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공포 만화 : 귀신, 일상의 이야기
일반적으로 동양의 공포물은 서양의 좀비와 같은 괴물과는 달리 귀신과 같은 영적 요소를 바탕으로 한다. 죽었으나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억울함과 사연을 풀기 위해 산 자들의 곁을 떠도는 원혼들, 이들의 모습이 우리나라의 공포 장르에서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귀신의 모습이다. 이들은 절대적 악이 아닌, 오히려 오랜 옛날부터 친근하고 익숙한 존재이기도 하다.(김난주(2018), “한 · 일 여성 원귀담의 비교 고찰”, 「한국학논집」 제71호,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그래서인지 공포담은 새로운 세계관 자체보다는 일상에 가까운 곳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으스스한 겉모습과 시각, 청각적 효과를 통해 온몸에 돋는 소름과 긴장을 통해 한여름의 더위를 가시게 하는 귀신들의 이야기가 공포만화에 어떻게 녹아드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억울함과 한의 정서, 귀신 이야기
동양의 공포담에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장면은 하얀 소복을 입은 긴머리의 귀신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랑전설과 같이 억울하게 죽은 여인이 귀신이 되어 그 한을 풀기 위해 누군가에게 나타나고, 귀신의 억울함을 풀고 주검을 찾아 장사를 지내준 이후 그 한이 풀려 원혼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라는 이야기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포영화인 <장화홍련전>(1924) 또한 한을 가진 귀신의 이야기를 듣고 그 원한을 풀어주는 것이 핵심이다. 1960년대를 거쳐 공포는 하나의 장르로 인식되며 <월하의 공동묘지>(1967), <두견새 우는 사연>(1967), <처녀귀신>(1967) 등의 많은 작품에서 한을 가진 귀신이 공포의 대상으로 활용되었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한을 품은 귀신은 모두 여자라는 것이다. 이는 당시 주류였던 사극이나 멜로드라마의 장르적 관습에 의해 공포영화에서 또한 여성 희생자를 그려냈고(백문임(2008), 「월하의 여곡성: 여귀로 읽는 한국 공포영화사」, 책세상, p.110.) 오랫동안 이어져온 가부장제 질서에 의해 희생당한 많은 원귀를 표현하기도 한다.(이인정(2010), “한국 공포영화의 변화 연구 : 여귀에서 환영으로”, 동국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이들이 한을 풀며 이끌어내는 복수의 카타르시스 또한 공포장르의 핵심 정서이기도 하다.
죽은 자의 한을 핵심 소재로 이야기를 이끄는 공포장르의 플롯은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강풀 작가의 <아파트>는 한을 갖고 죽은 여인으로 인해 각종 사건이 일어나는 아파트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 아파트의 여인은 하얀 소복 대신 하얀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며, 흔히 생각하는 귀신과 같이 무표정과 긴 머리를 늘어트린 모습이다. 결말부에 한이 풀리고 승천한다는 기존의 클리셰를 크게 비틀며, 죽은 자의 한이 가진 고통을 극명하게 표현한다. <조명가게>는 이승과 저승이 연결되는 조명가게에서의 사람과 망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후세계와 현실세계, 두 세계를 잇는 중간지점을 다루며 죽은 사람,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는 사람, 산 사람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물론 이 두 작품은 모두 옛날 공포담과 같이 귀신의 한을 풀어주고 성불을 도와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현실 세계를 떠나지 못할 각자의 이유를 가진 존재에 집중하고 그들의 억울함을 통해 실제 세계의 한계를 그려낸다. 옛날 이야기 속 귀신들은 그들이 가진 성별이나 신분과 같은 사회적 제약으로 인해 억울하게 죽어 그 한을 풀고자 했다. 작금의 이야기 속 등장하는 귀신들의 원한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장애, 왕따, 경제적 또는 사회적 문제, 인간관계 등의 문제로 인해 이승을 떠나지 못한다. 한을 풀고자 하는 귀신의 존재는 결국 사회적 약자나 소외된 인간들이 지닌 억압된 욕망이 재현된 것이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 후반부터 재패니즈 호러라는 형식을 통해 공포물을 제작해왔다. 일본의 공포물 역시 사회문제를 기반으로 한다. 대표적인 일본 공포영화 <링>의 경우 매스컴의 보도로 인해 희생되어 원한을 가진 귀신이 불특정 다수에게 공포를 전달하는 이야기이며, <주온>은 여자와 어린아이 귀신이 등장한다. 이 귀신들이 가진 원한의 배경에는 일본 사회 가정의 붕괴가 있다. 엽기적인 비디오 복제 문화에 의한 살인사건과 홀로 비디오를 보며 방치된 어린소년을 만들어내는 사회 구조에 의해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가족이 해체됨에 따라 집은 공포가 발생하는 공간이 되고 변화된 가정의 모습 속에서 새로운 공포가 탄생한 것이다.
