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속에 표현되는 한국인의 저승관
△ <신과함께>, 주호민 (출처_네이버웹툰)
한국인의 이승과 저승
어느덧 높은 기온과 습한 날씨로 허덕이고 많은 비로 힘들어하던 여름이 지나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왔다. 예전에는 해마다 여름이면 ‘납량특집’이라는 기획으로 ‘전설의 고향’ 같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프로그램들이 성행했었는데 최근에는 듣기도 쉽지 않고 보기도 어렵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이 귀신같은 존재보다 더 무섭고 싸늘하게 느껴지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전에 보이던 납량특집의 단골손님은 귀신이었다. 귀신을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에 검색해 보면 ‘사람이 죽은 뒤에 남는다는 넋’이라고 나온다. ‘넋’을 흔히 ‘혼’이라고도 부르는데 과학적으로 증명할 방법은 없지만 육체에 깃들어 있는 ‘자아’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우리 문화는 죽음 뒤에 넋이 삶을 넘어 이어 가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생의 삶을 ‘이승’이라고 부르면서 죽은 뒤에 가서 사는 세상은 ‘저승’이라고 일컬었고 죽은 이의 넋을 다른 세상으로 인도하는 안내자를 ‘저승사자’라 명명하며 일상에서 보기 힘든 검은 도포를 입은 형상으로 그려 냈다.
저승은 하나의 세상이기에 이승의 왕과 같은 ‘염라대왕’이라는 지배자가 있다고 믿었으며 특히 염라대왕은 죽은 이를 생전의 선악으로 심판한다고 생각하였다. 중요한 부분은 현실에서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실의 삶은 죽음의 과정을 통해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연결되고 이승에서의 행동과 결과가 심판의 단계를 거처 지옥의 형벌이든 윤회의 삶이든 다른 무언가로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뜻이다. 죽음 이후의 세계인 한국인의 저승은 이승의 연결선 상에 있는 것이다. 특히 죽음에 대해 ‘돌아가셨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끊임없는 윤회의 개념으로 삶과 죽음을, 이승과 저승을 잇고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웹툰에 나타나는 전통적 저승관
이러한 한국인의 저승관은 웹툰의 소재와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주요 정서로 사용된다. 2010년에서 2012년까지 연재된 주호민 작가의 웹툰 <신과 함께: 저승편>은 이승과 저승이 죽음의 과정으로 연결되는 한국인의 저승관이 잘 나타나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평범한 회사원 김자홍이 간질환으로 사망하여 저승 삼차사와 함께 저승열차를 타고 초군문에 도착 후 염라국 국선 진기한 변호사와 함께 49일 동안 7개의 지옥에서 재판을 받는 내용이다. 재판의 내용은 이승에서 살면서 저지른 일들에 대한 것인데 여기서 눈길을 끄는 재판이 송제대왕의 한빙지옥이다. 타인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든 자를 한빙협곡에 가두는 지옥이 한빙지옥인데 부모의 흉부 x-ray 사진을 통해 죄를 심판한다. 주인공 김자홍은 부모보다 먼저 요절함으로 부모의 가슴에 대못이 박히게 한 죄로 기소될 위기에 처하지만 진기한 변호사의 임기응변으로 무죄 판결을 받는다. ‘부모보다 먼저 죽은 게 죄다’라는 웹툰의 스토리는 죽음에도 순서가 있어야 한다는 우리 문화의 정서가 묻어난다.
△ <신과함께: 저승편>, 주호민 (출처_네이버웹툰)
또 웹툰 <신과 함께: 저승 편>에는 김자홍의 이야기와 더불어 저승열차에서 도망친 원귀인 유성연 병장이 또 다른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룬다. 도망친 원귀 유병장을 잡은 저승 삼차사의 덕춘은 유병장이 어머니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하여 유병장은 어머니의 꿈속으로 들어가서 걱정하는 어머니에게 병장에서 하늘나라 장군으로 특채로 뽑혀 진급했다면서 안심시키고 저승으로 가 초군문에서 49일 동안 재판을 변호할 염라국 국선변호인 진기한 변호사를 만나면서 <신과 함께: 이승편>이 시작된다. 죽음에도 순서가 있어야 한다는 ‘효(孝)’라는 가치관이 한국인의 저승관에 더해지는 것이다. 효는 죽음을 뛰어넘는 가치이면서도 죽음을 대하는 신성한 자세이다. 서양의 종교는 신을 숭배하지만 우리의 믿음은 조상을 기리는 것이다. 숭고한 존재라는 미지의 신보다 자신의 근원인 조상신을 봉양하는 제사와 차례가 더욱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이승과 저승의 연결성에 기인하는 것이며 죽음을 뛰어넘는 가치이다.
웹툰에서 보이는 저승관의 새로운 접근
한국인의 전통적 저승관은 죽음으로 이승과 이별을 고하고 새로운 세계인 저승으로 이어진다. 이승은 이제 돌아갈 수 없는 곳이며 저승에서 천당이 되었던 새로운 윤회를 기다리건 지옥의 형벌을 견디든지 해야 한다. 특히 이승에서의 삶에 대한 책임을 묻는 지옥의 형벌에 대한 생각은 ‘권선징악(勸善懲惡)’, ‘사필귀정(事必歸正)’, ‘인과응보(因果應報)’ 등의 말로 잘 표현된다. 하지만 오늘날은 ‘권선징악’, ‘사필귀정’, ‘인과응보’보다 ‘유전무죄(有錢無罪)’, ‘갑질’ 등으로 얼룩져 있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고 이승에서도 심판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하다. 당장 힘 있고 돈 있는 자들이 이렇게 저렇게 빠져 나가는 행태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일들에 대한 판타지로 보이기 시작한다.
