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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에서 만화 이야기를 하기 위해 모인 독자들

일반 독자들이 만화 이야기를 하는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하였다. 만화 독자들의 오프라인 참여 행사가 많아지는 가운데 그 경험을 공유해 본다

2023-08-04 정다빈

금요일 저녁 황금 시간대에 혼자서 낯선 곳으로 걸음을 돌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저마다의 학업, 직장, 생활이 있는 바쁜 현대의 어른들이라면 더더욱. 그러나 만화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귀중한 금요일을 기꺼이 할애하는 어른들이 바로 여기 있다. 21년 10월 처음 시작된 SideB 만화 사교클럽이 몇 달 후면 2주년을 맞이한다. 



SideB 만화 사교클럽은 달에 한 번씩 모여 추천하고 싶은 만화를 하나씩 소개하고, 그 만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임이다. 신청자들은 만화뿐만 아니라 그와 인접한 영역에 놓인 애니메이션, 게임, 영화 등에 대한 생각을 서로 공유하며 전에는 몰랐던 다양한 작품들과 새롭게 만날 수 있다. 이곳에 모이는 사람들은 평상시에 학교에서, 직장에서, 또는 그 외의 사회적 장소에서 각자의 삶을 건실히 살아가다, 모임이 시작되는 순간 오타쿠로서의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묵혀둔 말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만화 이야기를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SideB 만화 사교클럽은 매회 참여 인원이 동일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고, 약 2주 전쯤 온라인으로 신청을 받는다. 때문에 달마다 마주하는 익숙한 얼굴들이 있는가 하면 만난 적이 없는 새로운 얼굴들도 있다. 

그중 후자의 신청자들은 가져온 만화를 소개하기도 전에 “만화 얘기를 하고 싶은데 같이 할 사람, 할 곳이 따로 없었다”라고 토로하는 일이 많다. 그러면 잘 찾아오셨다고, 여기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한 모임이라고 그들에게 환영하는 말을 건네곤 한다. 반쯤 굳어진 인사 같지만 사실이 그렇다. 모여서 거창하고 진지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닌데도, 국내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화를 주제로 대화할 수 있는 장은 매우 적거나 없다시피 하다. 매달 모임을 운영하며 신청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동안, 누군가는 이러한 자리를 줄곧 필요로 해왔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오직 ‘만화 이야기’만을 위해 마련된 곳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온라인 신청 공지 등에서는 ‘요즘 좋아하는 만화를 영업하고 또 소개받는’ 모임이라고 간단하게 요약하지만, 단순히 추천만 주고받는 것은 아니다. 


어떤 만화 얘기를 할까?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안에서도 주력 분야는 각자 다를 수 있다. 웹툰이면 웹툰, 일본 만화면 일본 만화, 그래픽 노블이면 그래픽 노블 등 한 우물을 깊게 파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예를 들어 SideB 만화 사교클럽의 운영진은 총 세 명인데, 한 사람은 웹툰, 한 사람은 그래픽 노블, 한 사람은 일본 만화를 주로 본다). 그런 신청자들이 주력 분야를 공유하며 서로가 잘 모르는 영역을 채워주는 것은 모임의 순기능 중 하나다. SideB 홈페이지에 업로드 된 5회부터 18회까지의 기록을 훑어보면 언급된 작품들의 다채로움을 느낄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가끔은 만화 외의 장르에서 추천이 오가기도 하고, 작은 사이트나 SNS에서 개인 연재 중인 만화가 소개되는 일도 적지 않기에 더 그렇다. 


[ 그림 2, 기존 행사 기록 목록 ]


언급된 만화를 이미 잘 알고 있다면, 신청자는 소개한 사람의 이야기와 더불어 자신이 느낀 점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반대로 잘 모르는 만화라면 다른 신청자들에게 만화의 어떤 점이 재미있고 추천할 만한지, 혹은 이런 사람에게는 비추천한다 싶은 점은 없는지 물어볼 수 있다. 개인의 감상을 편하게 말하는 분위기다 보니 솔직한 의견들이 비교적 쉽게 튀어나온다. 비슷한 케이스로 만화를 보다가 중간에 하차했지만, 모임에서 나온 얘기를 통해 끝까지(내지는 최신 연재분까지) 봐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는 신청자들 역시 꽤 존재한다. 

만화를 보며 좋았던 부분이나 별로였던 부분, 비슷한 점을 가진 다른 만화, 작가의 여타 작품들을 말하는 데에서 나아가 주제가 만화 산업 전반이나 윤리 쪽으로 향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주로 한 만화에 대해 길게 얘기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주제이기에 기록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분명 중요한 이야기 중 하나다. 눈코 뜰 새 없이 새로운 작품이 쏟아지고 변모하는 게 만화의 세계이니만큼, 그와 관련된 화제들을 놓치지 않고 신청자들에게 전달하는 것 역시 이 모임의 역할에 속한다.

