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과 진실
(부제 : 지옥(地獄) 너머에서 불어오는 권력의 바람)
이 글의 제목은 ‘허망과 진실’이다. 소설가 이병주가 니체, 도스토예프스키, 루쉰, 정약용, 사마천 등의 일생을 다룬 명저의 제목인데, 정치 극화들을 다루는 칼럼에서 이보다 더 적절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차용했다. 정치의 본질이 바로 허망과 진실 사이의 영역 어딘가에 존재하는 무엇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말이다. 그리고 그 세계를 작동시키는 숨은 메커니즘이 있다. 봄철이면 중국에서 황사가 몰려들 듯, 지옥(地獄) 너머에서 발원해 시시때때로 허망과 진실의 대기를 넘실거리는 권력의 바람이다. 그것은 일상의 관계와 가치, 예를 들어 사랑, 우정, 야망, 가족, 사회공동체 등등마저 권력의 의지로 왜곡하고 전도시킬 수 있다.
‘오즈(OZ)' 세계관의 중심인 ’먼치킨랜드(Munchkinland)‘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메커니즘이 더욱 명확해진다. <오즈의 마법사>를 재해석한 뮤지컬 <위키드>에서 먼치킨랜드의 중심인 에머랄드시티는 일반적인 중력이 지배하지 않는 세상이다. 그곳의 대기는 마법의 공기가 들어차 있고, 그에 따라 그곳 시민들은 화려한 옷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좌우 대칭이 불균형한 몸을 가지고 있다. 아주 특별한 중력과 대기가 지배하는 공간에서 시민들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기형이 된 것이다. 여주인공 엘파바는 녹색 피부라는 이유만으로 그곳 시민들에게 차별받는다.
1인이나 소수의 무리, 특권층, 카르텔에게 권력이 집중되면 지옥 너머에서 불어오는 권력의 바람은 더욱 거세고 광포해지며, 진실은 쓸려 나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채로 도처에 허망만 남는다. 하지만 희망을 위한 진실의 꽃 한 송이는 허망을 자양분 삼아 피어오르기 마련이다. 이에 대해 소설가 이병주는 “허망, 그 자체에서 진실을 본다는 것은 아니라 그와 같은 허망의 프리즘을 통하지 않곤 어떤 진실도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이라고 썼다. 만화가들이 ‘목숨을 걸고’ (군부 독재 시절의 시사 만화가들은 실제로 생명의 위협도 받았음) 도전한 한국의 정치 극화들도 추구하는 방향성은 각각 다를지언정, 이러한 지형도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사실 한국에서는 성인들이 즐길 만한 정치 극화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일본에는 <정치 9단> 같은 완성도 있는 만화가 많은데 우리는 너무 없지 않냐?”고 투덜거릴 일은 아니다. 정치 만화 속에서 권력을 미화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특정 정치가를 생각나게 한다는 등등의 억측으로 감시당하고, 잡혀가고, 비즈니스에서 배제되는 불이익을 감수할 만화가는 없으니까 말이다.
만화가가 짊어져야 하는 ‘현실적 불편’ 외에도, 정치 극화는 독자층도 성인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음모, 배신, 거짓말, 허망 등등이 판치는 스토리가 어린아이, 청소년의 관심을 끌 수도 없을뿐더러, 제대로 된 정치 극화라면 화려한 정치계의 이면에서 펼쳐지는 온갖 권모술수를 적나라하게 보여줘야 한다. 그 속에서 술, 주먹, 섹스, 뒷돈, 화류계 등등의 소재가 빠지면 앙꼬 빠진 찐빵이 된다. 국회의원의 베갯머리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정부의 밀어를 진정한 사랑의 언어로 볼 수 있을까? 한국에서 정치 극화의 이마에는 ‘19금’ 딱지가 '척'하니 붙는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만화가들에 정치 극화는 가장 어려운 창작 분야였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도 <정치 9단>에 필적할 수 있는, 혹은 정치를 상업적 소재로 이용해 보려던 정치 극화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정치 극화의 출현은 195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는 ‘정치적 암흑기’의 끝자락에서 싹을 틔웠는데, 이는 민주화라는 시대 분위기, 정치 지형을 토대로 가능해졌다.
