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대한민국만화평론공모전 수상작(신인상)
흔하디흔한 세 잎 클로버를 찾는 <흔한햄>
1. 오늘날 청년의 초상은 햄스터?
만원도 채 되지 않는 가격에 팔리는 햄스터는 소비 사회에서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상품으로 취급되는 ‘흔한’ 존재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청년 세대 역시 '햄스터'와 다르지 않다.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 중인 잇선의 <흔한햄>은 사회가 요구하는 틀 안에서 끊임없이 소비되고 지쳐가는 청년들의 모습을 햄스터 '햄'의 일상을 통해 보여준다. 주인공 ‘햄햄이’(이하 통칭 ‘햄’)는 분명히 햄스터이지만, 그의 삶은 우리 주변의 청년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스마트폰에 몰두하며 시간을 보내고, 방 안에서 배달 음식을 주문해 먹거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나서는 등, 그의 일상은 오늘날 청년 세대의 전형적인 삶을 떠올리게 한다.
△ <흔한햄> 1화: 으게에에 / 출처: 네이버 웹툰
푸른 봄이라는 뜻인 청춘의 이면에는 방황이라는 끝없는 어둠이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자신의 가치를 깨닫지 못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좌절하는 시간이다. 알랭 드 보통은 타인이 자신을 바라보는 사회적 위치, 즉 ‘지위(地位)’가 우리의 자아상을 결정하는데, 이 지위를 얻는 것에 실패할 때, 굴욕감이 생긴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에 자신의 가치를 납득시키지 못했음을 뜻한다.(알랭 드 보통, 정영목 옮김, 『불안』2011, 도서출판 은행나무, p.8-22) 대한민국과 같은 집단주의 사회에서 지위가 주는 압박감은 강력하다. 지위에서 비롯되는 가치는 개인보다 사회를 중요시하길 바란다. 그 결과, 우리 청년 세대는 꿈을 찾지 못하게 되었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3년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등학생 20.7%, 중학생 41%, 고등학생 25.5%가 자신의 희망 직업이 없다고 밝혔다.(김금란, 꿈이 없는 아이들, 충청타임즈, 2024.08.28. https://www.cctimes.kr/news/articleView.html?idxno=810824) 청년 세대가 겪는 좌절감과 무기력함은 단순히 개인적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이다. 요즘의 청년 세대를 지칭하는 MZ세대는 밀레니얼 세대(M세대)와 Z세대를 가리키는 대한민국의 신조어이다.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개인의 존중을 중시하는 성향이 MZ세대의 특징인데, 미디어는 이를 ‘이기주의’로 왜곡하여 비판의 대상으로 묘사한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청년 세대가 느끼는 생존의 위협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형태로 찾아오고 있다. 대한민국은 OECD 자살률 1위 국가이며, 자살로 사망한 사람 중 대부분이 젊은 층이다. <흔한햄>은 미디어에서 보여주지 않는 청춘의 현실을 담고 있다. 주인공이 ‘햄스터’라는 점은 청년들에게 인간다운 삶이 전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시사한다. 특히, 초반에 햄이 자주 내뱉는 “누가 나 안 죽여 주나?” 같은 비관적인 말은 청년들이 마주한 극단적인 감정을 보여준다. 햄스터의 수명은 1년에서 길어야 2~3년 정도로 짧다. 오늘날의 청춘은 햄스터처럼 위태로운 삶 위에 놓여 있다.
