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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PD, 삶이 일에 스며드는 직업에 대하여

웹툰PD란 무엇일까. 6단계로 구성된 웹툰의 프로세스와 3가지 존재 이유(목적)을 통해 살펴보자

2023-07-19 김태영

재미있게 본 드라마가 알고 보니 웹툰 원작인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된 요즘이다. 웹툰산업은 웹툰 IP만이 줄 수 있는 재미와 IP 벨류체인을 통한 확장성, 부가가치 측면에서 높게 평가되며 한국 문화 콘텐츠 산업으로서 굳건히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지금의 웹툰 시장이 도래하기까지 국내 웹툰 작가들의 왕성한 창작 활동이 있었다. 좋은 작품이 많이 등장하는 가운데, 웹툰 작가의 옆에서 함께 뛰며 웹툰 산업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웹툰 PD’가 새로운 직업군으로 부상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웹툰 PD라는 직업을 알고 있는지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비슷하다. 


“뭐 하는 직업이야?” 혹은 “직접 웹툰을 그리는 거야?” 하다못해 “너 작가야??”


짧은 역사에 비해 급부상한 웹툰 산업과 함께 나타난 직업인만큼 생소한 것이 웹툰PD라는 직업이다. 대체 웹툰PD는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일까?


처음 대중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한 건 유명 웹툰 작가가 예능프로그램에 등장하면서부터이다. 웹툰 작가가 누군가로부터 마감 독촉 전화를 받는 장면을 통해 웹툰에 관여하는 담당자 혹은 편집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어림짐작하게 되었을 것이다. 근래에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웹툰 산업의 소식이 전달되고 웹툰 PD를 소재로 한 드라마도 방영되면서 간접적으로 소개되었다. 


웹툰을 감상하고 난 후 원고 하단에 표기된 카피라이트(copyright)에는 ‘작가’,‘유통사’ 다음으로 ’담당 PD’로 명시된 이름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중뿐만 아니라 웹툰 업계를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는 지망생들에게도 정보가 극히 제한적이다. 


포탈에 ‘웹툰PD’관련 검색을 해보면 유익한 정보보다는 질문으로 가득하다. 

-“웹툰PD를 하려면 어떤 학과를 나와야 하나요?”

-“그림 그릴 줄 알아야 하나요?”

-“웹툰PD는 워라벨이 높다던데, 주말에도 일하나요..?”


PD - Product Director,

웹툰PD는 웹툰이라는 하나의 상품이 만들어지고 서비스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총괄하는 디렉터의 역할을 수행한다. 소설이나 만화 출판사의 편집자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다만 웹툰은 웹기반의 만화 콘텐츠로서 세로 스크롤 구성의 연출 방식, 제작에 사용되는 그래픽 툴, 콘텐츠를 소비하는 디바이스 환경 등 다양한 측면에서 기존의 만화와는 차이가 있는 새로운 콘텐츠라는 점에서 웹툰PD의 직업적 특성 또한 엿볼 수 있다.  

실제로 웹툰 PD가 하는 일은 웹툰이 제작되고 서비스되는 프로세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프로세스를 이해한다면 웹툰 PD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한층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필자는 단계별 프로세스를 근간으로 웹툰PD가 하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먼저 웹툰의 프로세스를 총 6단계로 구분해보았다.


[ 그림1, 6단계로 구성하는 웹툰의 프로세스 ]


*기획 : 여기서 기획이란 작품 기획이 아닌 상품 기획을 의미한다. 작가가 작품을 기획한다면 웹툰 PD는 웹툰이라는 상품을 기획한다. 시작은 원작 발굴이다. 웹툰으로 제작될 원작은 ‘오리지널 IP’ 또는 ‘웹소설 IP’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좋은 IP를 찾아내고 미리 알아볼 수 있는 선구안이 웹툰 PD에게 있어 중요한 덕목이 된다. IP는 스토리의 재미 여부가 가장 중요한 요소지만 그 밖에도 영상화로의 확장 가능성과 웹툰으로 제작되었을 때의 목표로 하는 플랫폼, 즉 유통 출구 전략까지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여 선정한다.  