1987년 12월 16일 제13대 대통령선거는 사상 첫 ‘대통령 직선제’로 열렸다. 민주화 세력을 이끌던 YS와 DJ의 분열로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럼에도 민주화의 흐름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어서, 정치색을 가미해 창간한 성인 잡지들에 시사만화와 단편적인 정치 극화들이 게재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민주화 시대라고는 대도, 직설적인 본격 정치 극화를 기획하는 단계까지 나가지는 못했다.
독재정치, 사회 부조리에 대한 저항 의식을 가졌던 만화가 이희재의 행보를 보면, 이해가 빨라진다. 그는 1985년 창간된 성인잡지 <만화광장>에 격동기,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소재로 한 단편 만화를 연재하고 이를 묶어 1987년 만화집 <간판스타>를 펴냈다. 그리고 1987년 창간된 성인잡지 <주간만화>에서 시사만평을 맡아 YS, DJ, 노태우 등 정치 거물을 직접 만나 취재하기도 했다. 물론 조선, 중앙, 동아 등 제도권 언론사 소속 만화가들이 지면을 통해 정치권력과 힘겨루기를 한 것은 이승만 정권 때부터 있었던 일이지만, 언론 권력의 우산도 없는 만화가들이 상업적 성격이 강한 성인잡지, 혹은 성인용 대본소 시장에서 자의적으로 정치를 작품 소재로 다루게 된 것은 큰 변화라 할 수 있었다.
1988년 11월 5공 청문회가 열렸다. 드라마보다 시청률이 더 높다는 이 사건을 계기로 정치색을 강화한 성인잡지 <만화시대>가 1988년 12월 28일 창간했다. 창간호는 김광성의 시사극화 ‘전두환·최규하 295일간의 논죄(論罪)’를 표제작으로 내세웠다. 24페이지짜리 다큐멘터리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기획이었다. 이어지는 코너에서 이희재, 이상무, 김형배, 허영만, 이현세, 이두호가 ‘만화국회의 1~6공화국 청문회’라는 시리즈 카툰으로 과거 정권들을 직격했다. 창간호에서 가장 무게감 있는 극화는 통일 염원 장편극화 ‘백두여 한라여’(글 김세영, 그림 오세영)였다. 민중운동에 뛰어들게 된 학창 시절 친구들의 이야기를 오세영이 사실감 넘치는 극화로 묘사해 냈다. 이 작품 역시 일종의 정치 극화라 할 수 있다. 1990년 2월 창간호를 펴낸 성인잡지 <만화창작>은 <만화시대>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만화시대>의 멤버인 이희재, 오세영, 김광성, 김형배 등이 여기로 옮겨왔다는 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 다소 완화된 표현의 자유와 함께 성인 만화시장에서 선정성이 이슈로 떠올랐다. 또한 토종 성인 극화가 자리 잡기도 전에 노골적인 일본 성인 극화들이 만화시장의 틈새를 파고들었다는 점이 만화계의 이슈였다. 우리 성인 극화의 자극적 표현 수위도 덩달아 높아졌다. <만화시대> 창간호는 그러한 위기감을 반영해 ‘성인만화는 포르노가 아니다’라는 만화시평을 게재했다. 만화평론가 곽대원은 “대체로 일본 성인 만화의 피해는 주간 만화잡지의 형태에서 출발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하면 만화와 누드 사진이 노골적으로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데 이것이 점차 페이지를 늘리면서 상상을 초월한 변태적인 성의 확대까지 비화 발전하고 있다. 이것을 과연 일본 만화의 속성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라며 자성의 목소리를 높였다.
상업성이 지고의 가치인 성인 만화시장에서 사회 현실을 마주하는 두 편의 정치 극화가 탄생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허영만은 1987년 <만화광장>에서 <오! 한강>(글 김세영)을 선보인 데 이어, 1994년 스포츠조선에서 <닭목을 비틀면 새벽은 안온다>를 발표했다. <오! 한강>은 일제 강점기에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화가가 된 주인공 이강토가 인민군으로 참전했다가 사상 전향을 한다는 이야기다.
