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대한민국만화평론공모전 수상작(신인상)
웹툰 생태계의 진화를 위한 공영 웹툰 플랫폼 설치 제안
1.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다.
(스티븐 제이 굴드, Full House, 이명희 역, 『풀하우스』 (사이언스북스, 2002), 279쪽.)
스물다섯, 도전을 통해 도약하는 청년의 나이다. 1999년 인터넷 만화 방송 사이트인 AniBS에서 태동한 웹툰은 올해로 탄생 25주년을 맞았고(정형모, 만화전문 인터넷방송 '애니비에스' 인기, 『중앙일보』, 1999.06.22.) 세계에서 각광받는 K-컬처의 한 축으로 성장했다. Super(1957)의 진로발달이론에 따르면 25세는 ‘자신에게 적합한 분야를 발견하여 참여하고 생활의 터전을 잡으려는 확립 단계’로 정의된다.(이수진, 김석주,“지역아동센터 청소년의 진로정체감에 미치는 영향 : 진로발달이론과 지역아동센터 요인을 중심으로”, 『Journal of Community Welfare, Vol. 75, 2020.11.30.』, 116쪽.) 웹툰은 이제 자신의 지위와 역할을 확고히 해야 할 ‘확립기’에 접어든 것이다.
하지만 출생률이 급감하고 내수시장이 축소되는 와중에 웹툰의 주요 독자층은 다른 매체로 이탈하고 있다. AI 제작 기술의 급성장으로 인한 작가들의 위기감도 커지는 상황이다. ‘버티컬 코믹스(Vertical Comics)’, ‘원창만화(原创漫画)’, ‘다테요미 망가 (세로로 읽는 만화, 縦読み漫画)’등의 신조어로 한국에서 만들어진 ‘웹툰(Webtoon)’을 대체하려는 해외 업체들과의 경쟁 또한 심화되고 있다.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방향을 짐작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 웹툰 산업이 성장을 지속하며 종주국의 지위를 ‘확립’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누구도 “그렇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격변하는 환경에서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면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말처럼 ‘변하지 않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주태산, “어설픈 예측 멈추고, ‘결코 변하지 않는 것들’에 집중하라”, 『이코노믹 리뷰』, 2024.03.24.) ‘만화는 작가의 사상을 담아내고 인간 감성을 정화시키며 내면의 의식까지 영향을 주는 예술 양식’이며(이종한, 예술매체로서 만화에 대한 연구, 『예술과 미디어』(제11권 제1호), 2012.05.30. 190쪽) 예술은 ‘구현된 의미’로 정의된다.(박배형, 예술을 예술이게 하는 것, 『인문논총 제73권 제1호』(2016.2.29.),422쪽.) 따라서 만화의 표현 방식 중 하나인 웹툰 역시 의미 구현을 통해 독자의 감성과 의식에 영향을 주는 것, 즉 감동(感動)을 목적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창작자의 사유 결과물에 향유자가 감정적으로 상호작용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소통 수단으로서 예술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 것’에 속한다. 하지만 현재 웹툰 플랫폼의 편집 방침은 웹툰의 예술적 가치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 편향성을 보인다.
유료 수익을 창출하는 중소형 플랫폼의 상당수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성애 만화를 주력으로 내세운다. 대형 플랫폼인 네이버와 카카오의 경우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작품을 주로 게재하고 있으나 10대 취향의 일부 장르에 치우쳐 있다는 우려가 나온 지 오래되었다. 시장에서 반응을 얻는 장르가 편중되는 현상은 다양한 콘텐츠를 고르게 노출하지 않는 웹툰 플랫폼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서찬휘, “양산형 장르 웹툰의 인기 편중, 그 해결책”, 『황해문화』(2020 여름): 268쪽.)
글로벌 웹툰 시장은 2032년 130억 4천만 달러의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웹툰 시장 규모, 점유율 및 산업 분석,『Fortune Business Insights』, 2024.07.29.) 사기업인 웹툰 플랫폼에 장기적 전망을 가지고 산업 생태계의 균형을 맞추라는 요구까지 하기에는 시장이 너무 크고 의무가 중대하다. 24년 1월 문화체육관광부는 국가 주도의 다각적 지원을 약속하였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웹툰이 선두를 유지할 수 있으려면 국가의 전략적 개입이 필수적이다. 매개자인 플랫폼이 웹툰 산업의 주체가 되면서, 생산(창작)-유통-소비(감상)으로 구성되는 웹툰 산업의 생산 과정(박영정, 예술인 정책과 예술인의 개념, 『문화예술논단』(2006.05). 30쪽.)에서 작가와 독자가 소외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와 독자가 배제된 비정상적 산업 구조를 유지한다면 웹툰 생태계는 파괴될 수밖에 없다. 국가가 지원하는 새로운 플랫폼의 개설이 시급한 이유다.