처음 <흔한햄>을 보게 된 것은 귀여운 햄스터의 이미지 한 컷에 이끌려서였다. 그런데 몇 화를 읽고 나니 햄스터는 사라지고, 그 속에는 내가 남들에게 ‘욕먹기 싫어’ 숨기고 싶었던 나의 삶이 있었다. 1화에서 시작된 당황스러운 호기심은 순식간에 그 당시 공개되었던 연재분까지 감상하게 했다. 약 10화 정도를 정신없이 읽은 후, 기묘한 감정 속에서 햄의 삶이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햄의 노력이 나의 노력과 겹쳐 보였고, 매일 겪는 삶의 괴로움을 객관적으로 되돌아보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나 자신을 미워하라고 부추긴다. 근대 사회에서 경제적 능력주의는 당연한 것이 되었고, 부의 고착화나 세습 같은 구조적 문제는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그 안에서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가난을 경멸하며 ‘실패자’라는 낙인을 찍는다.(알랭 드 보통, 정영목 옮김, 앞의 책, p.108-109) 그리고 가난과 실패에서 비롯되는 불안과 우울은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된다. 햄 역시 마찬가지이다. 햄은 자신의 방에서는 우울함에 빠져 있지만, 아르바이트에 가서는 누구보다 친절하고 빠릿빠릿하게 일한다. ‘괜히 욕먹기 싫기 때문’에, 햄의 우선순위는 항상 타인과 사회가 되어버린다. 이 과정에서 햄은 자신을 미워한다. 나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나’는 나를 가장 미워할 수 있다. 반대로, 나를 가장 사랑할 수 있는 사람도 ‘나 자신’이 될 수 있다. 나만이 내가 해온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흔한햄>은 ‘햄스터의 쳇바퀴’ 같은 인생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나의 삶을 다시 읽게 만든다. 1부의 끝에 이르러, 햄이 애쓰는 모습이 안타깝고 대견하게 느껴지는 순간, 나 또한 햄만큼 열심히 살아가고 있음을 작품을 통해 깨닫는다.
요즘 네이버 웹툰 상단에는 네이버 웹툰의 자회사 LICO나 박만사(박태준 만화회사) 같은 기업이나 팀이 제작한 대형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인기 작품들은 ‘복수’라는 큰 주제를 공유한다. 사실적인 배경에 기반해 몸이 바뀌거나, 환생, 회귀 같은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것이 특징이다. 현재의 트렌드에서 현대인들이 현실의 복잡한 문제는 회피한 채, ‘사이다’처럼 답답함을 시원하게 해소해 줄 쾌락적인 작품을 찾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점점 자기 삶을 고찰하기를 회피하고, 소통과 이해보다는 자신만의 억울함에 갇혀 살아가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반면, <흔한햄>은 인기 작품과 전혀 다른 위치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낸다. <흔한햄>은 우리에게 문제를 회피하기보다는 한번 부딪혀보자고 제안한다.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흔한햄>이 전하는 고유한 목소리는 현대 사회에서 참 소중하다. 이 목소리가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오랫동안 전해지기를 바라며, 작품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2. 청춘이라는 ‘틀’
햄은 폭식증에 시달리고 있다. 공허를 채우려는 폭식은 오히려 햄의 몸과 마음을 더 깊은 고통에 빠트릴 뿐이다. 음식은 진정한 행복이 아닌 순간적인 쾌락에 불과하다. 사회적 압박과 정신적 스트레스는 사람을 중독적 행동에 빠지게 한다. 폭식으로 살이 찐 햄은 자신의 인생을 비관한다. 폭식 외에는 자신의 공허를 채울 방법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햄의 인생에는 행복이 부재하다.
△ <흔한햄> 4화: 오동동통 햄 / 출처: 네이버 웹툰
햄은 친구 ‘울쥐’를 오랜만에 만난다. 햄의 친구 울쥐는 모든 일을 ‘죽음’과 연결 지어 말하는 허무주의 햄스터이다. 울쥐는 햄에게 어차피 얼마 살지 못하고 죽을 바에 결과를 신경 쓰지 말고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한다. 소비 사회에서 가치 없는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하며 ‘생존’을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인생의 무의미함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울쥐의 말에 햄은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고민하며, 조금은 ‘마음대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햄이 처음으로 자신만의 의미를 찾고자 시작하는 것이다.
