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회빙환이라는 물결

웹툰과 웹소설에서 많이 다루어지는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 인기 코드인 '회빙환'에 대하여 분석해 봅니다.

2023-02-24 이융희

회빙환이라는 물결

웹툰 <어게인 마이 라이프>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포스터

회귀, 빙의, 환생의 구조

SBS 금토 드라마 <어게인 마이 라이프>에 이어 JTBC 금토일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까지, 웹소설 원작, 웹소설이 웹툰에서 드라마화되어 안방극장에 돌풍을 일으키며 연일 화제다. 특히 언론에서는 앞다투어 <재벌집 막내아들>의 인기 요인으로 MZ세대의 절망적인 세계관과 다시 이 세계를 살고 싶다는 회귀의 욕구가 존재한다고 분석하며 <재벌집 막내아들>이 가진 사회적 의미를 되새겼다.

최근 웹툰과 웹소설에서 많이 다루어지는 회귀물에 대한 분석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볼까 한다. 회귀물이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으로 대표되는 젊은 세대들이 지금, 여기의 육신에서 벗어나 현재의 지식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으로 시작하는 장르 콘텐츠를 통칭한다. 회귀물의 주인공은 늙고 병들었던, 실패 경험이 누적된 신체에서 벗어나 아직 실패를 경험한 적 없는 순수한 육체를 갖게 되고, 신성한 의 생명력이 되살아난 신체를 갖게 되는 동시에 미래의 정보를 알고 이해하는 예언가로 변모한다. 이를 바탕으로 주인공은 실패하지 않는 인생 계획을 세우고, 탄탄대로를 걸어가며 성공만을 반복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형식이 단발적인 회귀를 다루는 작품이 아니라 ‘~이라는 이름까지 붙은 일종의 장르군이란 사실이다.

웹소설에서 사용된 ‘~개념에 대해서 정리해 연구한 김준현에 따르면 ‘~이라는 명칭은 일본어 物語(모노가타리)의 약어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를테면 공포물공포 이야기’, ‘추리물추리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은 여러 가지 양식적인 제약을 요구하는 장르보다는 더 느슨하게 쓰이는 개념으로, ‘추리’, ‘공포처럼 외연이 넓은 기호보다는 좀 더 좁은 외연을 가진 재벌물’, ‘사이다물’, ‘회귀물과 같이 특정 모티프(화소)의 포함을 기준으로 삼는다. 위와 같이 장르를 부르는 새로운 명칭과 방식까지 생겨날 정도로 웹툰과 웹소설에서 회귀는 범용적으로 사용되며 이와 비슷한 형식으로는 빙의환생이 있고, 이 세 범용 코드를 아울러 회빙환이라고 묶어 부르곤 한다.


회빙환의 코드는 아래와 같은 도식처럼 정리할 수 있다.

(시공간 A) (시공간 B)

인물 C + 사건 변화된 인물 C’


시공간 A에 위치한 캐릭터는 특정 사건을 경험하고 시공간 B로 넘어간다. 보통 여기서 특정 사건은 더 이상 나아질 여지가 보이지 않는 절망적 현실을 깨닫고 직면하는 순간으로 표현되곤 한다. 지친 일상에서 자신의 보잘 것 없고 비루한 능력을 자각하며 결국 트럭에 치이거나 과로사를 하거나, 타인의 폭력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원인으로 인해 벌어지는 세 가지의 결과에 따라 회빙환의 장르가 나뉘어진다.