대한민국 전자정부 누리집의 칼럼은 “K-콘텐츠의 근간이 되는 웹툰은...전 세계의 만화 표준으로 거듭나기 위해 또 다른 진화를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문동열, K-웹툰 세계 만화 표준이 되다, 『K-공감』, 2021.05.17.) CEO 레이 달리오는 진화를 ‘개선으로 가는 상승 운동’(레이 달리오, The Changing World Order, 송이루, 조용빈 역, 『변화하는 세계 질서』(한빛비즈, 2022), 40쪽.)이라 했지만 진화 생물학에서는 진화를 목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양성의 결과로 진화가 발생할 뿐이다. 생물학의 개념을 사회학적 맥락에서 차용하는 이유는 다양성의 상실로 인해 한국 만화 생태계 전체가 궤멸될 뻔했던 위기를 이미 겪었기 때문이다.
2. 현황 1 : 작업에서 산업으로
(Occupation : 자신이 목표를 정하여 스스로 시작하는 활동으로, 개인적인 의미(즐거움 포함)가 부여 되고 타인에게도 공헌하는 것 (유두한, 작업의 정의와 특성, 건양대학교, Yerxa(1998) 재인용))
1990년대 말, 한국 출판 만화 시장이 붕괴했다. 98년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정보통신 강국을 목표로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를 보급했고(4년간 11조 투자… 생산유발 17조, 『국정신문』, 2002.11.11.) 만화계 종사자들은 실패한 시스템을 복구하기보다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전략을 택해 웹툰이라는 신생 문화 매체를 창조했다.
출판 만화 시장의 몰락은 90%에 달한 일본 만화의 시장 점유율, 청소년 보호법 제정, 대여점의 급증 후 감소, 게임 산업의 성장 등 다양한 요인에서 비롯되었지만, “9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좋은 만화보다 잘 팔리는 만화가 대세로 굳어졌다... 80년대에 다채로웠던 우리 만화는 90년대 들어 시장 규모는 커졌지만 다양성은 오히려 줄어들었다.”(홍지민,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4)1990~2000년대 만화를 말하다, 『서울신문』, 2012.05.13.)는 윤태호 작가의 인터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2년에 언급된 과거의 실패 원인이 2024년 현재, 글로벌 문화 산업으로 부상한 웹툰 시장에서 독자들이 등을 돌리는 이유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기작의 아류작들이 플랫폼을 도배할 때가 위기다.”(김민오, 만화의 과거에서 웹툰의 미래를 발견하다 – 성장기, 『웹툰 가이드』, 2019.03.14.)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웹툰의 성공 요인은 “개성 있는 이야기와 장르의 다양성”에 있었다.(문화체육관광부, 국내 웹툰 콘텐츠의 아시아 시장 진출 확대방안 연구, 2017.02.,130쪽.) 하지만 2024년 1월의 기사는 “비슷한 장르에 비슷한 스토리를 가진 작품이 양산되면서 피로감이 가중되어 웹툰 구독률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으로도 나타났다.”(김민수, [만화iN]웹툰 '보스리턴' 양세준 교수 "레이블처럼 장르 다양성 찾아야", 『노컷뉴스』, 2024.01.12.)고 보도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상반된 평가를 받게 된 이유를 찾고자 2018년부터 2023년까지의 만화산업백서를 기반으로 웹툰 산업의 변화 흐름을 추적해 보았다.
△ 이미지 출처: 2020 만화산업백서 16쪽
▶ 2017년 : 웹툰 산업이 생산력을 중시하는 콘텐츠 산업에서 소비에 중점을 둔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이행되었다. 투자 규모가 커지자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오락성과 수익성에 치중하면서, 가치가 단일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 시작했다.(2018 만화산업백서, 『한국콘텐츠진흥원』, 13~21쪽.)
▶ 2018년 : 웹소설의 웹툰화, 웹툰의 영상화 등 미디어 믹스가 활발해졌다. 국내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글로벌 비즈니스가 적극적으로 전개되면서 IP 확장성이 높은 작품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었다.(2019 만화산업백서, 『한국콘텐츠진흥원』, 16~74쪽.)
▶ 2019년 : 글로벌 진출과 수익 모델 확장의 성과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네이버와 카카오의 글로벌 거래액이 1조 원에 도달했다. OTT의 성장으로 웹툰이 원천 콘텐츠 IP 제공자로서 각광받자 대규모의 자본이 투여되었다.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웹툰 제작의 수요가 폭발하면서 투자를 확보한 플랫폼과 에이전시가 웹툰 IP 소유권을 가진 제작사(CP사)로 변모했다. 한 작품에 많은 제작 인원을 투입하는 스튜디오 시스템이 구축되었고 웹툰의 퀄리티와 분량이 급상승한 결과, 1인 창작자의 권한이 축소되고 노동량이 과중해지는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독립만화의 지속 가능성에도 상업적 가치가 우선시 되면서 작가의 사명은 ‘돈이 되는 웹툰’을 생산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2020 만화산업백서,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 14~67쪽.)
