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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만화 No.2’에 빛나는 ‘꾸러기 유니버스’의 아버지 윤준환

진정한 명랑만화, '꾸러기와 맹자'. 가슴 속의 별이 되다.

2024-09-12 장상용

명랑만화 No.2’에 빛나는 꾸러기 유니버스의 아버지 윤준환

  고백하자면, 1970년대부터~90년대 초까지 어린이들을 사로잡은 수많은 명랑만화 중에서 재미라는 기준으로 2등쯤으로 매길 수 있는 작품은 윤준환의 꾸러기와 맹자이것은 순전히 필자의 기준(1등은 길창덕의 꺼벙이’)이지만 말이다. 그 시대의 명랑만화와 모든 어린이만화로 기준을 확대해도 윤준환은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 너무 주관적인 평가라고 반발심을 갖는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글에서 충분히 그 이유를 설명하려 한다.

  명랑만화의 은하수 속에서도 오롯이 빛났던 꾸러기와 맹자의 작가 윤준환(본명 윤인섭)202482983세를 일기로 갑작스럽게 별세했다.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대장암. 평소 고혈압 등 기저질환이 있기는 했지만 특별한 병치레가 딱히 없던 터라, 가족도 그의 타계에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6월 혈변 증세가 생겼고, 79일 최종 대장암 말기 판정에 이은 수술, 그리고 8월 말의 타계. 이 모든 과정이 약 두 달에 불과했다. 심지어 75일에도 그는 일요신문에 연재 중이던 물대포원고를 제작할 요량으로 화구를 병원에 옮겨놓은 상태였다. 만화 꾸러기시리즈에서 활약한 명랑만화 사상 최강의 남녀콤비 꾸러기와 맹자의 아버지인 그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전라북도 익산이 고향으로 어린 시절 시골서 자란 윤준환은 소위 어린이신문, 만화잡지를 펼치면 작품이 나오는 만화가 중 한 명이었다. 전성기 때 온갖 신문, 잡지에서 30개에 가까운 작품을 동시 연재한 신문수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서울대 조소과 출신으로 만화가가 된 윤준환은 많은 분량의 연재를 하지 않았지만(1971년부터 26년 간 KBS에서 방송미술 담당으로 근무하며 만화 창작을 병행했기 때문) 자신의 지면에서만큼은, 사과를 뒤집어쓴 듯한 형태에 귀 부근을 반달 형태로 파버린 투블록 머리가 인상적인 꾸러기와 옛날 가정집 전화 수화기 모양의 머리가 더더욱 인상적인 주근깨 소녀 맹자의 막강 콤비 플레이를 옹골차게 그려내 독자가 킥킥거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특히 맹자의 이름과 머리를 잘 해석해야 한다. ‘공자(孔子)’, ‘맹자(孟子)’도 아니다. ‘자는 먼저 우리말로 맹하다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하는데, 실은 맹랑하다는 성격을 가리키고 있다. 그래서 맹자맹랑한 여자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낭패를 당하기 쉽다. 전화 수화기 머리는 자를 머리에 덮어쓴 바가지 머리 스타일인데, 정수리 쪽이 전혀 둥그스름하지 않고 완전히 수평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먼저 길창덕의 순악질 여사눈썹이 떠오른다. 야구방망이를 쥔 순악질 여자의 슈퍼울트라 성격을 짙은 자 눈썹이 대변하듯, ‘명랑만화 최강 여자 빌런맹자의 못 말리는 성격을 이 자 머리가 한눈에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맹자는 그저 우악스럽기만 한 소녀가 아니다. 잘 보면, 전화 수화기 머리 위에 언제나 작은 나비 브로치가 얹어져 있다. 맹자라는 소녀의 어딘가에 깃든 섬세한 감성을 상징하는 디테일이다. 이렇게 철권나비감성’(이 나비감성 탓에 맹자는 훗날 꾸러기의 신부가 되기를 꿈꾸는지 모르겠다)을 겸비한 매력적인 주근깨 소녀가 바로 맹자다.