△ <흔한햄> 5화: 쫑깃쫑깃 / 출처: 네이버 웹툰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의 정체성에서 떼어낼 수 없는 것이 바로 ‘죽음’이라고 한다. 죽음의 순간에서 인간은 자기의 존재를 이해한다. 모든 인간이 죽음을 남에게 맡길 수 없고, 죽음만은 그 자신이 감당해야 하듯이, 인간은 자기의 존재와 싸워야 한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불안’이란,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가려는 것이기 때문에 불안을 그 자체로 마주 대할 수 있는 ‘불안에 대한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한다. 불안에 대한 용기를 갖는 사람은 자신을 대면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는 사람이다.(이기상, 『존재와 시간 :인간은 죽음을 향한 존재』, 2011, ㈜살림출판사, p.214-265) <흔한햄>의 단행본에는 중간마다 ‘잇선의 편지’가 실려 있다. 잇선 역시, 무엇인가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마다 삶이 유한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삶이 끝날 때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그림 그리는 일을 시작할 때 했다고 한다.(잇선, 『흔한햄 1』, 2024. 위즈덤하우스, p.66) 이후, 햄은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SNS에 간단한 그림을 올리는 활동을 시작한다. 보름 동안 올린 8개의 그림으로 모인 팔로워는 겨우 10명에 불과한데, 그마저도 전부 광고 계정이다. 그러나 햄은 전과는 다르게 ‘뭔가 하고 있다’는 생각에, 어쩐지 이전보다 삶이 ‘나은’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하이데거는 내가 이제까지 매달려 왔던 것들이 모두 부질없음을 깨닫고, 타인 속에서 나와 나 자신을 되찾아, 나 자신을 대하며, 나 자신을 스스로 택할 수 있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한다.(이기상, 앞의 책, p.266) 그림 그리는 일은 소비 사회에서 가치 있는 일이 아니다. 햄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계속 외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이야말로, 인간에게 진정한 해방감을 선사할 수 있다. 햄은 좋아하는 일이라는 ‘결단’을 통해서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중, “알은 새의 세계이다. 누구든지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라는 유명한 구절처럼 ‘나’를 이해하는 일은 일단 ‘나’를 둘러싼 ‘틀’을 파괴해야만 가능하다.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SNS에 올리면서 햄은 점점 더 많은 팔로워를 얻게 되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르바이트하던 가게가 문을 닫으면서, 햄은 빵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다. 힘든 일과를 마치고 나면 몸 상태는 껍데기만 남은 폐기물이 된다. 조금 쉬려고 잠깐 핸드폰을 하면 그 소중한 시간은 금세 사라진다. 그 와중에 뭔가 해야 할 것 같다는 의무감으로 책상에 앉으면, 허기에 이상한 음식을 주워 먹게 되고, 먹으면 또 졸려져서 생산력이 낮아지게 된다. 그렇게 또 새벽 늦게 자괴감에 찌든 채로 지쳐 잠에 든다. 돈과 삶은 비례한다.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소득을 줄일 수밖에 없다. 햄은 빵 공장을 그만두고, 울쥐에게 블로그 글을 쓰는 일을 소개받는다. 이전보다 생활비는 줄었지만, 남는 시간에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러나 지난날의 습관을 쉽게 고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유튜브, 폰 게임, 맥주, 과자, 드라마, SNS 순회 같은 유혹이 존재한다. 햄은 자신이 만들어온 과거와 계속해서 싸워야 한다.
△ <흔한햄> 13화: 으게으 / 출처: 네이버 웹툰
햄의 일상은 모래성과 같다. 열심히 쌓아 올린 하루의 일정은 작은 유혹에 쉽게 무너진다. 늦게 일어나서 대충 앉아 있다가, 대충 밥 같지도 않은 밥을 먹는다. 햄은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눕는 그런 짐승 같은 삶을 산다. 이 무너진 일상을 햄은 끊임없이 고통받는 ‘무간지옥’이라 표현한다. 그런데도 햄은 꿋꿋이 그 실패의 반복에 자신을 내던진다. 약 두 달간 자기 자신과 실랑이를 벌여보지만, 외주나 합격 소식이 오지는 않는다. 햄은 울쥐와 폭음, 폭식을 하면서 기분을 풀어보지만, 이제는 그것들이 공허를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햄은 ‘내일’ 다시 아르바이트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햄이 내일을 고민하기 시작한 순간, 합격 메일이 찾아온다. 취업은 햄에게 놀라운 성취였지만, “거긴 어디야? 좋은 회사야??”, “대기업이지? 와 성공했네!” 같은 친구들의 무거운 축하가 성취의 가치를 흔든다.
