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고는 있지만 설명하긴 어려운, ‘윤리적 소비’
윤리적 소비는 근 10년간 콘텐츠 산업계를 뜨겁게 달군 단어 중 하나였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이하 ‘PC’)과 배제 문화(Cancel Culture)(1)로 대표될 수 있는 윤리적 소비는 소비자가 적극적인 소비 활동을 통해 생산 과정에 비교적 직접적인 개입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이념적・정치적 목표와 같이 구체적이며 공동의 목적 아래 행해지는 활동으로서, 소비자 양태 중에서도 행동주의로 분류되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7년 하비 와인스타인 성범죄 파문으로 인한 헐리우드 콘텐츠 시장의 변화를 생각해볼 수 있다.
윤리적 소비가 파급력을 가지기 시작하며 윤리적 소비에 관한 관심과 연구도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정치경제학을 기반으로 윤리적 소비가 시장에서 유의미한 가치창출을 할 수 있을지 다양한 논의와 사례연구가 이루어졌으며, 특히 세계시장 내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과 함께 환경과 관련된 윤리적 소비가 거대한 투자시장을 형성하며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시도들도 시장 내에서 유의미한 증가세를 보이는 추세다. 다만, 윤리적 소비가 파급력을 가지기 시작한 시점부터 윤리적 소비라는 단어 또한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이는 윤리적 소비라는 소비 양태가 한국 내에서 정돈되지 않은 상태로 대중적인 보급이 이루어지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특히 윤리적 소비가 트위터와 같이 가소성과 익명성을 기반으로 하는 소셜 플랫폼들에서 급격히 확산하며 실행과 주도에 대한 책임을 부여하기 어려운 상태로 고착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나는 이러한 경향으로 인해 한국 내의 윤리적 소비가 뚜렷한 학술적 혹은 비평적 합의 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남용되고 상태에 이르렀다고 조심스럽게 추리하고 있는 상태다.
가령, 윤리적 소비의 대표적인 사례로 뽑히는 배제 문화(Cancel Culture)조차 구체적인 번역어 없이 ‘캔슬 컬쳐’라는 단어로 언급되고 있다. 때문에 윤리적 소비가 어떻게 발전하고 확산하여 무엇으로 분류되는지 짚어볼 필요는 있겠다. 우선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윤리적 소비는 윤리적 소비주의를 실천하는 것으로, 윤리적 소비주의는 반소비주의의 한 양태로 분류되는 소비자 행동주의다. 이는 윤리적 소비주의가 관찰과 예측이 가능한 행동들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초점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윤리적 소비는 무엇을 관찰하고 예측할까? 윤리적 소비의 핵심 아이디어가 되는 것은 ‘달러투표’(Dollar Voting)의 은유다. 달러 투표란 20세기 중반 경제학계에서 소비자 선택이 기업의 생산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일종의 비유였다. 달러투표의 중핵적 아이디어는 소비자가 물건을 소비/보류하는 소비 결정을 투표로 본다는 데 있다. 즉, 달러투표의 비유에 따르면 소비자의 소비 행위는 투표와 마찬가지로 승리/패배로 치환하는 방식의 가치 부여가 가능하다. 이는 결국 소비자에게 많은 선택을 받은 제품이 시장에서 플레이어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된다는 함의를 내재하고 있다.
달러투표의 은유는 1986년 공공선택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뷰캐넌의 1954년 논문 「Individual Choice in Voting and the Market」(Journal of Political Economy)에 의해 구체화 된다. 여기서 뷰캐넌은 정치적으로 권리를 박탈당했다고 느낀 유권자가 시장을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지적하며, 여기에 활용되는 소비 활동이 구매력이라고 주장했다. 뷰캐넌은 달러투표의 기원을 식민지 주민이 과세에 항의해 일부 영국 제품 소비를 거부했던 미국 독립 전쟁으로 보고, 달러투표와 같은 개인의 경제 참여를 순수한 민주주의로 보았다.
