공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 작품은 드물고, 사실 판타지에서조차 학생 신분인 인물들이 많다. 그러나 왜 학원물이 워낙 주류의 장르가 되었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출처] 네이버웹툰/고등단편.zip/ 땡글 외 20

 

모든 청소년이 독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작가로 활동 중인 청소년이, 혹은 청소년 시절부터 활동해 온 작가들이 있는데 그 사실 역시 종종 놓치게 된다. 네이버웹툰의 단편 기획전은 늘 반가운 마음으로 찾아 읽지만 <고등단편.zip>이 유독 반가웠던 것은 그래서다. 작가로서의 청소년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만큼 아쉽기도 했다. 고등단편집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고등학생 청소년만을 대상으로 한 탓이다. ‘대학만화 최강자전네이버웹툰 최강자전으로 이름을 바꿔 대학생만이 아니라 누구나 참가할 수 있게 개편된 것을 생각하면 더욱 아쉽다. 댓글 반응 역시 마음에 걸렸다. 칭찬과 응원의 말에 담긴 진심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나 이렇게 잘하다니 정말 고등학생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다는 감탄의 말을 곧이곧대로 칭찬으로만 읽기 어려웠다. 경험으로 판단하건대, ‘그 나이치곤 잘했다거나 어른만큼(어른보다) 잘했다는 말은 온전히 1인분의 칭찬이 되지 못한다. 그 의심의 에너지까지도 작품을 감상하는 데 할애하거나 차라리 이런 청소년도 있다는 쪽으로 결론지어 줬다면 여러모로 좀 더 풍요로운 감상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이런 일들을 생각하면 청소년=학생=독자라는 도식에 쉽게 빠지고 마는 이가 나만은 아닌 게 분명하다.

이처럼 좁은 도식에 자주 갈증을 느끼다 보니, 기회가 될 때마다 청소년과 웹툰에 관한 새로운 논의를 쌓아 나가겠다고 은밀히 도모하게 된다. 물론 청소년을 포함해 아무도 내게 그러라고 부탁도 강요도 한 적은 없지만 말이다. 아쉬운 얘기를 잔뜩 늘어놓았으니 남은 지면은 갈증을 해소할 만한 이야기를 하는 데 쓰고 싶다. 학교 밖의 청소년2) 주인공과 작가로서의 청소년을 알게 하는 작품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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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웹툰/루커피쳐/효정

 

학교 밖 청소년과 학교 안 청소년의 만남, <루커피쳐>

효정 작가의 <루커피쳐>는 얼핏 보면 익숙한 이야기다. 고등학생 남자주인공이 등장하며 청소년 주인공들의 풋풋한 연애 이야기를 담았고, 진로에 대한 고민들을 또박또박하게 그려 내었다. 섬세한 학원로맨스 혹은 학원성장물에서 자주 발견되는 풍경이다. 그러나 얼핏이라는 말에서 예상하듯 가까이 들여다보면 사뭇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여자주인공 지수가 자퇴를 했기 때문이다. 두 청소년의 성장과 로맨스를 담았지만 그중 학생은 한 명뿐이다. 그래서 <루커피쳐>는 학원로맨스가 아닌 로맨스 태그로 분류된다.

동화 작가라는 꿈에 몰두하기 위해 학교를 나온 지수가 불안해하면서도 결국 자신의 길을 단단히 다져 나가는 모습이나 도원과의 거리가 조심스럽게 좁혀져 가는 과정도 보기에 즐겁지만, 이 글에서 특별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학교 밖의 청소년 주인공이 학생인 청소년들과 만나면서 빚어지는 순간이다. 서로 다른 처지가 부딪혀 일어날 수밖에 없는 때때로의 어색하고 미묘한 순간들을 섬세하게 그려 냈다.

예를 들어 가세가 기울면서 할머니가 계신 곳으로 온 지수가 당연히 전학생이 될 거라 도원이 착각하는 장면이 그런 순간이다. 가까운 자신의 학교에 다니지 않고 그럼 어딜 가냐며 의아해하는 도원에게 지수는 머뭇거리다 민망한 표정으로 자퇴했음을 밝힌다. 지수의 반응에 도원도 당황한다. 이런 장면이 자주 반복된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은아는 지수에게 자신이 미래의 후배가 아니냐며 농담을 던진다. 지수는 자퇴했다는 사실까지 밝히지는 않지만 그 학교에 다니지 않기에 선배가 아니라 정정한다.