▶ 2020년 : 팬데믹 동안 디지털 콘텐츠 소비량이 증가하면서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았다. 네이버 웹툰은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본사를 미국으로 이전했고 카카오는 2000억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였으며 CP사는 전체 산업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팽창했다.(오경미, 웹툰 플랫폼과 문화예술 노동, 『오픈넷』, 2022.02.09. 6쪽.) 사업 규모가 급성장하면서 IP 확장과 발굴에 총력을 기울였으나 안전하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장르에 편중되었고 지나친 경쟁으로 노동 환경이 악화되었다. 신작을 대량으로, 빨리 공급하기 위해 스튜디오 중심의 분업 시스템이 확대되면서(2021 만화산업백서,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 14~63쪽.) 창작자는 CP사의 직원이 되거나 계약직 용역을 맡게 되었다.
▶ 2021년 : 2조 원에 달하는 공격적 투자, 인수, 합병을 통해 양대 웹툰 플랫폼의 몸집 불리기가 가속화되었고 글로벌 종합 콘텐츠 기업으로 성장하려는 목표를 명확히 하였다. 장르 세분화 전략으로 차별화한 중소 웹툰 플랫폼도 동반 성장하면서 웹툰이 주류 콘텐츠로 자리잡았지만 IP 공급 주체가 CP사로 바뀌면서 작가들의 52.8%가 불공정 계약을 경험했다. 노동량은 늘었지만 수입이 줄면서 최저 생계비 미만의 수익을 얻는 경우도 늘어났다.(2022 만화산업백서,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 14~56쪽.) 작품을 싣기 위해 플랫폼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플랫폼의 성장을 위해 작품을 생산하는 구조로 변화했다고 볼 수 있다.
▶ 2022년 : 유통사였던 네이버는 제작과 배급까지 원스톱으로 운영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었다. 카카오 역시 종합 콘텐츠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외연을 확장했으나 엔데믹과 함께 투자가 위축되었다. 웹툰 플랫폼은 상생 구조를 통해 슈퍼 IP를 발굴하고 최대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지만(2023 만화산업백서,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 14~75쪽.) 투자회사로 변신한 웹툰 플랫폼과 하청을 맡은 CP사가 주도하는 “그들만의 잔치”에서 소외된 웹툰 작가들의 우울증과 자살 충동이 타 직군 대비 3배가 넘으면서(유선희, 정신과 약 먹으면서 버티는 웹툰작가들…우울증 일반인의 3배 높아, 『경향신문』, 2023.01.06.) “웹툰 시장의 비약적 성장은 웹툰 작가 등 종사자에 대한 수탈 구조에 기인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채민선, “웹툰 플랫폼이 불공정 계약 악순환을 끊어야”,『중기이코노미』, 2023.01.20.)
3. 현황 2 : 작품에서 상품으로
2022년을 기점으로 웹툰 산업의 성장 추세가 둔화되고 소비가 감소했으나 공급량은 줄지 않았다. 2023년 4월부터 6월까지 등록된 웹툰은 총 34개 플랫폼 5,350개로 2022년 같은 분기 대비 2천여 편 정도가 증가하였고(백종성, 23년 2분기 만화 유통 시장 톺아보기, 『만화규장각』, 2023.11.27.) 이중 80~90%가 CP사를 통해 제작되었다.(정두용, 빠르게 성장한 웹툰 시장…무너지는 네이버·카카오 ‘상생 생태계’,『이코노미스트』,2023.05.08.) 작품 수가 증가하며 선택의 부담을 느낀 독자들이 인기 순위에 오른 작품 위주로 소비하면서 상위권에 노출되는 작품의 장르 편중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선호하는 수요층이 오픈 플랫폼과 숏폼 등으로 이탈하면서 상위 10개 웹툰 제작사 중 8곳이 적자를 기록했으며(김주완, 웹툰 수만개 쏟아지는데…"숏폼이 더 재밌다" 골수팬도 등돌려, 『한국경제신문』, 2024.06.14.) 개별 작품의 매출이 하락하면서 웹툰 산업 종사자들의 수익은 더욱 줄어들었다. ‘시장 규모는 커졌지만 다양성이 줄어든’ 90년대 말 출판 만화 시장의 고사 과정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웹툰 시장은 연평균 40.8%씩 성장하고 있으나(김다이, [K웹툰 성장, 명과 암] 한국 웹툰시장 성장 날개...IP 피해 사례도 '속출', 『아주경제』, 2023.12.12.) ‘진화’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성장과 진화는 모두 변화와 발전의 의미를 담고 있지만 성장이 양적 확장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진화는 질적 개선을 중심으로 한다. 25년간 웹툰 산업은 양적으로 급격히 팽창하며 ‘성장’했으나 질적 개선을 이루는 ‘진화’에 이르려면 ’다양성의 결여‘라는 장벽을 넘어 원천 가치의 생산 주체인 창작자를 보호해야 한다.
