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 전개는 어떻게 웹툰의 주류가 되었는가?
“웹소설 문법을 이식한 웹툰 시장”
언젠가 ‘유튜브 에디션’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다. 문화콘텐츠를 직접 즐기고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를 통해 대리 소비하는 행위를 뜻한다. 예를 들어 어떤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지 않고 유튜버가 플레이하는 영상을 보며 즐겼다고 말하거나 어떤 영화를 극장이나 OTT가 아닌 유튜버가 요약한 영상을 보고 감상했다고 말하는 현상이다. 문화산업학 전공자로서 그게 무슨 소비한 거냐고 반발했지만 지인은 너무 바빠서 범람하는 문화콘텐츠를 다 소비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런데 더 황당했던 건 그 ‘유튜브 에디션’도 너무 바쁘신 나머지 2배 속도로 감상한다는 점이었다.
‘사이다’ 전개를 주제로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이 일화가 생각났다. 오늘날 텔레비전 헤게모니가 무너지고 유튜브, OTT로 양분되었다고 하지만 진정한 승자는 사실 숏폼이다. 유튜브도 롱폼보다는 숏폼 콘텐츠로 전환하고 있을 만큼 틱톡과 릴스 그리고 숏츠의 1분 미만 숏폼 콘텐츠는 더욱 성장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톡 쏘는 사이다처럼 통쾌하고 빠른 전개를 의미하는 ‘사이다’ 전개는 “그래서 결론이 뭐야?”라는 심리가 기저에 깔린 결과이다. 인물 간 얽히고설키는 갈등의 과정보다 어떻게 해결되었는가를 빠르게 알고 싶어하는 조급증의 시대인 것이다.
2022년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흥행 성공과 반비례하는 시청자 반응은 바로 이 사이다 전개로 이해된다. 시원한 사이다 전개로 이목을 끌었지만, 원작과 다른 드라마 엔딩은 답답한 고구마였다. 여기서 고구마라는 표현은 사이다 문법을 따르지 않은 기존 드라마 문법을 뜻했다. 결과적으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대중들에게 사이다 전개를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고 앞으로 웹소설 원작을 드라마로 각색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가이드라인이 되었다. 이제 ‘사이다’라는 수식어가 유행하면서 기존의 문법은 전부 ‘고구마’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웹툰 시장의 경우 사이다 전개는 어떻게 주류가 되었을까? 단순하게 보면 모바일 플랫폼이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모바일 플랫폼은 확실하게 지면보다 더 짧은 호흡이다. 종이 넘김 없이 스크롤을 쭉 내린 후 그 끝에 도착하면 독자는 다음 화를 눌러야만 하는데, 이때 다음 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히키(引き)컷이 지면보다 훨씬 더 중요해진다.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 전개 역시 마지막은 다음 화를 보고 싶게끔 만들어야 하므로 고구마가 아닌 사이다의 시작을 알려야 한다. ‘빌드업’이라고 하는 기승은 1-2화 안에 끝마치고 3화에서 전결을 보여주어야 한다. 웹툰 자체가 숏폼 콘텐츠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정리한다면 2010년대 다음 웹툰 시절 강풀, 윤태호 작가의 작품이 왜 성공했는가 설명할 수 없다. 컷툰, 무빙툰, 스마트툰 등등 다양한 플랫폼을 실험했지만 결국 아직도 웹툰은 2000년대와 같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사이다 전개는 매체의 특징보다 소비자의 변화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 의의가 있어 보인다.
선행 연구를 살펴보면 ‘사이다 전개’를 키워드로 한 연구는 발견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사이다 전개 자체가 그리 대단한 개념은 아니기 때문이다. 통쾌하고 막힘없다는 점에서 사이다 전개의 미덕은 독자들에게 매 순간 카타르시스라는 도파민을 주입하기만 하면 된다. 다만 왜 이런 형태의 서사구조가 유행할 수밖에 없었는지, 사이다 전개가 어떤 장르로 표현되었는지 논할 필요가 있다.
사이다 전개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웹소설 시장의 특징을 살펴보자. 편당 5,000자 이상, 주 6~7회를 연재해야 하는 살인적인 웹소설 연재 스케쥴은 매일 몇백 편씩 업로드되는 시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킨게임이다. 웹소설 시장은 독자 유입을 위해 제목도 문장형으로 바꿔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작품이 범람하는 곳이다. 웹소설의 수익 형태는 편당 결제이다. 한 편을 보기 위해서 독자는 100원을 지출해야 하고 편마다 100원의 가치가 있는지 평가한다. 그러다 더 이상 100원보다 가치가 없다고 느끼면 하차를 결정한다. 독자가 쉽게 하차를 결정할 수 있는 이유는 굳이 그 작품이 아니더라고 다른 대체재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웹소설 연재는 독자들에게 하차하지 않도록 읍소하는 것과 같다. 작가가 생각하고 있는 전체적인 이야기의 완성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로서 독자들에게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작은 스크린의 모바일 형태에 맞춰 문장은 간결해야 하고 배경과 인물의 묘사는 생략, 대신 행동과 결과를 명확하게 서술해야 한다. 이야기 구조는 복잡하지 않도록 주인공에게 고정하고 1화에서 어떤 내용인지 명확하게 독자들에게 알리는 하이콘셉트를 지향해야 한다. 그 결과 주인공은 고민하기보다 행동하고 주변 인물들은 민폐를 끼치느니 등장시키지 않으며 갈등을 단순화시켜서 악당은 주인공에게 응징당하기 위해 행동한다. 그 결과가 사이다 전개라는 생존 형태가 된 것이다.