청소년은 곧 학생이라는 도식이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 속에서 작품 곳곳에 맺히는 말줄임표가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지수가 자퇴했다는 사실을 밝힐 때, 당황한 도원과 지수 사이에 정적이 흐를 때, 당연히 학생일 것이라 오해받는 순간 말을 삼킬 때마다 그곳엔 말줄임표가 놓여 있다. 예외적 존재로서 자꾸만 누락되고 오해받는 지수와 악의가 없음에도 실수하고 마는 다른 인물들이 마주치는 어색하고 멋쩍은 순간들이 말줄임표를 통해 균열처럼 새겨진다. 학교를 벗어난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기에 피할 수 없는 순간들이 세밀하게 포착되었다.

이 작품의 또 다른 미덕은 그런 어색함을 그려 내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처지의 인물들이 친해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엮어 냈다는 점이다. 특히나 학원물이라면 취하지 않을 방식으로 시간과 공간을 활용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대개 학원물은 학교를 주요한 배경으로 삼으며 학사 일정을 따라 시간을 운용하고는 하지만, 지수의 시점을 경유하는 <루커피쳐>에서는 학교가 주요한 공간이 될 수 없다. 두 번의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지수와 중간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도원의 시간은 비슷한 듯 다르게 흘러간다. 도원이 학기를 마치고 여유 있을 때 지수는 시험을 준비해야 하고, 친구들이 새 학기의 시작으로 들떠 있는 3월에 지수는 4월에 있을 두 번째 시험을 상기하며 긴장으로 몸을 굳힌다. 학교는 학생에게만 허가된 공간이기 때문에 함께 공부하기 위해서는 도서관이나 카페 등 다른 장소를 모색해야 한다. 축제나 수학여행 역시 그렇다. 보통 학원물에서 두 행사는 과정 하나하나가 상세히 묘사되곤 하지만 <루커피쳐>는 학생 인물들만의 에피소드인 축제 준비와 수학여행 과정을 과감히 생략한다. 대신 방문객으로서 학교를 방문한 지수를 맞이하는 친구들의 모습이나 수학여행을 떠난 도원을 기다리는 지수의 시간으로 그 자리를 대신한다. <루커피쳐>의 시공간이 지수와 도원 모두에게 알맞은 방향으로 조정되는 과정은 학생의 것으로만 함몰되어 있던 청소년이라는 범주를 보다 포괄적인 쪽으로, 포괄적이기에 정확한 쪽으로 수정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기에 의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조금 더 의미 있게 읽혔던 것은 작품을 그린 효정 작가가 청소년 시절부터 작품 활동을 해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네이버웹툰의 베스트도전코너에서 <쁘아쁘>라는 작품을 통해 처음 접했다. 학생 청소년의 일상을 담은 학원로맨스 작품이었는데, 말랑말랑한 그림체와 함께 작가 스스로 고등학생이라 밝혔던 사실이 기억에 남는다.3)고등학생이 이런 작품을 그리다니 대단해! 고등학생 맞아?’ 같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니지만, 학교생활만으로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텐데 애정과 품이 많이 드는 별도의 생활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루커피쳐>의 인물들, 그리고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학생과 학교, 독자라는 말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청소년들의 고민과 생활을 한 폭 넓게 담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오래 기억에 남을 작품이다.

자기만의 눈금을 찾아나가는 시간, <학교를 떠나다> <열아홉, 유럽> 그리고 <이십툰>

학교 밖 청소년의 이야기를 풀어 나간 작품이 또 있다. 버선버섯 작가의 <학교를 떠나다><열아홉, 유럽>, <이십툰>은 열일곱에 학교를 떠난 뒤의 삶을 담은 에세이툰이다. 학생의 신분을 벗고 성인이 되기 전부터 자전 만화를 그렸기에 작가 본인이 청소년 주인공인 동시에 청소년 작가였다. 직접적으로는 첫 작품인 <학교를 떠나다>가 학교를 떠나 자기만의 터전을 만들어 나간 이야기이지만, 조금 넓게 보면 그 이후의 <열아홉, 유럽><이십툰>까지도 하나하나 그 과정의 일환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출처] 카카오웹툰/학교를 떠나다/버선버섯

 

