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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무신> 사건, 무엇이 문제였나 - 비극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제언

<검정고무신> 사건을 통해 불공정 계약과 계약자유의 원칙 등을 살펴본다

2023-06-23 김성주

만화계는 2023년 상반기에 큰 아픔과 충격을 겪었다. <검정고무신>을 그린 故 이우영 작가가 지난 3월 스스로 세상과 작별했다. 세대를 막론하고 사랑을 받았던 유명한 작품의 작가였기에 그 충격은 더 컸다. 

비극의 배경에는 <검정고무신>을 둘러싼 저작권 분쟁이 있었다. <검정고무신> 사업자들은 작가들을 상대로 현재까지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그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 제1심만 약 4년이 넘도록 진행 중이다. 고인은 이 소송의 1심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부당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비극적 사건이 발생한 지도 벌써 3개월여가 지나고 있다. 이제는 이 사건의 경과를 반추해서 정리해보고, 무엇보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그 방향을 모색해보아야 할 시점이다. 



<검정고무신> 분쟁의 배경

만화 <검정고무신>은 1992년부터 2006년까지 소년챔프에서 연재되면서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단행본으로 45권까지 출판되었을 뿐 아니라, 애니메이션으로도 네 차례나 제작되었다. 故 이우영 작가는 이 작품으로 1995년 제5회 한국만화문화상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만화 <검정고무신>의 연재가 종료된 후, 현재 분쟁의 상대방인 사업자 장 모 대표(이하, ‘사업자’라고만 함)가 작가들에게 접근해왔다. 사업자는 작가들에게 검정고무신의 주요 캐릭터들을 가지고 사업화를 해보겠다는 취지로 제안하면서, 캐릭터에 대한 저작권 지분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작가들을 설득했다. 사업자로서 원활히 캐릭터 사업을 하려면 사업자 자신도 저작권자가 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이유에서였다. 그 결과, 사업자는 2008년경 만화 <검정고무신>의 주요 9개 캐릭터에 대하여 34%의 지분을 가진 ‘공동저작자’로 등록되었다. 

사업자와 작가들은 이 과정에서 총 3차례의 ‘사업권 설정 계약서’를 작성한다. 우선 1차 계약은 2007년 9월 10일 이우진 작가와 사업자 간에 이루어졌다. 계약의 주요 내용은 “작품활동을 통해 파생된 모든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및 그로부터 파생된 이차적사업권을 포함”한 사업권 일체를 사업자에게 설정해 주는 것이었다. 이어서 2007년 10월 1일, 사업자와 이우영 작가, 그리고 글작가인 이영일 작가가 위 1차 내용과 같은 취지로 2차 사업권 설정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사업자는 이러한 두 차례의 계약이 체결된 이후인 2008년 6월 26일, 이우영, 이우진, 이영일 작가와 다시 3차 사업권 설정 계약을 체결했다. 3차 사업권 설정 계약서의 내용 자체는 1차와 2차 계약서 내용과 비슷했다. 그런데 이 계약서에는 향후 분쟁의 씨앗이 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표현 내지 조항들이 추가되었다. 그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우선 첫째로 3차 사업권설정계약서에 계약 당사자로 사업자 개인이 추가되었다. 1, 2차 계약서의 경우 사업자의 개인 사업체인 홍진P&M만 계약 당사자였다. 그러나 3차 계약서에서는 작가들 뿐 아니라 사업자 개인도 자신의 사업체인 홍진P&M에게 사업권을 설정해주는 주체로 기재되었다. 


둘째, 계약서 전문에 사업자가 <검정고무신>의 “원저작권의 권리를 보유하고” 있음을 명시했다. 기존 1, 2차 계약서에서는 원저작권자가 이우영, 이우진, 이영일 작가임을 전제하고 있었는데, 3차 계약서에서 사업자도 만화의 “원저작권”자가 된 것이다. 사업자는 위 3차 계약 체결 시점에 캐릭터 지분의 공동저작자로 등록된 사실을 명분으로 삼고, 만화 저작물 자체의 권리자임을 전제로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 계약서에는 이렇게 <검정고무신> 원저작권자의 지위를 득한 사업자가 <검정고무신>의 모든 사업에 대한 권리를 위임받는다고 명시되었다. 이에 따르면, 사업자는 사실상 만화 <검정고무신>의 사업화 관련 권리를 포괄적으로 모두 양도받았을 뿐 아니라, 그 권리를 당사자들 중 사업자만이 행사할 수 있도록 설정해 두었던 것이다. 