회귀는 앞서 설명한 방식의 변화를 뜻하고, ‘빙의는 자신이 읽었던 콘텐츠 속 가능성을 지닌 육체로 들어가 공략법을 알게 되는 선각자가 되는 것이며, ‘환생은 자신의 경험이 누적된 신체를 벗고 새롭고 순수한 어린아이의 육체로 재탄생하여 소설 속 세계의 질서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월자가 되는 것이다. 이 세 코드의 공통점은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캐릭터의 신체와 정신이 분리된다는 점이며, 이러한 분리 때문에 우리는 웹소설 작가와 독자가 을 바라보는 인식 그 자체를 엿볼 수 있다. 우리의 몸은 오감으로 세상을 파악하고 그것을 통해서 다시 세상을 살아가며 경험을 쌓는다. 그 사람의 인생 이야기는 몸에 새겨진 기록으로서 기억되는 셈이다. 웹소설 근간에는 새로운 몸이 있으면 그 몸을 통해 성공의 기억을 쌓을 수 있다는 믿음과 신념이 깔려 있고, 세상에 내재한 아름다움, 미적 속성은 그것을 평가하는 지각 행위, 즉 취미의 역량이 있는 사람들과 상호 작용할 때 그 존재가 발현된다.

그럼 여기서 우리는 다시금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어 그 자체를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과연 최근의 유행일까? 그렇지 않다. 후지타 나오야는 자신의 비평집 좀비 사회학을 통해 자본주의 환경의 미디어 매체에 노출된 개개의 대중은 미디어의 시청을 그만두고 자신의 몸을 목격하는 순간 살덩이로서의 몸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후지타 나오야의 지적처럼 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다시금 내 몸 그 자체가 마치 좀비zombie’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인식은 보편적인 것이고, 이러한 인식의 장르적 재현은 이미 장르문학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시도되어 왔기 때문이다.

회빙환이라는 낡은 유행

회빙환이 유행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회귀, 빙의, 환생이 장르적 서사라는 구조를 벗어나 가벼운 코드로서 혼합되고 ‘~적인 성질을 띠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해야 정확하며, 웹소설에서 이러한 유행이 정립된 것도 2015~2017년 사이의 일이니 이미 최소 5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코드로써 유행한 것이 아니라 장르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한 건 역사가 더욱 깊다. 그도 그럴 것이 육신은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혼백, 그러니까 인간의 정신적인 부분은 본질을 간직하고 끊임없이 미끄러진다는 건 불교 윤회론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 『천년의 사랑, 양귀자 (출처_쓰다) 

1995년 출간된 양귀자 작가의 천년의 사랑은 천 년 전 이루지 못했던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가 천 년 후 다시 이어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출판사의 책 소개에 따르면 이 작품 이후 문화계에서는 환생의 열풍이 불었다고 하니, 적어도 환상문학 속에서 환생이라는 개념이 90년대 중반 한 차례 유행했던 듯하다. 굳이 넓은 개념의 환상문학의 범주까지 확장하지 않더라도 이 세계의 몸을 벗어던지고 다른 세계로 가는 건 대여점 판타지 소설에서도 주로 사용되었던 문법이다. 아린이야기를 비롯해 아이리스, 사이케델리아, 노래는 마법이 되어99년부터 2003년 직후 한국의 장르판타지 장에선 퓨전판타지라는 이름의 장르가 유행했고, 미성숙한 소년의 신체를 가진 주인공들은 자신의 비대한 자의식을 담을 수 있는 마법적 신체와 마법적 공간에서 수능이라는 억압적 구조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여행을 펼쳤다.

2003년부터 폭발적으로 출간된 게임판타지의 구조 또한 가상의 신체를 벗어나 새로운 신체로의 빙의와 다름없다. 아바타를 통해 게임의 공간과 구조 속에서 새로운 신체를 획득한 주인공들은 자신의 신체에서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오로지 게임 플레이 능력만으로 새롭게 자신의 가치를 책정 받는다. 이러한 플레이의 경험은 다시 소급적으로 현실 세계로 넘어와 현실의 왜소한 자아를 회복시킨다. 결국, 이러한 ~물의 유행은 웹소설이라는 공간에서 새롭게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이미 장르문학의 자장 속에서 수십 년 동안 존재했고, 심지어 유행하며 장르로서 지위까지 획득한 형식인 셈이다.

더욱이 회빙환은 한국에서만 유행하는 코드로 볼 수도 없다. 한중 웹소설의 특징 및 시장 현황을 분석한 전기정의 논문에 따르면 2020년 중국에서도 회귀, 빙의, 환생의 장치는 장르와 상관없이 범용적으로 사랑받는 코드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이미 이세계물이라고 하여 가상의 세계에서 새롭게 전생轉生한 뒤 새로운 삶을 얻어 일본 고유의 문화유산을 전달하는 서사가 라이트노벨을 비롯해 수많은 미디어믹스 콘텐츠에서 유행한 지 오래였다.