그래도 일을 한다는 것은 햄에게 ‘쓸모가 있다는 느낌’을 준다. 햄은 비로소 자신이 사회에 소속된 일부가 되었다고 느낀다. 그러나 첫 출근의 설렘은 오래가지 못한다. 잔업을 빙자한 야근이 일주일째 이어지면서 햄은 탈진한다. 햄은 잔업이 당연하다며 자기최면을 걸고, 자신의 쓸모를 의심하기까지 한다. 16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햄을 비롯한 수많은 청춘이 모여 거대한 레일을 만들어가는 장면이 있다. 그 레일 끝에는 ‘진짜 햄 분쇄육’이라는 고기 분쇄기가 기다리고 있다.
△ <흔한햄> 16화: 위이잉..위잉.. / 출처: 네이버 웹툰
이 컷은 영국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11번째 정규앨범 <The Wall(1979)>의 수록곡인 “Another Brick in the Wall(Part 2)”의 뮤직비디오를 떠올리게 한다. 획일적인 교육에 반항하는 내용의 노래로, 이 뮤직비디오에는 학생들이 레일 위를 행진하는 장면이 있다. 레일 끝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몸을 아래로 내던지는데, 그 밑에 고기 분쇄기가 있다. 청년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갈아 넣는다. 그러나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역할은 말 그대로 하나의 역할에 불과하다. 부여받은 역할은 언제든, 누구로든 대체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의 부품으로 취급받는다.
△ <흔한햄> 17화: 쿠헹~ / 출처: 네이버 웹툰
인간은 그 자체로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그 가치를 지키는 것은 어렵다. 특히 취업이 주는 묘한 쾌감이 있다. 취업 후, 부모님과 친구들은 햄의 능력을 인정하기 시작한다. 남들과 똑같이 직장을 다니며 월급을 받는다는 점에서 비로소 햄은 ‘사회인’으로 인정받는다. 어느 날, 회사 사장이 도망치고 햄은 직장을 잃게 된다. 그 순간, 햄을 사로잡은 것은 자신이 ‘또다시 천하의 놈팽이, 찌그레기, 아무것도 아닌 똥 찌꺼기 햄스터’로 전락할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 햄의 두려움은 직장이 없는 상태가 곧 사회에서 가치 없는 존재로 여겨진다는 현실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사회가 청년들의 꿈과 노력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 결국, 사회적 인정은 우리의 행복을 진정으로 보장해 줄 수 없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 개인이 삶의 가치나 여유를 되돌아볼 시간은 모두 사치가 되었다. 햄은 자신을 둘러싼 ‘틀’을 쉽게 벗어날 수 없다. 햄은 자신의 껍데기를 깨고 나왔지만, 그 바깥에는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청년들이 자유와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해도, 사회적 구조라는 또 다른 굴레에 갇히는 실존적 딜레마의 연속이다. 하이데거가 말한 것처럼, 자신만의 ‘결단’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는 싸움을 벌이는 햄의 일상은 이 끝없는 ‘무간지옥’을 보여주고 있다.
3. 잇선의 ‘탈’
‘일상툰’이란, 작가의 솔직한 일상을 담아낸 만화이다. 2010년대 이후 잠시 수가 줄어들었던 일상툰이 최근 부활하고 있다. 오늘날의 청년 세대는 이전처럼 긴 이야기를 따라가며 공감할 여유가 없다. 이야기의 심리적 부담이 없는 숏폼 형태는 청년들의 지친 일상을 위한 극단적인 탈출구가 되어주고 있다. 같은 점에서 일상툰은 짧고 가벼운 콘텐츠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독자에게 다가간다.
