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웹툰 : 서양의 괴물과 악마들
영화를 보면, 보통 공포물에는 귀신이나 괴물이 나온다. 다만 동양과 서양에서 귀신과 괴물을 다루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서양의 뱀파이어, 좀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늑대인간 등과 일본의 요괴와 괴수는 미묘하게 다르다. 용과 드래곤의 차이처럼. 인간이 죽은 후에 변하는 ‘귀신’도 다루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동양의 귀신이 주로 개인적인 원한이나 저주에 기인한다면 서양은 기독교의 영향과 ‘악마’의 존재감이 더욱 크다. 동양이 주로 영적이라면, 서양은 물적인 형상을 갖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면서, 공포 웹툰에 나오는 서양에서 도래한 괴물이나 악마 등의 공식과 클리셰 등을 살펴보자.
좀비
서양을 대표하는 귀신, 괴물은 드라큘라가 대표하는 뱀파이어였다. 하지만 문명의 바깥, 외부에서 온 괴물인 뱀파이어는 시대가 흐르며 타자를 넘어섰고 이제는 관능적인 연인이며 일종의 셀럽 같은 위치까지 격상되었다. 덕분에 ‘공포’도 희미해졌다. 지금 서양을 대표하는 공포의 존재는 흡혈귀가 아니라 좀비가 첫손에 꼽힌다.
20세기만 해도 황무지였던 한국의 좀비는 지금 서양을 사로잡았다. 연상호의 <부산행>은 21세기에 만들어진 좀비 영화의 대표적인 수작으로 꼽히고,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킹덤>은 조선 좀비라는 개성적인 이미지로 서양인을 매혹했다. 웹툰 원작의 <지금 우리 학교는>도 넷플릭스 시리즈로 화제를 모았다. 강풀의 <당신의 모든 순간>, 모래인간의 <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 이윤창의 <좀비딸>, 주동근의 <지금 우리 학교는>, 박만두의 <데들리 키스>, 운/한큰빛의 <극야>, 곤마의 <조선좀비실록> 등 한국의 좀비 웹툰은 서양에서 나온 좀비물의 다양한 경향을 이어가면서 더욱 확장하고 있다.
서양의 좀비는 20세기 들어 정착된 공포물 캐릭터다. 좀비의 시원은 할리우드 영화에도 자주 등장했던 부두교의 주술이다. 정말로 시체를 깨어나게 하는 것은 아니고, 가사 상태에 빠져 죽은 것처럼 보이는 약을 먹인 후 무덤에서 파내 노예로 쓰는 주술이다. 저주를 걸어 산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좀비는 카리브해 지역의 원시종교인 부두교의 무당들이 만든 ‘시체 같은 사람’을 말한다.
미국 남부에서 괴담처럼 떠돌던 ‘좀비’는 할리우드의 <화이트 좀비>,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등의 공포영화에서 무당의 저주 때문에 살아있는 시체가 된 좀비로 구현된다. 인간성과 의식이 박탈된 시체 같은 존재가 좀비였고, 시체에 부적을 붙여 움직이게 만드는 중국의 강시와는 다른 형태다. 지금은 익숙한, 좀비에게 물린 희생자가 다시 좀비가 되는 방식으로 정착된 것은 1968년 조지 로메로의 영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부터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깨어난 시체들, 어기적거리며 탐욕스럽게 인육을 찾아 헤매는 좀비, 좀비에게 물리면 다시 좀비가 되는 사람들, 사랑하는 이가 좀비가 되었을 때의 슬픔과 두려움 그리고 바이러스처럼 증식하며 다가오는 종말의 공포, 매스미디어에 세뇌되어 주체적인 사고력을 잃은 현대인에 대한 은유, 좀비보다 야비하고 잔인한 인간에 대한 절망 등등 좀비물의 모든 것이 조지 A 로메로의 ‘좀비 3부작’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시체들의 새벽>, <죽음의 날>에 담겨 있었다.
