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와 만화, 두 장르의 만남: <하루요리>, <에미야 가의 오늘의 밥상>
바야흐로 ‘먹방’의 시대이다. 먹는 즐거움은 어느 때 보다도 풍요의 극점에 가까워졌다. 식문화의 확장, 먹방의 유행, 요리 장르의 다양성과 그의 보급화. 이러한 요리의 심오함은 그 자체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와 결합하고 있다. 먹방의 근원지인 인터넷 방송을 넘어, 드라마, 영화, 그리고 만화까지 식사 본연의 즐거움을 향유한다. 특히, 장르적 유연성으로 인해 만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를 다루고 있다. 고전적인 요리 배틀 장르로는 <요리왕 비룡(원제: 신 중화일미)>이 있으며, 음식에 연관된 스토리를 전개하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그 중에서도 음주 식문화를 다루는 <와카코와 술>처럼, 만화가 요리를 소재로 사용하는 방식은 무한히 확장된다. 국산 만화 또한 요리 장르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조경규 작가의 <오무라이스 잼잼>과 <차이니즈 봉봉>은 실생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요리에 관한 소소한 지식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자혜 작가의 <밀알에게 양식을 주시옵고> 또한 한 때 인기를 끌었으며, 식도락, 미식을 주로 다루고 있다.
또한, 현실이라는 경계를 넘어 요리를 다루는 만화 또한 등장하게 된다. <던전밥>은 가상의 판타지 세계관을 배경으로, ‘마물’을 재료 삼은 요리를 다룬다. 이때, ‘마물식(食)’은 단지 신선한 재미뿐 아니라, 삶과 식사의 긴밀하고 유기적인 연결에 대한 고찰의 주요 수단으로 쓰이게 된다. 이렇듯. 요리 만화의 무한한 가능성은 독자들에게 신선한 재미와 시각의 확장을 가져다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일상과 가장 밀접해 있는 ‘레시피’ 장르의 작품이다.
레시피를 주요 내용으로 삼는 만화들 또한 다양한 양상을 펼치고 있다. 특히, 두 작품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분석하여 요리만화의 특징과 의의를 도출하고자 한다. 그 중 하나는 도토리대장 작가의 <하루요리>, 다른 한 작품은 <에미야 가의 오늘의 밥상>이다. <하루요리>는 플롯의 형식을 따르지 않는 만화로, 요리의 상세한 레시피를 만화로써 소개하고 있다. 특히, 자취 등 식사를 챙기기 어려운 환경에서도 가능한, 동시에 맛과 품질을 보장하는 메뉴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간소하고 귀여운 그림체로 간략화 된 레시피들은 가독성과 시각적 즐거움을 동시에 보장하고 있다.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레시피들은, 일부 요리만화의 특수성과 차별점을 두며 더욱 친근감을 준다. 이렇듯, 독자와의 거리가 가까운, 생활밀착형 장르는 만화에 특수한 목적, 실용성을 부여하며 단순히 읽음으로써 향유하는 장르가 아닌, 독자가 직접 실행에 옮기는 적극적 매체로 변모한다.
한편, TAa 작가의 <에미야 가의 오늘의 밥상>은 스토리와 레시피를 결합한 장르에 속한다. 본작은 일본의 유명 프랜차이즈 시리즈 의 스핀오프로서, 거대한 스케일의 플롯과 액션을 선보이는 기존작들과 달리 인물들의 소소한 일상을 보여준다. 이때, 본작은 인물들이 겪는 사소한 에피소드에 요리를 등장시키면서 인물의 특징을 부각시키고 본편의 스토리를 부연한다. 극중 등장하는 요리의 레시피를 상세히 소개하면서 레시피 장르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실제 푸드 코디네이터와 협업하여 사실적인 요리를 묘사하고 있다. 특히, 구체적인 레시피를 다룸과 동시에 식재료의 밑작업과 심지어 요리시 식재료 고유의 특성까지 소개하고 있어, 요리에 충실한 정통적인 요리만화라 할 수 있다. 요리법을 다듬는 데서 시작하므로 각 요리는 어느정도 고난이도에 속하는데, 이 또한 본작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특기할 점은, 만화 출간 당시 콜라보레이션 카페를 진행했다는 점이다. 요리의 난이도가 높아 독자가 직접 접근하기 어렵다는 단점을, 직접 손쉽게 체험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보완했다는 점이 인상 깊다. 또한 작품을 향유하는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고 있어, 만화가 그 자신의 외부로 확장되는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두 작품 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요리에 대한 접근 방식이다. <하루요리>가 레시피를 단일한 소재로 다루며 요리 자체에 집중한다면, <에미야 가의 오늘의 밥상>은 요리에 더해 다양한 장치와 소재들을 활용하며 프랜차이즈의 스핀오프로서 기능하고 있다. 따라서 <하루요리>는 온전히 요리에 집중한다는 면에서 일종의 장르적 ‘순수성’을 띤다면, 후자는 멀티 컨텐츠로서 엔터테인먼트를 도모하는 전략을 택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요리만화에서 요리를 활용하는 스펙트럼이 존재하며, 그 중 두 작품은 양 극단에 서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순수하게 요리를 다루는 데에 집중하게 되는 즐거움이 있다면, 요리를 수단으로 고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에도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이렇듯 ‘재미’의 다양한 양상은 요리만화의 구체적 다양성을 보장하고 있다.