이러한 뷰캐넌의 주장은 소비자 권익 운동과도 그 궤를 함께하는 부분들이 있다. 거시적으로 1887년 영국 의회에 의해 재정된 Merchandise Marks Act 1887와 같은 사례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는 영국의 제조업자들이 마진율 확보를 위해 영국 브랜드 제품을 독일에서 제조하여 수입하기 시작하며 품질 보증에 실패하자, 모든 제품에 원산지를 표기하라는 법을 제정한 사례다. 이는 “Made In Germany”라고 라벨링 된 제품의 소비를 소비자가 검열하기 위해 법을 제정한 사례로써, 정부가 라벨링을 통해 소비를 제어한 사례로 남아있다.
한편 1891년 미국 뉴욕에서 설립된 National Consumers League와 같은 소비자 단체 또한 소비자 권익이라는 이름 아래 시장의 소비 활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왔다. 기업들의 부당노동행위와 식품, 화장품, 의약품 등에 대한 라벨링을 붙이는 방식으로 ‘달러투표’에 일조했다. 이러한 (명분뿐인 정치 활동이더라도) 소비자 권익을 위한 라벨링은 “Rainforest Alliance certified”와 같이 윤리적 소비의 근간이 되었으며, 묵시적 보증(Implied Warranty)과 같은 관습법을 통해 소비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발전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들은 1989년 영국의 롭 해리슨과 제인 터너에 의해 윤리소비자연구회(Ethical Consumer Research Association Ltd, 이하 ECRA)가 만들어지며 사실상 학술적인 기반을 닦았다. ECRA는 △Environment △People △Animals △Politics △Product Sustainability 5개 카테고리를 근거로 윤리적 소비를 판단한다. 1934년 설립된 뉘센베르크소비자리서치(Nürnberg Gesellschaft für Konsumforschung, 이하 GfK)의 경우에도 윤리적 소비를 조사하며 학술적인 기반을 닦긴 하였으나 하나의 독립된 기관과 함께 국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에서 90년대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 도덕적 공항, 팬덤적 소비와 윤리적 소비가 파열할 때
지난 10년간 콘텐츠 산업계를 달군 ‘윤리적 소비’의 특징은 팬덤 소비와 결합해 있다는 점이다. 이는 궁극적으로는 윤리적 소비가 행동주의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라벨링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팬덤 소비와 결합한 윤리적 소비가 특징은 현 체제 안에서 라벨링에 대한 책임 소재 및 책임 체계를 구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트위터와 같이 익명성과 가소성을 바탕으로 구축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라벨링이 일어나다 보니 실천에 있어 어떻게 주도되었고 실행되었는지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점에 기인하고 있다.
가소성과 익명성은 라벨링의 파급효과를 즉각적이며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현 체계 안의 제도 안에서 책임 소재를 따지기 어려워 실질적인 피해가 있을 때 구제 방안을 도출하는 것은 둘째치고 수정 자체가 마땅치 않다는 치명성을 내재하고 있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책임 소재를 따지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가치창출의 방안 역시 마땅치 않다. 이는 제도적 미완으로 인한 오류들을 수정하기 어렵게 만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가령, 팬덤적 소비가 있었던 ‘익스트림 무비’의 경우, 특정한 팬덤 유저가 몰려있다는 특징 때문에 본격적인 시장 경쟁에 올라가기 직전에 바이럴 포인트를 잡는 플랫폼으로 즐겨 활용되어왔었다. 그러나 △디씨인사이드 △에펨코리아 △인스티즈 △더쿠(theqoo)와 같이 익스트림무비 역시 익명성과 가소성을 기반으로 편향된 팬덤을 구축하고 있었고, 커뮤니티의 가치 또한 그러한 팬덤에 기반하고 있었다. 이는 익스트림무비에 있어 치명성으로 작동했다. <비상선언> 역바이럴(2)이라는 특정한 계기로 인해 커뮤니티의 회원들은 반사회적 라벨링에 포함되었고, 익스트림무비는 커뮤니티로서 복구하기 어려운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이때 일어난 라벨링 방식은 트위터 등지의 커뮤니티의 유저가 익스트림무비와 그 유저들을 남성편향적인 관점을 가진 반사회적 인터넷 서퍼 정도로 라벨링 한 것이었다. 