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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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의 만화‘화(化)’ - 애니플러스의 웹툰 원작 애니메이션 제작 발표 내용을 살펴보며

애니플러스에서는 ‘웹툰 원작’ 애니메이션 10여편 제작 소식을 발표하였다. 그 중 두 작품을 선정하여 의미와 함께 소개해 보고자 한다.

2023-08-02 문종필

재미있거나 중독성 있는 것은 자연스럽게 전염된다. 유튜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틱톡 영상의 유익한 표정은 어렵지 않게 여러 사람을 따라 하게 만든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TV에서 우리를 웃고 떠들게 만드는 코미디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요즘 대세인 SNL 코리아에서 연기하는 유명 배우들의 감각 있는 표정은 재치 있다며 친구들과 영상을 반복해 돌려보지 않는가. 이처럼 모방하고 싶은 콘텐츠는 어떤 방식이든지 대중들에게 스며든다. 이것을 반향이라는 말로 표현해도 좋겠다. 영향력 있는 존재는 무럭무럭 자라나는 〈토토로〉(1988)의 커다란 나무처럼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커다랗게 자라 전국은 물론, 전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기도 한다. 지금 서가에 꽂혀있는 고전 명작들은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쳐 이곳에 있는 것이다. 홀로 고독하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당당히 뽐내며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해 독자들 곁에 오래도록 살아 숨 쉬는 것이다. 좋은 작품은 밟아도 쓰러지지 않는 잡초처럼 살아남는다. 영향력 있는 작품은 혐오와 편견에도 굴하지 않고, 어떤 방식이든지 독자 곁에서 오래도록 함께 호흡한다. 

만화는 과거에 주류가 아니었다. 부정할 수 없는 매우 솔직하고 정직한 발언이다. 만화는 늘 변방이었고, 숨죽여 조크나 웃음을 날리는 형편없는 장르였다. 최근 젊은 작가들의 텍스트에서도 이런 구절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만화는 늘 변방에서 외롭게 분투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세상이 달라졌다. 주류라고 불리던 장르가 뒤로 물러나고 웹툰과 웹소설이 그 빈틈을 채우기 시작했다. 여러 이유를 들어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스마트 폰의 발명으로 빠르게 소비할 수 있는 장르가 대중들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근대 시기에 소설이 오락의 장르였던 것처럼 동시대의 오락 장르는 웹툰과 웹소설과 같은 스마트 폰에 적응한 텍스트다. 물론, 이 장르도 계속해서 발전해야 하고 주류가 된 이상 수준 낮은 형태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어떤 방식이든지 갱신하지 않으면 기술적인 문제를 떠나 도태될 수밖에 없다. 웹툰은 현재 무한대로 증식한다. 누군가는 웹툰 시장이 다소 주춤한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하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웹툰의 영향력을 단숨에 멈추기는 힘든 것이다. 관성의 측면에서 영향력은 계속해서 지속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웹툰의 변형은 피할 수 없다. 토토로의 나무처럼 기하급수적으로 자신의 표정을 바꿔 새롭게 진화한다. 이러한 예견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직감했고 확신했다. 

작가의 독특한 취향과 성향이 반영된 종이 만화책과 그래픽 노블을 좋아하는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외면할 수 없다. 종종 웹툰 수준이 형편없다고 무시(?)하기도 했지만, 우연히 만나게 된 좋은 작품 앞에서는 나의 생각을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글쟁이에게 아무리 못나도 ‘글’이 좋으면 외면할 수 없는 것처럼, 사생활이 조금은 복잡하더라도 배우가 연기를 잘하면 그 배우를 마음속에 내치기 쉽지 않은 것처럼, 웹툰 역시 마찬가지다. 작품이 좋으면 할 말이 없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작품의 좋고, 덜 좋고를 이야기해야만 하는 평론가는 좋은 작품 앞에서는 외부적인 요인을 뒤로 밀어내고 조용히 박수를 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웹툰 IP의 확장은 외면할 수 없는 작금의 현실이다. 