최종적으로 IP가 선정되었다면 웹툰PD의 가장 중요한 업무가 시작된다. 바로 기획서를 작성하는 일이다. 해당 IP를 선정하게 된 ‘기획의도’부터 ‘핵심설정’, ‘핵심컨셉’, ‘차별성’ 등의 내용을 작성하게 되는데, 주요포인트는 상품적 시각에 입각하여 기획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획의도’ 카테고리에서는 작품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 해당 웹툰에 시간과 재화를 소비해야 하는가에 대한 상품적 가치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핵심이다. 기획서는 속된 말로 “약을 판다”라는 심정으로 제3자를 설득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컨텍 : 기획이 완료되었다면 다음 단계로는 해당 기획을 실현시켜줄 팀을 구성하는 일이다.

기획과 어울리는 작가를 서치하고, 제작 공정을 도와줄 외주를 구한다. 

웹툰을 연재하고 있는 작가부터 커뮤니티, SNS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까지 다양한 루트와 정보를 총동원하여 끊임없이 쪽지나 메일을 보낸다. 한명의 작가에게 2~3년동안 러브콜을 보내 계약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정보력, 열정, 끈기를 요하는 작업이다. 1차적으로 기획에 대해 긍정적인 피드백이 온다면 웹툰PD는 본격적으로 이들을 섭외하기 위해 계약 조건을 제안하고 협의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때 비대면 소통, 대면 미팅 등 어떠한 방식으로든 의사소통 능력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어 각 파트의 연주자를 모집하고 조율하는 작업이라 볼 수 있다.  


*계약 : 흔히들 웹툰PD하면 웹툰을 제작하고 피드백하는 업무만을 상상하지만, 문서 작업 능력 요하는 업무가 더러 있는데 계약서 작성이 대표적이다. 기본적인 저작권법 지식 또한 필요로 하게 된다. 웹소설이 웹툰이 되고 영상화가 되는 IP벨류체인 비즈니스가 활성화됨에 따라 이를 규정하는 저작물, 2차저작물에 대한 조항이 계약서에 포함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담당자로서 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을 모두 숙지하고 있어야 올바른 답변이 가능하고, 나아가 합의점을 도출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렇듯 웹툰 PD는 각 주체와 합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체결하는 일을 주관한다.   


*제작 : 이제 웹툰 제작을 위한 IP, 팀이 모두 구성되었다. 본격적인 프로덕션 단계인 웹툰 제작에 돌입하게 된다. 이때 웹툰 PD의 업무를 크게 3가지로 정리해보았다.

1) 프로듀싱 : 프로듀싱은 원작이 되는 IP에서부터 시작된다. 웹툰으로 제작되는 IP가 ‘오리지널 IP’라면 웹툰 콘텐츠에 최적화된 IP로 디벨롭하는 과정을 거치고, ‘웹소설 원작 IP’일 경우각색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여건에 따라서 회사 내부에 있는 스튜디오나 외주와의 협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정제된 IP를 바탕으로 웹툰 원고가 제작되기 시작하면 작화를 구성하는 콘티, 선화, 채색 등의 단계에서 작가와 논의하고 피드백을 거치며 퀄리티를 향상시키는 작업을 진행한다.

2) 매니징 : 작가. 외주, 내외부 스튜디오 등 다양한 주체가 협업하기에 원활한 작업이 될 수 있도록 각각의 스케줄을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필요시엔 웹툰 제작에 필요한 소스(source)를 지원하기도 한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위해 다양한 사람들이 한몸처럼 작업을 해야 하므로 입장 간에 벌어질 수 있는 불협 요소를 방지하고 깊게 관여하며 매니징 한다.   