달마다 꾸준히 참석하는 단골 신청자들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초기에는 작품을 추천하고 추천받는 데에만 집중했다면, 참석 횟수가 늘어날수록 시장의 문제나 만화계에서 불거지는 여러 사건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모든 추천이 끝난 뒤 “오늘은 작품 얘기 외에도 따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라며 추가로 질문을 던지던 신청자도 있었다. 자기 안의 만화의 영토를 더 넓게 확장하는 것과 더불어, 작품 주변의 요소들을 끌어들여 함께 생각할 때 만화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는 깊이 있는 시각을 얻을 수 있기에 신청자들이 이곳을 거듭 방문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곳이 필요한 이유

그러나 주된 목적은 어디까지나 ‘만화 추천을 하자!’에 있기에, 그때그때 신청자들의 성향이나 소개된 만화의 성격에 따라 매우 가벼운 이야기만 이어지다 모임이 끝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날에도 신청자들은 대개 만족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어쨌거나 하고 싶은 말은 다 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추천을 듣거나 부가적인 만화 얘기에 몰두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자신이 만화를 보는 동안 생각한 것. 내가 느낀 이 재미를 다른 사람들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충족되었기 때문이리라. 신청자들은 서로의 만화 이야기에 열심히 귀 기울이며, 자신의 취향과 맞는다 싶은 작품들은 메모하거나 각 플랫폼의 위시리스트에 체크해 둔다. 물론 열정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여러 신청자들이 이곳에 방문할 때마다 장바구니가 무거워져서 돌아간다고 하는 걸 들으면 모임을 운영하는 보람을 느낀다. 

속에만 머물고 발화되지 못하는 말은 답답함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SideB 만화 사교클럽은 그러한 답답함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주는 역할을 하려 한다. 신청자들은 이곳에서의 이야기를 통해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할 수 있고, 그리고 나서도 더 말하고 싶은 얘기나 듣고 싶은 얘기가 남아 있을 때는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려 보면 좋을 것이다. 우리는 함께 이야기하며 만화에 대해 더 많이,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다. 


더 나은 만화 사교클럽을 만들기 위해서

한편 모임이 꾸준히 거듭됨에 따라 최근에는 자주 참여하는 반 고정 신청자들 몇몇에 새로운 얼굴이 하나둘쯤 더해진 조합으로 진행해야 할 때가 많았다. 익숙한 신청자들을 중심으로 진행을 하다 보면 이전 회차에 했던 이야기에 더해서 보다 심화된 주제를 다룰 수 있다는 점은 좋지만, 비슷한 작품이나 카테고리 안에서 말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기에 반대로 우려가 되기도 한다. 매번 다른 만화를 소개한다고 해도 그것을 아우르는 것은 결국 개인의 취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SideB 만화 사교클럽에 가장 필요한 것은 기존에 신청한 적 없던 사람들의 방문이다. 모임이 오래 지속되려면 그때그때 새롭게 들어온 이야기가 기존의 인원들을 자극하고 내부에서 끊임없이 순환이 일어나야 한다. 


[ 그림 3, 5째 모임에서 이야기한 작품들 ]


당연하게도 맨입으로 새로운 얼굴들의 방문을 원한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앞으로 어떤 만화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홍보하여 그러한 이야기들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알리며, 어떻게 해야 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을 큰 과제로 남겨두고 있다. 아직 국내에 이런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을 테다. 그리고 그중에는 누군가와 만화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이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들의 묵혀둔 말이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에서 즐겁게 퍼져나가도록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 

또 이 모임이 계속되어 한층 널리 알려진다면, 언젠가는 국내에서도 만화 이야기를 하는 모임이 본격적으로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소망도 존재한다. 멀게는 경기도 위나 아예 지방에서 찾아왔다는 신청자들을 보며 그들의 거주지 근처에도 이런 모임이 있었다면 좋았을 터라 생각하곤 한다. 어디에서나까지는 아니더라도, 각지에 만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존재한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발 디딜 수 있을 테니까. 

만화를 보고 속으로만 감상을 떠올리는 것과, 감상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로 뱉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만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로 뱉고 타인의 생각과 마주하는 과정은 결국 개인이 좋은 독자로 성장하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 또는 그러한 과정 없이는 좋은 독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그러니까 만화 이야기를 하러 가자. 이곳에서의 대화는 곧 만화를 보는 시각을 길러내고, 그 시각을 갖춘 좋은 독자를 만들고, 그 독자들이 나아가 더 근사한 만화를 발견하고 기대하게 하기 위함이다.

SideB 만화 사교클럽은 평소대로 7월 말 혹은 8월 초의 금요일에 제20회 모임을 진행할 예정이다. 연이은 폭염과 장마의 반복으로 집 밖에 나가는 게 적잖이 힘든 매일이지만, 이번 달에도 수고롭게 걸음을 옮겨 주는 사람들이 많길 바란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새로운 신청자들의 들어본 적 없는 만화 이야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필진이미지

정다빈

만화 애호가. 성수동 만화 사교클럽 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