자본의 투입을 통해 웹툰 시장의 영역이 국경 너머로까지 확장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산업화된 문화는 생산물을 통해 매출을 발생시키고 투자자가 돌려받을 이익을 보장해야 한다. 따라서 다수 소비자의 관심을 받지 못해 기대만큼의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비주류 작품의 경우, 시장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높다. 웹툰 플랫폼이 해외 시장을 개척하여 규모를 키우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로 인해 국내 시장이 경쟁력을 잃는다면 한국 웹툰 시장 자체가 사업 철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오경미, 웹툰 플랫폼과 문화예술 노동, 『오픈넷』, 2022.02.09. 11쪽)
많은 업계 종사자들이 우려하는 부분이 여기에 있다. 산업의 범주에 들어간 웹툰은 ’작품‘이 아닌 ’상품‘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작품은 개인의 창의적 표현과 예술적 지향을 담아야 하지만 상품은 소비자의 요구와 시장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제작되며 이윤 창출을 주요 목적으로 한다. 자본과 노동력의 투입을 통해 우수한 상품을 제작하여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다면 산업의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상황이다. 하지만 ’돈이 되는‘ 웹툰을 생산하는 근로자로서, 회사에 더 많은 이윤을 안겨주기 위해 웹툰 작가의 길을 선택하는 지망생은 거의 없을 것이다.
4. IP 사업의 핵심은 <I>다.
2024년 6월, 네이버 웹툰은 나스닥에 상장했다. 웹툰 산업의 가능성을 국제 투자자들에게 인정받았다는 증표로 보인다. 그러나 10년간 3배 이상의 폭발적 성장을 이뤘음에도 2023년 네이버 웹툰은 약 2000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유은주, 나스닥 상장 ‘잭팟’ 네이버웹툰···파티는 벌써 끝났나, 『이뉴스튜데이』, 2024.07.04.) 카카오 역시 수익성 악화로 사업 규모를 축소하였다. 업계의 전망이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IP 비즈니스인 웹툰 산업의 활로는 결국 IP의 다양성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많은 작가들이 이미 스튜디오 시스템에 흡수되었고, 네이버풍, 카카오풍, 레진풍, 탑툰풍 등 시장에서 요구하는 트렌드에 맞춰 개성을 제어하고 있다.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고 ’작가주의‘ 만화를 지향하는 작가들은 연재할 플랫폼을 찾지 못해 홀로 고군분투한다.
산업의 측면에서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 재산권의 가치는 재산을 뜻하는 property에 있지만 본질적인 핵심은 intellect, 창작자의 경험과 창의성을 포함한 지적 능력이다. 따라서 가치를 생산하는 주체인 창작자에 대한 보호와 지원 없이 IP 비즈니스는 성립할 수 없다. 양질의 IP가 출현하려면 창작자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어야 한다. 네이버 웹툰의 김준구 대표는 아시아의 넷플릭스, 유튜브, 디즈니가 되는 것을 사업의 장기 목표로 제시했다.(김동훈, 네이버웹툰, 나스닥에 '깃발'…"웹툰계 넷플릭스·유튜브", 『Bizwatch』, 2024.06.28.) 시장이 넓어져 창작자의 수익 창출 폭이 커진다면 모든 업계 종사자에게 유익하겠지만 지금처럼 IP의 소유권이 개인이 아니라 CP사에 집중되는 경향이 계속되는 것은 우려스럽다. 창작자가 작품에 대한 주인의식을 잃으면 질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고, 향유자에게 동기를 부여하여 창작자의 저변 확대를 도모할 가능성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이전에 창작자와 향유자라는 개인의 자아, 즉 <I>가 있다. 창작하는 <I>와 향유하는 <I>가 없다면 성립할 수 없는 것이 콘텐츠 생태계인데 창작자를 산업의 부품이나 대체 가능한 소모품으로 사용하고 향유자를 ’돈줄‘로 바라보는 한, IP 산업의 미래는 없다. 가치는 희소성에 부여되고 창작물의 희소성은 예술의 본령, 작품을 매개로 한 정서적 연결에 있기 때문이다. 웹툰 시장의 급성장기에 정작 그 시장을 만들고 키운 창작자와 향유자는 이익을 나눠 갖지 못했다. 많은 창작자들이 과중한 업무와 부당한 처우를 감당하지 못해 웹툰 시장에서 사라졌으며, 트렌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장에서 배제되었다. 향유자는 취향에 맞는 작품을 만날 기회를 잃었고 상당수는 아예 시장의 판매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하지만 가치사슬 시스템이 고착화된 현 시장 구조에서는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시장 영역을 개척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5. 니치(Niche)의 가치