<흔한햄>은 일상툰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육아일기>, <쌉초의 난>, <유부감자> 같은 실제 삶을 재현하는 전형적인 일상툰과는 다르다. 이 작품은 일상 장르임에도 작가 본인을 직접 내세우지 않고, 동물 캐릭터를 통해 우회적으로 오늘날 청년들을 표현하고 있다. 잇선이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했던 전작 <우바우(우리가 바라는 우리)> 또한 청년들의 모습을 동물로 표현한 작품이었다. 동물 캐릭터를 통한 비유는 꼭 ‘탈’을 쓴 것만 같다. 햄의 삶은 작가 잇선의 삶과 비슷한 점이 많다. <흔한햄>의 댓글에는 “이거 작가님 이야기에요?”라는 질문들이 항상 보인다. 보통은 사회에서 중요한 지위에 있는 사람을 ‘이름 있는 사람’이라고 부르고 그 반대를 ‘이름 없는 사람’이라고 부른다고 한다.(알랭 드 보통, 정영목 옮김, 앞의 책, p.16) 오늘날 청년 세대는 그런 ‘익명’으로 살아가고 있다. 잇선의 탈은 ‘이름 없는 사람’으로서 청년들이 사회적 지위를 얻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햄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동료들과 매일 퇴근 후 술을 마시는 것이 햄의 새로운 일상이다. 알코올은 햄의 불안을 지워주고, 술친구들과의 관계는 햄의 우울을 가볍게 만든다. 그림과 꿈도 알코올 속에서 점점 휘발되어 간다. 햄은 술친구들과의 무질서한 삶 속에서 기묘한 자유를 느낀다. 밴드를 했던 개구리 ‘프록’, 체조선수였던 ‘림보’, 심오한 세계를 가진 ‘커트’는 모두 한때 꿈이 있었지만, 지금은 각자의 현실에 갇혀있다. 햄은 이들에게서 왠지 모를 동질감과 친밀감을 느낀다. 자연스레 긴장이 풀리고, 햄은 그동안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어려웠던 그림을 술친구들에게 보여주게 된다. 친구들의 반응은 햄이 처음으로 받아본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특히, “넌 다른 일 말고 그림을 그려야 될 햄이다.”라는 커트의 한 마디는 햄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린다.
△ <흔한햄> 20화: 버엉... / 출처: 네이버 웹툰
오랜만에 다시 그림을 그리려고 하는데, 햄은 선 하나를 긋는 것조차 수없이 고민하게 된다. 쓸데없는 고민이 계속 이어지자, 결국 햄은 “아, 몰라. 그냥 해버려으.”라며 펜을 들고 그리기 시작한다. 한 번 그리기 시작하니 어느새 흐름을 타고, 몇 시간이 지나자, 햄은 오랜만에 ‘자기 일’을 하면서 왠지 모를 안정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 안정감은 오래가지 않는다. 친구들을 멀리하고, 혼자 무언가를 한다는 생각이 점점 더 무거운 부담으로 다가온다. 심지어는 친구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기분까지 든다. 햄이 그림을 그리며 느낀 행복은 부채가 되고, 햄은 빨리 이 시간을 ‘보상’받고 싶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 <흔한햄> 23화: 쿠구구궁.. / 출처: 네이버 웹툰
하이데거는 인간이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불안을 느끼며 존재의 무게를 떠맡는 것이 ‘실존적 차원’이라고 한다.(이기상, 앞의 책, p.150) 사르트르 역시 “인간은 자유로 단죄받았다”고 하며, 인간은 어떤 형태로건 선택하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존재라고 한다. 나아가 인간은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미래로 던지며 현재의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하이데거는 자기가 살아가야 할 존재의 부담을 받아들이는 것을 ‘떠맡음’이라고 한다. ‘불안’에 대한 용기를 가지고 ‘떠맡음’을 자기가 살아야 할 존재의 과제로 삼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다. 이것이 하이데거가 말하는 인간의 ‘있음’의 첫 번째 방식이다.(이기상, 앞의 책,p.182-189) 마찬가지로 햄은 자신이 만든 이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불안 속에 있는 것이다. 이 성공압박은 다시 한번 햄을 멈추게 만든다. ‘이게 맞는 걸까?’라는 의문이 햄을 괴롭힐 때, 커트는 “이미 그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로 잘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하며, 친구들을 버린 죄책감을 인정하라고 한다. 여기서 햄은 쓰레기 같은 자신조차 받아들여야 함을 배운다. 하이데거가 말한 ‘떠맡음’처럼, 햄은 자신의 존재와 선택을 떠맡고 받아들인다. 그렇게 햄은 조금씩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법을 배운다.
