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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아닌 어른으로, '어른이 읽을 만화' 살펴보기

점차 독자층이 넓어지고 있는 웹툰 시장, '어른들의 만화'를 살펴보았습니다

2023-07-28 은천화

1. 기억의 습작

만화를 보는 방식은 변하고 있지만 만화에 대한 인식은 변하지 않는 듯 하다. 신문에 실리는 연재만화부터 만화잡지를 지나 짜장면과 라면을 먹을 수 있는 만화방이 생기고 만화대여점을 지나 만화카페가 생기고 웹툰 플랫폼이 생기는 과정에서 만화 시장은 명실상부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만화 시장은 <나혼렙>을 포함하여 해외에 진출하고 게임으로 나오며 원작 드라마가 현재 방영 중인 대부분의 드라마를 차지할 정도로, 진정으로 괄목상대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달라졌다. 만화를 보는 사람을 '오타쿠'라고 하기에는 만화를 보는 사람은 이제 소수가 아니다.

그런데도 아직 만화에 대한 오해는 풀리지 않은 듯하다. 혹은 진실을 알면서도 오해하고 싶거나. 성인이 가진 폭력성과 유아성에 대한 화살받이가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대중문화가 가질 수밖에 없는 오해는 대중문화가 현대 사회의 핵심적인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비생산적이며 불필요한 것으로 취급받는다는 것이다. 이에는 인기를 끌기 위해 대중문화 스스로 선정성과 폭력성을 표현하는 문제도 있겠지만 인간이 가진 그러한 특성을 거세할 수 있다는 공허한 믿음이 더 문제이다. 인간의 본능적 특성으로 인한 문제들이 대중문화로 인해 발현된다는 본말전도의 믿음은 이제는 해결되어야 할 때다.

만화는 청소년 시기에 읽는 것으로 족하다는 믿음은 어른에게는 만화가 허락되지 않는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우리가 청소년기에 읽었던 수많은 작품은 어른이 되어서도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어른의 만화 세계는 미완된 세계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만화의 세계가 끝나기 전까지는 소년을 졸업할 수 없을 것만 같다. 2000년대 중반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원나블' 시리즈는 블리치를 제외하고는 완결이 나지 않았다. -나루토는 보루토가 진행 중이니 보류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일반적인 만화는 짧으면 몇 개월, 보통 5년 이내에 완결이 나기 마련이지만 최근 인기를 끄는 만화들은 10년 이상의 장기 연재를 하면서 청소년기에 보던 만화가 완결되지 못하고 어른들의 기억에 희미하게 남게 되었다. 만화를 보면서 울고 웃었던 소년·소녀들은 그 기억의 습작을 뒤로 하고 어른이 되었다.


2. 성인 만화만의 작품성

만화를 보는 어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은 심각하다. '성인 만화'라고 했을 때 <플레이보이>와 같은 성인 잡지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울 정도다. 영화에서 성인 영화라고 할 때 '야하거나', '잔인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처럼 성인 만화라는 단어에서 그러한 것이 연상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김성모의 <대털> 시리즈가 성인 만화의 대표로 생각나는 것을 고려한다면 성인 만화의 정의는 선정성과 폭력성이 들어가 있는 만화로 보인다.

사실 선정성과 폭력성의 문제는 극복되어야 한다. 이미 소설과 같은 장르에서 외설과 폭력은 작품성을 위한 하나의 기준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어떤 시점에서 선정성과 폭력성은 필요하다. 그 두 개는 분명하게 우리 세계에 존재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는 어리다고 해서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린이가 그 육체적 자극을 견디기에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가학성이나 성욕을 자극하는 것 자체가 의도된 작품들의 존재들은 더욱이 성인 만화에 대한 선입견을 강화한다. 그러나 성적이거나 폭력적인 것만으로 작품을 배척하기에는 <퍼펙트하프>(럽피 작)나 <인간의숲>(황준호 작)과 같은 작품들이 피해져야 하는 것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 그림 1, '퍼펙트하프'와 '인간의숲' >


<퍼펙트하프>에서 남녀 간의 육체적, 정신적 차이가 이어져 결국 남녀 전체가 갈라져서 살게 되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그 갈등을 관능과 사랑으로 풀어낸다. 해랑아이의 시선은 상대를 성적으로 바라봄과 동시에 존중하는 태도를 통해 어떤 권력관계가 아니더라도 남녀 간의 끊임없는 교류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현대 사회와도 긴밀한 관계가 있다. 아직 젠더 권력이 배제되지 못하는 사회 속에서 성적인 것은 외면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성적인 것을 인정하고 서로를 위해 노력하고 대화하려는 모습에서 갈등을 풀 실마리가 보이기에 <퍼펙트하프>는 그러한 문제들을 직면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육체미적인 인물들 또한 빠지지 않고 등장하여 작품은 그 육체가 뒤섞이는 아름다움을 우리가 여전히 선호함을 느끼게 해준다.