하지만 좀비물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좀비가 사람을 물어뜯는 장면들이 너무 잔인하고 끔찍했기에 비주류 공포영화로만 인기가 좋았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설정을 배제하고 ‘분노 바이러스’ 때문에 괴물로 변한 사람들의 공포를 그린 대니 보일의 <28일 후>가 성공하며 좀비물은 대중적인 공포로 부상할 수 있었다. 좀비의 공포를 리얼하게 그린 만화 <워킹 데드>는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좀비 아포칼립스’의 대표작이다. 좀비가 나타나며 문명사회가 붕괴한 후, 좀비보다 사악하고 두려운 존재가 된 인간을 고발한다. 좀비와의 로맨스를 그린 소설 <웜 바디스>, 좀비 사태를 진압하는 보고서 형식의 소설 <월드 워 Z> 등은 메이저 영화로도 성공했다. 그리고 드라마 <인 더 플레쉬> 등 좀비 치료제가 등장한 이후 벌어지는 상황을 전개하는 좀비물도 많아졌다.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이 소녀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로맨틱한 반영웅으로 변신하는 동안 좀비는 현대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악몽으로 확장되고 있는 중이다. 한국 웹툰도 좀비에 있어서는 서양의 만화와 소설 못지않은 다양함과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몬스터와 크리쳐, 코스믹 호러
괴물은, 보통 인간이나 동물의 힘을 훨씬 뛰어넘은 존재를 말한다. 동양의 요괴로 일본의 갓파와 텐구, 중국의 강시와 온, 한국의 구미호 등을 들 수 있다. 인간과 다른 생물인 요괴가 있고, 인간이나 동물 때로는 무생물이 많은 시간을 경험하거나 감정이 지나칠 때 변해버린 요괴도 있다. 일본에서는 요괴를 모노노케(物の怪), 바케모노(化け物)라고도 했다. 짐승 모양이면서 거대하면 괴수로 부른다. 이런 존재들을 뭉뚱그려 몬스터나 크리쳐라고 부를 수 있다.
서양의 몬스터는 늑대인간, 구울, 뱀파이어 등 인간형의 존재와 드래곤과 크로노스 등 거대한 형태를 포함한다. 요정으로 분류되는 트롤, 고블린, 레프리콘, 반시 등도 일종의 몬스터다. 트롤과 고블린은 크기와 모양에서 아주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명확하게 분류하기는 힘들지만, 크리쳐는 몬스터에 비해 초자연적인 요소가 많다고 할 수 있다. 근원이나 과거를 알 수 없는 존재, 우주 저편 미지의 존재라고나 할까. 그런 점에서 미친 과학자(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만든 존재들도 주로 크리쳐라고 부른다.
웹툰 중에 ‘괴물’을 그린 작품은 많다. 넷플릭스 시리즈로 만들어진 김칸비/황영찬의 <스위트홈>은 감염 후 욕망이 증폭된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괴물이 된다. 보라기린/릴매의 <1331>도 죄를 지은 인간이 죄에 부합하는 괴물이 된다. 박창근의 <어느날 갑자기 서울은>에서는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괴물로 변한다. 서양 공포물의 주요 괴물인 늑대인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미이라 등은 단발적으로 각성하거나 의도치 않게 생겨나서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괴물이 된 친구를 위해 악인을 쫓는다는 설정의 <포식동물>(신희빈/치훈)과 비슷하다. 김규삼의 <하이브>에서는 지나치게 높아진 산소 농도로 인해 출현한 거대 곤충들이 인간을 공격한다. 한국 웹툰의 괴물들은 주로 감염을 통해 만들어진 괴물이 우리가 사는 세계를 종말로 치닫게 하는 스토리가 많다.