  그런데 맹자는 꾸러기가 없다면 반쪽에 불과하다. 속을 파낸 사과 같은 머리를 가진 꾸러기는 맹자처럼 강하지는 않지만, 마음속을 짐작할 수 없는 뚱딴지같은 소년이다. ‘꾸러기말썽꾸러기의 줄임말일 뿐이다. 맹자에게 지거나 눌린 것처럼 보여도, 결국 맹자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고수의 기질이다. 반드시 당한 것은 되갚아주고야 마는 둘은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도(자연스럽게 스토리는 반전의 반전을 거듭), 서로가 하늘이 내린 콤비임을 인정하고 깔깔거리며 다음 말썽을 작당모의 한다.

  그리하여 꾸러기와 맹자 콤비는 1960년대~70년대 박기정의 훈이와 동추’, 1970년대~80년대 윤승운의 꼴치와 한심이콤비에 뒤지지 않을 무적의 바퀴벌레한 쌍이었다. 누구도 꾸러기와 맹자의 말썽을 박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화잡지 보물섬’ 198711월호에 실린 꾸러기와 맹자5회에서 꾸리가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선글라스 고사상에 대고 제발 제발 고질병인 말썽병 좀 낫게 해 주세요~”라고 절하는 장면을 참조하면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윤준환 만화가 깨알 재미인 것은 그 와중에도 고사상에 오른 돼지머리가 선글라스를 쓰고 있고, 야구 장비를 든 꾸러기가 맹자의 머리에는 혹이 몇 겹으로 올라가 있는 디테일이다.

  꾸러기시리즈는 초창기부터 다듬어지고 또 다듬어지고, 맹자 캐릭터가 합류해 1997년까지 약 30년 가까이 제목이 조금씩 바뀐 채 연재만화와 단행본으로 변주되며 꾸러기 유니버스를 형성했다. ‘꾸러기 말썽일기를 비롯해 꾸러기 대소동’, ‘꾸러기는 못 말려’, ‘꾸러기의 심술일기’ ‘말썽천재 꾸러기’, ‘빵점도사 꾸러기등으로 독자를 만났다.

  이제 필자가 위에서 윤준환의 꾸러기와 맹자에 명랑만화 랭킹 No.2 지위(재미 기준)를 부여하고, 이 작품이 한국 명랑만화에서 갖는 위상을 강조하는 이유를 설명하겠다. 이것은 명랑만화의 본질과 직접 연관된 부분이기도 하다.

명랑만화는 본질적으로 어린이가 주인공인 만화다. 그런데 이를 문자 그대로만 이해하면 안 된다. 만화 속 어린이 주인공이 그 세계의 중심이며, 만화 속 세상은 어린이 주인공과 독자가 재창조하는 유니버스라는 점이 핵심이다.

  어린이라는 표현에는 어른에 비해 미완성이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필자는 어른과 어린이의 결정적 차이가 육체의 발달 문제가 아니라, ‘세상의 중심에 대한 인식의 유무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어 사회, 더 큰 세상과 부딪히면 세상의 중심, 즉 권력을 발현하는 존재를 필연적으로 느끼게 된다. 직장 생활을 하면, 상사와 회사 대표가 어떤 분인지부터 살피게 된다. 승진, 연봉, 업무, 장기근속 등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금을 납부하는 위치에 편입되면, 여의도 VIP들의 결정으로 전기료 등 온갖 공과금이 강제 부과되는 것을 덤덤이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하여 어른은 태양의 위성처럼 나보다 강한 세상의 중심에 맞춰 사는 방식에 익숙해진다. 약자에게는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면서.

  하지만 어린이는 어른이 복종하는 세상의 중심 따위는 안중에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알 바 아니다. 어린이가 배고프다고 부모에게 요구하면, 부모는 먹을 것을 대령해야 한다. 어린이에게는 어린이만의 세상이 있고, 세상의 중심이 자신이기 때문이다. 명랑만화 속 어린이는 그 자체로 빛나는 완전체이고, 어린이가 중심인 세상 역시 흠잡을 데 없는 곳이어야 한다. 어린이 중심의 세계는 모험, 유머, 일상, 즐거움, 공상, 가족, 우정 등으로 꽉 차 있다.

