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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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창작계 단체는 왜 파업에 돌입했을까

북미 OTT 서비스 확대와 조금씩 그 영향력을 확대하는 인공지능 이슈들, 북미 창작계 이슈를 통해 웹툰 창작 시장을 돌아본다

2023-07-05 남경화

2007년, 지금으로부터 15년 반 전 헐리우드 노동조합의 파업은 약 100일간 진행됐다. 당시 파업의 여파로 당대 최고의 인기 시리즈였던 <HEROES>의 시즌3 제작이 연기되면서 차질을 빚었고, 결국 용두사미로 끝나며 팬들의 아쉬움을 남겼다.

 

[ 그림 1. 인기 미드 'HEROES' - 출처:IMDB ]


그리고 2023년 5월 2일, 미국 작가노동조합(Writer’s Guild of America, WGA)은 협회원 11,500명이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알리면서 15년 반만에 최대 규모의 파업에 돌입했다. 이번 파업은 2007년 파업에 비견될만큼 최대 규모의 파업이며, 약 100일만에 종료된 지난 파업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2007년 당시 파업은 뉴미디어를 통한 수입 배분과 DVD 판매 수입이 작가들에게 적개 분배되고 있다는 불만에서 시작되어 계약을 수정하라는 내용이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큰, 그리고 실질적인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업의 주된 이유: 스트리밍으로 옮겨가는 시장

 

[ 그림 2. 미국 구독서비스와 TV 수익 예측 - 출처: STATISTA ]


이번 파업의 가장 주된 이유로 꼽히는 것은 단연 OTT 스트리밍 시장이다. OTT 스트리밍 시장은 지난 15년간 가장 빠르게 성장한 산업분야중 하나로, OTT 서비스가 막 시작하던 2012년과 비교했을 때 15배 이상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미국을 기준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던 케이블 TV 시장이 2017년을 끝으로 역성장을 거듭하며 지속적으로 규모가 감소한데 비해, 주요 OTT 서비스들은 2017년을 기점으로 규모를 크게 늘려나갔다.

 

[ 그림 3. 넷플릭스의 2000년부터 2022년까지의 순이익 - 출처:STATISTA ]


글로벌 통계 전문 플랫폼인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글로벌 최대 OTT인 넷플릭스의 순이익은 2016년 대비 2017년 3배 이상 성장했으며, 이후 꾸준히 성장하던 순이익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의 시작과 함께 2021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이후 2022년 ‘엔데믹’ 시대에 접어들면서 수익이 줄긴 했으나, 그동안 막대한 수익을 올리며 콘텐츠 시장에서 블랙홀처럼 헐리웃을 포함한 전세계의 극작가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이 판에 뛰어든 것이 바로 디즈니, HBO, ABC등 기존의 미디어 대기업과 애플, 아마존 등 IT를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들이었다. 산업에 경쟁이 붙은 초반에는 분위기가 좋았지만, OTT 서비스가 ‘뉴 노멀(New Normal)’로 자리잡으면서 지형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이들 미디어 대기업을 포함해 OTT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대부분의 기업이 속해있는 협회는 영화 및 TV 제작자 연합(Alliance of Motion Picture and Television Producers, AMPTP)인데, 이 AMPTP와 작가노조인 WGA의 갈등이 주된 원인이다.

스트리밍 시장으로 상황이 변하면서, 짧게는 수개월에서 TV 프로그램의 경우 몇 년동안 이어지는 토크쇼 등의 방송의 수익은 큰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OTT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짧게는 수주에서 길게는 수개월 단위의 프로젝트 일거리가 늘어나게 됐고, 이로 인해 고용불안이 높아지게 됐다는 것이 작가단체의 주장이다. WGA는 AMPTP에 “스트리밍을 위해 프로그램들이 제작되면서, 지속적으로 작가가 투입되는 일이 적어지고 몇 주에 걸쳐 짧게 작가를 필요로 하는 프로젝트가 늘어났다”며 “스트리밍으로 방영되는 탓에 이전보다 업무강도는 늘었지만, 수익은 큰 변화가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도 OTT 시리즈의 경우 작가들이 상시적으로 필요하지 않고, 제작 중에서도 프리프로덕션(Pre-Production) 단계에 주로 필요하다 보니 작가들이 실제로 투입되는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작가가 작품에 끼치는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되었다는 의견이 이번 파업 투표 과정에서 불거지기도 했다. 이렇게 시장이 급박하게 변했지만, 계약 조건에는 변화가 없어 스트리밍 시장에서 작가들에게 지급하는 금액이 여전히 적다는 것이 작가 단체의 주장이다.