<인간의 숲>에서 나타나는 범죄자들의 탈옥 사태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소용돌이 속으로 인물들을 밀어 넣는다. 범죄자들은 갖가지 방식으로 죽는다. 망치에 맞아 죽거나, 칼로 자살하거나, 독극물이 담긴 주사를 맞거나 하는 여러 방식은 그로테스크하다. 그러나 <인간의 숲>에서 죽음은 단순히 사람을 죽이면서 느껴지는 가학적인 죽음이 아니다. 작품은 숲속이라는 폐쇄적 공간과 살인자들이 숲을 이루는 폐쇄적 사회를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절대적인 가치들을 부정한다. 생명이라는 절대적 가치조차 죽음의 직면이라는 상황 맥락 속에 갇힌다. 절대적 가치인 생명을 부정하기 위해 생명을 그로테스크하게 파괴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이러한 가치의 부정은 인간의 경계를 정의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숲’이라는 작품의 제목에서 ‘나무’의 존재를 다시 한번 추론할 수 있는 방식이 된다. 이러한 방식은 폭력으로만 가능하다. 이성이 배제되고 감정만이 잔재하여 동물적인 잔인함만 남게 될 때 인간의 본질은 드러내게 된다.

물론 <헬퍼2>에서 나오는 고문과 같이 과도한 그로테스크는 그 자극성에 빠져버린 경우라고 할 수 있지만, 적절한 그로테스크는 성인뿐만 아니라 어떤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느껴야 할 적절한 조치다. 성인물에 대한 관점은 청소년이 보지 말아야 할 작품이 아닌 성인이 보면 재밌는 작품으로 그 범위를 넓혀서 보아야 한다. 성인물이 오해받는 점은 청소년이 보지 말아야 할 좋지 못한 내용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달리 생각해보면 직장 생활과 같은 것은 성인의 전유물임에도 청소년이 보지 말아야 할 내용은 아니다.


3. 성인成人물은 성적性的이고 잔인殘忍해야 하는가   

성인 만화와 어른 만화는 다르게 보아야 한다. 성인 작품이 정말로 청소년기에는 통제할 수 없는 자극을 주는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것을 의미한다면, 어른 만화는 어른이 되었을 때의 삶을 다루는, 혹은 어른을 위한 삶을 다루는 작품이 될 수 있다. 성인 만화라는 오명을 조금만 벗겨내면 어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작품을 찾아낼 수 있다. 특히 직장물이 대표적인 어른 만화가 될 수 있다. <미생>(윤태호 작), <가우스전자>(곽백수 작), <쌉니다천리마마트>(김규삼 작) 등 직장물은 청소년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지만 성인이라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세 작품 모두 드라마화 될 만큼 웹툰으로써 성공을 거두었으니 재미는 보장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 그림 2, '쌉니다천리마마트'와 '가우스전자' >


<쌉니다천리마마트>는 대형마트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사회를 풍자한다. 상식적으로는 이루어져서는 안 될 사건들이 나름의 개연성을 가지고 발생하는데, 불티나게 팔리는 현금 포장 세트나 왕이 된 CS팀은 상식을 뒤집힌 상황임에도 의외로 설득력이 있고 개연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우리들의 흥미를 자아낸다. 권 이사의 뜻대로 되지 않는 계획 또한 세상사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의외의 교훈을 나타내기도 한다. <가우스전자>는 실제 직장 생활에서 발생하는 화제들과 미묘한 권력관계를 실감 나게 그려낸다. 외국인이 참신한 컨설팅 내용을 가져오지만, 한국식 권력관계로 인해 무시당하는 것이나, 수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VR기기를 선구적으로 활용한 것, 어른들이 직장 생활을 하며 겪는 여러 고충은 어른이라면 익숙하고 청소년이라면 신기해할 내용들이다. 

육아와 반려 또한 어른을 위한 만화가 될 수 있다. <닥터앤닥터 육아일기>(닥터베르 작), <개를 낳았다>(이선 작)와 같이 어떤 대상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지는 모습은 어른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면서 청소년들에게 자기 부모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된다. <닥터베르 육아일기>는 의사와 공학 박사라는 고학력 계층의 부부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독자층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친근하게 육아에 관해 설명한다. 각 인물을 동물로 표현하여 그 성격을 비유한 것과 육아를 자신의 전공에 빗대어 비유함에도 쉽게 풀어내는 전개는 어른에게는 육아에 대한 대비와 공감을 제공하고 어린 독자들에겐 부모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개를 낳았다>는 최근 늘어나고 있는 반려동물에 대한 여러 시사점을 제공한다. 반려동물은 어른의 몫이다. 강아지 공장에서 사기를 당하는 것도, 강아지가 아파서 병원에 가는 것도, 사람들이 대형견에 대한 시선을 인정하는 것도, 결국엔 수명의 차이로 인해 슬플 수밖에 없는 미래를 알면서도 키운다는 것도 함께 살아가면서 우리가 견뎌야 할 모든 것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능하다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돌아올 사랑을 보장받지 못해서 스스로 보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어떤 순간은 존재만으로 그 모든 보상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반려동물을 키울 때 꼭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다.