  그런 인식을 세계의 작동 방식으로 삼는 만화가 바로 명랑만화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명랑만화를 그리는 작가 역시 어른이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어른의 시각에서 본 어린이 주인공이 만들어지곤 했다. 세상의 중심에 영향을 받아 좌중우돌 하며 성장하는 그러나 윤준환의 꾸러기와 맹자는 달랐다. 두 콤비는 이미 계획이 다 있는녀석들이다. 거기에는 둘이 훗날 신랑신부가 되는 장기계획까지 포함되어 있다. “나 아니면 누가 데려가?” 하면서도, 오래 전에 합의된 결론이다. 어린이의 특권인 말썽이 중심인 세상에서는 상대를 도발하고, 골탕 먹이고, 어른들에게 혼나고, 낄낄거리는 것이 당연하다.

  꾸러기가 걱정된 할아버지가 , 커서 뭐가 되려고?”하자, 꾸러기는 뒤도 안 돌아본 채 되긴 뭐가 되요? 나도 애 아빠가 되는 거죠, 라고 말한다. 어른 세상이 무엇인지 알지만, 꾸러기에겐 그건 뻔한세상이다. 톰 소여에게 모험은 생명이라면, 꾸러기와 맹자에겐 말썽은 생명인 것이다. 어린이의 계획과 특권에 의한, 그것을 위해 돌아가는 꾸러기 유니버스’. 그러기에 꾸러기와 맹자는 항상 계획된 말썽을 실행하고, 어른들은 식은땀을 흘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 지점이 윤준환의 명랑만화가 다른 명랑만화들과 차별화되는 포인트이며, 그가 어린이를 100% 완전체로 보고 있었다는 증거다. 그래서 꾸러기 유니버스는 진정한 의미의 보기 드문 명랑만화다.

  윤준환 별세 후 그가 마지막까지 작업을 하던 경기도 수지의 화실을 둘려보았다. 거기서 아들 윤장원씨를 만나 고인의 인생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담배를 일절 입에 대지 않고, 직장 생활과 만화 창작을 병행하며 살았던 바른생활 맨이었다. 아들에 따르면, 고인의 단점은 너무 일만 했다는 것이랄까?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치를 떨 만큼 싫어했고, 가족에게도 부탁을 하지 않는 성미였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것에도 거리를 두었다.

  만화가 권영섭은 아동만화에서 독보적 위치를 가진 작가였다. 사람이 깔끔하고, 예의 바르고, 정직하고, 줏대가 있었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아마도 고인의 딱 부러지는 성격과 강한 내면이 꾸러기와 맹자 같은 캐릭터를 낳은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말년에 몇몇 친구들과 교류가 있었을 뿐, 만화계와 가깝게 소통하지는 않았다. 친한 동료 작가로는 김우영, 오원석, 조항리, 임웅순 등이 있었는데, 다섯 명이 2017년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만화일기장 유년의 기억, 일상의 기록이라는 전시를 갖기도 했다.

  고인의 만화 사랑은 누구보다 크고, 열렬했다. 그는 만화가라는 일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대장암 발병 직전까지 쉼 없이 아이디어를 짜고 원고를 그렸다. 7월 병원에 입원해서도 연재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은 어느 순간, 윤준환은 마지막으로 두 가지 일을 했다. 연재처인 일요신문에 연재 불가를 통보하고, 곧바로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연재처에 못 한다고 전화했다. 미련은 없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그것이 항상 만화를 그릴 때 한 쪽 다리를 꼬는 습관을 가졌던 만화가의 마지막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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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용

작가, 만화평론가
초이락컨텐츠컴퍼니 웹툰사업팀장, 前 부천국제만화축제 사무국장, 前 일간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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