계약 문제에서 촉발된 인공지능 도입 문제


[ 그림 4. 북미 주요 OTT 서비스 - 출처:WGA ]


이렇게 이번 파업은 스트리밍으로 산업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논의가 없었고, 이후에 이어진 협상에서도 AMPTP가 미온적으로 나서면서 촉발됐다. 특히 이번 파업 과정이 주목받았던 건, WGA가 전세계 작가단체 중 최초로 생성형 인공지능 활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WGA는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면서 ‘인공지능은 작가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다만, 인공지능이 작성한 스크립트를 인간이 수정하는 것은 허용하고, 수정한 작가에게는 크레딧이 갈 수 있다고 규정했다.

바로 이 지점이 이번 파업의 보조적인 이유 중 하나다. 인공지능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이번 파업에 의제로 등장했다. 하지만 WGA가 걱정하는 바는 “인공지능의 작가 대체”가 아니다. WGA 회원인 극작가 로버트 카길(Robert Cargil)이 밝힌 이번 파업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는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공지능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즉각적인 공포는 인공지능이 ‘우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생성한 저질 스크립트를 수정하며 낮은 임금을 받게 되는 것("The immediate fear of AI isn’t that us writers will have our work replaced by artificially generated content. It’s that we will be underpaid to rewrite that trash into something we could have done better from the start.")이다.


영미권에서 이뤄진 인공지능 도입 시도

이처럼 계약 이슈로 모든 관심이 쏟아지는 동안, 언론의 관심은 ‘인공지능 도입이 파업에 포함되었다’는 타이틀로 쏠렸다. 비록 주된 타깃이 인공지능이 아니었다곤 하더라도, WGA가 파업에 인공지능 이슈를 넣었다는 것 만으로도 전 세계 창작자들의 이목뿐 아니라 일반의 관심을 끌기에도 충분했다.

이에 AMPTP는 인공지능을 아직 도입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이는 오히려 ‘앞으로는 도입할 생각이 있는 것이냐’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AMPTP는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무응답이 긍정으로 해석되면서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우려로 번졌다.

 

[ 그림 5. 시위 모습 - 출처:IMDB ]


사실 인공지능은 영화 분야에서는 이미 2016년부터 도입 시도가 있었다. 최초로 인공지능이 각본을 쓴 영화 <선스프링(Sunspring)>이 있었고, 같은 팀이 2017년 만든 영화를 비롯해 학생 감독들이 만든 습작에서 인공지능이 사용된 사례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 ‘맥락을 잡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빠르게 관심에서 멀어졌고, 결국 WGA가 인공지능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대한 평가를 내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분석이다.


협상에서 불거진 AMPTP와 WGA의 갈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AMPTP와 WGA의 갈등은 쉽사리 종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WGA는 AMPTP에 ‘프로젝트 단위인 현행 계약을 수개월에서 1년 단위로 변경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AMPTP는 ‘프로젝트 단위 계약을 유지하되 지급 금액을 높이겠다’라고 맞서고 있다. 당연히 WGA는 수용 불가 통보를 하고 파업에 돌입한 상황이다.

여론전 역시 AMPTP에 크게 유리하지 않다. 오는 7월 계약기간이 끝나는 배우노동조합(Screen Actors Guild‐American Federation of Television and Radio Artists, SAG-AFTRA)이 공식적으로 WGA를 지지하고 나선데다, 인공지능 이슈에 불만을 품은 일반인들도 AMPTP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갈등이 어떻게 봉합될지는 향후 지속될 협상에 달렸다.

이번 북미 창작계의 단결과 파업은 점점 글로벌화되며 초거대 플랫폼으로 발전하고 있는 한국의 웹툰시장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디즈니와 아마존, 애플, HBO 등 시가총액만으로도 전세계 순위권에 드는 초거대 플랫폼을 상대로 1만여명이 모인 작가노동조합의 파업이 보여주는 위력은 지속적으로 플랫폼과의 갈등을 논하고 있는 웹툰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군다나 결과적으로 이 문제를 ‘노동의 문제’가 아닌 ‘계약의 문제’로 보고 접근하며,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대응하고 있는 WGA의 사례는 웹툰계에도 큰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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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화

프리랜서 웹툰 PD
웹소설 원작 작품 기획 및 각색을 전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