『2022 만화웹툰 이용자 실태조사』(2023,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일주일에 감상하는 웹툰 평균 작품 수가 10대가 15작품, 20대가 12작품, 30대가 10작품, 40대가 8작품에 이른다. 어른이 되어서도 극적으로 웹툰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30, 40대에 있어 ‘카카오페이지’ 플랫폼이 인기가 많은데, 이전에 포털 사이트 다음을 많이 사용하던 세대이기도 하지만 30, 40대 남성이 선호하는 액션, 무협 장르와 동일 연령대 여성이 선호하는 판타지 로맨스가 많아 성인 장르가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내용 또한 어른들의 이목을 끌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른이라고 해서 웹툰과 먼 것은 아니다. 우리는 주인공을 꿈꾸지 않았는가.


4. 만화가 문화가 되고, 문학이 되려면 

어른과 청소년의 가장 큰 차이는 책임이다. 청소년은 폭력과 성행위에 책임을 질 수 없기에 허락되지 않으며 어른이라고 그것이 방만하게 허락되는 것은 아니지만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허락되기도 한다. 성인 만화가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전부터 이어져 왔던 그런 성인물의 자극성을 통해 대중성을 확보하는 것도 좋지만 성인으로서 읽을 수 있는 작품성 있는 웹툰들을 보는 것도 좋은 방향이다.


< 그림 3, '지옥'과 '송곳' >


최규석, 연상호 작가의 <지옥>, 최규석 작가의 <송곳>은 주제와 연출, 대사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수작이다. 두 작품 모두 드라마화되었는데 <지옥>은 웹툰과 드라마 모두 주목을 받았던 것에 비해 <송곳>은 둘 모두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송곳>이 더 ‘문학’ 같았기 때문이다. <송곳>은 대형마트 속에서 벌어지는 비정규직 노동쟁의를 다루는데, 이러한 주제는 일반적인 독자층에 거부감을 불러일으킬뿐더러 그 내용이 정의 구현이 아닌 실제 사건처럼 다루고 있어 흔히 ‘사이다’를 요구하는 최근 트렌드에 맞지 않는다. 이수인은 ‘사람들에게 실망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면서도 세계에 대한 혐오를 감추지 않는다. <송곳>은 서사를 전개해가는 인물이 스스로를 혐오한다는 점에서 문학적이다. 독자들의 작은 관심 속에서도 이수인은 인기와 거리가 멀었다. 정의를 진정으로 실행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혐오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사람들은 선을 세우는 것보다 악을 멸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 웹툰이 이런 점에서 자극적이고 대중적인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송곳>의 담백한 맛을 봐도 좋을 것이다.

어른을 위한 만화는 일상의 권태에 빠진 어른에게 위로와 열정, 공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어른이라서 이해할 수 있는 작품들이 더 많이 나타나야 한다. 대부분의 웹툰은 핸드폰으로 본다. 회사 쉬는 시간에, 출퇴근 시간에, 자기 전에, 화장실에서 어디든 웹소설보다 더 간편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웹툰이다. 이제는 어디서든 어른들을 위로할 수 있는 작품들이 생겨나야 한다. 그리고 청소년이 보더라도 숨기는 것이 아닌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라며 젠체하며 어깨를 으쓱거릴 수 있어야 한다.

성인에게 폭력과 외설만 있다면 성인의 세계는 도달하지 말아야 할 세계가 된다. 청소년이 안심하고 성인의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선 성인의 세계에 존재하는 힘으로부터의 권력과 성이 아닌 복잡미묘한 권력관계, 누군가를 키운다는 책임, 세계에 정당하게 반항할 수 있는 논리 등을 작품을 통해 보여줘야 한다. 어른들을 위한 만화는 눈을 돌리지 않았을 뿐이지 찾는 순간, 청소년들이 봐도 재밌지만 어른들이 본다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이는 작품들이 보일 것이다. 그때 만화는 청소년만의 문화가 아니라 세대 전체를 아우르는 문화가 되며 더 나아가 문학으로 나아가는 그 발전적 가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자료 >

* 한국콘텐츠진흥원, 2023, 『2022 만화웹툰 이용자 실태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