한편, 사업자는 이러한 3차 계약까지 체결한 후 작가들과 다시 ‘손해배상청구권 등 양도각서’라는 이름의 계약서를 작성했다. 이 계약서에는 작가가 사업자에게 “일체의 작품활동과 사업에 대한 모든 계약에 대한 권리를 양도”하고, “추후 검정고무신 작품활동과 관련된 모든 업무는 홍진P&M을 통해서 진행”하도록 기재되어 있었다. 결과적으로 <검정고무신>과 관련한 모든 창작, 사업활동은 사업자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지 못하게 묶어 두었던 것이다. 

故 이우영 작가는 이러한 계약 내용이 애초 합의되었던 범위와 다르다는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업자에게 계약서를 캐릭터 사업화에 국한하도록 수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사업자 측은 이를 거부했고, 급기야 故 이우영 작가가 사업자 측의 허락 없이 작품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작가에게 소송까지 제기했던 것이다. 


[ 고(故) 이우영 작가의 유튜브 이미지 ]


불공정 계약과 계약자유의 원칙 사이

비극의 원인이 된 계약서에 어떤 분쟁 요소가 숨어 있었던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이 계약서에 따라 <검정고무신> 만화 저작물에 대한 포괄적 사업화 권리가 사업자에게 양도되었다. 그러면서 계약 체결 시점에 故 이우영 작가에게 이에 따른 어떠한 금전적 대가도 지급되지 않았다. 

나아가 사업자는 캐릭터 창작 사실이 없음에도 故 이우영 작가 등과 함께 캐릭터의 ‘공동저작자’로 자신을 등록했다. 그리고 이를 명분으로 삼아서 만화 저작물 자체의 권리자임을 전제로 사업화 계약을 체결했다. 사업화의 종류와 내용도 전혀 특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계약이 체결된 결과, <검정고무신> 작품과 캐릭터들은 작가들의 동의 절차를 밟지 않고도 다방면의 사업화에 자유롭게 이용되었다. 반면 작가들은 사업자 측의 동의를 받지 않고는 어떠한 작품활동도 개별적으로 할 수 없었다. 故 이우영 작가가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자, 사업자 측은 위 계약서를 근거로 故 이우영 작가에게 형사고소와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창작자가 죽음에까지 이르렀다. 

작가들이 계약서에 서명한 이상, 법적으로는 이러한 계약도 일단 유효하게 성립한 것으로 본다. 당사자가 자유롭게 선택한 상대방과 그 법률관계의 내용을 자유롭게 합의한 것으로 보고, 법은 그 합의를 함부로 무효로 선언하지 않는다. 이른바 ‘계약 자유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검정고무신> 사건에도 과연 ‘계약 자유의 원칙’을 우선하여 적용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업자와 작가 간 ‘계약 정보 불균형’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을 구성하는 법적 용어 자체는 작가들이 보기에 매우 생소하다. 저작자, 저작권자, 저작재산권, 저작인격권, 2차적 저작물 작성권, 양도, 부여, 행사, 이의 등 각양각색의 법률적 용어가 들어간다. 작가 입장에서 그 의미를 파악하고 유불리를 따진다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대부분의 계약서는 사업자 측에서 초안을 만들어서 작가들에게 제시한다. 사업자는 이 계약을 통해 어떤 사업을 할 것인지, 권리를 어떻게 변동시킬 것이지, 어떻게 매출을 발생시키고 2차 사업화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계약서에 반영시킨다. 이미 계약서에 나온 용어의 의미와 권리의무 관계 등을 이해하고 작가와 협상을 할 수 있다. 