“1972년 10월 유신이 있고, 그로 인해 나는 더욱 무감정한 사람이 되었으며, 덕분에 더욱 무감정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화가 강토의 고백은 은유적이다.
정치 극화의 문제작은 단연코 <닭목을 비틀면 새벽은 안온다>이다. 허영만은 “닭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YS의 말을 다시 한번 비틀었다. 닭목을 비틀면 새벽이 안 올지도 모른다는 정치인들의 자가당착을 꼬집은 제목이었다.
유명 방송인인 주인공 신석기가 보수 야당의 후보로 보궐선거에 도전해 금배지를 따내고 썩은 정치 거물을 도려내려는 이야기다. 학창 시절 네 친구인 석기, 각기, 명인, 희중에게 벌어진 우발적인 살인사건이 이들의 인생 내내 그림자를 드리운다. 각기의 아버지로서 보수 야당 민국당의 부총재인 정치 거물 이진우는 아들을 시켜 석기에게 국회의원 출마를 권유한다. 남들은 석기가 정치적 야심을 갖고 국회의원이 되고자 한다고 생각하지만, 석기의 속셈은 전혀 다르다. 그의 가슴 속엔 복수의 칼이 숨겨져 있다. 석기의 보궐선거 출마, 국회 입성, 그리고 의정 활동 과정을 통해 허영만은 정치의 본질을 아주 냉정하게 드러낸다. 작품을 읽어보면 정치 극화임에도 불구하고 스포츠지 지면을 얻게 된 이유를 반박에 알게 된다. 이유는 명확하다. 재미있다!
사건을 내지르고 전개하는 속도와 양식은 훗날의 도박 극화 <타짜>와 아주 흡사하다. 그러면서도 단행본 표지의 도입 글은 통쾌하고 정곡을 찌른다. 우리나라 정치 본질의 해부 보고서 같다.
“정치 부재의 공허한 시대를 질책하는 국민들 최후의 경고장! 권력 주위에 기생하면서도 권력을 위해 항상 배신과 음모를 꿈꾸고 국민이란 이름을 앞세워 기만하는 인간 말종의 정치꾼에게 혐오를 던지고, 그 반대의 정치인에게 격려를 건네는 본격 정치 극화의 대 파노라마!”
정치100단, 노회한 정치학자가 정치의 본질을 요약해도 여기서 크게 벗어날 수 없지 않을까.
호랑이 굴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으려는 석기의 운명은 본질적으로 위태위태하다. 상대 후보의 약점을 캐내 상대를 도발, 고혈압 증세로 쓰러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나름의 대의를 위한 발걸음일 뿐임을 알게 된다. 신석기가 잡으려던 호랑이는 바로 각기의 아버지이자 민국당 부총재인 이진우다. 그는 차기 대통령을 꿈꾸며 석기를 영입했지만, 호랑이를 잡기 직전, 석기를 도운 인물이 권총을 겨누며 “맞아, 이 세상에 진실 같은 것은 없어. 이 싸늘한 총구가 바로 진실이지”라고 말한다. 그 말과 함께 석기의 이마에 구멍이 뚫린다. 너무도 잔혹하고 차가운 결말이다. 석기의 진실 찾기는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비로소 완성된다. 악당에게 정의의 주인공이 졌다는 식으로 간단히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정치학자 찰스 에드워드 메리엄은 저서 <정치권력>에서 “정치권력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구사하고 스스로를 미화시킴으로써 사회 통합에 관한 자신의 유용성과 우월성을 과시해야 한다.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권력 장악은 선이냐, 악이냐의 문제를 떠나 그 권력이 조작하는 대중의 심리와 대중을 구성하는 개개인의 인간적 퍼스낼러티가 추구하는 내적 목적에 대한 날카로운 이해 위에 성립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주인공 석기는 권력 장악의 수 싸움에서 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것도 역시 정치이며, 더 나아가 정치의 진실이다.
진실을 찾던 자의 넋이 빠져나간 시신 위로 허망이 감돌고, 그 위로 이따금 지옥에서 부는 권력의 바람이 시신의 머리카락을 너풀거린다. 그래도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그곳에서 미약하나마 진실의 싹이 솟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