초창기 웹툰 생태계를 조성한 회사는 다음(DAUM)이었다. 강풀의 ’순정만화‘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다음은 15세 이상의 여성 독자를 대상으로 한 서사 웹툰에 강점을 보였다. 후발주자인 네이버는 ’마음의 소리‘, ’정글고‘ 등 15세 미만 남성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작품 수급으로 다음과의 차별화에 성공하며 독주 체제를 구축했다.(2019 만화산업백서, 『한국콘텐츠진흥원』, 69쪽. 권민수, [웹툰 유료화 시대의 2막①] 웹툰 20년의 역사, 1998년부터 2018년까지, 『DealSite』, 2018.07.12.) 2016년 로맨스와 판타지 장르를 주력으로 일본 시장을 공략한 카카오페이지가 성공을 거두면서(『카카오』, 후발 주자, 만화의 나라에서 이정표를 세우다, 2016.04.) “웹툰의 타겟층은 10대”라는 공식이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024년 “웹툰 코어 이용자층은 10~20대이고 6 대 4 정도로 남성 비중이 높으며 유료 결제율이 높은 이용자층은 20대 남성 회사원”이라고 한다.(서범강, 숫자로 보는 웹툰의 기록 (2024. 07), 『월간 서범강』, 2024.07.03.) 저연령층 이용자들에게 인기 있는 작품이 웹툰 소개창의 상위권에 배치되면서 다른 연령층의 관심을 견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의 측면에서 보자면 네이버 웹툰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했던 2010년대부터 10대 위주의 콘텐츠 선정이 안정된 수익을 보장해왔기 때문에 기존의 성공 공식을 답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협소한 타겟층 설정은 시장의 확장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웹툰 산업의 진화 방안을 생물학 개념인 ‘니치 구성(Niche Construction, 생태적 틈새 구성)’에서 찾아볼 필요가 있다.(장대익, 다윈의 식탁, 『김영사』(2008), 289쪽.) 고정관념을 깨고 시장의 환경을 현실에 맞게 개선하여 웹툰 생태계 전체의 생존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Niche는 ’틈새시장‘을 뜻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K-POP의 경우, 10대를 대상으로 문화 상품화하는 것이 불변의 성공 공식이었으나 2020년 임영웅의 등장으로 ’가요 시장의 주요 소비자는 10대‘라는 상식이 깨졌다. 출판 만화가 무너진 폐허에 웹툰 산업의 초석을 놓은 20-30대 청년들은 이제 40-50대의 중장년층이 되었다. “가장 많이 벌고, 가장 많이 소비하는”(주영재, 가장 많이 벌고 많이 쓰는 40대, 요즘 관심사는, 『경향신문』, 2020.10.24.) 중장년층은 웹툰 시장에서도 여전히 주요 독자층이며 웹툰에 대한 충성도 또한 가장 높다.(김나리, 임유진, 주류 된 비주류 문화, 국민 '10명 중 6명' 웹툰 본다,『이투데이』, 2024.07.02.)
인구의 규모는 시장의 크기를 결정한다. 신생아 출생률은 급격히 줄고 있지만 2023년 말을 기준으로 70년대 생은 828만 명, 80년대생은 705만 명에 달한다. X, Y 세대는 어느 세대보다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향유한 주요 소비층으로 앞으로의 문화 시장도 이들이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안병준, 박홍주, 소비시장 흔드는 800만 X세대, 『매일경제』, 2024.02.08.) 인구 감소로 인한 시장의 중년화는 전 세계적인 경향이니 젠지(GenZ)에 국한된 웹툰 독자층의 범위를 넓히는 글로벌 시장 전략도 고려할 만하다. 웹툰 시장의 틈새는 그 밖에도 많다. 지식 교양 웹툰 플랫폼 ‘이만배’는 34.5억의 투자를 유치했고(최태범, 웹툰으로 공부한다…카카오가 반한 '이만배', 34.5억 투자유치, 『머니투데이』, 2022.07.19.) 이모티콘 캐릭터들은 다양한 파생 상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하지만 대형 플랫폼의 지원을 받지 못한 소규모 회사나 개별 작가의 독자적 생존 노력은 공유나 유포 등의 불법적 행위에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양한 장르의 창작물을 폭넓게 수용하고 안전하게 보호해 줄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이미 견고하게 구축된 웹툰 시장의 자율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지금이야말로 ‘기회의 균등이 실현되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불공정한 사회 시스템으로 인한 결과를 시정하는’(배경화, 성숙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경제정보센터』(2011.02월호) 국가의 역할이 필요한 때다.