[ 그림 1, 넷플릭스에서 웹툰으로 검색한 화면 ]


독자들이 좋아하고 선호하고 있으니 웹툰의 확장을 지켜보는 것은 숙명과도 같다. 최근 연구물은 이런 시대적인 흐름을 보다 더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증명한다. 예를 들어 네이버와 카카오의 웹툰・웹소설 플랫폼 및 영상 제작사 인수현황에 대해 쓴 어느 논문(1)에서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적극적으로 영상 제작사를 인수해 웹툰 IP를 확장하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무수히 많은 텍스트들이 웹툰 하나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되고 번역될 것으로 보인다. 한 개인에 의해 흐름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탄탄한 자본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운영될 것이다. 실제로 넷플랙스 검색란에 ‘웹툰’을 검색해 보면 애니메이션‘화’되거나 영화‘화’된 텍스트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외모지상주의〉, 〈갓오브하이스쿨〉, 〈신의 탑〉, 〈노블레스〉, 〈경이로운 소문〉, 〈DP〉, 〈지옥〉, 〈26년〉, 〈이태원 클라쓰〉, 〈마스크걸〉 등의 작품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검색되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웹툰은 앞으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작품들이 변주될 것이다. 이러한 흐름이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뿐이겠는가. 일부의 작품은 이미 게임‘화’ 되기도 하니 웹툰 IP는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하나의 텍스트가 다양한 매체를 횡단하며 시스템 속으로 변주되었던 적이 있었던가. 만약 그 대상이 존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동시대의 주류 장르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인기 있는 존재는 늘 어떤 방식이든지 자신을 뽐내기 마련이다. 자신을 뽐내는 것은 인간도 마찬가지 인데, 작가의 손을 떠난 텍스트는 오죽하겠는가. 

이들 웹툰은 독자들도 짐작했듯이 모두 수준급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동시대의 모순과 부조리를 적절히 담아내는 텍스트임을 부정할 수 없다. 단순히 오락이나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 제작된 만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동시대의 웹툰은 어둡고 칙칙한 사회의 이면을 세로 스크롤에 적응된 최적의 칸과 말풍선으로 담아내려고 애쓴다. 그러니 내용적인 측면에서 나무랄 수 없다. 필자가 최근 우연히 어느 학회에 방문해 동시대의 작품들이 논문 주제가 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당대의 모습을 가장 잘 담아내는 장르가 웹툰일 수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어떤 장르보다도 빠르게 동시대의 부조리와 틈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첨단이지 않겠는가. 그러니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다고 할 수 없으나 시대를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는 점에서 웹툰으로만 머무르기에는 무엇인가 아깝다. 그러니 야심 있는 여러 주체들이 웹툰 IP를 확장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닐까. 


최근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 애니플러스의 움직임도 이런 시대적인 흐름과 같이한다. 애니플러스는 자회사 애니메이션 전문 OTT 라프텔(LAFTEL)에서 “웹툰은 <붉은 여우>(하마), <위험한 편의점>(945), <피라미드 게임>(달꼬냑), <호랑이 들어와요>(배세혁, 유은) 등 인기작을 포함해 10여 편(2)”의 작품을 준비해 애니메이션‘화’를 시도하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이들 작품이 일정 부분 독자들과 전문가들에게 인정받은 작품이라는 점이다. 잣대의 옳고 그름을 떠나, 특정한 부류로부터 이만하면 괜찮은 작품이라고 선정되었기 때문에 원본을 애니메이션‘화’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않는가. 덜 좋은 작품을 굳이 애니메이션화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처럼 원본이 특정한 매력을 갖고 있으면  새로운 옷을 입는다. 그 옷이 독자들에게 얼마만큼 사랑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선택된 웹툰 IP는 웹툰이라는 공간을 넘어 새로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 작품 중에 어떤 작품이 매력적일까. 작품마다 고유한 개성과 성격을 갖고 있으니 좋다 나쁘다로 평가하기는 힘들지만, ‘라프텔’에서 애니메이션의 형태로 선보일 웹툰 중 두 작품 정도는 소개할 수 있다. 