일상적 공간, 비일상의 시간
이미 알고 있는 귀신이야기 또는 여러 괴담을 떠올려보라.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많은 공포담의 배경은 매우 일상적인 공간이다. <링>의 사다코와 <주온>의 토시오는 방 안 TV 속에서, 그리고 이불 안에서 등장한다. 우물에서 나오는 귀신 밤마다 꿈속에서 나타나는 귀신들도 모두 누군가의 일상과 모두 가까이에서 나타난다. 일상과 가장 가까운 공간이 비일상적 순간과 만났을 때 가장 큰 공포가 시작되는 것이다.
1998년 개봉한 <여고괴담>은 우리나라 최초의 공포영화 시리즈로 입시지옥 속 차별과 편애를 비판하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공포를 기제로 귀신을 만들어낸 곳으로 학교를 선정한다. 학교는 일상적인 교육을 통해 밝은 미래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가장 당연한 사회적 가치를 가르치고 관계를 이끄는 곳에서 비자연적이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죽음이 발생하며 금기를 무너뜨리고, 학교가 가지는 권위와 사회적 역할을 박살내어 일상에서 가장 먼 공간으로 변형시킨다.
일본의 대표적인 괴담 애니메이션이자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학교괴담> 역시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일상적 공간에서 시작된다. <학교괴담>은 일본의 도시전설과 같은 이야기를 모아 놓은 작품으로, 빨간휴지 파란휴지와 같이 화장실 배경, 건널목, 학교 운동장 움직이는 석상 이야기 등 유명한 공포담들이 시작된 곳이다. 장편 동화 시리즈로 시작된 일본의 <괴담레스토랑>의 학교나 마을을 배경으로 주변에서 있을법한 무서운 이야기를 담은 시리즈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이밖에도 학교를 배경으로 내세운 작품은 매우 많다. <앗, 학교에 귀신이 나타났다>, <으악 학교에 귀신이>, <귀신 선생님과 오싹오싹 귀신학교>, <퇴마학교> 등 수많은 양산형 공포 장르 만화가 발간되었다.
<학교괴담>, <괴담레스토랑>과 같은 작품들의 인기에 힘입어 <신비아파트> 시리즈와 같은 한국형 호러 애니메이션이 탄생하기도 했다. <신비아파트> 역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있는 아파트라는 주거형태를 기반으로 공포의 대상인 아파트와 아파트 자체인 캐릭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우리나라 공포 웹툰의 대표격인 호랑작가의 <옥수역 귀신>와 <봉천동 귀신> 역시 지하철역이라는 일상에서 가장 가까운 장소를 배경으로 하며 네이버 웹툰에서 재연재되고 있는 <무서운게 딱 좋아>도 에피소드의 대부분이 엘리베이터나 집안과 같은 일상적 공간이다.
늘 지내오던 장소에 낯선 존재가 나타나며 나의 일상을 부수는 이야기들은 몰입감을 극대화하며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러한 극한의 긴장감이 대단원에서 이완될 때 남기는 긴장의 해소와 나른함은 인상적인 쾌감과 해방감을 선사한다. 이야기를 감상하던 공간이 최종적으로 안전한 일상 속임을 깨달았을 때 나의 삶은 위협을 겪지 않음에 안도하며 낯선 비일상의 시간을 온전히 놀이로 향유할 수 있게 된다.
오컬트의 확산
우리나라의 공포물은 대부분 귀신과 한을 중심으로 서양의 것과는 다른 이야기 전개와 형태를 보여주었으나, 오컬트 장르의 인기로 인해 한국형 오컬트 장르의 개념이 생성되고 있다. 서양의 오컬트는 악과 악마를 바탕으로 한 초자연적 현상을 그려내며 <엑소시스트>(1973), <오멘>(1976) 등의 작품으로 대표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검은 사제들>(2015), <사바하>(2019) 등의 영화를 통해 서양식 오컬트 영화의 가능성이 확보되었으며, <곡성>(2016)과 <파묘>(2024)의 인기로 한국형 오컬트가 인기를 얻고 있다. 한국형 오컬트는 크게 무당을 중심으로 한 무속신앙, 샤머니즘으로 문제 해결의 과정을 그려낸다.