두 번째 차이점은 요리에 대한 접근성과 관련한다. <하루요리>가 누구나 따라하기 쉬운, 실천적 접근성이 낮은 요리들을 선보이고 있다면, <에미야 가의 오늘의 밥상>은 어느 정도 난이도가 높은 메뉴를 택하고 있다. 따라서 독자의 참여도 또한 변화하게 되는데, 전자는 독자의 일상과 밀접하여 친숙함과 유용성을 제공한다. 한편, 후자는 식재료 위주의 고급 지식을 설명하기 위해 실천의 용이성을 어느정도 포기하는 대신, 레시피에 충실하고 이에 더해 독자의 대안적 참여 방식을 제시하며 접근성을 보완하고 있다. 따라서 <하루요리>는 작품 자체, 작품의 내적 요소를 통해 독자들에게 다가간다고 정리할 수 있으며, 반대로 후자는 작품 외연으로 체험성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독자를 작품 내부로 끌어들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차이점은 특히나 극명한데, 만화 문법의 방향성에 그 원인이 있다. <하루요리>는 데포르메를 극대화하여 레시피 요리로서 그 실용성을 다하고, 다른 요소 보다 요리에 집중함으로써 만화의 간결성을 최대화한다.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레시피를 소개하고 더욱 자세히 설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림이 사용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하루요리>는 만화와 요리 중 요리의 문법에 더욱 충실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소재의 극대화는 독자적인 특색을 만들어내어 만화가 가지는 실용적 특성을 강조하게 된다. 반면 <에미야 가의 오늘의 밥상>은 적극적으로 기존의 만화 문법을 따르며, 장르적 클리셰에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본작 또한 실용성의 측면이 강조되는 것은 사실이나, 요리와 요리법에 더해 캐릭터성, 스토리, 본편에 대한 부연 등 다양한 재미들을 함께 도모한다는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본작은 일본 만화 특유의 흐름과 연출, 표현들을 답습하는 점에서 전자와는 또다른 친숙함을 형성하게 된다. 특히 일상물이 주는 특유의 따뜻한 분위기는 <심야식당>을 포함한 에피소드 형식의 요리만화와 그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하루요리>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요리라는 소재를 간결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으며, <에미야 가의 오늘의 밥상>은 다양한 표현방식을 통해 기존의 만화 문법에 동화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두 작품의 차이점은 근본적으로 접근성과 복잡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각각의 차이들은 장단의 기준을 넘어 만화요리라는 장르의 색채를 다양화하는 작업이라 볼 수 있다. 특히 레시피라는 특성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같은 장르에 속하면서도 차별화를 도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 살펴보아야 할 것은 두 작품의 공통점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레시피 만화가 근본적으로 어떤 특성을 가지며, 그것이 작품과 그 외부에서 어떠한 영향과 효용을 행사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레시피 북과 만화의 장르적 결합은 고유한 특색을 갖는다. 레시피 만화를 통하여 우리는 만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발견할 수 있다. 만화가 실용성을 띠게 되면서, 단지 독자가 작품을 선형적으로 읽어내는 방식 외에 제 3의 길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독자가 작품과 분리되지 않고 그 경험을 자신의 삶으로 연장한다는 점에서도 레시피 만화의 특색은 강조되고 있다.