△ <흔한햄> 25화: 뭣!!! / 출처: 네이버 웹툰
햄은 다시 나아간다. 물론, 일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완벽한 하루는 드물고 애매한 날들이 대부분이다. 끝없이 남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때로는 자책의 늪에 빠지기도 한다. 그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기계처럼 사는 삶이 편하다고 느끼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갑자기 다가올 미래가 두려워 혼자 울기도 한다. 일상을 만든다는 것은 스스로를 인정하고 감당해야 하는 고통의 연속이다. 하이데거의 ‘있음’의 두 번째 방식은 ‘존재할 수 있음’이다. 인간은 인간인 한 끊임없이 ‘존재할 수 있음’인데, 이것은 인간이 자기 존재를 잘 이해하고 있음을 뜻한다. 인간이 무언가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스스로 나의 존재를 제대로 이해했을 때 가능하다.(이기상, 앞의 책, p.189) 햄이 매번 좌절하면서도 계속 나아가는 이유는 ‘존재할 수 있음’과 같은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다. 햄의 고통은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겪는 필연적인 단계이다. 그렇게 햄은 자신의 불안을 끌어안고, ‘자기만의 얼탱이 없는 방식’을 찾아낸다.
△ <흔한햄> 27화: 로봇 흉내 / 출처: 네이버 웹툰
햄이 찾은 자기만의 방식은, 하이데거가 말하는 인간의 ‘독특함’을 보여준다. 자신의 존재를 떠맡는 인간의 독특한 ‘있음’ 방식이란, 곧 ‘세계-안에-있음’이다. 인간과 세계는 분리될 수 없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갖는 독특함이다.(이기상, 앞의 책, p.178-181) 햄이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일상을 만들어가는 모습과 그 안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해 가는 모습이 바로 독특한 존재 방식이다. 훌륭한 작가란, 우리가 일상에서 놓치는 것들을 발견하여 자신만의 철학으로 표현하는 사람을 말한다. <흔한햄>의 시작은 잇선이 어느 날 인터넷으로 본 햄스터의 모습에서 시작되었다. 왠지 웃기고, 정이 가는 모습에 자연스럽게 그리다 보니 동질감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면서 잇선은 자신도 ‘햄스터’가 되어버렸다고 표현한다.(잇선, 앞의 책, p.4) 그 익명의 햄스터는 누구든 될 수 있다. <흔한햄>은 마치 거울처럼, 매일 반복되는 우리의 절망과 좌절이 누구나 겪는 흔한 일임을 보여준다. 독자는 잇선이 건넨 탈을 쓰고 ‘햄’이 된다. 동물의 탈을 쓴다는 것은, 사실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독자들은 <흔한햄>을 읽는 동안 햄의 일상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며, 햄의 경험 속에서 자기 자신을 조금은 덜 부끄럽게 느낀다. 그 안에서 함께 웃고 울며, 매일 반복되는 ‘흔한 삶’의 가치를 발견한다. 그 순간, 독자는 탈을 벗고 나 자신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흔한햄>이라는 작품의 아이디어와 그 실현은 ‘햄스터’에 대한 독특한 시선과 자신의 삶에 대한 고찰에서 시작되었다. 그 과정에서 작가 자신의 이야기만 하지 않고, 익명의 독자를 그리며 다정한 위로를 전하는 것이 <흔한햄>의 우수한 점이다.
4. ‘일상(日常)’ 속 ‘이상(理想)’
햄의 그림을 좋아하는 팬들이 늘어나고, 햄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굿즈를 제작하며 자신의 그림을 상품화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혼자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햄은 밤낮없이 일만 한다. 불확실한 수입은 잠깐의 휴식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햄은 과로로 인해 강제로 휴식을 취하게 된다. 잠깐의 휴식에 익숙해진 햄은 자신이 만든 일상으로 쉽게 되돌아가지 못한다. 햄은 이런 상태를 ‘딴짓 관성’이라고 부른다. 그 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지만, 한 번 빠지면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한 달간의 고생 끝에 햄은 겨우 루틴을 다시 잡아낸다. 하지만 예전보다 수익이 부쩍 줄어들고, 일에만 몰두하면 다시 아플까 봐 몸을 사리게 된다. 이 끝없는 딜레마는 햄에게 삶에 대한 회의감을 안겨준다.