웹소설 IP를 활용해 가장 적극적으로 전환 작업을 진행한 것은 역시나 웹툰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웹툰 역시 이러한 회빙환장르가 범람하기 시작했다. <나는 마도왕이다><귀환자의 마법은 특별해야 합니다>,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신과 함께 레벨업>, <투신전생기>, <역대급 창기사의 회귀> 등 수많은 작품들이 회빙환의 문법을 활용했다. 웹툰이라는 콘텐츠가 가진 글로벌 파급력을 생각해 보면 이젠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타임슬립이나 윤회 같은 형태의 고전적 형식을 회빙환이라는 형태로 변환시켜 일컫는 일도 충분히 가능할 듯하다.

그렇다면 여기까지 담론을 밀고 왔을 때 우리는 한 가지 질문에 직면한다. 왜 언론과 대중매체는 2023년을 앞둔 지금에서야 회빙환이 유행이라고 이야기하는가. 우리는 이 질문과 답변에서 두 가지 시사할 점을 찾을 수 있다. 하나는 오로지 장르문학이라는 틀 안에서 마니아적으로 소비되었던 문화가 웹툰을 거쳐 드라마까지 만들어지며 보편적 대중문화로 확대되는 동시에 사회 전반에서 목격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회 억압의 구조를 탈출하려는 욕망을 MZ라는 젊은 세대의 욕망으로 제약하고 귀결시키려는 기성 세대의 프레이밍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회빙환이라는 형식을 둘러싼 이중의 구조에 대해 웹소설 이펙트라는 용어를 붙이고 싶다.


웹소설 이펙트

웹소설을 둘러싼 편견은 무척이나 많다. 뻔한 이야기를 한다거나 유치한 이야기를 하고 어린아이들, 특히 현실에서 눈 돌리고 폐쇄적인 세계에 매몰된 사람들만 소비하는 덕질 문화란 시선들. 그러나 웹소설은 지금 여기에서 스낵컬처, 또는 대본소라는 형식적 틀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매체의 원천 소스이자 훌륭한 문화콘텐츠로서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웹툰을 비롯해 드라마, 영화 업체에선 웹소설이 만들어낸 수많은 장르적 시도들에 열광하며 IP를 수급했고, 글로벌 시장에선 웹소설 원작 웹툰들이 입지전적인 결과물을 선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웹소설에 가해졌던 수많은 편견들은 오히려 장르적 문법에 고도화된 마니아들의 스놉적 단평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렇듯 다양한 매체에서 새로운 IP의 원천으로 웹소설을 주목하는 지금 웹소설은 그 어떤 문화콘텐츠보다도 압도적인 속도로 증식한다. 수십 만 명의 웹소설 작가 지망생이 수백 만 종의 소설을 창작하는 중이며, 한 달에 유통되는 웹소설의 숫자도 만 종을 훌쩍 넘는다고 하니 거대한 디지털 콘텐츠의 데이터베이스가 현실의 모든 아날로그 도서관을 채울 정도의 텍스트를 만들어 내는 셈이다.

재미있는 건 웹소설에서 이제 지루하고 고루할 정도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회귀’, ‘빙의’, ‘환생의 문법은 모두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 즉 현실을 벗어나야지만 성공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는 점이다. 지금 현재 우리는 이 세계에 고착된 상태이다. 지배계층이 만들어 놓은 구조는 견고하고, 우리는 마법이나 초능력처럼 환상적인 능력이 존재하지 않는 한 이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 이런 욕망은 비단 젊은 세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회귀나 빙의, 환생은 그 이전의 삶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노하우를 누적해왔는가, 지식과 경험의 총량이 많을수록 다음 생에서 큰 이득을 거둔다. 게임의 고인물이 게임 속 세계로 환생하면서 이득을 거두고, 제대로 된 능력은 없지만 어떻게든 아둥바둥 살아남아 20, 30년을 버틴 삼류가 어린 나이로 회귀하거나 환생할수록 능력의 증명이 쉽고 효과적이다. 웹소설의 독자층만 분석해 보더라도 10대와 20대보다 유료결제를 편안하게 할 수 있는 30-50대의 독자층 비율이 더욱 큰 편이니 이러한 욕망이 지향하는 대상은 뚜렷하다.