첫 번째로 제시한 만화의 실용적 성격은 레시피 만화에서 극대화될 수 있다. 그 이유는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행위를 다루고 있으며, 그 방법 또한 상세하게 다룬다는 데에 있다. 사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매체에 흔히 붙는 경고문은 “위험할 수 있으니 따라하지 마세요”라는 문구였다. 그만큼 비일상과 비현실을 장르의 주요 정체성으로 삼는 것이 만화 장르의 특색이다. 그러나 일상을 배경으로 삼는 다양한 만화 중에서도 요리 만화, 또는 레시피 만화는 오히려 만화에 담긴 내용을 따라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심지어 비현실적 배경을 소재로 하는 <던전밥> 또한 실제 메뉴를 모티브로 하는 콜라보레이션 카페를 진행함으로써 요리 만화 특유의 친숙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듯, 레시피 만화는 현실에서의 일탈을 보여주는 대신, 현실의 친숙함과 더욱 연관되며 이러한 일상을 더욱 구체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만화의 체험성이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이유는, 만화가 갖는 특유의 선형성 때문이다. 게임의 경우 향유자의 참여가 필연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고, 순수미술 또한 향유자의 감상과 비평이 미술의 실제적인 성립 요소로서 자리한다. 그러나 만화는 ‘보여주는’ 장르이며, 독자는 작가가 보여주는 플롯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팬덤 활동 등 작품 밖에서의 참여가 더욱 비중 있게 활성화되었으며, 작품 자체와 직접적으로 연결될 여지가 상대적으로 희박했다. 이때, 작품과 독자 사이의 환경적 장벽을 물리적인 방식으로 허무는 것이 요리만화이다. 만화에서 보여주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하나의 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만화가 지시하는 레시피를 직접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만화는 독자의 참여에 의해 완성되고, 독자는 만화에 직접적으로 연결감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만화에서 독자의 능동성 획득에 대한 가능성은 레시피 만화를 대표로 삼아 제시될 수 있다.
또한 만화가 선형성으로부터 탈출하는 방식이 독자에게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수단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만화는 단절 없이 독자의 삶으로 연장될 수 있다. 이러한 경계의 소멸은 매체, 혹은 창작물이 수용자와 합일될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예술과 감상자가 직접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화와 독자의 물리적 장벽을 물리적 방식으로 허문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질성을 띠는 소재를 다룸으로써 우리는 그 물질성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창작물을 우리의 삶에서 재현할 수 있게 되고, 이러한 즉물적 재현을 통해 예술을 우리 삶의 일부로 흡수할 수 있게 된다.
부가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레시피 만화의 장점은, 음식에 집중하는 다양한 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물론, 요리 배틀 장르나 요리에 대한 인물의 반응을 보여주는 작품에서도 요리를 묘사하는 방식은 섬세하고 미적인 만족감을 준다. 그러나 레시피 만화는 이에 더해 요리 자체에 더욱 집중함으로써, 요리를 단일한 오브젝트로서 그려내어 작화의 표현방식을 한층 상승, 발전시키고 있다. 이에 대한 한가지 예시로, <에미야 가의 오늘의 밥상>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때, 요리가 등장하는 장면의 원화는 쌀 한 톨 한 톨의 색이 지정할 만큼 음식 묘사에 공을 들였다. 이렇게 한 가지 오브젝트에 집중하는 묘사방식은 만화가 작화 그 자체만으로도 단일한 가치를 가질 수 있음을 시사하게 된다.
또한, 요리만화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만화가 가지는 매니악한 특성, 즉 장르의 맥락을 따라잡지 못하면 감상에 장벽이 생기는 특성을 보완한다는 점이다. 물론 웹툰의 보급화와 대중화로 만화에 대한 접근 장벽은 매우 낮아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요리만화, 그 중에서도 레시피 만화는 누구나 따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에 더해 요리와 식사가 가지는 극도의 보편성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독자의 세대와 성향을 막론하고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특히, <오무라이스 잼잼>은 그 성향이 극대화되어 아동 독자층과 그 부모 세대까지 포섭하여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는 레시피 장르가 만화의 문턱을 낮춰줄 좋은 수단이 됨을 의미한다. 또한 <하루요리> 역시 다른 요소를 제하고 레시피를 소개한다는 점에서 넓은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렇듯, 모험 액션 장르 등 충성도 높은 좁은 수요층을 대상으로 삼는 독자들을 위한 만화 또한 고유의 의미를 가지지만, 레시피 만화는 만화의 대중화 측면에서 커다란 의의를 보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