6. 공영 웹툰 플랫폼의 필요성
2019년, 한국은 소프트파워 국가 순위에서 문화 부문 12위를 기록했다.(https://softpower30.com/) 종주국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K-컬처의 핵심인 드라마와 영화의 원천 소스로 활용되는 웹툰이 성장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장 구조의 재편이 필요하다. 하지만 “웹툰 산업의 성장과 규모만큼 나날이 늘어나는 작가와 제작사의 작품 수를 네이버와 카카오가 모두 수용하기에는 사실상 역부족”이고 “이러한 책임과 부담을 네이버와 카카오에만 강요하거나 해결하라고 떠미는 것도 맞지 않다.”(서범강, 2024년 웹툰 산업의 주요 과제와 목표 (2), 『월간 서범강』, 2024.06.22.) 사기업이 문화 산업을 성장시킬 책임을 맡아야 할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웹툰 산업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산업과 유사하게 국가의 문화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 사업이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국가 차원에서 웹툰 산업의 기반을 강화할 방안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공영 웹툰 플랫폼을 설립하여 신진 작가를 적극 육성하고 다양한 창작물을 발굴하여 국내 창작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문화 산업이 공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의 대표적인 예로 ‘공영방송’이 있다. 공영방송의 존재 가치로 공익성, 다양성, 지역성을 꼽을 수 있는데(이화행, 플랫폼 환경 변화와 지상파, 공영 방송의 책임과 역할 : EBS의 역할을 위한 제언, 미디어와 교육 제9권 (2019. 12.), 17쪽.) 이는 공영 웹툰 플랫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a. 공익성은 공공의 이익을 지향하는 것이다. 웹툰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의 선도적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원천 IP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문화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중요한 일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더 큰 재정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b. 다양성의 확보야말로 공영 플랫폼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다. 많은 작가들이 시장 논리에 밀려 다양한 작품 세계를 선보일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독자들 역시 작품 선택의 권한을 플랫폼에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매출액이 아니라 작품의 우수성과 완성도로 평가받을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매해 제작 지원사업을 하고 있지만 선정된 작품 중에서 대중에게 결과물을 선보이는 경우는 드물다. 다양성 만화를 받아주는 플랫폼이 거의 없는 것이 원인의 하나다. 공영 웹툰 플랫폼이 생긴다면 지원사업으로 발굴된 작품들을 게재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므로 신진 작가를 양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c. 지역성 역시 웹툰 산업 활성화에 국가의 개입이 필요한 이유가 된다. 61개의 만화 관련 학과 중 44개가 비수도권에 위치하고 있지만 작업을 지속하도록 뒷받침해 줄 인프라가 없기 때문에 많은 작가들이 고향을 떠나거나 고립된다. 그러나 지역마다 발굴을 기다리는 콘텐츠가 많이 있고, 이는 또 다른 소프트파워 사업인 관광과도 연결된다. 스쿨 아이돌의 활약을 그린 일본 애니메이션 ‘러브 라이브’의 배경이 된 누마즈시에는 ‘성지 순례’뿐만 아니라 이주까지 하는 인원이 늘어나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최지희, 일본을 움직이는 덕질의 힘…‘오시(최애)’가 경제 판도 바꾼다, 『아주경제』, 2024.03.07.) 지방대학 만화학과를 기점으로 제작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공영 웹툰 플랫폼에 작품을 제공하는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한다면 지역 간 불평등을 해소할 방안이 될 것이다.
하지만 공영 웹툰 플랫폼은 이미 한 번 시도되었다가 실패한 적이 있는 사업이다. 한국만화가협회, 우리만화연대 등의 만화 단체가 문화관광부의 후원을 받아 2006년에 개장한 만화 웹진 <코믹타운>은 만화창작의 활성화와 만화 산업의 발전을 목표로 하여 구축되었지만(김일태(외), 만화애니메이션 사전, 부천만화정보센터, 2008.12.30.) 작가 선정 및 지원 방식에서의 난제, 사업비 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2009년 문을 닫았다.(『뉴스와이어』, 온라인 만화 마을 ‘코믹타운’, 새 모습 대 공개, 2009.07.07. )
<코믹타운> 운영 당시 문제로 지적되었던 부분은 ‘국가 지원 사업으로 재정이 꾸려지는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위창남, 2006년 만화계 무슨 일이 있었나?, 『오마이뉴스』, 2006.12.19.)는 것이었는데 웹툰 부분 유료화가 시작된 것이 2011년이고, 레진코믹스를 통해 유료화 시스템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 2013년이니(이승연, 강산도, 사람도, 만화도 바뀌는 시간…웹툰사(史) 10년, 『매일경제』, 2014.08.13.) 몇 년만 더 유지되었다면 <코믹타운>의 난제였던 재정적 어려움은 해결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최초의 공영 플랫폼 <코믹타운>의 실패는 공영 플랫폼의 재설립이 불가능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새로운 웹툰 공영 플랫폼은 어떻게 운영되어야 지속 가능성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7. 공영 웹툰 플랫폼의 사업 방향 제안
A. 콘텐츠 기획 방식
a. 전문 웹툰 큐레이터 발굴
웹툰에 대한 애정이 크고 좋은 작품을 선별할 수 있는 눈을 가진 웹툰 PD들이 많이 있다. 이들을 웹툰 큐레이터로 양성하여 플랫폼, 에이전시, 제작 스튜디오로 분산된 기획 및 관리 업무를 총괄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큐레이터의 어원은 ‘돌봄’을 뜻하는 curare이다. 기획 단계부터 큐레이터가 참여하는 공동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고 취재를 통해 전문성을 특화하면 플랫폼에 대한 신뢰를 상승시켜 독자들을 유인할 요인이 된다. ‘오늘의 웹툰 리뷰’와 ‘작가 인터뷰’ 등의 부가 콘텐츠도 트래픽 상승에 도움이 될 것이다. 큐레이터에게는 성과에 따라 일정 비율의 인센티브를 지급하여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기여할 동기를 부여하고 창작 주체의 일원으로 대우함으로써 유능한 콘텐츠 기획-개발 인력을 확충할 수 있다.