웹툰 중에서도 이러한 무속신앙이나 샤머니즘이 주제로 그려진 작품들이 있다. <신기록>은 무속신앙과 귀신, 신이 뒤엉켜 사는 시대, 만신의 딸 세진이 경험하는 신비로운 존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미래의 골동품가게>는 한국의 전통요괴와 귀신, 무속신앙을 바탕으로 저주를 풀기위해 주술을 사용하여 퇴마하는 만신의 손녀 미래의 이야기를 그린다. <안개무덤>은 실종된 가족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초자연적 현상을 경험하는 형사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사건현장의 기이한 흔적과 벌레들, 귀신을 부르는 마방진 등 오컬트적 요소를 담아냈다. <룸비니> 역시 신흥사이비종교에서의 초자연적인 현상과 종교의 이면을 그린다.
현재 우리나라의 오컬트는 새로운 장르로 부상하고 있으나 아직 온전한 장르로 자리를 잡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새로운 시선으로 사회의 진실을 마주하고 웹툰의 장르적 다양성을 확보하는데 가치가 크다.
오감을 통한 공포의 확대
사람이 공포를 느낄 때 흔히 손에 땀을 쥐게 한다라고 표현한다. 공포는 괴로운 사태가 다가옴을 예기할 때나 현실적으로 다가왔을 때 일어나는 불쾌한 감정을 바탕으로 한 정서적 반응(두산백과사전 참조) 이자 신체적 반응도 함께 동반한다. 공포심을 느낄 때에는 식은땀, 심장 박동의 증진, 안면 창백 등의 불수의반응(不隨意反應)이 함께 일어난다.(네이버백과사전 참조) 공포물은 사람의 공포감과 광기, 괴기스러움을 느끼도록 자극하며 금기되어 있는 인간의 파괴, 살인 등의 요구를 간접적으로 해소하게 하는 일종의 쾌락의 대상이기도 하다. 또한 현실의 안전함이 보장된 상태에서 겪는 공포를 통해 이완과 긴장을 순식간에 경험하며 느끼는 짜릿한 카타르시스(catharsis)를 통해 강력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김영롱(2012), “공포소설 분석 : 공포 발생 요인을 중심으로”, 인하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pp. 7-9 참조)
어린시절 더운 여름 늦은 밤, 온 가족이 모여 손을 꼭 쥐고 드라마 <전설의 고향>을 보던 시절을 떠올려 보라. 안전한 집 안에서 지켜줄 사람이 있는 공간 안에서 시체가 벌떡 일어나 ‘내 다리 내놔!’를 외치는 장면에서 우리는 극한의 공포를 느끼며 긴장하지만, 곧 이전보다 더 안정된 평온을 가지며 그 순간의 짜릿함을 즐기게 된다. 뒷골을 서늘하게 하는 공포영화 속 사운드는 이러한 공포의 감각을 극대화하기 위해 활용된다.
만화의 경우에는 공포 감각을 이미지와 서사를 통해 표현한다. 잔인하거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긴장감 가득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독자들의 몰입을 최대한 유도한다.
일본 공포만화의 대표작 중 하나인 우메즈 카즈오의 <표류교실>(漂流教室, 1972)은 갑자기 미래의 멸망한 지구로 이동한 학교와 학생,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기괴하고 잔인하게 그려낸다. 디스토피아의 끔찍한 설정에 등장인물인 초등학생들의 잔인한 삶의 광기가 서사와 이미지를 통해 그대로 공포로 전달된다. 공포만화가 이토 준지의 작품에는 신체파괴, 변형, 왜곡 등을 통해 잔혹한 이미지를 표현하고 이를 통해 공포라는 재미를 전달한다. 우리나라의 공포물에 표현되는 귀신이나 각종 초자연적인 현상의 이미지도 대부분 사지가 꺽이거나 절단되거나 피를 흘리는 등의 비현실적이고 괴기스러운 표현을 통해 공포를 극대화하고자 한다.
이와 같이 이미지만으로 표현하는 공포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웹툰에 여러 가지 기능을 더해 새로운 형태의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호랑작가의 <옥수역 귀신>과 <봉천동 귀신>으로, 기술이 도입된 웹툰 제작에 하나의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이후로도 움직임과 소리를 더한 웹툰을 개발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스크롤 속도에 맞추어 컷이나 캐릭터에 애니메이션 효과가 발현되고 사운드가 재생되면서 그 장면의 실감도를 강화한다.
2015년 네이버웹툰에서 개발한 ‘네이버 웹툰 효과 에디터’ 이후 매해 여름철 효과음 및 움직임이 더해진 공포 웹툰 시리즈를 공개하고 있다. 아래의 이미지를 예상할 수 없는 웹툰의 스크롤 연출에 소리가 더해지며 긴장감이 강화하며 독자들의 큰 관심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