인터넷 소설-웹소설은 작가와 독자 모두 대리만족을 위해 모인 시장이다. 사이다 전개는 주인공의 승승장구하는 전개로 최대한 빠르게 대리만족을 실현하는 진화 형태인데 이런 측면에서 접근했을 때, 사이다 전개는 초기 한국 판타지 소설의 먼치킨 주인공 서사와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국내 판타지 소설은 TRPG인 <던전&드래곤>보다 <던전&드래곤>의 리플레이인 소설 <로도스도 전기>(1988, 미즈노 료), 라이트노벨 <슬레이어즈>(1990, 칸자카 하지메)을 더 많이 영향을 받았다. 그 결과 굳이 <던전&드래곤> 룰에 얽매일 필요 없이 독자적인 글쓰기가 가능했다. (한 편으론 저작권 문제가 걸리기 때문에 <던전&드래곤> 룰을 따를 수도 없었다.) 한국의 장르 판타지 세계관은 서양의 세계관보다 훨씬 단순화되었기에 쉽게 퓨전 판타지, 게임 판타지로 장르 분화가 가능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먼치킨 캐릭터를 등장시켜 대리만족을 충실히 이행했다. 특히 만화 <유레카>(2000, 손희준, 김윤경)에서 처음 등장한 ‘히든피스’라는 개념은 게임 내에서 오직 주인공만 갖는 먼치킨적 요소였다. 그 후 소설 <신마대전>(2004, 김운영)에서 ‘히든 클래스’가 등장하면서 ‘히든’이라는 요소는 주인공을 먼치킨으로 만드는 필수 설정이 되었다.
한편 대본소 만화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1987, 박봉성), <대털>(2002, 김성모)같은 범죄조직을 거느리는 초인적인 조폭이 등장하여 사회 부조리를 무력으로 해결하는 작품이 등장하였으며 2010년대 접어들어 이런 현대 먼치킨 장르는 ‘히든피스’개념을 적용하여 평범한 주인공이 우연히 특수한 능력을 얻어 을에서 갑으로 역전하는 현대 갑질물이 되었다. 이 시절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소설 <전능의 팔찌>(2011, 김현석)로, 삼류대학 수학과 출신인 주인공이 우연히 팔찌를 줍게 되어 유일한 대마법사가 된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이 힘을 사용하여 정치, 경제, 문화 등 전방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탈바꿈한다. 현대 갑질물은 이제 레이드물, 헌터물, 전문가물, 귀환물, 재벌물 등으로 분화하여 소설 <나 혼자만 레벨업>(2016, 추공), <재벌집 막내아들>(2017, 산경), <전지적 독자 시점>(2018, 싱숑) 작품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나 혼자만 레벨업>과 <재벌집 막내아들>, <전지적 독자 시점>은 공통으로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를 통해 갑질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취득한다. 성진우는 죽음 이후 유일하게 레벨업을 할 수 있는 초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순양그룹의 머슴인 윤현우는 죽음을 통해 30년 전으로 회귀하여 진도준이라는 순양그룹 막내아들의 막내아들로 다시 태어난다. 마지막으로 김독자는 작중 소설인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 안에 들어가 앞으로 벌어질 모든 일을 알고 있으며 또 다른 주인공인 유중혁은 회귀자로 같은 사건을 몇 번씩 반복한 인물이다.
앞서 밝힌 웹소설 환경을 다시 생각해 보면 웹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어떻게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독자는 주인공이 어떤 능력을 얻게 되었고, 어떤 갑질을 보여줄 수 있는지만 중요하다. 즉 무슨 맛 사이다인지만 궁금할 뿐, 어떻게 사이다를 만들어 내는지는 고구마가 된다. 일단 초능력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회빙환이라고 설정 해두면 주인공은 다른 등장인물들과 달리 미리 알고 있어서 모든 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으며, 주인공의 모든 행동에 이유를 붙일 필요 없이 개연성이 확보된다. 따라서 회빙환은 사이다의 필수 조건이 된다.