b. 콘텐츠 맵 설계
웹툰 산업의 가장 큰 난제인 다양성 부재는 플랫폼 개설 전 콘텐츠 맵을 설계하여 해결할 수 있다. 장르와 소재별 레이블을 구성하여 아이돌 기획사 방식으로 운영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 콘텐츠 맵의 가안은 다음과 같다.
ㄱ. 직업 만화
- 일본 만화 부흥기에는 철저한 취재를 기반으로 다양한 직업군을 다룬 만화가 세계적으로 흥행하였다. 타인의 삶을 대리 체험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 호기심을 가진 글로벌 독자층의 범위를 전 연령대로 확장할 수 있다.
-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예비 독자를 대상으로 기획 단계에서 스토리 작가를 모집하여 독자의 참여도와 플랫폼에 대한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
- 다양한 직업군 종사자의 이야기를 만화로 표현하는 것은 역사적 기록물의 성격도 갖기 때문에 공공성에 부합한다.
- 해당 업계와의 취재 연계로 후원 및 광고를 유치함으로써 플랫폼의 재원 확충에 기여할 수 있다.
ㄴ. 취미 만화
- 21세기의 문화 소비 경향에 대해 ‘덕질의 시대’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박인성, 덕질의 시대와 아이돌 되기, 『자음과 모음』(2018년 가을호), 2018.09. 160-176쪽.) 문화 산업이 한정된 매체에서 중앙 집중적으로 송출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개인의 관심과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여가 방식이 세분화되었다. 낚시, 요리, 골프 등의 취미에 기반하여 웹툰을 제작하고 뒤에 언급할 팬덤 커뮤니티와 연계한다면 사회적 고립감을 해소하는 공익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ㄷ. 경제 만화
- 콘텐츠의 승부처는 ‘재미’와 ‘유용함’이다. 재테크는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전 세대의 가장 큰 관심사이므로 해당 웹툰과 연결된 팬덤 커뮤니티를 통해 양질의 정보 및 의견 교환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심층적인 취재를 통해 증권, 부동산, 비트코인 등 다양한 경제 분야에 대한 대중적 상식의 범주를 넓힐 수 있을 것이다.
ㄹ. 중년 로맨스물
- 드라마의 주 시청자는 중년 여성이고 중년을 대상으로 한 연예 예능 프로그램의 시청률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중년의 연애를 소재로 다루는 웹툰은 거의 없다. 이 또한 웹툰의 주요 타겟층을 10대로 한정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비혼 중년의 비율이 증가함에 따라 이들을 겨냥한 콘텐츠가 2차 저작물 제작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크다고 판단된다.
ㅁ. 레트로 & 뉴트로
- 리메이크는 과거 <코믹타운>에서도 시도했던 사업이다. 원로 작가들의 캐릭터를 모아 독고탁, 강가딘, 고인돌이 함께 하는 ‘꺼벙이 유니버스’ 등을 만들고 캐릭터 사업을 추진하면 성공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 민애니 작가의 그림체로 표현하는 요즘 청소년의 이야기, 80년대 순정 만화가가 그리는 고전적 로맨스물 등으로 세대 간의 갈등과 몰이해를 해소하는 데도움을 줄 수 있다.
c. 웹툰을 중심으로 한 팬덤 커뮤니티 구축
- 초창기 웹툰의 댓글 문화는 작가와 독자가 소통할 수 있는 창구로 기능했으나, 최근에는 ‘댓글 공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작품 감상을 방해하고 작가의 창작 의지를 꺾는 경우가 많아졌다.(박준호, 혐오 전시장 된 웹툰 댓글창, 『서울경제』, 2021.05.11.) 댓글창이 없는 플랫폼도 존재하지만 이 경우 작가가 SNS를 통하지 않으면 자신의 작품을 평가받을 기회를 잃게 된다. 댓글 문화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방안으로 <블라이스>에서 운영 중인 게시판 시스템(https://www.blice.co.kr/web/documents/list.kt) 모델을 제안한다.
