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웹툰 장르물을 소비하는 욕망과 한국 혐오담론의 사회적 토양

사회문화적 차원에서의 '혐오'가 웹툰과 관련이 있을까요? 웹소설을 웹툰화한 작품들에서 두드러지는 장르물의 내러티브를 통해 살펴봅니다.

2022-11-07 김정환

웹툰 장르물을 소비하는 욕망과 한국 혐오담론의 사회적 토양

external_image

현재 한국 사회의 갈등의 담론적 형상을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아마도 혐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각 이해집단들이 격돌하는 전통적인 장()인 정치영역뿐만 아니라 각종 문화콘텐츠에 대한 토론 등 문화영역에서부터 인터넷 커뮤니티, 게임 내의 의사소통 등 우리에게 밀착되어 있는 일상의 삶에서도 여성, 남성, 이주민, 노인 등에 대한 혐오표현은 이제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게 되었다. 한편, 최근 판타지, 무협 등 웹소설 원작들의 웹툰화가 각 웹툰 플랫폼에서 전방위적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웹툰화된 상당수의 작품들은 특정한 장르로 수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본 글에서는 최근 웹툰 독자들이 많이 소비하는 회귀물(어떤 경위로 주인공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다른 인물로 다시 사는 장르)’, ‘이세계물(현실세계에 사는 주인공이 특정한 계기로 무림이나 판타지 세계관에 떨어지는 장르)‘의 내러티브에 대한 사회학적 비평을 통해, 장르물 내러티브를 소비하는 독자들의 욕망의 성격을 탐색하고자 한다. 아울러 이러한 욕망이 현재 한국사회에서 혐오 담론 증가와 연관된 특정한 사회적 구조와 조건들을 암묵적으로 투영하고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혐오의 사전적 의미는 미워하고 싫어하고 꺼리는 감정이다. 인지주의 감정 이론으로 널리 알려진 마사 너스마움(Martha C. Nussbaum)에 따르면 혐오는 일차적으로 인간의 동물적 취약성과 유한성을 연상시키는 존재에게 향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죽음을 연상하게 하는 시체나 인간의 원초성을 드러내는 배설물에 대한 혐오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나아가 너스바움은 원초적이고 생물학적인 차원의 혐오와는 또 다른 혐오가 있다고 본다. , 심리적 오염이라는 사고를 통해 동물적 취약성과 유한성을 연상시키는 일차적 대상뿐만 아니라 그러한 대상과 접촉했거나 연관된다고 생각되는 다른 대상도 오염되었다고 간주하여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차적 혐오가 바로 사회문화적 차원의 혐오라고 할 수 있다. 전염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위험한 것과 위험하지 않은 것의 경계의 기준이 각 시대, 사회, 문화권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사회적 차원에서 이차적으로 투사적 혐오가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 돌려짐으로써 사회적 차별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문화적 혐오는 나와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거나 삶의 조건이 다른 타인에게 특정한 공포나 불안을 느끼며, 타자를 괴물(오염된 것)로 규정하고 동등한 혹은 존중받은 존재로 여기지 않는 태도로 드러나게 된다. 한편, 상당수의 국내 혐오 연구자들은 현재 한국 사회의 혐오가 사회의 지배적 규범에 따르지 않는 집단이나 개인에 대한 것이며, 사회의 기득권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사회적으로 열악하다고 생각되는 집단을 비난하며, 이러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감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에 기대어 말하자면, 오늘날의 혐오의 기반은 사회의 지배적 규범에 따르지 않는 타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 능력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문화적 차원에서의 혐오가 웹툰 소비와 어떠한 관련이 있다는 것일까? 이를 위해 최근 웹툰 콘텐츠의 주요한 경향으로 떠오르고 있는 웹소설을 웹툰화한 작품들에서 두드러지는 장르물의 내러티브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현재 무협, 판타지, 로맨스 소설 등 웹소설을 원작으로 웹툰화한 작품들은 400여 편에 이르며, 절반 이상의 작품들이 소위 통칭되는 회귀물, 이세계물, 게임 판타지 장르에 속한다(이세계물을 포함하여 이하부터는 세세한 차이점을 다루지 않고 편의상 회귀물로 통칭하도록 하겠다). 이들 장르물의 공통점은 주인공이 기존에 살고 있던 세계에서는 가난하거나 무능력하거나 특별한 재능이 없이 비루한 현실을 살아가다가 특정한 계기로 과거나 이세계(무림이나 판타지 세계, 혹은 온라인 게임 캐릭터)로 가게 되어, 과거와의 단절 속에서 여러 시련을 겪으며 성장하는 스토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주인공은 새로운 환경에서 과거와 달리 잘생긴 외모를 갖거나 특정한 능력을 새로이 가지게 되기도 하고, 왕가나 귀족의 자제가 되어 고귀한 신분을 얻게 되기도 한다. 또한 이전 세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한 기존의 세계에서는 평범한 기예와 능력을 새로운 세계에서는 가치를 인정받으며 펼칠 기회를 갖게 된다. 그 결과, 새로운 세계에서 주인공은 독보적 존재가 되고, 동료와 가족들, 그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 원래의 현실에서는 수동적 존재였던 주인공이 회귀 이후 세계에서 능동적 주체가 되는 것이 회귀물내러티브의 핵심이다.

