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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 구글 횡포에 언제까지 침묵할 것인가

구글 인앱 강제 결제는 구글 플랫폼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웹툰을 비롯한 국내 산업 전반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방통위의 빠른 대응이 필요한 시점, 구글 인앱결제에 대해 다시 살펴봅니다.

2022-12-08 임병식

방통위, 구글 횡포에 언제까지 침묵할 것인가

유년 시절, 만화는 세상과 통하는 보물창고였다. 7080세대에게 동네 만화방은 아지트나 다름없었다. 소공녀가 다락방에서 꿈을 키웠듯 7080세대는 만화방에서 꿈을 키웠다. 만화를 통해 사랑에 눈을 뜨고,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배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동네 만화방은 비좁고 누추했다. 하지만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그저 만화를 읽으며 울고 웃다 하루해를 넘기기 일쑤였다. 이따금 보고 싶은 만화책이 손에 들어오면 밤새워 아껴가며 읽었다. 지금도 희미한 기억 건너편으로 한 겨울 이불을 뒤집어쓰고 읽었던 만화책들이 떠오른다. 부모 세대는 이런 우리를 마뜩치 않게 여겼지만 사실 만화는 많을 걸 선물했다. 시인 서정주는 자신을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고 했다. 우리 세대를 키운 건 어쩌면 만화일지 모른다.

 

7080세대가 만화책을 읽으며 상상력을 키웠다면, MZ세대는 인터넷 기반 웹툰을 보며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WEB)과 만화(CARTOON)를 합성한 웹툰은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접할 수 있다. 스마트폰 보급 확대와 소비 패턴 변화, 만화에 대한 인식 변화에 힘입어 웹툰 산업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웹툰 산업은 ‘OSMU(One Source Multi Use)’를 바탕으로 두고 다양한 분야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신과 함께, 내부자들, 이태원 클라쓰, 이웃사람, 이끼, 지금 우리학교는 등 스크린에서 대박을 친 영화의 원작이 만화였음은 새삼스럽지 않다. 만화가 영화와 드라마, 소설, 게임으로 진화하면서 웹툰 산업은 이제 가장 유망한 산업으로 떠올랐다.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편견 또한 깨진 지 오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20년 만화산업 백서에서 국내 만화시장 규모를 7조 원으로 추정했다. 국내 뮤지컬 시장 규모가 1조 원에 못 미치는 현실을 감안하면 엄청난 시장이다. 웹툰 산업의 성장 잠재력은 무한하다. MZ세대와 가장 잘 들어맞는 콘텐츠가 바로 웹툰이다. 탄탄한 스토리만 뒷받침된다면 웹툰 시장은 얼마든지 성장할 여지가 충분하다. 영화 제작자들이 웹툰에 눈독을 들이고 국내 대학들이 앞다퉈 애니메이션학과를 개설하는 이유도 성장 가능성을 주목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구글 인앱 강제 결제는 찬물을 끼얹고 있다.

구글 인앱 강제 결제는 시장 지배적 지위를 이용한 독점 기업 횡포다. 자사 결제 시스템만으로 결제하도록 강제하는 건 부당한 갑질이다. 구글은 지난해 자사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을 경우 앱 스토어에서 퇴출시키겠다고 발표했다. 구글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70%에 달한다. 독점적 지위를 남용한 불공정 행위라는 비판은 여기에 기인한다. 국회는 구글 횡포를 견제하기 위해 지난해 831일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수수료 정책에 제동을 거는 이른바 구글 갑질 방지법을 제정했다. 세계적으로 첫 사례였다. 당시 재석 의원 188명 가운데 180명이 압도적으로 찬성했다. 그만큼 구글 인앱 결제는 반()시장적 횡포로 인식됐다.