<학교를 떠나다>는 자퇴를 실행하는 순간에서 이야기가 출발한다. 샴페인이라도 터뜨리듯 홀가분한 얼굴로 자퇴를 해내고 오랫동안 자퇴를 염원해온 사연을 전한다. 어른들은 언제나 다니다보면 좋아질지도 모른다며 결심을 유보시켰지만, 자신은 유치원 때도 초등학생 때도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언제나 학교가(유치원이) 싫었다고 말한다. 타인의 강요로 유예된 미래의 행복이 아닌 불안도 만족도 자신이 결정한 현재의 것을 마주하기 위해 자퇴를 선택한다. 물론 스스로 선택했다고 해서 의연하기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작가는 학교를 떠나 많이 헤맨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초조해하고 친구들의 권유로 만화 그리기를 시작하기도 하며, 더듬더듬 학교 밖의 일상을 빚어 나간다. 그 과정이 <열아홉, 유럽>에서도 이어진다. 학교가 부여하는 학년이라는 눈금이 거둬진 매일의 삶은 자유로운 만큼 막연하기도 해서 또 다른 불안과 초조함을 안긴다. 압박감에서 벗어나고자 훌쩍 유럽으로 향한 작가는 자기만의 여행 방식을 찾아가며 열아홉의 시간을 유럽에서의 기억으로 채운다. 그 과정에서 잊고 있던 자기만의 삶의 속도를 다시금 되새겨 보기도 한다.

 

[출처] 숨쉬는 책공장/열아홉, 유럽/버선버섯

 

<루커피쳐>가 학교 밖 청소년과 학교 안 청소년의 교집합과 마찰면을 그려 낸 작품이라면, 버선버섯 작가의 작품들은 여집합에 가깝다고 거칠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를 떠나다> 전반부를 통해 내내 학생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이질적이었는지 고백하는 모습이 학생=청소년이라는 도식에 대한 여집합을 그려 내는 것처럼 읽힌다. 같은 작품의 후반부와 <열아홉, 유럽>에 기록된 이야기 역시 학교라는 공간을 도려낸 뒤 그 여집합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더는 강제된 시간표가 없는, 등교도 수업도 교복에 대한 의무도 제거된 자리에는 소속이 없는 개인으로서 자신의 일상을 꾸려 나가야 하는 책임과 창작 활동이자 경제 활동으로서 작가의 삶을 고민해야 하는 숙제가 들어서 있다.

작가는 자신의 인생을 자퇴 전과 후, 돈 벌기 전과 후라는 두 가지 기점으로 나눈다. 20, 법적인 성인이 된 것 자체는 기점이라 할 만큼 대단한 일로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사실은 모든 청소년이 학생은 아니라는 사실만큼이나 당연하지만 새삼스러운 또 하나의 사실을 상기시킨다. 바로 모든 사람의 생의 전환점이 규정된 대로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법적으로 성인이 되는 때를 기점으로 삶이 나뉘는 사람도 그야 있기는 하겠지만, 당연히 아닌 사람도 있다. 도저히 학교가 맞지 않아서 학교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출처] 숨쉬는 책공장/이십툰/버선버섯

 

삶에 대한 질문들을 툭툭 던지고, 자주 혼란에 빠지고, 자기와의 대화를 반복하는 장면이 무척이나 많다. 빼곡한 질문과 대답을 옮겨 적느라 그림보다 문장이 앞서는 때도 있다. 고민이 참 많은 사람이고, 그 고민을 자기만의 문체와 그림체로 남기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술렁거리는 질문이 열일곱 학교에서도 열여덟 학교 밖에서도 열아홉 유럽에서도 스물이 되면서 독립해 마련한 혼자만의 집에서도 비슷한 속도와 밀도로 이어진다.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의 일상에 진입하며 겪는 좋고 싫은 일들을 그려 낸 <이십툰>이 이전의 두 작품과 아주 다르지는 않다는 사실이, 그 자체로 작가만의 궤적을 증거한다고 말하고 싶다. 용기를 내 규격 밖으로 나온 사람이 그보다 더 큰 용기와 성실성을 발휘해 자기만의 궤적을 그려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음이 반갑다. 이런 풍경을 더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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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윤주, 15금과 19금 사이, ‘수위 인플레이션을 보여주는 리트머스지, 지금, 만화11, 한국만화영상진흥원, 2021. 최윤주, 웹툰에서 청소년의 자리는 어디인가 : 학원물 웹툰을 중심으로. 황해문화114, 2022.

2)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표현은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을 예외적인 존재로 낙인하기에(학교 안 청소년이라는 표현은 없으므로) 문제적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하고 나 역시 그 같은 문제의식에 동감하는 바이나 학원물외의 작품, 학생이 아닌 주인공을 다루는 웹툰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해당 표현을 썼다.

3)  해당 작품은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삭제된 게시글에 담겨 있던 개인 정보를 언급하는 것이 우려돼 작가 본인에게 따로 허락받았음을 노파심에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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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주

만화평론가
2021 대한민국 만화평론공모전 대상
2019 만화평론공모전 신인부문 대상, 2020 만화평론공모전 기성부문 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