3) 편집 : 최종 원고가 나오기 시작하면 마지막 단계인 편집 작업을 수행하는데 원고 내에 등장하는 지문, 대사의 교정교열부터 가독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컷 편집을 진행하기도 한다. 

기본적인 그래픽툴 활용능력을 요하는 작업이며, 최종적으로 웹툰 상품의 품질 평가와 검수가 이루어지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유통 : 앞서 기획 단계에서 유통 출구 전략을 세운다는 것을 언급한 바 있다. 이제 1~3회차 이상의 초기 웹툰 원고분이 준비되었기에 목표로 했던 연재 플랫폼에 작품 연재 계약을 제안한다. 이때 웹툰 원고와 함께 중요하게 검토되는 자료가 기획서이다. 기획서를 바탕으로 플랫폼 담당자에게 피칭하고 협의하여 계약을 성사시키는 것이 주요 임무이다.    

계약이 확정되면 웹툰 런칭을 위해 원고를 플랫폼의 서비스 정책에 맞게 재가공하여 업로드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정상적으로 런칭이 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며 독자 CS에 대응하고 작품 관리를 이어나간다. 매출이 발생하는 시점부터는 작가,외주 등 협업 주체들과의 정산을 진행하며 정산표를 작성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 그림2, 플랫폼 앱, 첫 페이지 화면(사진출처:네이버 시리즈, 카카오페이지, 리디) ]


*프로모션 : 프로모션의 사전적 정의는 제품 판매를 위한 선전이나 판촉활동을 의미한다. 업계에서는 웹툰 연재 시 유료수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진행하는 독자 이벤트나 배너노출 등의 활동을 말하는데, 각 웹툰 플랫폼은 그들만의 다양한 프로모션 정책을 가지고있다. 이러한 프로모션은 웹툰 콘텐츠 유통에 있어 매출과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쉽게 말해 플랫폼이 백화점이고 백화점에 과자를 유통하고 있는 제조사가 콘텐츠 제공사라고 가정했을 때, 다양한 종류의 과자들 중 백화점 매대의 앞줄 혹은 끝줄 어느 위치에 상품이 배치되는가에 따라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웹툰PD는 시시때때로 바뀌는 플램폼의 프로모션 정책을 파악하고 효과적인 프로모션과 시기를 예측하는 프로모션 기획을 통해 웹툰 상품이 지속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후속 관리를 진행한다. 또한 특정 프로모션이 진행될 때 발생하는 매출, 조회수 등을 분석하고 데이터화 함으로써 추후 새로운 웹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참고하여 활용한다.    

     

웹툰이 제작되고 서비스되는 전 과정에서 단계별로 웹툰PD가 어떤 업무를 진행하는지를 알아보았다. 웹툰PD의 직무는 위의 범주 안에 속할 것이다. 근래에는 산업의 발전에 따라 웹툰PD의 업무가 더욱 세분화되고 고도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또한 각 회사의 규모, 사업영역, 방향성, 조직구성 등에 따라 웹툰PD의 업무 롤(role)에는 차이가 있다.


단적인 예로 웹툰계 회사가 구인구직사이트에 게시한 모집요강을 보면 다양한 포지션을 확인할 수 있다. ‘제작PD’, ‘웹툰 스튜디오PD’로 불리는 웹툰PD는 일반적으로 ‘기획, 컨텍, 계약, 제작’까지의 영역을 담당하며 웹툰 제작에 업무가 집중되어있는 포지션이라 볼 수 있다. 


‘플랫폼 PD, MD’의 경우 ‘유통, 프로모션’의 영역을 관할하며, 콘텐츠 제공사와 작가가 제공하는 다양한 웹툰을 관리하고 매출 증대에 주안점을 둔 포지션이다. ‘에이전시 PD’는 A~Z까지 모든 프로세스를 진행한다. 타포지션에 비해 단계별로 깊이 있게 진행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웹툰이 제작되고 서비스되는 전과정을 경험해볼 수 있는 포지션이다. 


