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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에서 영화까지, OSMU 콘텐츠 원천(the source)으로서 웹툰의 현재

웹소설 원작이 웹툰을 거쳐 실사 영상 콘텐츠로서 성공적인 전환을 이룬 사례들이 늘고 있습니다. '시맨틱 에러'를 통해 성공적인 OSMU를 살펴봅니다.

2023-02-17 문현선

웹툰에서 영화까지, OSMU 콘텐츠 원천(the source)으로서 웹툰의 현재

바야흐로 웹툰의 시대다. 2022년 현재 대한민국 웹툰 산업의 시장규모는 4조 원에 육박하며 관련 IP의 활용 가능성까지 고려한다면 100조 원을 넘어서는 경제적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만 해도 <유미의 세포들>, <내일>, <금수저> 등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방송을 탔고, 전지적 독자 시점, 상수리 나무, 옷소매 붉은 끝동등 많은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던 웹소설 작품 대부분이 웹툰으로 각색되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독보적인 시청률을 보인 드라마 <어게인 마이 라이프><재벌집 막내아들>은 웹소설 원작이 웹툰을 거쳐 실사 영상 콘텐츠로서 성공적인 전환을 이룬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오늘날 웹툰은 그야말로 명실상부 OSMU(One Sourse Multi Use) 콘텐츠의 원천(the source)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 발명된 예술형식으로서 우리 손으로 구축한 독자적인 시스템에 의해 전 세계에 서비스되고 있다는 점에서, 웹툰은 자타공인 진정한 의미의 K-문화콘텐츠로 일컬어지고 있다.

웹툰이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활용되는 OSMU 콘텐츠의 원천으로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게임,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로 각색과 변환을 이룩하면서, 웹툰은 이미 컨버전스 컬처 시대 미디어 믹스의 가장 중요한 원천으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내 시장 규모의 한계와 원작 팬덤의 저항으로 인해 이와 같은 미디어 트랜스 프로젝트는 난항을 겪기도 했다. 특히, 웹툰이 영화와 드라마로 전환될 때 원작 팬덤이 종종 일으키는 히스테릭한 반응에 대한 연구들은 웹툰이라는 2D 문화콘텐츠가 3D 실사 영상 콘텐츠로 전환될 때의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최근 카카오 페이지가 웹소설 및 웹툰 플랫폼의 활성화를 위해 내 놓은 실사 영상 광고가 콘텐츠 자체의 상대적으로 양호한 퀄리티에 비해 신랄한 혹평을 받았던 사례도 이와 같은 현실을 여실히 반영한다.

국내 시장 규모의 한계는 대중문화 산업에서 웹툰의 원활한 미디어 믹스 체인 형성에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망가와 아니메가 TV 시리즈,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OVA(Original Video Animation), 단행본 도서, 오디오 드라마, OST, 아니뮤(Animation Musical), 캐릭터 관련 굿즈, 완구 프라모델 등과 연계해 자연스러운 산업 체인을 형성해 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국내에서는 지명도가 높은 소수 작가들의 작품이 연극이나 뮤지컬로 각색되어 주목을 받거나 영화로서 성공을 이루었음에도 다른 콘텐츠 산업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단발성 전환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반가운 소식은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시장을 가진 OTT 플랫폼의 등장과 적극적인 투자가 웹툰 산업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22년 토종 OTT 서비스인 왓챠(WATCHA)에서 제작하고 방송한 오리지널 BL(Boy’s Love) 드라마 <시맨틱 에러>의 성공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시맨틱 에러>, 김동래&신성진 (출처_왓챠)

 

