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무한경쟁의 시스템 속에서 이해와 연대로 살아남는 법

AI, 스튜디오 등 무한경쟁 속 웹툰 시장, 이젠 작가들에게 이해와 연대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2023-06-30 홍난지


무한경쟁의 시스템 속에서 이해와 연대로 살아남는 법

근래 웹툰계에 창작 테크닉을 갖춘 똑똑한 AI가 등장하면서 인간만의 고유성이라 여겼던 창작과 예술성에 도전받고 있습니다. 자동채색, 이미지/스토리 생성, 심지어는 스토리를 넣으면 콘티, 만화로 만들어준다고 하니 작가들과 지망생들의 시름을 깊어집니다. 나의 직업이 AI로 인해 대체될 수 있다는 생각에 갖는 시름입니다. 대체될 수 있단 위기감은 특별히 AI가 등장했기 때문에 겪는 것만은 아닙니다. 언제든 다른 존재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파묻혀 살아왔습니다. 나를 대체할 존재가 인간을 비롯한 AI까지 확장된 것뿐이죠. 

데뷔를 위해 24시간을 30시간처럼 쪼개어 쓰면서도 타인의 작품을 보고 위축되는 지망생들, 데뷔의 벽을 넘었지만 작가로 살기는 더 힘든 상황에 놓인 작가들, 과연 이 만화계에 비평이란 분야가 쓸모가 있는 건지를 고민하는 비평가들, 업계로 눈을 돌려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를 지속시키기 위한 수많은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는 고민에 싸여 있죠. 게다가 웹툰 산업의 변화는 숨이 가쁠 정도로 빠르게 흐릅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제작 시스템을 갖춘 고품질의 웹툰들과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다수 등장했습니다. 정보의 불균형은 심화되고 무엇이 정확한지 판별하기는 어렵습니다. COVID-19라는 위기는 웹툰 산업이 성장하는 기회로 작용했습니다.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들이 때때로 나타나니 만화계의 여러 구성원들은 더욱 불안합니다. 어떻게 해도 만화계에서 안정성을 보장받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밖에 없는 고민의 근원에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욕망과 언제든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만화계에 발붙이고 있는 동안 ‘불안’과 ‘두려움’은 떨쳐 낼 수 없을 것이란 생각에 더 암담해집니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암담한 현실을 자각하자는 게 아닙니다. ‘불안’과 ‘두려움’의 깜깜한 터널에서 자칫 목적지를 잃고 헤맬 때 빠질 수 있는 함정과 그 함정에서 벗어나 목적지를 향해 계속 나아가는 방법, 그래서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지속하는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


사이다 서사에 반영된 각자도생과 능력주의

웹툰은 사회적 산물입니다. 시대의 흐름과 콘텐츠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죠. 웹툰은 현실을 반영하고 웹툰에 반영된 현실은 더 의미를 증폭시키기도 합니다. 웹툰에 나타나는 여러 이야기, 캐릭터를 보며 현실 세계에 대한 지평을 넓히는 것, 그것이 웹툰을 읽는 즐거움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웹툰은 우리가 살며 경험하며 들러붙어 있는 현실과의 거리를 넓혀주거든요. 일정한 거리감으로 인식되는 객관성은 삶을 반추하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려 할 때 필수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각자도생과 능력주의를 바탕으로 빠른 이야기 흐름을 통해 통쾌함을 주는 웹툰의 ‘사이다 서사’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다양한 캐릭터들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통해 보여줍니다.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세상에서 어떻게든 능력을 쌓아 손해 보지 않고 성공해서 살아남겠다는 내용은 사이다 서사로 일컬어지는 웹툰들이 추구하는 공통입니다. 이러한 웹툰 속 주인공들은 모두 죽지 않고 살아남아 성공할 것이란 공통 목표를 가지면서도 매우 개인적인 욕망을 성취합니다. 모두 같아 보이지만 모두 다른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선과 악, 좋음과 나쁨이 한 가지로 수렴되지 않고 각자의 취향처럼 흩어져버려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좋고 나쁜 것인지를 판별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각자가 원하는 대로 행동합니다. 그래서 사이다 서사 속 주인공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죠. 


