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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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청춘들의 밥값의 무거운 의미

'치즈' 작가의 <백수세끼>와 '이자혜' 작가의 <밀알의 양식을 주시옵고> 속에서 그려지는 20대 청춘의 모습과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알아봅니다.

2022-10-04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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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있어서 밥값의 무게만큼 무겁고 비싼 것이 또 있을까? 우리에게 밥값을 한다는 건 호구지책의 해결만을 뜻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회와 사회가 함께 뒤섞여 사는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내 한 몸을 내 힘만으로 거둬 먹어야 한다는 냉정한 사회적 요구와 책임도 담고 있다.

최근 미슐랭스타, 먹는 인생과 같이 과거 오무라이스 잼잼이나 역전! 야매요리처럼 음식 소재 웹툰이 다시 관심을 얻으면서 미식행위에 좀 더 심오한 설정과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 중 백수세끼밀알의 양식을 주시옵고는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에서 밥값을 하기 위해 온 몸으로 구르는 20대 취준생과 직장인의 애환을 음식 웹툰 속에 담아냈다.

 

취준생의 허기진 결핍을 그린 백수세끼

치즈 작가의 백수세끼는 대학을 졸업한 뒤 오랫동안 백수생활을 하는 재호가 여자친구 수정과 헤어지면서 시작한다. 이미 직장인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는 수정은 오랫동안 백수로 지내는 재호가 멀게만 느껴진다. 서로에게 무심한 말들이 오가는 나날들 후에는 필연적으로 이별이 이어졌다. 그리고 재호와 수정은 과거 둘이서 함께 먹었던 음식으로 지나간 사랑과 부족했던 자신들에 대해 돌아보기 시작한다.

백수세끼속 음식들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먹어 봤을 법한 것들이다. 치킨으로 1화를 시작하면서 라면, 떡볶이, 김치볶음밥과 같은 서민적인 요리들로 가득하다. 재호가 먹었던 이 음식들은 수정과의 추억 어린 음식일 뿐만 아니라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 자주 찾을 수 있는 부담 없는 요리들이다. 이런 요리들의 나열들이야말로 백수세끼가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일 것이다.

재호가 수정과 헤어진 후, 패스트푸드점의 알바를 하면서 보내는 하루를 수정의 일상과 분할 컷으로 연출된 15소시지야채볶음이나, 냉장고 속 계란 한 판을 다 먹을 때까지 취업에 성공하지 못한 이야기를 그린 18간장 계란밥에서 취준생의 서글픈 하루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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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웹툰/백수세끼/치즈

 

백수세끼속 취준생 혹은 사회초년생의 어려움은 군대를 제대하고 나온 20대 한국 남자들라면 한 번쯤 겪는 통과의례다. 대학생이 되면 연애를 하리라 마음먹지만 어리바리 입대해서 제대하면 어느 새 대학 졸업반이 되고, 취업문에 통과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다 보면 백수세끼의 재호처럼 초라한 백수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등장인물의 다소 얄팍한 행동패턴과 자극적인 갈등 중심으로 사건을 이끌어 가는 뻔한 이야기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백수세끼가 큰 사랑을 얻은 이유는 취준생의 눈물로 젖은 밥 한 숟갈의 의미를 소박하게 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취업에 성공하기 전의 재호는 늘 창밖에서 회사 출입증을 목에 걸고 바삐 움직이는 직장인들을 선망한다. 그들의 분주함이야말로 사회적으로, 인간적으로 부족한 자신을 채워 주고 완성시킬 필수요소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옆 테이블이나 식당 안 음식들은 모두 입 안에 침이 고일 만큼 먹음직해 보인다. 재호의 선망은 곧 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간상의 완성이며 그런 이상적 인간이 되기 위해선 올바른 인성보다 높은 연봉의 직장, 잘 빠진 자동차, 서울 한강뷰 주택 소유 여부가 최우선으로 평가받는다. 그런 인간상이 되기 위한 첫걸음으로, 고정 수입이 보장된 직장인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재호의 결핍이 맛있는 음식을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허기진 모습으로 그려진다. 백수세끼에서 배고픈 재호가 바라보는 음식은 20대 취준생들이 꿈에 그리는 완성된 인간형의 상징이다. 밥값을 하고 싶어도 그 기회마저 획득할 수 없는 재호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일컫는 요즘 비정한 사회 속 음식은 꿈과 능력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은 그림의 떡인 셈이다.