독자들은 해당 웹툰에 링크된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작가와 소통함으로써 팬덤 활동을 활성화하고, 커뮤니티 내에서의 토론으로 웹툰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접하면서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 작가는 독자의 의견에 휩쓸리지 않고 창작의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필요할 때 큐레이터가 취합한 게시판의 의견을 수용하여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B. 공영 웹툰 플랫폼의 수익 창출 방안
<코믹타운>의 실패 원인으로 지목된 재정적 어려움을 해소할 방안으로는 운영을 위한 국가 지원금 외 후원 및 판매를 통한 수익 확보, 광고 수주, 구독제의 활성화, 글로벌 틈새시장의 개척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a. 유튜브 방식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다각화된 수익 구조는 웹툰 작가들의 희망 사항으로 자주 거론된다. 공영 웹툰 플랫폼의 경우, 운영을 위해 소득의 30% 정도만 취하고 나머지 수익은 창작자가 콘텐츠의 인기만큼 획득하게 한다. 수익이 적더라도 작품 성과에 대해 투명하고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진다면 창작자는 최선을 다해 작품 활동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유튜브의 수익 창출 및 배분 방식은 다음과 같다.
ㄱ. 광고 수익 (유튜브 45%)
ㄴ. 유튜브 프리미엄 구독료 (시청 시간에 비례한 배분. 유튜브 45%)
ㄷ. 슈퍼챗 (유튜브 30%)
ㄹ. 채널 멤버십 (유튜브 30%)
ㅁ. 쇼츠 펀드, 브랜드 협찬, 굿즈 판매, 팬 후원 플랫폼을 통한 직접 후원
(YouTube 파트너 수입 개요 https://support.google.com/youtube/answer/72902?hl=ko#zippy=%2C%EC%88%98%EC%9D%B5%EC%9D%B4-%EC%96%B4%EB%96%BB%EA%B2%8C-%EA%B3%B5%EC%9C%A0%EB%90%98%EB%82%98%EC%9A%94)
b. 오픈 플랫폼 형식 차용
- 혼자 기획, 창작, 관리 및 수익화까지 해내야 하는 오픈 플랫폼은 자유도가 높다는 장점이 있지만 특정 장르의 고관여층이 아닌 이상 수익을 내기 어려우며 일반 독자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2022 만화산업백서,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 42쪽.) 공영 웹툰 플랫폼의 큐레이팅 시스템을 통해 관리하고 지원함으로써 창작자에게 안정적 작업 환경을 제공하고 역량 있는 신인을 발굴할 수 있다.
c. 구독제
국내 인구 5천만 명 중에서 만 명의 유료 구독자를 확보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지만, 세계 인구 80억 명을 대상으로 틈새 시장을 분석하고 콘텐츠 맵을 전략적으로 구성한다면 만 명의 정기 구독자를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를 위해 다국어로 자동 번역되는 UI/UX를 개발하여 전 세계 사용자들의 접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또한 전문 번역가와 국내 거주 외국인 작가를 양성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반영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다.
C. 기존 플랫폼과의 절충 방안
독립적인 공영 플랫폼을 설립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설치와 운영의 어려움을 고려할 때, 기존 대형 플랫폼 내에 서브 브랜드를 만드는 대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수익성보다 다양성을 추구하며 창작자의 저변을 확대하려는 목표가 사기업의 목적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국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시장 논리에서 자유롭고 독창적인 작품을 게재할 수 있는 장이 열리기만 해도 정체된 웹툰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산업 전반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8. 진화의 방향 : 생명의 나무
(황장석, [키워드로 다윈 읽기] 생명의 나무, 『동아일보』, 2009.09.23.)
진화, evolution의 어원은 ‘펼침(evolutionem)’이다.(장대익, 다윈의 식탁, 『김영사』(2008), 205쪽.) 나무는 높이 솟기 위해서가 아니라 잎을 풍성히 틔우기 위해 성장한다.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숲을 이루려면 더 많은 가지를 뻗도록 돌봐야 한다. 생태계의 원리는 자연 생태계와 웹툰 생태계가 다를 바 없다. 독창적인 IP를 만들어 낼 웹툰 작가가 사라진다면 웹툰 시장도 소멸할 것이다. 풍부한 변이성을 가진 종은 멸종으로 향하지 않는다. 그것이 적자생존의 진정한 의미다.(장대익, 다윈의 식탁, 『김영사』(2008), 254쪽.)
사회적 진화는 고착된 현상을 개선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웹툰 종주국인 한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선도적 지위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창작자, 전문 큐레이터, 향유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는 공영 웹툰 플랫폼의 설립이 필수적이다. 공영 웹툰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을 가진 신작을 지속적으로 배출하고 지역 산학 클러스터를 활용한 콘텐츠 공급망까지 구축한다면 한국 웹툰 산업이 경쟁력을 강화하고 문화적 영향력을 확장하는 진화를 성취할 것이다. 상업적 경쟁의 압박에서 벗어난 작가들이 자유롭게, 진정성 있는 작품들을 선보일 수 있는 공영 웹툰 플랫폼이 개설되어 한국 웹툰 산업이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