△ <흔한햄> 38화: 환기 / 출처: 네이버 웹툰
울쥐는 햄에게 자기 집에서 함께 지내면서 일상을 환기해보자고 권유한다. 울쥐는 매일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까지로 일하는 시간을 정해두고, 10분씩 쉬는 시간에 스트레칭을 한다. 점심으로는 귀리죽을 먹고, 저녁 6시가 되면 하던 일을 끝내고 바닥에 자빠져 휴식을 취한다. 햄은 자신과 전혀 다른 규칙적인 생활 방식을 신기하게 느낀다. 울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죽으니까..”라고 대답하는데, 말 그대로 자신과 타협하며 나름의 생존 전략을 만든 것이다. 울쥐는 쉬는 날마다 글을 쓰고 있었다. 원래 감성적인 글을 썼지만, 독자들의 반응이 없자 남들이 원하는 내용을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웹소설을 쓰고 있다. 햄은 울쥐의 그런 면에서 프로 의식을 배우며, 사람들이 원할만한 발랄한 그림을 그려보기로 한다. 새로운 그림은 초기 반응이 좋았다. 매출도 오르고, 덕분에 틈틈이 여유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3개월간 그런 삶이 유지되는데, 햄은 이상하게 점점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다. 바로 햄이 자신이 원하는 창작과 타협 사이에서 간극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커트는 변한 햄의 그림을 알아채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으며, 좀 더 스스로를 돌보라고 충고한다. 커트는 타인의 기준으로 자신을 바꿀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 <흔한햄> 39화: 친구네 집 정석 코스, 40화: 밝은 그림 / 출처: 네이버 웹툰
대신, 타인에게서 나를 배울 수 있다. 계속 우울한 그림만 그려왔던 햄은 울쥐를 통해 처음으로 웃긴 그림을 시도한다. 그리고 커트로부터 나아가 자기 내면에 있는 어둠과 밝음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웃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햄은 자신이 좋아하면서도 ‘잘하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울쥐와 커트를 통해 햄은 자기 존재를 더욱 단단히 만들어 간다. 햄은 커트와 함께 다시 취업 준비를 한다.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일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여섯 번의 탈락에 괴로워하는 햄에게 커트는 200번째 탈락 중이라고 이야기하며, 실패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여전히 술 한잔을 할 수 있는 합리적 이유를 찾고, 감정에 흔들려 하루 일상을 무너트리기도 하지만, 이제 햄은 실패를 새로운 도전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다. 자연스럽게 합격 연락이 찾아오고, 햄은 커트와 동반 입사를 한다. 새 회사는 낯선 사람들과 바쁜 업무로 정신을 쏙 빼놓지만, 장난을 치고 칭찬을 건네는 동료들 덕분에 햄은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과 함께 새로운 자신감을 얻는다. 어느 날, 햄에게 단체전 전시 제의가 온다. 전시는 햄의 오랜 ‘꿈’이었다. 생애 첫 전시에서는 자신을 작가로 인정하지 않는 관람객을 마주해야 하기도 했다. 기대한 만큼 기쁘지도 않고, 긴가민가한 기분으로 햄은 전시 첫날을 마무리한다. 혼란스럽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있고 뭔가 하고 있다는 게 어디야.“라는 울쥐의 말이 햄을 위로한다. 커트 역시 햄에게, “다 네가 한 거지.”라며, “뭔가 하는 게 대단한 거지.”라고 이야기한다.