변형 괴물이 인간을 공격하여 종말이 닥치는 설정은 1950년대에 유행한 할리우드의 변종 괴물 영화와 외계인 침공 영화의 영향이 엿보인다. 1955년작인 <그것은 바다 밑에서 왔다>는 방사능 때문에 거대해진 문어가 샌프란시스코를 습격하는 이야기다. 일본의 <고지라>도 핵 방사능으로 깨어난 괴물이다. 이후 <종말의 시작>, <거대 게의 습격>, <타란툴라>, <블랙 스콜피온> 등 변종 괴물 영화에서는 개미, 거미, 전갈, 쥐 등 다양한 곤충과 생물이 인간을 공격한다. 평소 주변에서 쉽게 보던 곤충이나 벌레가 커지면서 적의와 강력한 힘을 드러내며 공격하면 공포심은 배가된다.
괴물은 또한 외계의 존재이기도 하다. 김부농의 <멸망으로 시작하는 근미래 생존법>에서는 운석이 떨어져 가스가 나와 인간이 괴물이 되거나 능력을 얻게 되고, 디디의 <멸종인간>에서는 외계인이 침공 후 인간이 이상하게 변한다. 외계인 침공 설정은 인류보다 훨씬 발전한 과학기술을 지닌 존재가 지구에 왔을 때 벌어지는 일을 상상한다. 1938년 H.G. 웰즈의 소설 <우주 전쟁>을 영화감독 오손 웰즈가 라디오극으로 방송했을 때, 실제 상황으로 착각한 대중이 패닉 상태에 빠진 일이 있었다. 이후 1950년대에는 소련과 핵전쟁의 공포를 외계인 침공으로 은유한 <지구가 멈춘 날>, <다른 세계로부터 온 존재>, <지구 대 비행접시>, <그것은 외계에서 왔다>, <바디 스내쳐>, <빌리지 오브 더 댐드> 등의 외계인 침공 영화가 나왔다. 핵폭탄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괴물이고, 바벨탑처럼 신의 분노나 자연의 복수심을 일깨워 부메랑처럼 우리에게 천벌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신화와 역사의 공식이다. 괴물이 나오는 웹툰이 단지 괴물이 인간을 공격하는 것을 넘어 문명 자체가 무너지는 아포칼립스 상황으로 종종 넘어가게 되는 이유다. 아포칼립스 이후 약육강식의 세계는 인간성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문명사회의 종말은 때로 초자연적 상황으로 치닫는다. 일종의 코스믹 호러다. 조석의 <묵시의 인플루언서>는 동네에 생긴 정체 모를 알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점점 퍼지던 알에서 나온 괴생명체가 사람을 죽이기 시작한다. 조석의 이전작인 <조의 영역>, 연상호와 최규석의 <지옥>도 코스믹 호러 계열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호러 작가 H,P. 러브크래프트는 ‘크툴루 신화’를 창조했다. 이계의 신, 고대의 괴물 등이 존재하는 세계를 그린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서 분명하게 ‘크툴루 신화’를 정의하고 그려낸 것은 아니지만, 친구이자 동료 작가인 오거스트 덜리스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하나의 신화로 만들어졌다. 크툴루 신화에 나오는 신은 절대적인 신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외계, 이계의 존재에 가깝다. 크툴루, 니알라토텝, 데이곤, 하이드라, 요그 소토스 등 사악한 신들과 죽음의 책인 네크로노미콘, 그들이 출몰하는 마을 아캄 등은 수많은 공포소설, 영화, 게임 등에 차용되고 영향을 주었다.
클라이브 바커의 소설 <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에는 심야의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죽여 시체를 깊은 지하로 가져가서 ‘선주민’에게 먹이는 이야기가 나온다. ‘옛 존재’는 크툴루 이전 지구에 온 외계의 존재다. ‘이스의 위대한 종족’도 선주자다. 오랫동안 지구의 ‘선주민’으로 있었던 그들을, 인간이 숭배했다. 인도 신화에서 신들끼리 전쟁을 벌이는 상황을 크툴루 신화에 비유할 수도 있다. 그리스 신화에 거인족과 싸워 세계의 지배자가 되는 신이 나오는 것처럼 다른 초월적인 존재와 싸워서 ‘세계’를 쟁취하는 신화는 이전에도 많이 있었다.