<역대급 영지 설계사>, 이현민&김현수&문백경(출처_네이버웹툰)


현재 연재 중인 이현민, 김현수, 문백경 작가의 웹툰 <역대급 영지 설계사>(소설의 원작자는 문백경)는 위에서 설명한 회귀물의 내러티브의 특징들을 잘 보여준다. 이 웹툰의 주인공 김수호는 현실에서 가난한 토목공학도로 생계를 위해 학업과 여러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고시원에서 주위의 무시 속에서 홀로 사는 청년이다. 김수호가 어느 날 판타지 소설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깨어 보니 그 소설 속의 귀족집안의 아들이 된다는 설정으로부터 웹툰이 전개된다. 소설의 내용을 읽었기에 이미 미리 미래를 알고 있는 주인공은 미래에 대한 지식과 본인의 토목공학도로서 능력을 이용하여, 재정적으로 허덕여 망해가는 영지를 되살리고, 그 세계의 왕과 유력 귀족들, , 마왕, 여러 이종족들, 왕국민들 등과 얽히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주며 성장하고 인정을 받게 된다. 이 웹툰은 현실에 사는 주인공이 판타지 세계 인물이 된다는 점에서는 이세계물이며, 미리 읽은 소설의 세계에서 미래를 이미 알고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회귀물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회귀물에서 필자가 주목한 지점은 서사 속에서 현실과 회귀 이후 세계 간의 대비이다. 회귀 이전의 세계에서 주인공은 대체로 좋은 심성과 성실한 태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처한 불우함으로 인해 자신의 능력을 펼치지 못한다. 오히려 주위의 무시를 받으며, 홀로 희망 없는 주변적 삶을 살아간다. 이에 반해, 회귀 이후의 세계에서는 이전의 세계와 같은 본질을 가지고 있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대체로 더 진취적이며, 더 정의롭고, 더 유능하고, 모두에게 인정받는 캐릭터로 변모해 간다. 독자들이 회귀물에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회귀 이전의 주인공들은 여러 현실적 제약과 압박 속에서 평범한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독자 우리를 대표하며, 새로운 세계로 가서 능력적으로 인격적으로 성장하여 흥미진진하고 유의미한 삶을 성취하는 주인공이 우리의 욕망을 대리하여 충족시켜주는 것이 바로 이 장르의 성공 비결이다.

 

() <외모지상주의>, 박태준 (출처_네이버웹툰)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회귀물 웹툰을 소비하는 욕망을 분석해 보면, 그 이면에는 이 회귀물 세계관과 독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사회적 규범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에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발화하고, 행동하려면 어떤 자격이 필요하다는 믿음이다. 이 자격은 외모가 될 수도 있고(<외모지상주의>), 남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갑자기 생긴 능력이 될 수도 있고(<나 혼자만 레벨업>), 고귀한 신분(<역대급 영지 설계사>)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정당하게, 당당하게, 유능하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능력주의적 도덕이다. 이러한 세계관에서는 아무리 본질이 선하거나, 성실하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자격이 없으면 새로운 것에 도전할 용기도, 타인과 관계할 의지도 없게 된다. 회귀물에서 회귀는 주인공이 이러한 능력과 자격을 갖추는 기점인 것이다.

 

필자는 회귀물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혐오, , 나와 다른 타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 능력의 부재의 배경인 한국 사회의 지배적 규칙으로서 능력주의적 도덕을 투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웹툰 작가나 이것을 읽는 독자가 혐오행위를 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한국사회의 특정한 멘탈리티를 투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능력주의(meritocracy)는 능력이 우월할수록 더 많은 몫을 가지고 능력이 열등할수록 더 적은 몫을 가지는 것은 당연시되는 인식태도를 의미하는데, 능력주의가 당연시되는 사회에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과 남을 비교하는 것이 일상화되고, 어떤 성취를 한다하더라도 그것이 사회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쉽게 열등감에 빠지게 된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자존감이 낮아지게 되고, 자신의 취약함을 감추는데 급급하게 되는 일종의 여유없음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는 곧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능력의 저하 상황(혐오 상황)에 놓여지게 됨을 의미한다. 회귀물 웹툰을 소비하는 욕망은 기실 이러한 여유없음의 이면인 것이며, 한국사회의 혐오의 토양인 능력주의적 도덕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필요한 것은 혐오표현에 대한 표면적 비난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의 여유를 잃어버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성찰일 것이다.

 

 

 

필진이미지

김정환

사회학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