△ <흔한햄> 49화: 꿈 / 출처: 네이버 웹툰
<흔한햄>의 전체 내용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햄의 일상을 보여준다. 잇선은 매번 같은 일상을 특유의 재치와 새로운 연출로 표현하여 내용의 반복성을 감추고 있지만, 사실 <흔한햄>에는 극적인 반전이나 새로운 전개는 없다. 오히려 햄이 매번 일상을 지키지 못하고 무너지는 모습은 지극히 사실적이고 일상적이어서 허구의 만화로서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품게 만든다. 그러나 매번 똑같은 반복의 끝에는 아주 사소하지만, 이전보다는 나아진 햄의 ‘작은 진전’이 있다. 햄은 천천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개척해 나간다. 주인공 햄이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가듯, <흔한햄>은 자신만의 장르를 개척해 간다. <흔한햄>이 일상툰으로서 가지는 진정한 매력은 우리의 삶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잇선만의 유머 감각으로 ‘웃프게’ 표현하기 때문이다. 작고 귀여운 햄스터를 통해서 고통의 반복을 보이는 유머는 삶의 무게를 가볍게 만든다. 보통은 유머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유용한 도구이며, 우리 자신의 지위에 대한 불안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예시로 만화가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면 당황하거나 창피할 수 있는 상황이나 감정에서 웃음을 끌어낸다. 그들은 우리가 혼자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주 어색한 측면들을 재치 있게 드러냄으로써, 불안을 억제하려고 시도한다. 이것이 잇선이 <흔한햄>을 비롯한 자신의 모든 작품에서 보이는 만화가로서의 태도이다. 또한 보통은 만화를 ‘삶의 비평’으로 바라보았다.(알랭 드 보통, 정영목 옮김, 앞의 책, p.216-218) 우리 시대도 만화와 웹툰을 비롯한 예술을 통해 읽을 수 있다. 예술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과 열망을 담는다. 현재 인기 장르가 ‘복수’인 것이 삶을 회피하려는 현대인의 태도라고 말한 것처럼, <흔한햄>은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열망이다. 이 작품은 폭풍우 같은 삶 속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견뎌낼 수 있다는 소중한 믿음으로서 존재한다.
<흔한햄>의 단행본에는 잇선이 주인공 햄과 인터뷰를 하는 만화가 있다. 잇선이 “어떻게 해야 너처럼 살 수 있지?”라고 묻자, 햄은 “일단, “어떻게든 되겠지..”라면서 개판으로 살아. 그럼 얼마 안 가서 진짜 개판이 돼 버려. 그럼 어떻게든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라고 대답한다. 이를 적던 잇선은 “아니....... 적고 보니까 그냥 나잖아.”라고 깨닫는다.(잇선, 『흔한햄 2』, 2024. 위즈덤하우스, p.4-7) 작가와 캐릭터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잇선이 <흔한햄>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자신의 삶을 깊이 고찰했는지가 드러난다. 잇선이 전하고자 하는 삶의 가치는 ‘일상(日常)’ 속 ‘이상(理想)’을 꿈꾸는 태도에 있다. 자신만의 삶을 계속해서 새롭게 만들고 지속해가는 것이야말로 이 억압적인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이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만화를 포함하여 현대의 많은 예술이 예술로서의 이름을 잃고, 소모적인 성향을 띄며, 양산화되고 있다. 예술은 우리에게 인간다운 삶을 고민하게 만든다. 나아가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가리키는 지표가 되어준다. 일상의 미학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흔한햄>은 우리의 현재에 필요한 작품이다. 그리고 우리 문화가 더욱 풍요로워지기 위해서는 사회, 문화와 더불어 예술의 영역에서도 다양성이 존재해야 한다. 특히, 만화·웹툰 산업에서도 잇선과 같은 독창적인 작가들이 함께 성장해야만 우리 산업이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예술로서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흔한햄>의 1부가 완결되고 2부가 연재되는 현재, 긴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다. 여전히 ‘나’라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아마 오랫동안 나 스스로 탐구해야 할 문제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삶의 불안도 예술만으로 견뎌낼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울쥐와 커트처럼 내게도 <흔한햄>이라는 친구가 생긴 것이다. 우리는 <흔한햄>을 통해 각자의 속도로 천천히 나를 찾아갈 수 있다. 그렇게 나를 조금씩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도 충분하다. 1부 초반에 햄이 찾고자 했던 행복이란,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다. 삶의 불안은 우리가 행복보다 순간의 행운을 바라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일상에서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각자의 행복을 찾아야 한다. 길가에 흔하게 널린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이 ‘행복’인 것처럼, 흔한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은 행복들이 <흔한햄>이 전하는 메시지다. 그리고 잇선의 모든 작품을 꿰뚫는 주제 의식은 실패와 절망 속에서도 이어지는 ‘일상의 지속’이다. 인생의 불안은 청춘의 시기에만 있지 않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안의 불안을 다스리며 삶을 지속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삶에 예술이 필요한 이유이며, 잇선이 <흔한햄>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다. <흔한햄>을 통해 모두가 각자의 세 잎 클로버를 찾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