코스믹 호러‘(cosmic horror)는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비롯하여 악령, 악마가 외계에서 온 존재로 확장되는 이야기를 말한다. 폴 앤더슨의 영화 <이벤트 호라이즌>은 지옥이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우주의 어딘가에 있는 행성이라고 말한다. 코스믹 호러 <에이리언>의 시나리오 작가 댄 오배넌은 코믹 좀비물 <바탈리온>의 감독이기도 하다. 댄 오배넌은 러브크래프트의 ’코스믹 호러‘에 열광하여 뱀파이어를 외계에서 온 존재로 설정한 토비 후퍼의 <뱀파이어> 시나리오를 썼고, 러브크래프트의 <찰스 덱스터 워드의 사례>를 각색한 영화 <어둠의 부활>도 연출했다.
크툴루 신화를 인용하거나 영향을 받은 작품은 수없이 많다. 스티븐 킹과 클라이브 바커 등의 공포소설 작가를 비롯하여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레이 브래드버리, 조지 R.R. 마틴, 앨런 무어, 닐 게이먼, 이토 준지, 기예르모 델 토로, 존 카펜터 등 SF와 판타지를 넘나드는 작가, 만화가, 영화감독에게 영향을 끼쳤다. 로버트 E. 하워드의 <코난>은 러브크래프트와 친해지면서 세계관을 공유한 작품이다. 브라이언 유즈나 제작, 스튜어트 고든 연출의 <좀비오>, <지옥인간>, <데이곤>은 모두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공포영화다. 악마의 책 네크로노미콘이 나오는 샘 레이미의 영화 <이블 데드>, 스티븐 킹의 소설 <미스트>와 <높은 풀 속에서>, 클라이브 바커의 소설 <피의 책>과 영화 <심야의 공포> 등도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구인사가>로 유명한 쿠리모토 카오루의 <SF 수호지>는 ‘선주인’이라고 부르는 일본의 신들과 크툴루 신들이 격돌하는 이야기다. 아이소라 만타의 라이트노벨 <기어와라! 냐루코양>은 크툴루 신화의 신들을 모에화시킨 기이한 작품이다. 게임에서는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의 시나리오 작가 우로부치 겐이 참여한 <데몬 베인> 시리즈가 유명하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고대신도 크툴루의 신들을 모티브로 한다.
클라이브 바커의 걸작 <헬레이저>에서 남자는 신비한 큐브를 만지작거리다가 이세계로 가는 문을 열어버린다. 진정한 ‘고통’을 안겨주는 악의 사제들이 존재하는 곳. 큐브는 일종의 소환도구인데 크툴루 신화에 나오는 ‘부등면다면체’를 연상시킨다. 유고스라는 행성에서 만들어진 부등면다면체는 어둠속에서 니알라토텝을 불러내는 도구로 쓰인다. 크툴루 신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절대 견고하지 않고, 우리가 보는 것 너머의 다른 무엇이 있다고 말한다. ‘크툴루 신화’를 통해 러브크래프트가 보여주려 한 세계는 저 너머에 있는 ‘진짜 현실’이다.
공포물은 흔히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한다. 지금 현실에서 보이지 않는 것, 불투명하게 느낌만 보이는 저편을 보게 되면 평범한 인간은 어떻게 될까. 평범한 감각으로 볼 수 없는 ‘진짜 현실’을 보게 된다면 현실의 감각, 나의 자의식은 무너져 내리지 않을까. 현실을 알 수 없고, 내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니까. 카오스 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현실의 리얼함을 느끼는 것이 공포물의 출발점이다. 지금 한국 공포물이 나아가는 미지의 세계 역시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