반면 작가가 사업자처럼 계약상 용어 등을 다 파악해 이의를 제기하고, 수정조항을 제시하고 협상까지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사업자가 만화 <검정고무신>의 저작재산권을 양도받은 사실이 없음에도, 3차 사업권 설정 계약서 전문에 자신을 “원저작권의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고 기재하였을 때, 해당 표현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분쟁 가능성을 지적할 수 있는 작가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계약문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 

이 비극적인 사건 이후 법‧제도적인 개선 방안에 대한 많은 제안들이 나오고 있다. 저작물에 대한 포괄적 양도 금지와 저작물 이용에 따른 추가보상청구권 등을 담은 「저작권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국회에 계류 중이다. 공정한 콘텐츠 유통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금지행위 유형을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문화산업공정유통법」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통과한 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심의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만화‧웹툰 분야 표준계약서를 전면 개정 중이고, 불공정계약 방지를 위한 저작권법률지원센터를 개소하여 창작자들에 대한 법률 지원을 시작했다. 

법‧제도의 개선을 위한 행동과 시도들은 분명 유의미하다. 그러나 법과 제도의 개선 과정에 일방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만 반영될 수는 없다. 개선의 방향도 사업자들에 대한 금지와 제재에 맞추어져서는 안 된다. 사건 일방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만 중심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대립구도를 고착화 시키고 결과적으로 자유롭고 공정한 창작환경까지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만화‧웹툰 콘텐츠 종사자들은 그간의 분쟁과 시행착오들을 거치면서 나름의 자정 노력들을 경주해오고 있다.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당연한 문화가 되고, 지각비라는 이름으로 작가에게 부당한 페널티를 부과하던 계약문화가 사라졌다. 2차적저작물작성권을 대가 없이 포괄적으로 양도하는 계약 유형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번 표준계약서 개정을 통해서는 작가의 휴재권 보장, 정산내역에 대한 근거자료 제공 의무화, 2차적저작물 사업화 과정에서도 작가에게 사전 고지 내지 동의를 구하도록 하는 조항 등이 신설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요컨대 콘텐츠 업계 종사자들 간에 공정하고 상생할 수 있는 계약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추세’는 분명히 있다. 

‘제2의 검정고무신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만화‧웹툰 업계 종사자들 간 사회적 합의라고 본다. 적어도 만화‧웹툰 저작권 계약에서 ‘이런 방식과 조건으로 계약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공통의 인식과 합의 말이다. 우리 모두 이러한 비극을 막지 못한 데에 대하여 같이 반성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하는 데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만화‧웹툰 콘텐츠 업계의 사회적 합의안으로 다음의 세 가지 방안을 제안해보고자 한다. 


첫째, 저작재산권을 포괄적으로 양도한 계약은 분쟁 가능성이 높으므로 창작자와 사업자 모두 계약 조건이 지나치게 불공정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2차적저작물 작성권을 포함한 저작재산권을 모두 양도하면서, 별도의 대가 지급과 구체적인 행사 조건도 설정하지 아니한 형태의 계약은 지양될 필요가 있다. 


둘째, 콘텐츠 사업화에 따른 구체적인 내역과 조건을 작가에게 고지하고, 이에 따른 수익 정산 내역 및 근거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저작자의 알 권리 측면에서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 그간 계약서에 관련 근거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또는 사업자 측의 영업비밀이라는 등의 이유로 공개가 거부되거나, 일부 공개 하더라도 그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아서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사업화가 되면 저작물 권리를 가진 저작권자들과 이윤을 분배하는 것이 기본이다. 때문에 저작권자에게 어떤 식으로 사업화를 하고, 얼마의 매출이 발생한 것인지 등의 전반적 절차를 알려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절차다. 계약서에 이와 관련한 문구가 있든 없든 당연한 과정이고, 이는 저작권자가 가지는 정당한 권리라고 본다. 


셋째, 「예술인권리보장법」 에 따른 권리침해 조사권한과 절차에 실효성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은 제13조를 통해 불공정행위의 유형을 제시하고 예술인의 권리에 대한 보호를 시작하였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그리고 같은 법 제29조 및 제34조에서 정부로 하여금 예술인 권리침해에 대한 조사와 시정명령을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다만 현행 조항만으로는 정부의 권리침해 조사 권한이 어디까지인지를 알 수 없고, 조사의 세부절차와 수단도 구체화되어 있지 않다. 때문에 가령 피조사자가 조사에 협조하지 않거나 자료 제출 등을 거부할 때 이를 강제할 수 있는 수단 등이 마땅치 않다는 한계가 있다. 예술인 권리침해 행위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재 및 권리구제 수단을 마련하여 법령 및 시행령 개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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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주

- 법무법인 덕수 파트너 변호사
-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저작재산권법 전문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