죽음이란 은유의 실체는 실패에 대한 공포

사이다 서사 속 주인공들은 대개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느끼는 존재에 대한 위협은 물리적인 죽음의 공포와는 사뭇 다릅니다. 작품 속 죽음이란 지표는 현실의 은유입니다. 삶은 원하고 바라는 대로 통제되지 않고 게임 세계와 다르게 노력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지도 않죠. 수 없는 각오와 의지를 갖고 노력해도 통제할 수 없는 것투성인 현실에서 우리는 종종 무력감을 느낍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닿지 않을 목표에 대한 허무함, 무력감을 느끼는 젊은 세대들이 N개의 욕망을 포기한다며, N포 세대라는 잔인한 이름을 붙이기도 했지요. 혹자들은 이들에게 ‘노오오력’이 부족하다고들 말합니다. 원하는 것을 성취하지 못한 것도 쓰라린데 이런 결과는 모두 개인의 탓이라고 합니다. 한편, 웹툰 주인공들은 극 중에서 죽음을 피하려고 애쓰면서도 죽음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차라리 그 회차의 삶을 삭제하고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하기도 하고요. 아예 변신해서 다른 사람으로 재탄생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들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존재에 대한 위협은 물리적인 죽음보다는 사회에서 잊힌 존재, 실패자가 될 것이라는 공포에서 발현된 것입니다. 실패했을 때 이들이 기댈 곳은 없으니까요.


실패의 원인을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능력주의

무한경쟁의 시스템에서 개인에게 모든 책임이 전가되어 겪는 ‘삶의 무력화’, ‘삶의 통제감 상실’은 ‘신자유주의’를 채택함에 따라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라고 하더군요(1). 또 ‘능력주의’는 ‘가족 배경이나 물려받는 사회적 지위보다 개인의 능력과 가능성을 근거로 보상’한다는 개념으로 신분제도 같은 구질서를 타파하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결국 성공한 소수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불행을 안겨다 주었습니다(2). 개인의 능력이 우선시 되는 사회인데 신분이 가로막지도 않는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건 순전히 사회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책임이라는 것이죠. 무한경쟁 시스템에서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능력주의는 우리가 바라는 공통의 목표, 그 목표에 이르려고 했던 목적을 잊고 각자도생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혹은 그 틈에서 실패자가 되어 목표를 잊은 채 살게 되기도 하고요. 사실, 개인의 성공은 스스로의 능력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닌데 말이죠.


실패도 성공도 혼자만의 것이 아니란 것

조석 작가의 《문유》에서 주인공은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목표로 철저하게 개인주의적으로 살다 보니 파견된 달 기지에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달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죽을 위험을 여러 번 거듭하며 사는 것이 익숙해질 무렵, 자신의 능력만으로 살아남은 게 아니란 것을 깨닫습니다. “네가 살아있는 이유는 이 척박한 달의 환경 덕분이야. 그것을 견디기 위해 만든 좋은 시설, 그건 그냥 건물이 아니야. ‘살아남기 위한’ 조건을 갖춘 시스템이야. (…) 이 시설, 식량, 물, 모든 게 널 도운 거지. 네가 잘해서 살아있는 게 아니야. 기지가 잘했던 거지(3).” 철저하게 개인적으로 행동했던 주인공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 타인들에게 관심을 돌리게 된 결정적인 장면이죠. 《문유》의 대사처럼, 마이클 샌델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노력을 하려는 의지 자체도 그러한 시도도 흔히 말하는 자격이라는 것도 행복한 가정과 사회적 환경에 근거한 것(4)”이라고요. 


누군가를 미워하고 경계 짓는 것은 두려움과 불안 때문

능력주의는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지만, 모든 성공도 자신의 공으로만 여기게 만들죠. 오로지 자신에게만 쏠린 시선은 스스로를 과잉으로 자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무엇이든 마음먹으면 다 할 수 있다는 ‘부풀려진 가능성’에 매달려 나의 현재 상태를 자각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들뜬 자아’의 상태로요(5). 다른 일면에서 내 탓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무의식은 타인에게 투사되어 혐오하고 경계를 짓기 마련입니다. “특정 집단에 대한 경계 짓기는 악의를 가진 특정 인물에 의해서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취약성과 유한성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채택하는 방식(6)”이라고 합니다. 타인을 밀어내고 미워하는 것은 악(惡)해서가 아니라, 존재에 대한 위협, 불안과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어쩐지 우리 모두에게 애틋한 감정이 드네요.

앞서 웹툰이 현실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만든다고 했었죠. 사이다 서사가 개인 중심적인 서사로 코앞에 놓인 사건들을 빠르고 통쾌하게 해결해 나가면서 카타르시스를 주기에 달이 아닌 가리키는 손가락에 집중하게 만들 수도 있단 것이 못내 아쉽긴 합니다. 그렇지만 사이다 서사를 견지한 작품 속에서 일말의 희망을 엿보기도 합니다. 우리가 속한 사회 구조 속에 내재된 갈등을 직접적으로 해결하지 못하지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넌지시 제시하기 때문이죠.