△ <내일>, 라마 (출처_네이버웹툰)
한국인의 저승관의 개념은 연결이다. 전통적 저승관에서 죽음으로 간 저승은 이승과 구분된 또 다른 세계일 뿐이다. 하지만 최근 보이는 저승은 이승을 걱정하고 이승에서 지옥을 보여 주고자 한다. 2017년 연재를 시작한 라마 작가의 웹툰 <내일>은 자살로 인해 갑자기 늘어난 저승의 인구를 걱정하는 저승 독점기업 주마등이 과거에 저승사자라고 불리던 특별 위기관리팀 직원들과 실수로 혼수상태에 빠진 주인공 최준웅으로 하여금 사람들을 살리는 내용이다. 웹툰 <내일>은 자살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살리고 자살에 이르게 만든 이들에게 똑같은 고통을 선물한다. 자살에 대한 개념을 ‘죽고 싶다’ 가 아닌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로 인식하면서 잘못한 이들에게는 벌을 힘들게 살아 온 이들에게는 위로를 준다. 상을 받아야 할 누군가에게는 저승에서 마중 나와 도열하는 모습으로 이승에서 받지 못했던 영광을 돌려주기도 한다. 웹툰 <내일>의 제목은 누군가에겐 살면서 갖고 싶은 너무나 소중하고 그리운 ‘내일(tomorrow)’이고 특별 위기관리팀에겐 그 ‘내일’을 지키고 돌려주는 ‘나의 일’이라는 중의(重義)적 표현이다.
△ <어게인 마이 라이프>, 도경&선용민&이해날 (출처_카카오웹툰)
여기에 더해 죽음은 또 다른 형태의 이야기로 보여지는데 저승이 아닌 곳에서 시작하는 삶이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연재된 이해날 원작, 도경 각색, 선용민 그림의 웹툰 <어게인 마이 라이프>는 대한민국의 절대 권력자 조태섭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검사 김희우가 죽음을 당하면서 만난 저승사자에게 한 번의 삶을 더 받으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 내용이다. 18세의 나이로 돌아간 김희우는 자신의 전생의 기억을 바탕으로 미래의 사건들을 이용해 조태섭을 심판한다. 김희우가 죽음에서 만난 저승사자는 ‘당신을 살려 줄테니 조태섭을 꼭 잡아 주세요.’ 라고 제안을 하면서 ‘그에게 이승에도 지옥이 있다는 걸 보여 주세요.’ 라고 말한다. 웹툰 <내일>에서 저승이 직접 이승에 개입하면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웹툰 <어게인 마이 라이프>는 저승으로 데려갈 주인공에게 기회를 제공하여 현실을 바로잡는 기회를 준다. 웹툰 <어게인 마이 라이프>와 같은 스토리를 요즘 ‘귀환(歸還)’, ‘환생(還生)’, ‘전생(轉生)’ 등의 용어로 많이 접할 수 있다. 죽음 이후에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귀환 또는 회귀, 다시 자신으로 태어나는 환생, 다른 누군가의 몸으로 태어나거나 타인의 몸에 깃드는 전생 등 죽음 이후의 세상을 바라 보는 방식이 저승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혹자는 웹툰 <신과 함께>, 웹툰 <내일>은 전통적인 저승관을 기반으로 변주의 형태로 했다고 말하면서도 웹툰 <어게인 마이 라이프>과 같은 이야기에서는 저승관과 관계없는 판타지라고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누가 죽음 이후의 세계를 보았으며 그 너머에 있는 진실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염라대왕이 심판하고 검은 도포를 입은 저승사자는 판타지가 아니라 자신할 수 있을까?
저승은 죽음 이후의 세계이다. 결국 저승관이란 ‘죽음 이후에 어떻게 되는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예전의 한국인은 죽음으로 이승의 삶이 끝나면 넋이 저승으로 가서 삶에 대한 심판을 받아 상과 벌로 윤회와 지옥을 경험한다고 믿었다. 그 누구도 본 적은 없지만 이를 통해 이승에서 선하게 살아야 한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 가운데 효를 으뜸으로 칭하고 조상신을 섬기면서 죽음 이후의 저승을 준비하였다. 무엇보다 이승에서 죄를 지으면 저승에서 벌을 받는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오늘날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이 법 앞에서 평등하지 않고 죄가 있어도 물을 수 없는 불합리한 모습을 보면서 저승에서 벌을 받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러한 시대상은 이승에서 꼭 죄에 대해 합당한 벌을 받는 모습을 보고 싶은 심리를 일으켜 심판과 징벌이라는 저승의 현실 개입을 바라는 웹툰의 저승관과 함께 귀환, 환생, 전생 등의 새로운 시점으로 죽음 이후의 세계관을 만들어 가고 있다.
문화는 지역적 연고를 함께하면서 세계관, 가치관,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시대와 정신이 변모하고 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문화가 자리잡을 수도 있다. 오늘 한국인의 저승관이 내일의 저승관과 같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웹툰에서 그려지는 새로운 저승에 대한 개념과 생각들이 먼 훗날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