웹툰 시장에서는 2014년도에 <외모지상주의>(2014, 박태준)이라는 회빙환 설정을 활용한 사이다 전개 작품이 연재되었다. 주인공 박형식은 초고도비만에 키 작고 못생긴 고등학생으로, 항상 일진들의 괴롭힘에 시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형석은 완벽한 신체에 빙의하게 된다. 완벽한 신체를 얻은 후 형석은 괄시받는 대상에서 사람들이 떠받드는 우상으로 변모했으며 왕따에서 일진으로 신분 상승을 한다. <외모지상주의>는 착한(?) 일진 박형석이 나쁜 일진들을 응징하는 카타르시스를 통해 사이다를 제공한다. 다만 연재 초기 이 작품은 학원 폭력물(일진물)로 분류되어 <프리드로우>(2013, 전선욱). <최강전설 강해효>(2013, 최병열)과 함께 했으며 후에 <랜덤채팅의 그녀>(2017, 박은혁), <약한영웅>(2018, 서패스, 김진석), <싸움독학>(2019, 박태준)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현재 사이다 전개 인기작의 연재 시기를 살펴보면 2020년에 <SSS급 죽어야 사는 헌터>(네이다, Bill K), <상남자>(하늘소, 도가도), <전지적 독자시점>(UMI, 슬리피-C) 2021년에 <화산귀환>(LICO), <역대급 영지 설계사>(이현민, 김현수), <일타강사 백사부>(팀더지크, 오리보리)정도를 꼽을 수 있으며 대부분 2020년 이후 작품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공교롭게도 웹소설 원작 웹툰이다. 이를 통해 웹툰에서 사이다 전개가 유행하는 시기는 웹소설의 웹툰화 시기와 맞아떨어진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사이다 전개가 주류로 자리 잡게 된 시기는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연재한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장성락)의 성공 때문일 것이다. 특히 웹툰은 단순히 원작의 웹툰화 시켰다는 수준을 넘어, 웹툰 캐릭터 디자인을 바탕으로 애니메이션과 게임이 제작되었을 정도로 지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최하급인 E급 헌터 성진우가 우연한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고 레벨업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되살아나는 이야기다. 성진우는 레벨업을 할 수 있게 되면서 그에게만 보이는 게임 시스템이 도입되는데 신기한 점은 웹툰 <더 게이머>(2013, 성상영, 상아)의 주인공 한지한은 게임 능력치를 올리기 위해 다양한 노가다 방법을 연구하지만, 성진우는 일일 퀘스트로 노가다를 단순화시키고 특별한 공략 없이 던전을 클리어한다.
헌터 등급이 새로운 신분제인 세상에서 나 혼자만 레벨업을 하여 E급에서 국가권력급 헌터가 되고 만다는 서사는 이상하게 부조리하다는 기존의 시스템을 더 견고하게 만든다. 이번 생은 망했기 때문에 다시 태어났지만, 시스템에서 벗어나거나 붕괴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시스템의 정점에 올라가기 위해 노력한다. 다만 그 과정이 이전의 삶에선 불가능했지만 히든피스를 얻은 나는 가능하여서 사이다처럼 몰아칠 수 있다. 따라서 굳이 던전 공략을 궁리할 필요 없다. 얼마나 강한 적을 물리쳤고 어떤 보상을 얻었느냐만 중요하게 된다.
오피스 장르인 <상남자>의 한유현은 말단 사원에서 대기업 CEO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러나 아내와 이혼하고, 본인 손으로 사람들을 구조조정 시켜야 했다. 여기에 회사 동기는 자살까지 한다. 한유현은 본인의 삶이 옳았던 건지 회의감에 빠진다.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30년 전, 회사 면접 당시로 회귀하게 되는데 한유현은 또다시 회사에 입사하고 만랩 신입사원의 면모를 보여주며 성공 가도를 달린다. <미생>이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위로 해준다면, <상남자>는 빌런에게 휘둘리지 않고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성공한 샐러리맨의 환상을 보여준다. <재벌집 막내아들>도 자신에게 인격 모독적인 갑질을 일삼던 재벌 막내아들의 막내아들로 다시 태어나서 그들에게 복수하고 본인이 재벌 총수가 된다.
사이다 전개는 부조리한 시스템에 도저히 버틸 수 없는 내가 이번 생은 망했기에 죽음을 택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특별한 능력을 얻고 되살아난다면 그 부조리한 시스템의 정점에 오르고 싶다는 욕구가 반영된 결과다. 다만 그 노력의 과정은 이미 현실의 내가 겪고 있어 익히 알고 있으니까 빠르고 간결하게 해결해주길 바란다.
웹소설의 사이다 서사가 웹툰에 안착할 수 있게 된 이유에는 두 매체의 공통점과 둘을 동시에 즐기는 소비자가 많아서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이후 드라마에서 적극적으로 웹소설 원작을 수용하는 것처럼 웹툰도 <나 혼자만 레벨업> 이후 웹소설 원작으로 수용하고 있는데, 기존의 웹툰이 코믹스 장르를 계승하거나 공감툰과 같은 독자적인 장르 개척을 했던 것과 다르게 웹소설의 장르를 흡수하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