익스트림무비에 대한 라벨링은 특정인을 대상으로 일어나지 않았고, 책임을 따질만한 대상 역시 있었다. 비교적 명확한 귀책 사유와 책임 집행이 가능한 대상이었음에도, 궁극적으로 그 사태로 인한 오류의 수정과 귀책 규명 및 책임 집행은 진행되지 않았다. 이는 커뮤니티의 특성상 정체성이 일종의 군집을 이루고 있고, 이로 인해 귀책 사유가 있는 유저를 특정하는 데 실패하는 과정에서 라벨링의 집행자들이 도덕적 공황(Moral Panic)에 이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도덕적 공항에 대해 귀속적 모델을 제안한 나흐만 벤 예후다와 에릭 구드의 저서 『도덕적 공항: 일탈의 사회적 구성(Moral Panics: The Social Construction of Deviance, 1994)』 에 따르면 단죄와 피해의 대상이 하나의 군집을 이루고 있는 경우, 그 군집 자체를 공공의 적으로 여겨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필연적으로 미칠 것으로 기대하는 도덕적 공항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더불어 위 사례는 귀책 사유에 대한 비교적 명확한 사례가 있었음에도 책임 집행이 그 대상이 아닌, 남성편향적인 관점을 가진 유저로 전이되어 정직한 책임 규명이 아닌 휘발성 강한 일탈의 영역에 빠졌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웹툰을 이야기하는 지면에서 굳이 영화의 사례를 찾아서 지목하는 이유는 ‘윤리적 소비’를 근거로 ‘일진물’에 대해 가해지는 비판과 임의적인 라벨링 때문이다. 특히 일진을 미화하는 서사로 인해 학교 폭력이 야기된다는 주장들은, 부분적으로 도덕적 공황과 겹쳐보이기도 한다. 가령, 박태준만화회사에서 생산되는 일부 일진물은 (상업적 가치를 떠나서) 윤리적 소비의 대상으로 삼기에는 저급한 퀄리티를 가지고 있다. 비판의 범주에 들어갈 수조차 없는 대상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결국 논의의 질 자체를 갉아 먹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그보다는 일부 일진물이 공유하는 저급한 서사적 퀄리티와 ‘우라까이’에 가까운 게으른 작화들을 비판하는 게 정당해 보인다.
미국 스테트슨 대학의 심리학 교수이자 『모럴 컴뱃(Moral Combat)』의 저자 크리스토퍼 퍼거슨은 위 저서에서 도덕적 공항을 “사회문제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무고한 희생양 또는 사회의 적에 대한 공포를 과장해서 확대시키는 경향 또는 태도”로 정의한다. 더불어 윤리적 소비는 지난 한 세기에 걸쳐 수많은 전문가와 산업관계자, 정치인과 기업가들이 모여 이룩한 체계의 성과다. 체계가 이룩한 성과라는 것에는 많은 의미가 함의되어 있다. 체계를 구현한다는 것 자체가 지지부진하고 지겨운 시간을 요구하는 성과이며, 그 체계를 존중한다는 것은 각자가 나름의 사연으로 불편함을 겪고 있는 상황 속에서 체계를 위한 인내와 고통을 요구받는 일이기도 하다. 팬덤과 커뮤니티의 윤리적 소비는 소비에 대한 책임을 근거로 사회적 사회문제에 대한 책임을 콘텐츠에 씌우지 않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 각주 >
(1) ‘배제 문화’(排擠-)는 Oxford English Dictionary(이하 ‘OED’)가 정의한 Cancel Culture를 참고한 것으로, △the practice of excluding somebody from social을 적극적으로 번역한 결과다. OED가 정의한 Cancel Culture는 아래와 같다.
“the practice of excluding somebody from social or professional life by refusing to communicate with them online or in real life, because they have said or done something that other people do not agree with”
(2) 익스트림무비의 운영자들이 커뮤니티에서 <비상선언>에 대한 역바이럴이 일어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던 사건으로, 익스트림무비 유저 및 기타 커뮤니티 유저들이 익스트림무비 운영자들의 운영 권력 남용에 대한 지적이 익스트림무비 커뮤니티의 평판 파괴로 확장된 사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