당시만 해도 웹툰 업계는 긍정적 변화를 기대했다. 하지만 13개월여가 흘렀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구글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인앱 결제를 강제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구축한 결제 시스템 이외는 금지하는 것인데 이런 갑질도 없다. 구글은 올해 61일 자사 정책을 따르지 않으면 앱 마켓에서 퇴출시키겠다고 발표하면서 여기에 불응한 카카오톡 업데이트 승인을 거부하고 있다. 관련법까지 제정되었는데 왜 불공정과 횡포는 계속되는 걸까. 국내 업계는 구글 갑질 방지법이 작동하지 않는 주요 원인으로 방송통신위원회를 지목하고 있다. 방통위는 법이 통과된 이후 별다른 후속 정책을 내놓지 못한 채 구글에 끌려 다니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구글은 교묘한 우회로를 찾았다. 수수료율 30% 인앱 결제와 26% 개발자 제공 인앱 결제를 제시함으로써 소비자 선택권을 부여했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꼼수에 불과할 뿐더러 이로 인해 국내 콘텐츠업계 이용 요금은 20%가량 올랐다. 요금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됐다. 또 소비자는 결제 창구를 선택할 권리를 박탈당했다. 결제 수단을 비교해 요금이 저렴하거나 혜택이 많은 결제 수단을 선택해야 하지만 그럴 수 없다. 관련법은 소비자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아웃링크방식 결제를 권고했다. 그러나 구글은 인앱 결제와 인앱 3자 결제 방식만 강제하고 있다. 불공정 관행은 지속되고 현실적인 피해도 그대로다. 그럼에도 방통위는 위법 사실을 조사 중이라며 미온적이다. 긴박한 웹툰 업계와 달리 느긋한 태도에 울화가 치밀 수밖에 없다.

 

방통위의 안일한 대응은 인도 경쟁당국과 대비된다. 인도 반독점 조사기관 인도경쟁위원회(CCI)’는 지난 1026일 구글 인앱 결제 방식에 제동을 걸었다. 인도경쟁위원회는 구글이 자체 결제 시스템으로만 유료 콘텐츠 결제를 강요함으로써 독과점 지위를 남용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과징금 11,300만 달러(우리 돈 1,611억 원)을 부과하고 강력한 시정 명령을 내렸다. 인도경쟁위원회는 구글이 독점적 지위를 남용해 불공정한 조건을 강제했고, 또 일방적 요금 부과로 인해 개발자는 선택권을 잃었다며 3개월 이내 계약 조건 변경을 명령했다. 이와 함께 앱 개발자들에게 서비스 요금에 대한 세부 사항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했다. 이번 결정은 2020년 구글에 반독점 신고가 접수된 이후 2년 만이다. 구글 인앱 결제에 대한 제동은 이번이 처음이다. 구글 갑질 방지법까지 제정됐음에도 무기력한 우리와 달리 자국 산업 보호에 단호한 인도 정부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우리 국회 입법조사처 또한 구글 인앱 결제 강제 정책은 전기통신사업법상 금지행위 위반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입법조사처는 인앱 결제 정책은 전기통신사업법 제50조 금지행위에 해당한다고 명시했다. 나아가 입법조사처는 구글이 제3자 결제에 높은 수수료를 부과하고 외부 앱 결제를 금지한 건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한 강제행위라고 강조했다. 특히 입법조사처는 방통위가 인앱 결제 강제 금지법 개정 이후 시행령을 만들면서 범위를 축소함으로써 일부 행위를 제재하지 못할 여지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앱 마켓을 이용하지 않고도 콘텐츠를 접근·이용하는 유럽연합 입법 사례를 제시했다.

구글 인앱 결제 강제로 인한 피해는 웹툰 산업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지난 1025일 구글 인앱 결제 정책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출판협회는 구글이 독점적 지위를 남용했다며 구글을 상대로 불공정거래행위 금지와 손해배상을 청구한 상태다. 또 스트리밍 서비스 산업, 음원 플랫폼도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그럼에도 방송통신위원회는 안일하게 대응함으로써 구글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관련법 제정에도 불구하고 구글은 여전히 강제 결제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구글 플랫폼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웹툰을 비롯한 국내 산업 전반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앞서 봤듯 인도 정부는 관련법이 없는 상황에서도 구글 독점 행위를 조사하고 막대한 과징금과 강력한 시정 명령을 내렸다. 인도는 하는데 IT강국을 자처하는 우리 정부는 못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EU 또한 앱 마켓을 이용하지 않고도 콘텐츠를 접근·이용하는 법을 제정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방통위가 시행령을 만들면서 법 적용 대상을 축소했다고 지적했다. 방통위가 국내 산업 육성은 소홀히 한 채 다국적 기업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방통위는 국내 기업을 위해 존재하는지, 아니면 거대 기업 구글에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서두에 언급했든 만화는 상상력을 키우는 보물창구다. 이제 웹툰은 애들이나 보는 단순한 오락물을 넘어선 지 오래다. 영화와 드라마, 게임으로 이어지는 유망한 콘텐츠 기반 산업이다. 그렇다면 방통위는 이용자들에게 결제 선택권을 부여함으로써 웹툰 산업 육성을 진작할 책임이 있다. 웹툰 업계는 그동안 자구책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제는 방통위가 답할 차례다. 언제까지 구글 횡포에 침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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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前 국회 부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