드라마 <시맨틱 에러>의 성공은 사실 매우 이례적이다. 드라마의 원작 웹소설은 BL이라는 상대적으로 마이너한 장르에 속하며, 국제적으로 치열한 경쟁 구도에 놓인 왓챠는 토종 OTT 플랫폼 가운데서도 줄곧 가장 부진한 성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올해 3월에 방송을 마친 <시맨틱 에러>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왓챠 TOP10 리스트에서 상위 성적을 유지하는 중이다.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오징어 게임>조차 1년이 지난 지금은 순위권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OTT 콘텐츠의 일반적인 상황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가 공개되는 OTT 플랫폼에서는 잠시의 지체도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드라마 <시맨틱 에러><시맨틱 에러: 더 무비>라는 이름으로 극장 상영을 위해 재편집되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 최초 공개되었으며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영화제(HKAFF)에까지 출품되었다. 러닝타임이 무려 177분에 이르는 이 영화(홍콩에 출품된 버전은 러닝타임 192분으로 조금 더 길다)20221210일 다시 왓챠 플랫폼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831일 영화관 개봉 이후 7주에 이르는 상영 기간 동안 전체 관객 인원은 6만 명을 약간 밑도는 수준이었지만, 3시간에 육박하는 러닝타임과 팬데믹 이후 영화산업의 추이를 고려한다면 절대 나쁜 성적이라고 할 수 없다.

<시맨틱 에러>, 저수리&엔지 (출처_리디북스)

 

<시맨틱 에러>는 원작 웹소설 시맨틱 에러가 전자책 플랫폼인 리디북스에서 2018BL소설 작품 대상을 수상한 이후, 2019년에는 오디오 드라마로 제작되었고 2020년에는 웹툰 연재 및 단행본 발행이 이어졌다. 웹툰 및 웹툰 캐릭터는 앤어워드 위너상과 리디 BL코믹 어워드에서 최애공상을 수상함으로써 독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으며, 2022년 현재까지 리디 BL e-book 부문에서 여전히 별점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21년에는 외전 형식의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어 전문 스트리밍 플랫폼 라프텔에서 서비스되었는데, 해당년도 라프텔 결산에서 이용자들이 소장 구매를 가장 많이 한 작품으로 꼽혀 평생 반려상을 수상했다. 불과 4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웹소설에서 웹툰을 거쳐 오디오 드라마,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에 이르는 완전한 미디어 믹스 체인을 성공적으로 형성해 낸 것이다. 그 전환이 거의 공백 없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진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일반적으로 웹소설이 웹툰화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웹툰화된 원천이 다시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실사 영상 콘텐츠로 전환되는 데는 더욱 긴 시간이 요구된다. 상당한 원작 팬덤을 이끌고 있는 낮에 뜨는 달과 같은 웹툰도 드라마 판권 계약이 체결된 2017년 이후 2022년 현재까지 제작 확정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가 없는 상황이다. <어게인 마이 라이프><재벌집 막내 아들>이 웹소설에서 웹툰을 걸쳐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평균 7년 안팎의 시간을 소요했던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와 같은 시간적인 간극은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따라서 웹툰 시맨틱 에러의 미디어 믹스 체인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시맨틱 에러>가 콘텐츠의 측면에서 BL이라는 마이너 장르라는 부담을 안고 있었을 뿐 아니라 콘테이너의 측면에서 왓챠라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OTT 플랫폼을 통해 서비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이 콘텐츠의 전환을 둘러싼 콘텍스트의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 웹툰 팬덤은 이른바 덕후라 불리는 매니악한 사용자 그룹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제 웹툰은 더 이상 소수의 매니아 팬덤 사이에서만 향유되는 서브컬처 장르가 아니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 승객 대부분은 자신의 스마트폰에 시선을 집중한다. 뉴스를 보거나 동영상을 보는 사람도 있고 게임을 즐기는 유저도 있지만, 그들 중 절대 다수가 웹툰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상술한 바와 같이, 웹툰은 이제 거의 전 국민적인 보편적 문화콘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보편적 문화콘텐츠로서 웹툰이 우리 시대에 걸맞는 보편 가치를 제시함으로써 그 위상을 더욱 굳건히 세워 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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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선

세종대학교 소프트웨어융합대학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