[ 그림 2, 붉은 여우 ]


하마 작가의 『붉은 여우』는 현재 완결된 작품으로 네이버 웹툰에서는 168화로 마침표를 찍었다. “본 작품은 15세 이용가로 수정한 개정판입니다.”라는 작가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한때는 “19세 미만 구독 불가” 작품이기도 했다. 선정적인 작품이 다소 출현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으로 보았을 때, 에로티시즘 정도가 반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애니메이션‘화’될 경우, 15세 이용가로 제작될 확률이 높다.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굳이 미래의 젊은 독자들을 외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해도 선정적인 장면이 다소 과잉된 형태로 등장한 면이 없지 않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하마 작가가 수정 개정판을 선보인 것은 잘한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또 하나 아쉬운 것은 굳이 ‘동성애’ 코드를 활용해야 했을까. ‘동성애’를 유행처럼 소비한 것은 아닐까. 이런 결함은 애니메이션‘화’될 때 삭제되거나 고민되어야 한 부분이다. 하지만 『붉은 여우』는 이것이 주가 아니다. 

이 텍스트는 붉은색과 검정색 계열이 처음부터 끝까지 배경을 압도한다. 다소 침침한 톤으로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요물 ‘여우’를 대상으로 괴물의 삶을 이야기한다. 인간들을 홀리고 내기를 해 인간의 운명을 손에 넣는 이야기가 매력적인 것은 붉은 여유가 요물이어서라기 보다도 이런 캐릭터를 통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삶’과 ‘죽음’의 문제를 ‘사랑’과 함께 질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붉은 여우』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삶과 죽음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죽은 사람. 앞으로 죽을 사람. 곁의 사람들이 모두 죽은 사람.” 중 누가 더 불행하냐는 질문이 그것이다. 이런 물음들은 웹툰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곧 죽을 운명에 놓인 사람이 아닌 곁에 아무도 없는 사람이다. 즉,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 없다면, 그는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현실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이다. 만화를 읽고 있는 독자들은 사람을 꾀하고 자신만의 욕심을 위해 살생을 반복하는 여우에게 눈총을 보낼 수도 있지만,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를 지키기 위해 모든 수를 동원해 발악하는 여우의 처지는 어떻게 보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붉은 여우를 미워할 수 없다. 

이어 ‘내기’와 같은 재미있는 장치도 숨겨 놓고 있으나, 『붉은 여우』는 인간의 죽음과 삶과 고독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무엇인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 패턴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죽지 않는 존재는 서양의 경우 ‘드라큘라’가 있으니 말이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무수히 많은 드라큘라 버전의 텍스트들을 떠올린다면 하마의 작품 『붉은 여우』도 특별하진 않다. 하지만 ‘내기’를 좋아하는 ‘여우’라는 ‘요물’이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기존과는 새로운 ‘차이’를 만들어낸다. 죽지 않는 존재가 등장하는 것은 특별하지 않겠지만, 그 존재를 그리는 데 있어서 ‘차이’가 존재한다면 충분히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 차이는 예술에서 즐거움이니 그렇다. 그러니 이 텍스트가 애니메이션‘화’되는 것은 흥미롭다. 웹툰으로 읽을 경우, 칸과 칸 사이의 영역을 독자가 직접 상상력으로 채워야 하는 수고가 있지만, 애니메이션화 된다면 이런 수고 없이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삶과 죽음이라는 다소 묵직한 소재를 다루는 데 있어서 『붉은 여우』의 OST도 궁금해진다. 삽입 음악이 환상적이라면 오래도록 이 작품을 잊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겠다.