하나의 산업을 평가할 때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시장 규모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웹툰 업계 종사자들에게 제작된 웹툰이 손익분기점을 달성하고 그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은 공동의 목표일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웹툰PD라는 직업이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 필자는 3가지를 꼽아보고 싶다.


첫째, 작가의 파트너이자 보조 창작자. 

단순히 작가가 원고를 원활하게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역할만이 PD의 업무가 아니다. 스토리, 작화 등 웹툰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더 재미있는 작품이 될 수 있도록 작가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킬만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창작의 영역에서 함께 고민하며 소통하는 보조 창작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제되어야 할 것은 작가와의 신뢰 관계이다.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작가만큼이나 작품에 대한 연구와 통찰이 필요하다. 작가가 담당PD의 의견을 신뢰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소통이 시작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둘째, 작품을 상품으로. 

웹툰이 갖는 특징은 작품이자 상품이라는 점이다. 작품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상품은 소비가 이루어지고 수익이 창출되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자칫 작품성에만 치중되어 상품성이 부재한다면 소수만이 보는 작품이자 수익성이 없는 작품으로 남을 것이고

상품성에만 치중되어 작품성이 부재한다면 IP의 부가가치 창출을 기대할 수 없는 그저 그런 작품이 될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방향은 작품성과 상품성 두 가지의 밸런스를 모두 갖춘 웹툰을 만드는 것인데, 이 미묘하고도 어려운 지점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것이 웹툰PD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돈.

웹툰PD가 속한 회사라는 집단은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한다. 작가 역시 편하고 즐겁게 소통해주는 담당자를 좋아하지만, 결국 돈을 많이 벌어다주는 담당자를 더 좋아하는 법이다.

어떠한 방식으로 유통하고 마케팅하여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한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행하는 것이 웹툰PD의 역할이다.


끝으로 웹툰PD라는 직업을 왜 선택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무리하려 한다. 


필자는 언젠가 콘텐츠업계 종사자들이 모인 간담회 자리에서 “이 힘든 일을 대체 왜 하는 겁니까?”라는 질문에 누군가 “피가 끓어서요”라는 답을 했던 찰나가 뇌리에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콘텐츠 업계 종사자들이 가장 공감하는 말이 있다. 


“콘텐츠는 뚜껑을 열어볼 때까지 아무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


밤을 새워가며 일할 때도 있고, 들어간 노력에 비해 보람이 따라오지 않는 날도 많다. 주변 동료나 후배에게 웹툰PD라는 직업은 일말의 재미있는 포인트를 찾지 못했다면 오래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직업을 선택했고 지금도 지속하고 있는가를 누군가 묻는다면 필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낭만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 같다.


어떤 이는 감성적인 글귀를 보며 사유하고, 누군가는 절경을 바라보며 뿜어나오는 감성을 만끽하기도 한다. 웹소설, 웹툰, 영화, 드라마 등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일 또한 그러하다.


우리는 콘텐츠를 접하며 기쁨, 슬픔, 통쾌함, 분노 등의 감정의 이입과 변화 속에서 “재미있다”라고 말한다. 즉 콘텐츠의 본질은 재미에 있고, 재미의 근간에는 감정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는 주요 미션이 존재하는 것이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을 주는 일은 만드는 일이었다.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는 무언가를 고찰하는 일은 매력적이고 고귀한 사명감까지 들게 한다. 누군가의 한 순간을 잡아 감성으로 채우는 일이며, 누군가에게는 인생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심어주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이유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시간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재미’를 추구하고 양질의 콘텐츠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일을 시작하는 누군가 역시 웹툰PD라는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 자신만의 비전과 목표를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작품 그리고 상품이라는 그 모호한 경계에서 직장인 혹은 반창작자로서 일하는 직업. 창작은 보통 자신의 삶이 투영되기 마련이라고 한다. 


일이 삶에 스며드는 것이 아닌 당신의 삶이 일에 스며들 것이다. 


필진이미지

김태영

리플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