갑작스러운 웹소설의 범람은 이 세계의 고착과 위태로움을 전면화한다. 소수의 콘텐츠가 비판해오던 근대적 형상과 달리, 거대한 조류가 이 사회 전체의 문제에 대해 장르를 넘어서 아주 작은 화소 단위의 코드, 그리고 그보다 압축된 회빙환이라는 용어의 밈으로써 공격하는 것이다. 웹소설이라는 것이 속도의 콘텐츠인 것처럼, 이러한 균열의 공격 역시 어마어마한 속도로 세상을 잠식한다.

그렇기에 이러한 욕망을 MZ라는 특정 세대, 그것도 소비를 통해 움직이는 마케팅 프레임의 세대의 욕망으로 프레이밍하는 것은 균열을 회피하고 그것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려는 욕망의 발로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지금의 세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일탈로 선언해버리고, 부적응자로 단평해버리는 편안하고 게으른 단평들. 그 평에 편승하는 순간 결국 그러한 장르가 오랫동안 지금의 문화에서 소비되어온 이유를 이해하지 못 하고 공감하지 못 하는 자들의 손쉬운 이야기를 되받아 쓰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우리가 이러한 회빙환의 효과를 제대로 진단하기 위해선 단순히 회빙환의 독해하는 것을 넘어 이러한 코드가 이 사회에 어떤 기능을 하는지도 진단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회빙환 코드를 사용한 작품이 신자유주의 시대 자기계발적인 욕망을 재현하며 오로지 성공하고 싶어 하는 주인공을 주목하게 할 뿐이라는 비판을 하지만, ‘회빙환이라는 코드 자체가 위에서 선보인 도식처럼 지금 여기의 시공간 A에서 벗어나 균열난 세계 B에서 새롭게 역사를 다시 쓰는 작업이란 사실을 망각한다. ‘회빙환이라는 이질적 능력은 웹소설의 초반 프롤로그에서 구현되고, 그러한 초월적 질서가 재현된 세계는 그 순간 이 세계가 아닌 세계로서 변모된 것이다. 이처럼 회빙환은 굳어진 세계의 좌절을 표현하는 동시에 이러한 세계를 변모시키려는 희망 그 자체의 이름이며, 형상인 셈이니 웹소설 이펙트웹소설이라는 문화가 이 사회의 구조를 균열 내는 힘인 동시에 그것을 막으려는 집단의 목소리가 뒤섞인, 헤게모니 다툼의 이름이기도 하다.

하나의 IP를 확보해 그것을 콘텐츠로 제작해서 선보이기까진 오랜 세월이 걸린다. <어게인 마이 라이프><재벌집 막내아들>은 이미 웹소설로 서비스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두 작품 이후로 웹소설에선 또 다른 훌륭한 작품들이 장르적 문법을 고도화하여 출간되었고, 그러한 작품들 역시 끊임없이 대중매체를 통해 선보일 것이다. 웹소설에선 회빙환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힘이 잠재되어 있다. 웹소설의 유행보다 뒤늦게 매체에서 재현된 회빙환의 형식에만 매몰되면 그러한 형식이 어떤 힘을 내재하고 있는지 형상의 실재와 본질을 놓칠 수밖에 없으리라.

필진이미지

이융희

작가, 문화연구자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웹소설창작전공 조교수, 장르 비평 동인 텍스트릿(textreet) 팀장
「마왕성 앞 무기점」 출간, 주요 논저 「디지털 매체 기반 장르문학 연구의 가능성: 웹소설 연구를 위한 제언」, 「한국 게임판타지 장르의 미시사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