[ 그림 3, 위험한 편의점 ]


그다음은 리디 어워즈에서 BL 부문 대상을 수상한 945의 『위험한 편의점』이다. 선정적인 장면이 자주 나오지만 BL 특성상 선정적이기보다는 BL 답게 그림과 관계를 잘 표현해 냈다. BL의 경우 “남성 캐릭터들을 통해 여성들이 여성으로서 자신들의 현실에서 도피해 자유자재로 러브와 섹스를 즐기기 위한 이야기(3)”일 수도 있다는 점을 참고한다면 섹스에 대해 자신감 있고 당당한 인물을 앞세워 자유로운 관계를 꿈꾸는 독자들에게 일정 부분 쾌감을 작동시킨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런 장점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거칠고 무뚝뚝한 조폭과 편의점 학생과의 미묘한 감정선을 긴장감 속에서 표현해 내고 있어서 이 지점들은 참고할 만하다. 이와 같은 작품 또한 영상과 OST로 제작된다면 흥미롭겠다. 다만 BL이라는 특성상 일부의 독자들을 겨냥할 수밖에 없겠지만, 다양한 층의 독자를 고려해 선정적인 장면을 제외하고 감정선을 더 살려보는 것을 어떨까. 감독이 아니니 이런 요구를 직접적으로 할 수 없지만, 독자 입장에서 과감한 섹스 장면보다는 섬세한 선을 끌고 가는 것이 더 섹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끝으로 개인적인 의견을 조금 덧붙이자. 국내에 6월 14일에 개봉한 픽사의 애니메이션 〈엘리멘탈〉(2023)을 보고 드는 생각은 충분히 예측가능하지만 잘 만든 애니메이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며 극장을 빠져나온 이유는 이 텍스트가 인간의 편견과 혐오에 대해 만화의 형식으로 강력하게 질문하고 있어서다. 불, 물, 공기, 흙 4개의 원소 생명체들이 살고있는 ‘엘리멘트 시티’에서 불의 요소인 ‘엠버’는 물의 요소인 ‘웨이드’와 사랑을 하게 되는데, 이 둘의 존재는 사실상 이뤄지기 힘들다. 물과 불이 닿으면 양쪽 모두 소멸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만화는 너무나도 뻔한 과학적 상식을 허문다. 여기서 상식은 단순한 상식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신념’에 대한 거부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100년 전에 옳다고 믿었던 이데올로기나 신념 또는 과학적 상식은 지금 모두 옳다고 볼 수 없지 않는가. 이러한 맥락에서 이 텍스트는 만화적으로 당신이 품고 있는 편견에 질문한다. 다인종이 살아가는 미국의 특징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지만, 구분짓기로 차별하는 것은 인간이 사는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며 극장에 나온 것이다. 물론 국내에도 상당히 좋은 작품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앞서 웹툰이 영화 또는 애니메이션‘화’된 작품 중 〈26년〉, 〈DP〉, 〈외모지상주의〉, 〈마스크걸〉은 분명히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러니 만화인들은 더욱 더 인문학과 철학과 역사와 교양을 흡수해야 한다. 모든 예술의 시작은 역사와 전통과 인간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믿는다. 앞으로 다가올 무수히 많은 웹툰과 웹툰의 애니메이션‘화’를 한 명의 독자로서 적극적으로 응원한다.


(1) 김상임, 「웹툰 플랫폼의 국제적 다각화 전략-네이버웹툰과 카카오웹툰의 일본 진출 사례를 중심으로」,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66호,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2022, 608쪽. 

(2) 이재민, https://webins.co.kr/F/A/9168 

(3) 미조구치 아키코, 『BL진화론: 보이즈 러브가 사회를 움직인다』, 김효진 옮김, 길찾기, 2018. 이 텍스트의 경우, 전자책을 참고를 했기 때문에 인용 페이지를 적지 못함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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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필

글쓴이 문종필은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 이 평론집으로 2023년 5회 [죽비 문화 多 평론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밖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집에 「그래픽 노블의 역습」(2021)과 「좋은 곳」(2022)과 「무제」(2023)을 발표하면서 만화평론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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