이해와 연대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는 주인공들

《그 악녀를 조심하세요!》(7)의 주인공은 소설 속 악녀, 멜리사로 빙의했습니다. 악녀로 빙의해놓고 보니 악행의 이유를 알게 되고 소설 속 멜리사의 앙숙이었던 유리가 미워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도 알게 되죠.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생기자 주인공은 악녀 멜리사가 자유롭게 살게 하고, 적대자였던 유리도 주체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해함으로써 연대할 수 있고, 연대함으로써 더 나은 삶의 방향을 찾은 것이죠.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의 바이올렛은 가족으로부터 당한 학대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는 남편 윈터의 냉대에 살 의미를 찾지 못합니다. 바이올렛이 자신을 향해 총구의 방아쇠를 당기자 윈터와 몸이 바뀌고, 서로의 진심을 이해하게 됩니다. 바이올렛과 윈터, 두 사람은 자신을 싫어할 것이라고 경계 지을 때는 몰랐던 상대방의 진심을 알고 나니 스스로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갈 힘이 생깁니다.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8)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죽음으로부터 비롯되는 걸 보면,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됩니다.

얼마 전 여러 명의 작가님과 만나 작가로서 사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작품을 연재하던 도중, 전작 보다 순위와 수익이 낮아 조바심이 나고 때마침 COVID-19도 발생해서 외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고요. 어떻게 하면 더 높은 순위로 올라갈 수 있는지, 이러다 경쟁 시스템에서 낙오자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데, 경쟁자인 다른 작가들은 잘 하고 있는 것 같아 더 불안했다고요. 그러다 동료 작가의 손에 이끌려 작가 모임에 나가면서 반전되었다고 합니다. 외롭게 혼자 일하고 있을 때는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여러 작가들을 만나니 동료애가 생기더라는 겁니다. 혼자가 아닌 우리, 비슷한 경험을 하며 공감할 수 있는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아무리 힘든 상황이더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생겼다고요. 그리고 다시 자신이 하는 일의 소중함, 즐거움, 행복감을 되새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혼자가 아닌 ‘우리’라는 것

우리가 몸담은 만화계는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일을 충실히 하며 지속되고 있습니다. 서로 경쟁하고 각자만 잘 살기를 바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누구도 이 계(界)가 망가지길 바라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다양성이 보장될 때 더욱 성장할 수 있듯이 각자의 자리를 만들어 가는 겁니다. 순위, 조회수, 별점, 수익이라는 숫자와 경쟁을 강화하는 시스템 속에 눈길을 빼앗겨 불안과 두려움 속에 있느라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잊고 지냅니다. 비단 작가들에게 해당하는 일도 아니고요. 나는 왜 이 일이 하고 싶은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만들고 싶은지를 고민하는 것. 이러한 고민의 부재가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오기 힘들게 만드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립되었다는 생각은, 잘 알지 못하는 대상들에 대한 편견을 강화시키고 미움을 증폭시킵니다. 

그렇지만 터놓고 이야기하고 서로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 모두가 만화를 사랑하고 만화계가 긍정적으로 성장해 나아가길 바라며, 자신의 일을 존중받으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공통이 있단 것을 알게 되죠. 그런 마음이 들면 눈에 보이지 않아 잊었던 중요한 가치를 되살릴 수 있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따라 갈 수 있는 작은 불빛이 켜질 거예요. 가슴 속에서부터 떠오른 그 빛을 따라 가는 길은 외롭지 않을 겁니다. 함께 하는 동료들이 있을 테니까요. 이렇게 된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일을 어렵지만 꿋꿋이 지속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더 이상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혼자가 아니니까요.


(1) 석승혜, 장안식(2016), 「한국사회의 마이너리티 생산과 차별태도」, 『한국사회』 제17집 1호. 참고하여 서술.

(2) Wooldridge, Adrian(2021), The Aristocracy of Talent : How Meritocracy Made the Modern World, Skyhorse Publishing. 참고하여 서술.

(3) 조석(2016-2017), 《문유》, 네이버웹툰, 48화.

(4) 마이클 샌델(2020), 『공정하다는 착각』, 와이즈베리.

(5) 김곡(2021), 『과잉 존재』, 한겨레출판. 참고하여 서술.

(6) 마사 누스바움(2015), 『혐오와 수치심: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민음사.

(7) 뽕따맛스크류바, 푸른칸나, 열매(2019-2020), 《그 악녀를 조심하세요!》, 카카오페이지.

(8) 이보라, 라뇽, 오션(2022-),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카카오페이지.


필진이미지

홍난지

만화평론가, 정책연구가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웹툰만화콘텐츠전공 교수
웹툰자율규제위원회 위원장, 前 한국만화가협회 만화문화연구소장
 『웹툰 퍼포먼스와 독자의 즐거움』, 『이말년』 등 도서 저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