 

가난한 사회초년생의 다시 만난 세계, 밀알의 양식을 주시옵고

미지의 세계로 화제를 몰고 왔던 이자혜 작가의 신작 밀알의 양식을 주시옵고는 여자 아싸 취준생이 직장인이 되었을 때 백수세끼20대의 결핍을 어떻게 채워 가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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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북스/밀알의 양식을 주시옵고/이자혜

 

밀알의 양식을 주시옵고의 주인공 한밀알을 소개하는 흙수저, 동인녀, 아싸는 그녀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마이너 BL 애니메이션을 파며, MBTI I 계열임이 분명한 내향형인 밀알은 배고픈 취준생 시기를 견딘 끝에 물류회사 취업에 성공한다. 그러나 직장인으로 등극해도 갈 길이 험난하다. 오랫동안 아싸인 탓에 동료 직원들과 아직 서먹하기만 하고 사무실 분위기를 읽는 것조차 버겁기만 하다. 어떻게 일을 했는지도 모를 만큼 바삐 지낸 뒤 퇴근길, 밀알은 식당가를 걸으며 저녁메뉴 고민에 빠진다.

같은 취준생에서 직장인으로 거듭나더라도 재호와 밀알이 가진 고뇌의 풍경은 조금 다르게 그려진다. 등장인물 간의 소통 부족과 오해로 인한 갈등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백수세끼의 재호는 늘 주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재호가 선망하는 음식들을 하나둘 먹을수록 성취의 계단에 한 칸씩 수직으로 오르게 된다. 그러나 밀알의 양식을 주시옵고의 밀알이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음식을 하나씩 경험할 때마다 수평으로 펼쳐진 드넓은 세계에 눈을 뜬다.

사무실 환영회 날, 처음으로 알게 된 양고기 꼬치, 주식투자의 수익과 팀장님의 안내로 입문한 닭꼬치구이와 일본주의 세계, 한적한 휴일의 오후에 즐기는 소금버터빵과 밀크티. 밀알의 미식 세계만큼 사회인으로서, 인간으로서의 배움도 확장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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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북스/밀알의 양식을 주시옵고/이자혜

 

함께 도봉 히스테리아를 파는 미지근이 유일한 친구인 밀알은 고급스러운 향수를 뿌리며 비록 가짜지만 예쁜 핸드백을 메고 다니는 동료 여직원이 부럽기만 하다. 그러나 나도 가족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혼자서 빵과 밀크티를 즐기는 게 고작이다. 아싸에 모쏠인 밀알이 연애에 뛰어드는 것도 쉽지가 않다. 그저 호기심에 데이팅 앱으로 만난 사람들이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만 감지할 뿐이다.

밀알에게 직장인이 된다는 건 새로운 길을 알게 되고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쟁취한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란 것도 최고급 향수를 샀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카레돈가스에 온천달걀을 시켜 먹는 게 고작이다.

밀알의 양식을 주시옵고에서 보여 주는 미식의 세계라는 게 전 세계 천하일미를 맛보는 경험을 보여 주지 않는다. 대신, 배고픈 취준생에서 피곤한 직장인이 된 밀알이 시들시들한 숙주볶음밥 대신 뺑오쇼콜라를 먹고 대형 마트에서 파는 홍차 티백으로 밀크티를 직접 만든다. 취업만 된다면, 직장인만 된다면 세상 그 누구도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았지만 정작 현실은 가난한 취준생에서 가난한 월급쟁이가 된 것뿐이다. 하지만 그 얇고 좁은 간격 사이에서도 밀알은 최선을 다해서 일상을 살아내고 새로운 음식과 사람들을 맛보고 경험한다.

한국에서 여자가 밥값을 한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을 가지고 목돈을 모아서 혼인관계로 얻은 가족과 임신과 출산을 거쳐 육아를 무사히 완료해야 한다는 사회적 개념에 부합해야 한다. 그러나 밀알은 겨우 첫발을 뗀 상태다. 모쏠에, 아싸에, 그 흔한 아이돌 덕질 대신 마이너 BL 애니메이션이나 파느라 변변한 친구하나 없다. 그럼에도 밀알이 새로운 음식과 새로운 사람들을 시도하고 접촉하는 모습은, 취준생일 때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볼품없는 사회생활일지라도 미약하게 시작한다는 점이다. 밀알의 양식을 주시옵고은 비록 백수와 직딩이 한 끗 차이라도 모두의 각자 밥값을 하기 위해서 그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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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값을 한다는 건 우리 모두의 양 어깨를 내리누르는 무거운 책임을 수행한다는 뜻이다. 일상을 버티고 이어감으로써 무거운 밥값을 매일 지불하는 20대의 우리 이웃에게 좀 더 따뜻한 시선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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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희

만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